이번 지리산 종주길은 출발부터 달랐다.
그전에는 영등포역에서 구례구까지 가는 열차를 타고 또 성삼재까지는 택시를 이용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삼재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퇴근 후 짐정리 마무리하여
금요일 22시 55분 동서울에서 출발했다.
성삼재까지 약 4시간이 예상되었으나, 심야라서인지 3시간 30분 정도만에 성삼재에 무사히 도착했다.
몇 년만에 와보는 성삼재는 편의점도 생겼고, 주차장도 대형버스가 주차할 수 있게 넓게 변해있었다.
겨울이 아니어서 다른 장비를 챙길 것도 없었기에 해드랜턴만 착용했다.
3시부터 입산시작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인지 조금 일찍 개방을 해주었다.
산행시작하자마자부터 바람이 꽤 심하게 불어서 머리위로 나뭇잎끼리 부딪히며 휘도는 소리와 함께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걸었다.
일단 노고단 대피소에서 우리 친구들과 모이기로 했기에 천천히 걸으며 그동안 그리웠던 지리산의 입성을
느끼며 걷는다. 돌아서가는 편안한 길보다는 왼쪽 가파른 돌길을 선택했다. 당연히 땀이 비오듯 흘렀다.
간간히 들리는 계곡물소리와 바람이 계속 불어서 태풍전야 불어오는 바람과 같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당일종주팀, 그리고 늦게오는 친구들과도 함께 만났고,
이번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겨울이라면 칠흙같은 밤이었겠지만,
한여름이라서인지, 어슴프레 주변을 볼 수 있었고, 노고단에 오르자
주변 돌탑도 보이고, 안전표지판도 보였다.
돼지령을 넘으며 시작되는 은근한 내리막길에는 벌써부터 야생화가 보이기 시작했고 촉촉하게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위험한 돌멩이가 튀어나와 있던 길에는 덮개를 깔아놓아서 걷기에도 편안했다. 아마도
부상자가 많이 있었던 듯 하다.
몇 년만에 와보는 지리산 종주길은 확실히 뭔가 개선이 되었고, 좋아 진 듯 하다. 비가 자주내려서인지 온갖
식물과 나무들도 많이 자랐고, 복원도 잘 되어있어서 그 어느때 보다도 울창한 숲길을 걸었다.
피아골이라는 이정표를 보자 잠시 옛 생각에 잠겼는데 몇 년 전, 겨울 산행 때 엄청나게 많은 폭설로 인해
더 이상 길을 찾을 수 없어서 피아골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더 이상 가지 못하고 하산을 했었다.
임걸령으로 가는 숲길은 온통 운해가 넘나들어 안개 속을 걸었다. 조릿대가 얼마나 컸는지, 그냥 정글 숲속을 걷는 느낌이다.
임걸령에서 목을 축이려 했으나, 샘물 나오는 곳도 숲이 우거져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삼도봉으로 가는
중간에 반야봉 가는 길이 있었으나, 나의 체력으론 그냥 반야봉은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몇 년 동안 그리워 했던 지리산의 숲길에는 주홍동자꽃, 흰색까치수염, 진보라, 또는 연보랏빛 모싯대,
진 노랑색 원추리, 하얀 미역취꽃 등등 자기만의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연보라색 산수국과 간혹 보이는 분홍 산수국도 잡티하나 없이 피어있었다.
지리산의 풍요로움을 듬뿍받고 자랐기에 더욱 예쁜 모습으로 피었나 보다.
삼도봉에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었다. 온통 운해 속에 갇혀버려 예전엔 멀리 보이던
지리산의 능선도 볼 수 없었다.
때때로 바람이 불면 운해가 눈 앞을 휘돌아 넘나들었다. 내 몸 속 깊은 곳까지 지리산과 함께 호흡을 하며
정기를 받는 순간 들 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걸었다.
복잡했던 머릿 속을 비우며....
걷다보니 어느새 화개재가 눈 앞이다.
화개재에는 원추리 꽃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었다. 행복했다. 이렇게 많은
원추리 꽃들이 운해 속에 갇혀 피어있다니.... 한참을 서성대며 사진을 찍었다.
연하천에서 아침겸 점심겸 식사를 해야해서, 부지런히 연하천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선비샘에 도착해서는 물병에 물을 채웠다. 오르락 내리락 바윗길 계단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조금 지칠 때 즈음, 토끼봉이 눈 앞에 보인다.
엄청난 계단을 한발짝 한발짝 힘겹게 오른다. 토끼봉에서 잠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했다. 조금전 까지도
운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앞산 봉우리가
바람이 운해를 끌고가면서 보이기도 하고, 완전 신선이 사는 곳에 함께 하고 있었다.
토끼봉을 지나 산허리를 돌아 가기만 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하천 가는길,
약 7년 전 처음 지리산 산행을 했을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길이다.
아름드리 구상나무 위에 쌓인 반짝이는 눈꽃은 마치 보석을 뿌린 듯
아름다웠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아름드리 구상나무가 많아서 좋았었는데,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구상나무가 많이 죽어서 씨를 퍼트리지 못해 번식이 어렵다고 한다.
연하천으로 내려가는 길은 천상낙원 어느해보다도 온갖 야생화가 많이 피어있었다. 연하천에 도착해서는
독대가 가져온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고, 그리고 묵은 도라지를 넣어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송현이의
커피로 디저트까지 마무리 한다.
벽소령으로 출발! 가끔씩 고목들이 쓰러져 있어서 안타까웠으나, 죽은 나무에서 자생하는 버섯들도 많아서
자연에 순응 하는 모습에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엄청나게 큰 버섯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형제봉을 지날때는 바위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벽소령까지 가는 내리막길은 바위가 많아서
나는 힘이 들었다. 벽소령에서는 잠시모여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곧 비가 올 듯 해서, 서둘러
출발했다. 지금부터 세석까지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많아, 그냥 걸었다. 언제부터인지 안개비가
살짝씩 내리더니, 이슬비처럼 비가 내린다. 우비를 입고, 배낭도 감쌌다. 운동화는 이미 젖어있었고,
우중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세석을 코앞에 두고 체력이 바닥이 날 즈음 산신령 풍수가 마중을 나왔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배낭을 건네주고 나니 살거 같다.
세석산장은 많이 개선이 되어있었다. 온풍기로 보온을 하던 침실도 보일러로 바뀌어서 춥고 지친 몸을
쉴 수 있었고, 젖은 옷가지들을 말릴 수 있었다.
바닥은 마루바닥으로 딱딱했다. 하지만 하룻밤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까지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중으로 천왕봉까지는 무리였기에,
한신계곡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곧 계곡물이 불어 통제가 시작될 수 있어 서둘러 내려가라 한다.
우비로 완전무장을 했다. 난 한신계곡은 사실 초행길이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윗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밤새내린 비와 함게 현재 쏟아지는 비까지 합쳐져 계곡물은 엄청나게 불어있었고, 무서울 만큼 물보라를
치며 내려가는데 장관이다.
지리산은 항상 나에게 큰 선물을 준비해 놓는 것 같다. 10여년 넘게 여름과 겨울 지리산을 찾는 동안
단 한번도 같은 선물을 준 적이 없다.
매년 다른 모습으로 변화무쌍한 지리산은 신비롭다. 요번 지리산 선물은 한신계곡 전체 폭포인 듯......
흘러내리는 수압과 힘에 압도되어 탄성을 지르며 하산.
간혹 건너야 하는 작은 물줄기 징검다리 마져도 잠겨서 매우 위험했다.
내 평생에 이런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올해 여름 지리산은 태풍전야, 바람과 운해, 그리고 안개비와 야생화와 함께 했고, 그리고 폭우와
함께 한신계곡 모든 골짜기가 폭포였다. 지리산의 정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듬뿍 받은 산행이었다.
첫댓글 산천은 그대로 인데 우리만 변했제 ㅎㅎ
야생화가 어느때 보다
더 이뿌다
애령이의 지리산 후기는 늘 생생해서 그 자리에 함께 있은듯 해
구상나무는 울 집 뒷산 백운산에 아름드리 군락지가 있단다
후기 실감나게 잘 읽었다.
감솨~!^^
후기 너무 생생하게 읽었네.
감동을 생각했네.
르뽀작가라 부르겠네.
사진은
1991년 마생작품
같은 선물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능력~
사정상 함께하지 못했어도
다녀온것 마냥 생생하게 느껴진다.
모두 고생했어 !
지금도 지리산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집에 앉아서 지리산 여름 산행을 한 기분이네 . 후기 잘 보았다
몸은 회복하고 정상 근무 중 이겠지~~
지난주
산바라기에서 또 백무동 한신계곡 가내소 폭포까지 다녀왔는데
우리갈때 온 그 비가
얼마나 계곡물이 많고 좋은지 덕 봤다
가벼운 비 뿌리는 한낮, 지리산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대리만족(?) ㅎ
애령이가 제일 좋아하는 연하천 계단길의
야생화들이 눈에 선하다.
한 편의 작품 속에서 함께한 감동을 느낀다.
지리산이 눈에 선하고 그 과정이 기억으로 남는다.
좋은 산행의 생동감 넘치는 전개가 내 마음을 꽉 채운다.
연하천가는길에 천상화원ㆍ
밤새 퍼붓는 세석에서 하룻밤ᆢ
힌신계곡하산길에 웅장한계곡 물소리ᆢ
지리산은 갈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란글이 쏙 들어온다ᆢ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