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딸구와 공여사
사라졌던 글을 다시 찾아 올립니다
나는 지금 내 친구 딸구의 유품을 챙기던 중 문득 호기심이 생겨 딸구의 스켓취북을 펴 보다가 딸구의 생애에 대한 추억에 잠긴다.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딸구의 본명은 “이철구” 였다
그런데 같은 반이었던 삼학년 때의 담임선생이 심하게 사투리를 쓰는 이북 사람이어서 철구를 “텰구” 로 발음을 한것이 원인이 되어 초등학교 친구들과 동네 아이들 간에 별명이 딸구로 되 버렸고, 본인도 별 저항없이 그것을 받아 들이는 바람에 본명인 철구란 이름은 잊혀지고 아는 친구들 간에 이름이 딸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딸구는 초등학교 삼학년때 시골서 전학온후 줄곧 서울에서만 살았으면서도 자기 고향의 사투리를 끝끝내 고치지 못했다.
같이 사는 홀 어머니의 지독하리만치 심한 사투리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집이 가난한데다가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은 딸구는 아들의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딸구의 어머니가 언제나 반에서 공부로 첫째를 하던 딸구를 초등학교 때부터 길거리에 내보내 아이스케키 장수나 구두닦이등을 시키는 바람에 일찌감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가까운 아현동의 모 공업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공고를 졸업한 딸구가 체신부에 다니면서 벌어오는 돈으로 옷이나 해 입고 먹고 싶은 것이나 사먹는데 탕진을 하는데다 가끔 극장에서 만난 남자들과 어울려 딴 짓까지 하는 그런 어머니 뒷바라지 하느라 딸구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전세 한칸 마련 못하고 마포국민학교 옆 산기슭의 무허가 판짓집 동네의 작은 단칸방에서 삭월세 살이를 해야 했었다.
딸구는 군대갈 나이가 가까와 지면서 나를 만나면 자주 어머니 걱정을 했다.
그러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딸구는 해방이 되었다.
자유로워진 딸구는 해병대를 제대한 후 외항선을 타기 시작하더니 어느날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항해하던 배에서 작은 배낭 하나에 수영복 차림으로 물로 뛰어내려 헤엄을 쳐서 미국에 밀입국 하는데 성공했다.
그후 어떻게 어떻게 몇번 재주를 넘더니 스물 일곱이란 나이에 그렇게 소원이던 미국 영주권을 따냈다.
그리고 몇번 편지가 오간후 연락이 끊기면서 잊고 살았던 딸구를 다시 만난 건 내가 설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국 씨애틀로 유학을 오고 나서였다.
하루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딸구가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서있었다.
그 학교에서 핸디맨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저녁때 일끝나고 다시 보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후 딸구와 나는 자주 만나 술과 음악을 즐기면서 재밌게 지냈었다.
영특하고 재주가 많았던 딸구는 공부도 잘했지만 음악과 미술에도 재능을 보여 국민학교 때 교실벽에 붙이는 그림과 화보등을 도맡아 놓고 그렸었고, 중 고교시절 밴드부를 하면서 트럼펱과 바이얼린, 드럼등을 독학으로 마스터하기도 했었다.
또 작은 스켓취북을 가지고 다니며 예쁜 여자를 보면 몰래 그리기도 했었는데, 한번은 버스안에서 어느 여대생을 그리다가 들켜서 그 여대생에게 혼이 나기도 했었다면서 못생기고 초라한 공고생이 자기를 몰래 엿보면서 그리는 것에 대해 그 여대생이 뭔가 심한 오해를 했었을 수도 있다고 딸구는 씁쓸히 회고하는 것이었다.
기실 딸구는 베토벤+다빈치 같은 내면과는 정 반대로 얼굴은 기형이나 겨우 면했다고 할 만큼 정말 못생긴 편이었다.
가난한데다 인물도 학벌도 변변챦은 딸구는 열등감 때문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도 말 한마디 못 걸고 속으로 애만 태우다가 꺼지다보니 미국에서 다시 만났을때도 아직 총각이었다.
그러던 딸구가 하루는 나에게 어떤 여인 하나를 좋아하는데 중매를 서 달라는 것이었다.
반가운 생각반 호기심 반에 누구냐고 하니까 이 여인이라고 하면서 딸구가 스켓취북을 펴서 보여주는 여인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내 눈은 화등잔이 되었다.
그 여인은 그 동네 Snob 들이면 누구나 한번 교제해 보고 싶어하던 “공여사” 라는 과부였다.
공여사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딸구가 일하는 대학의 강당에서 열렸었던 공여사의 독창회 때 가 보고는 홀딱 반했다고 하면서 이 초상화는 그 때 그린 것이라고 했다.
나이 마흔둘의 공여사는 딸구보다 십년이나 연상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이사벨라 로셀리니 같은 인상에 키가 후리후리 하고 백설기처럼 눈부시게 흰 살결의 공여사는 부귀를 겸한 집안의 외동딸로 자라난 여인이었다.
서울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까지 했었던 성악가 였으나 결혼하여 낳은 딸이 아직 어리던 삼십살에 남편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과부가 되어 혼자 살고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다가 미모에 재산도 있는 공여사인지라 접근하는 남자가 없을수 없었다.
구애를 해오는 묻 남자 중에서 두 사람과 가까워지긴 했으나 마지막 단계에 가서 두 남자가 다 사고로 횡사하는 바람에 무산이 되 버렸다.
남편과 사별하고 불과 몇년 사이에 애인 둘을 잃은 공여사는 무언가 불길한 징크스를 느꼈는지 그 후 남자들과 가까이 사귀는 일을 스스로 피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오늘까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혼자 살아오고 있었다.
가난하고 못생긴데다 학벌마저도 별로 볼게 없는 딸구가 모든 면에서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쪽 끝에 서 있는 백작부인 같은 공 여사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중매를 서 달라고 하는데 자칫 상처만 입게 될까 보아 솔찍한 심정으로 말리고 싶었다.
그래서 연상이라 해도 너무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느냐고 구실을 대면서 난색을 보이는 나에게 공여사가 나이 마흔 둘이면 아직 애 한둘 정도는 싫것 나을수 있는 나이라는 망칙한 소리까지 해가면서 제발 한번 시도만이라고 해 봐달라고 간청하면서 매달리는 바람에 할수없이 나는 대학시절 특기였던 뚜쟁이 사업을 다시 개업할수밖에 없었다.
우선 공여사와 자주 접촉을 해야하기에, 교회를 공여사가 다니면서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던 교회로 적을 옮겼다.
딸구와는 달리 내 자신은 공여사와 같은 서울대 출신이기에 별 어려움 없이 그 여인과 자연스레 가까와 질수있었다.
그러다가 의외의 장애물이 있음을 발견했다.
딸구처럼 심하게 사투리를 쓰는 남전도사 라는 사람이 유난히 그 공여사 모녀의 신앙적 인도자로 자처하고 나서서 잡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견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속이 훠언히 들여다보이는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한마디 콰악 못을 박아 무안을 주고 싶었지만 자칫 쥐잡다가 독만 깨겠다 싶어 입을 꽈악 다물고 이리 저리 빈틈을 찾는중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공여사네 집의 하수 파이프가 막혀 앞마당 땅을 파야 할일이 생겼는데 수리비용이 만만치가 않겠기에 공여사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그 여인의 딸로부터 입수하고 그런 일이라면 베테랑 급인 딸구를 얼른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딸구가 작업복 차림으로 도구를 챙겨 나와 함께 그집에 도착하니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그 남전도사란 물건이 고릴라 같은 체격의 젊은 꼬붕까지 둘이나 대동하고 살기띈 얼굴로 문앞을 지키고 서있다가 플러밍은 이미 다른 사람을 불러 놓았으니 신경쓰지 말고 돌아가 달라고 하고는 잇발을 들어내고 으르렁 거리면서 아얘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뻔한 유치한 짓거리에 욱 하고 북받치는 열기대로라면 엎퍼컷 한방 날리고 싶었지만 발바리 남전도사 뒤에 서있는 두마리 킹콩 때문에 할수없이 물러나야 했는데 치미는 화를 참지못해 그여코 심한 쌍욕을 한마디 해대고 말았다.
"흥, 조까구 있네! 질투의 하나님의 종이라 주인을 똑 닮았군. 관심있는 쪽이 딸 쪽이유 어머니 쪽이유? 설마 둘다 끼고 딩굴겠다는 건 아니겠지? 부싯돌 만한 게 주제에..."
결국 다음 기회를 또 기다려 보자고 하면서, 나는 보채는 딸구를 달래며 차일피일 미룰수 밖엔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왜 내가 그생각을 못했을가. 역시 나는 머리가 나쁘다니까!” 하면서 한달뒤 있을 동창회의 송년파티의 케이터링을 딸구가 잘 아는 화교가 하는 중국 음식점에 딸구가 직접 나서서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의 써빙을 딸구가 맡아서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렵사리 둘을 마주 보게 했는데, 일은 딸구 자신이 망쳐버린 것이었다.
음식을 써빙하기 시작할때 부터, 안절부절 초조해 하던 딸구는,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공여사가 저만치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자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연속 마른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공여사가 점점 가까이 올수록 얼굴이 창백해 지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 하였다.
드디어 공여사가 바로 앞에 와서 서자 딸구는 공여사를 바로 쳐다 보지도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드디어 국자를 내던지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휴우, 저런 병...“
실망이 극도에 달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탄식 섞인 욕지거리가 나왔다.
돌연한 딸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딸구의 도망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공여사에게 나는 딸구가 내던지고 사라진 국자를 대신 들고 공여사에게 음식을 퍼줘야 했다.
화가난 나는 파티가 끝난후 딸구를 찾아가 따졌더니 막상 공여사가 자기 앞에 와서 섰을때 눈이 마주칠려니까 눈앞이 캄캄 해지면서 이명과 현기중이 나서 도저히 그곳에 서 있을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일은 다시 틀어져 버렸는데 그후로 딸구는 더 이상 공여사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나도 다시 묻기가 미안해 공여사 껀은 우리 둘 사이에서 사라졌다.
그 후 이십여년이 흘러 우리 둘다 오십을 넘기게 되었다.
딸구는 여전히 대학에서 핸디맨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공부를 마치고 어느 회사에 회계사로 취직이 되어 잘 다니면서 종종 만나 같이 술도마시고 등산도 다니며 재밌게 인생을 즐겼다.
안됀건 나는 마누라가 있는데 딸구는 그저도 홀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딸구가 직장에서 일을 하던중 사다리가 쓰러지는 바람에 콩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이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척추가 두군데나 부러져서 하반신을 못쓰게 되는 바람에 남은 여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게된 딸구는 일주일에 서너번씩 꼭 찾아주는 내가 유일한 의지가 되고 말았다.
내가 바쁜날은 아내를 대신 보내 부엌일이나 집안청소 같은 것을 손봐주게 했다.
그후 나도 딸구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환갑을 넘기게 되었다.
환갑을 넘기면서 딸구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아픔이 되살아 나는지 자주 우울해 하면서 휠체어에 앉은채 말 없이 창밖만 내다 보곤 했다.
그러면서 건강이 부쩍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복수와 각혈의 증상이 보여 급히 입원을 시키고 진단을 받게 했는데, 결국 말기 폐암 진단을 받고 요양원 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너무나 늦게 발견된데다 간까지 심하게 훼손되어 도저히 손을 쓸수가 없다고 하면서 앞으로 사주정도 남았으니 큰 일에 대비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딸구의 법적 대리인을 위임받은 내가 모든 걸 처리해야했다.
요양원에 들어간후 며칠 지나 나는 딸구에게서 신상에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듣게되었다.
“경수야, 난 사실은 아버지가 누군중도 몰라야”
“ … ? 아니, 그럼 어머님이 널 어떻게 낳셨어?”
“울엄니가 하도 행실이 부잡해 각꼬오, 나 뱄을때 남편이 의심을 해각꼬 엄니를 내 쫓아 부렀시야아. 그래서 날 낳고도 이름도 못 짓고 호적을 못 올렸시야아. 긍게 이철구란 이름도 호적도 다 내것이 아니여어”
“………”
딸구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딸구 어머니가 남편에게서 쫓겨난후 그 옆동네로 가서 그 동네 어느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그집에 살았었는데, 그 옆집에 “이씨아제” 라는 홀아비 하나가 딸구만한 아들을 하나 데리고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딸구의 어머니는 홀아비인 그 이씨아제란 남자와 같이 방안에서 딩굴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들키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육이오가 터지고 인민군이 후퇴를 할때에 그 동네가 격전지가 되면서 민간인 희생자가 적쟎이 생겼었는데 그 중 일부는 일제때 일본사람들이 근처 산에다가 파 놓았었던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굴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한 사람들 이라는 것이었다.
후에 마을 사람들이 무너진 흙더미를 헤치고 산사람 몇을 찾아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의 시신도 끌어냈었지만 워낙 굴이 깊어서 대여섯구는 아직도 그곳에 묻힌채 있는데 그 중에 이씨아제 부자가 끼어있다는 것이었다.
딸구와 딸구 어머니는 다행히 굴 입구 가까이 있었기에 굴이 무너질때 얼른 뛰어나와 변을 면했는데, 후에 딸구의 사정을 아는 면사무소 직원이 희생자 호적 정리를 하면서 딸구를 그 이씨아제라는 사람의 아들로 슬쩍 넣어준 것이라 했다.
말하자면 무적자인 딸구는 그 이씨아제의 아들의 신분으로 이제까지 살아온 셈이 되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딸구의 그 못생긴 입술이 씰룩거리면서 눈물같은 것이 흐르는지 딸구는 그 빈대 항문 만한 눈을 찔끔거렸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깊은 한숨을 쉴수밖에 없었다.
“나 죽그덩 하장(화장)을 해서 어디 좋은디다가 뿌려도라. 부모가 원허질 안해서 이름도 생년월일도 없이 나온 내가 무덤을 맹긴다면 멋허겄냐. 난 그냥 자연 속으로 사라질란다..”
나는 그 응어리 진 상처를 이해할수 있었기에 해달란데로 해주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운명하기 이틀쯤 전에 딸구는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나 하는 것이었다.
길이가 육피트는 됨직한 길다란 원통형 컨테이너에 돌돌 말아서 꼭 봉해진 그림 하나를 주면서 절대로 열어 보지말고 공여사에게 꼭 좀 전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삼십년 동안 입에 안올리던 “공여사” 란 단어가 딸구 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딸구는 다음날 저녁 혼수상태에 들어가더니 하룻밤을 더 버티고는 새벽에 마지막 숨을 내 쉬었다.
밖에서는 병실 창문 유리를 타고 나와 아내가 흘리는 눈물 만큼이나 굵은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딸구를 화장한 재를 씨애틀의 명소 레이니어 마운틴의 깊은 숲 속에 뿌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공여사를 찾아가 적당히 둘러대면서 그 그림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 딸구가 살던 아파트에 찾아가 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딸구의 스켓취 북을 들여다 보다가 옛생각에 잠겨있는 것이다.
두꺼운 스켓취북을 꽉 채우리만큼 페이지마다 그려진 그림들의 주제는 하나같이 여인들이었는데 모두가 각양 각색의 모습과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여왕, 공주, 천사, 성모 마리아, 마리아 막달라, 관세음 보살, 메듀사나 비너스 같은 신화의 주인공들, 씬데렐라, 성냥팔이 소녀, 무희, 담배를 피우며 밤거리에 서있는 창녀, 미친여자 등등 . .
그런데 그 여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공여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진 것이었다.
그것은 코브라같은 형상을 한 괴물과 완전 나체로 한데 엉켜 부등켜 안고 희열에 찬 표정을 하고있는 공여사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는데,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혀를 내밀고 있는 그 코브라의 부풀은 목의 무늬가 딸구의 얼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공여사는 딸구에게 이세상의 모든 것이었으며, 딸구는 공여사에 대한 지독한 상사병으로 연일 스스로를 태우다가 끝내 몸까지 망가져 죽게된 것일게다.
같이 유품을 정리하던 아내가 이 그림들을 한장 한장 보다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고는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울다말고 아내는 두사람의 일을 다시한번 시도를 해보지 않았던 나를 탓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딸구와 공여사간에 내가 적극적으로 중매를 섰다 할지라도 성사가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설사 성사가 되었다 할지라도 농노와 백작 미망인의 결합 같은 심한 비대칭의 부부 관계가 풍파없이 제대로 유지 될수가 있었을까에 대해 나는 여전히 물음표를 붙이고 싶다고, 나는 변명아닌 변명을 했다.
딸구는 공여사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공여사를 알게 된것이 딸구의 불행에 불을 붙인 것이다.
만에 하나 공여사가 딸구의 청혼을 받아 들였다 해도 주변의 질투에 찬 만류를 공여사가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돌아서야 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도대체 神은 무엇때문에 날때 부터 어느 한가지 남의 부러움이나 시샘을 살만한 것이라곤 없이, 행복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딸구에게 무엇이 그리도 시새웠기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만사에 재를 뿌리면서 이토록이나 극심한 고통을 줘야 했을가?
後記
그 이듬해에 공여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급히 찾아간 나에게 공여사의 딸이 하는 말이 몇달전부터 어머니가 자주 어지럽다고 하시면서 시름 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어제 아침 늦도록 기척이 없어 들어가 보니 돌아가셨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공여사의 딸에게 그간의 일들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주고는 딸구가 남긴 그 스켓취북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같이 넣어드릴 것이라고 하면서, 공여사의 딸이 작은 방의 한쪽 벽을 다 덮을 만큼 아주 커다란 수채화를 하나 보여주었다.
첫눈에 딸구가 운명하기 얼마전에 공여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내개 맡겼었던 그 그림임을 직감할수 있었다.
그 그림에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케루비노로 분장한 딸구가 의자에 앉아있는 백작부인 공여사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인의 손에 입을 맞추는 장면의 그림과 노래 “Voi che sapete” 의 가사가 아주 예술적인 글씨체로 씌여 있었다.
공여사 모녀는 그때까지도 그 그림을 내가 그린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공여사의 딸이 그자리에서 아주 대담한 제의를 했다.
이 그림들을 모두 두개씩 사본을 떠서 사본 한부는 어머니의 무덤에 같이 넣어드리고 다른 한부를 가지고 전시회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본은 자기가 영구히 보관하겠다는 것이었다.
전시회는 의외로 성황을 이루었다.
딸구의 이름은 없이 공여사의 추억이란 이름으로 열렸던 전시회였기에 한인사회의 명사들의 허영을 자극했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이 그림들이 모두 공여사의 작품인 줄로 착각들을 하고 있었다.
“음악밖에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공여사가 언제 이런 그림들을 다 그리셨지?”
“히야아, 공여사에게 이런 재주가 숨어있을 줄이야”
“야아-, 이건 정말 명화다!”
사람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찬사를 늘어 놓으며 전시장 내부에 전시된 그림들을 돌아보는 동안 전시회의 리셉션을 맡은 나는 전시회장 입구 앉아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몇주동안 혹사당한 몸을 쉬고 있었다.
갑자기 전시장 안이 조용해 지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심지어 공여사의 딸도 보이지 않았으며 전시장 안에 나 혼자 앉아있었다.
그러고 좀 있다가 언제 나타났는지 완전 귀부인 차림으로 정장을 한 공여사가 전시된 그림들을 하나 하나 보면서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 때 돌연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호랑 나비가 한마리 나타났다.
그리고 그 호랑나비는 공여사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공여사를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딸구가 공여사에게 전해 달라고 나에게 맡겼던 바로 그 커다란 그림의 앞에 공여사가 멈춰서자 호랑나비는 공여사의 어께에 내려 앉았다.
그 때 공여사가 고게를 돌려 자기 어께에 앉아있는 호랑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호랑 나비는 얼른 날아오르더니 날게를 펄럭이며 마치 월츠를 추듯이 공여사의 주변을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고 공여사의 시선도 그 호랑나비를 따라 계속 움직이는 듯 했다.
이윽고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빙글 빙글 도는듯 하기 시작했는데 그 광경은 마치 둘이서 월츠 음악에 맞춰 빙빙 돌아가는 둥근 원반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둘은 얼마간 그런 모습으로 있다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전시장 안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그림들을 둘러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며칠간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지쳤던 내가 의자에 앉은채 나도 모르게 잠이들어 꿈을 꾸었던 것이다.(完)
|
|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ghTJmnqFtbY
Chopin Nocturne No.13 (Op.48 No.1)|쇼팽 녹턴 13번
PLAY
https://www.youtube.com/watch?v=5nniFIuSuAI
쇼팽 녹턴 21번, Chopin - Nocturne No.21 in C-Minor Op.Posth
PLAY
https://www.youtube.com/watch?v=bUTods9xy6w
Plaisir D'Amour (Mono / Remastered 2025)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