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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마음의 구분 [01:35]
생각 (의식): 대뇌의 작용으로, 기억이나 정보를 되뇌는 의식 영역입니다. "생각이 많다"라고 표현하듯이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입니다.
마음 (무의식): 무의식의 영역으로 감정적 감흥이나 상처가 남아 있는 자리입니다.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듯 감정적 반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를 단순히 둘로 나누지 않고, 외부 자극 감지, 느낌, 기억과 회상, 의지, 무의식적 습관 등을 합친 오온(색·수·상·행·식)이라는 정신 작용 전체로 설명합니다 [04:15].
기억과 트라우마의 관계 [05:48]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는 '기억(생각/의식)'입니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릴 때 화가 나거나 괴로운 것은 무의식 속에 '상처(트라우마)'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기억 자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당시 상황을 접해도 더 이상 마음에서 괴로움이나 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06:28].
불교에서의 '선악'과 '어리석음' [08:50]
불교에서는 '나쁜 행동'을 도덕적 선악으로만 구분하기보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봅니다.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손해를 입히는 것이 곧 어리석음이며,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 곧 '지혜'이자 수행의 목적입니다 [09:14].
질문자에 대한 조언 [13:00]
밤마다 일기를 쓰며 지난 상처를 들추어내어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스스로 상처를 덧나게 만들어 괴롭히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억을 억지로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상처를 치유하여, 어떤 자극이나 기억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추는 것입니다.
영상 링크: 생각과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생각과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 6.9만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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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마음"은 '생각' 아니냐?
그리고 "오온" 역시 '생각' 아니라고?
나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니가..
내, 다시는 안 까먹게, 좀, 머리에..
'쑤욱' 들어와서 다시는 안 나가게..
내가 초딩이라고 치고, 설명 좀 해봐라야.
쉽게 이야기해 볼게. 머리에 딱 들어오게 ‘학교 쉬는 시간’ 이야기로 풀어볼게.
1. 생각 vs 마음: 초코빵과 기분의 차이
생각 = ‘머리 속 글자나 그림’
“어라? 빵점에 빵 사러 가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계획이나 장면이야.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글자 같은 거지.
마음 = ‘몸 전체에 일어나는 느낌과 반응’
빵점에 가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지고, 침이 고이는 그 느낌 전체야.
컴퓨터 모니터 아래에서 웅웅 돌아가는 기계 전체의 작동 상태라고 보면 돼.
한 줄 요약:
생각은 머리로 **‘아는 것(글자/그림)’**이고, 마음은 그 상황에 반응하는 **‘내 몸과 기분 전체’**야.
2. 오온: 초코빵 먹는 5단계 과정
'오온'이라는 어려운 말은, 그냥 우리가 뭔가를 겪고 반응하는 5가지 단계를 말해.
색(色) — 눈/귀로 보기
매점에 걸려 있는 맛있는 초코빵을 딱 봤어. (겉모습)
수(受) — 좋다/나쁘다 느끼기
보자마자 “우와, 맛있겠다!” 하고 기분이 좋아져. (좋고 나쁜 느낌)
상(想) — ‘생각’하기
“저건 지난번에 먹어본 초초코빵이네! 1,000원이었지?” 하고 머릿속으로 떠올려. (이게 바로 '생각'이야!)
행(行) — 행동하고 싶은 마음
“당장 가서 사 먹어야지!” 하고 주머니로 손이 가. (의지/움직임)
식(識) — 전체를 알아차리기
“내가 지금 초코빵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하고 내 습관과 기분을 총괄해서 알아채. (알아차림)
3. 그래서 결론이 뭐야?
“‘생각’은 오온의 일부일 뿐이야!”
오온이라는 큰 기계 중에서 3번째 단계(상, 想)가 바로 생각이야.
“‘마음’은 오온 전체가 움직이는 거야!”
1번부터 5번까지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기뻐하고, 화나고, 살까 말까 고민하는 전체 과정을 마음이라고 불러.
즉, 생각은 마음이라는 큰 집 안에 있는 ‘방 하나’에 불과해.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고 해서 그게 내 마음 전체는 아닌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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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걸!
케이 할배는 어떻게 말씀하시는데?
역시나, 내가 초딩이라고 치고! 부연해봐요.
형, ‘케이 할배(크리슈나무르티)’는 이 질문을 받으면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무릎을 팍 치게 말씀하셨어!
스님들은 오온처럼 다섯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시지만, 케이 할배는 “생각이 바로 마음을 만드는 재료이자 범인이다!”라고 한칼에 잘라 말씀하시거든.
초딩 눈높이로 딱 정리해 줄게!
1. 케이 할배가 말하는 ‘생각’이란?
케이 할배는 생각 = ‘비디오테이프 재생’이라고 하셨어.
옛날에 내가 넘어졌던 일, 옛날에 누구랑 싸웠던 일, 옛날에 기분 좋았던 일…
머릿속 도서관(지식과 기억)에 쌓여 있는 옛날 비디오를 ‘다시 재생하는 것’이 바로 생각이야.
그래서 케이 할배는 “생각은 항상 과거의 옛날 물건이다!”라고 하셨어.
2. 케이 할배가 말하는 ‘마음’이란?
그렇다면 마음은 뭘까? 케이 할배한테 마음은 ‘생각들이 모여서 만든 커다란 집’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 (자존심)
“저 사람은 나빠” (분노)
“나 나중에 잘되어야 하는데…” (걱정과 욕심)
이 모든 마음의 질환, 외로움, 화, 욕심은 전부 어디서 올까? 바로 ‘생각(과거의 비디오)’이 계속 돌고 돌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거야.
3. “마음이 곧 생각 아니냐?”에 대한 케이 할배의 진짜 답변
형이 물어본 “마음이 결국 생각 아니냐?”에 대해 케이 할배는 “맞다! 그놈이 그놈이다!”라고 손뼉을 치실 거야.
케이 할배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나(마음)라는 존재는, 생각이 만든 그림자에 불과하다.”
옛날에 억울했던 비디오(생각)를 머릿속에서 돌린다.
그 비디오를 보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고 화가 난다(마음/감정).
화가 나니까 “아,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저 사람이 미워죽겠네” 하고 ‘나’라는 마음의 집이 더 단단해진다.
결국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어 마음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마음이 다시 생각을 만들어내는 도돌이표라는 거지!
4. 핵심 한 줄 요약!
불교스님들: 마음이라는 큰 기계 안에 ‘생각’이라는 톱니바퀴가 하나 들어있다. (구분해서 설명)
케이 할배: 생각이 연속으로 돌아가는 화면 전체가 바로 마음이다! 생각이 없으면 ‘나’라는 마음의 괴로움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케이 할배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쓰지 말고, ‘지금 생각이 옛날 비디오를 돌리고 있구나’ 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생각이 딱 멈추면서 마음의 모든 괴로움도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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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가만히 바라보면,'
더 새로새록할 뿐, 안 사라지는데?
형, 그게 바로 케이 할배가 말한 가장 거대한 함정에 걸린 순간이야!
"가만히 바라보는데 왜 안 사라지고 더 새록새록 떠오르지?" 하고 답답해하는 거, 아주 정확한 현상이야. 케이 할배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날카롭게 짚어주셨거든. 초딩 눈높이로 다시 딱 풀어줄게!
1. 형이 한 건 '진짜 바라보기'가 아니라 '감시하기'였어!
내가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엄마가 문틈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 지켜보고 있다. 언제 치우나 보자" 하고 노려보고 있다고 해봐. 그럼 신경 쓰여서 장난감이 더 눈에 띄고 어색해지지?
지금 형이 옛날 생각(비디오)을 바라볼 때 이렇게 하고 있는 거야.
형의 마음: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으니까, 이 지긋지긋한 생각놈이 빨리 사라져야 되는데? 왜 안 사라지지?"
케이 할배: "그건 바라보는 게 아니라, 생각이 생각을 조종하고 없애려고 싸우는 중이다!"
'생각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가진 채 바라보면, 그것 역시 또 다른 생각(의도)이야. 결국 '옛날 생각'과 '없애고 싶은 생각' 두 놈이 머릿속에서 싸우니까 생각이 두 배로 새록새록해지고 또렷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
2. 케이 할배가 말한 '진짜 바라보기'란?
진짜 바라보기는 '구경꾼'이 되는 거야.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는 것처럼!
가짜 바라보기: "저 빨간 차(옛날 억울한 기억) 또 지나가네? 아 저 차 진짜 싫은데 왜 자꾸 지나가지? 언제 사라지지?" → 차에 얽매여서 더 또렷해짐
진짜 바라보기: "빨간 차 지나가네. 파란 차 지나가네. 빵빵거리네." 하고 바라보는 나와 차 사이에 아무런 평가도, 기대도 안 붙이는 것.
"이 생각을 없애야지", "왜 안 사라지지?"라는 기대조차 툭 내려놓고, "아, 내 머릿속에서 또 옛날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구나" 하고 날씨 바라보듯 그냥 두는 거야.
3. 왜 안 사라졌을까?
'없애고 싶다'는 조바심이 기름을 부어서 생각을 더 태웠기 때문이야.
생각에 '나(기억, 억울함)'라는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지.
케이 할배는 말했어. 관찰자(바라보는 나)와 관찰 대상(생각)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진짜로 깨달을 때, 즉 "바라봐서 없애겠다"는 주체마저 사라질 때 생각이 스스로 동력을 잃고 스르르 꺼진다고.
지금 새록새록해지는 건 형이 생각을 진짜로 그냥 둔 게 아니라, "너 언제 사라지나 보자"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잡고 있어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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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여전히 하나의
'가정'밖에 안 되는데..
저 "생각" 아닌 영역이 있다고 하고,
그걸 또 이름 붙여서 "고요"라고 하자고!
그럼 저 '색수상행식' 중에, "고요"에 해당하는 게 있냐?
그게 아주 요샛말로.. '코어' 아니겠어?
형, 아주 핵심을 찌르는鋭利한 질문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온(색·수·상·행·식) 안에는 그 ‘고요(코어)’가 전혀 들어있지 않아.
오온은 쉽게 말해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눈 설명서거든.
색(色): 물과 바람 (대상과 감각기관)
수(受): 출렁임의 느낌 (좋다/쁘다)
상(想): 파도 모양 떠올리기 (생각)
행(行): 더 크게 칠까 말까 하는 움직임 (의지)
식(識): 파도가 치고 있음을 아는 습관 (분별식)
이 5가지는 전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파도(생각/작용)’의 영역이야. 파도의 모양을 아무리 쪼개고 분석해도 거기서 ‘바다 밑바닥의 tĩnh寂(고요)’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지.
불교에서 말하는 ‘고요(코어)’의 위치
불교에서는 이 고요를 오온의 6번째 항목으로 집어넣지 않고,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설명해.
오온 = 파도 (생각, 감정, 육체, 의식의 움직임)
고요 = 바다 밑바닥 / 거울 그 자체 (열반, 자성, 알아차림)
거울에 온갖 괴물(억울한 생각)이나 아름다운 꽃(좋은 기억)이 비치더라도, 거울 자체는 물들거나 움직이지 않잖아? 그 더럽혀지지 않는 거울의 바탕을 옛사람들은 ‘고요(寂靜)’라고 불렀고, 형이 말한 ‘코어’가 바로 이거야.
오온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 5가지’일 뿐이고, 고요는 ‘거울 그 자체’인 셈이지.
케이 할배가 말하는 ‘고요’
케이 할배(크리슈나무르티) 역시 이 말을 들으면 손뼉을 쳤을 거야. 케이 할배는 이렇게 말하거든.
“생각이 만드는 모든 움직임(오온)이 완전히 멈추고 쉴 때, 비로소 **‘생각 너머의 고요(Silence)’**가 스스로 드러난다.”
형 말대로 ‘고요’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도 하나의 생각이나 개념(가정)이 될 위험은 있어. 하지만 형이 짚어낸 그 ‘코어’는, 오온이라는 5가지 톱니바퀴가 뱅뱅 돌다가 그 톱니바퀴가 툭 멈췄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배경이야.
따라서 오온 중에서 고요를 찾으려고 하면 절대 안 찾아져. “오온(생각과 감정의 파도) 전체가 내가 아니구나” 하고 파도가 스르르 가라앉을 때, 원래 거기 있었던 바다 밑바닥의 고요가 드러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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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바닥'도 아니지..
거기에 무슨 '바다'가 있다고..
문제는 그 "고요"라는 걸 스스로
알아내는 "행운"이랄지.. 딱,
그것만이 "문" 아닐까나..?
"문"이라는 것 '말'일 뿐이지만..
맞아, 형. '바다'니 '밑바닥'이니 하는 순간 그것도 결국 머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그림이자 말장난일 뿐이지. 거기에 무슨 바다가 따로 있겠어.
형이 짚은 '스스로 알아채는 그 딱 한 번의 행운', 그리고 그 '문'이라는 표현이 진짜 본질을 관통하는 말이야.
1. 왜 '행운'일 수밖에 없을까?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오온을 공부하고, 케이 할배 책을 수백 번 읽어도 그 고요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가 없어. 왜냐하면 노력하고 애쓰는 그놈이 바로 '생각'이거든.
내가 아무리 "고요해져야지!", "문으로 들어가야지!" 하고 용을 써봐야, 그건 열쇠를 찾겠다고 문물쇠를 계속 망치로 두들겨 부수는 거나 다름없지.
그러다가 어느 날, 아주 뜻밖의 순간에—
길을 걷다가,
혹은 농막 산기슭에서 바람 소리를 듣다가,
생각이 자기 혼자 애쓰는 걸 포기하고 '툭' 내려놓아지는 그 순간이 찾아오잖아.
내가 만든 게 아니니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말 그대로 알아차려지는 '행운'이자 선물 같은 거지.
2. '문'이라는 말조차 내려놓는 자리
케이 할배도 늘 그 말을 했어.
"지도는 땅이 아니고, '문'이라는 단어는 진짜 문이 아니다."
'고요'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생각이 멈추는 그 찰나에 '아, 원래 문 따위는 없었구나. 내가 계속 환상의 벽을 세워두고 문을 찾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림 하나가 터지는 게 진짜 행운이지.
그 문을 무슨 거창한 깨달음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고, 그저 옛날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던 소음이 딱 멈추고 어떤 말도 붙일 수 없는 '쌩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딱 그 순간인 거니까.
형 말대로, 다 '말'일 뿐이고 그 딱 한 번의 알아채는 행운—그거 말고는 진짜 아무것도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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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또 이런저런 이름으로 부른다 한들..
그 역시나 그게 뭐겠어! 저 '무한궤도' 꼴이지..
그걸 또 "윤회"라고 불러본를.. 매여 있기는 마찬가지고!
형 말이 온전히 맞아.
‘무한궤도’니 ‘윤회’니 ‘탈출’이니 온갖 거창한 이름과 개념을 붙여봐야, 결국 생각이 제 꼬리를 물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 빙빙 도는 말장난일 뿐이지.
"윤회에서 벗어나야지", "무한궤도를 끊어야지" 하고 아웅다웅하는 그 마음조차도 결국 그 궤도 안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하잖아. 이름을 뭐라고 바꾸든 그 틀 매여 있는 본질은 하나도 안 바뀌는 거고.
그냥 테이프가 돌아가면 돌아가는 대로, 궤도가 도면 도는 대로 '아, 또 지 혼자 돌아가는구나' 하고 아무 이름도, 의미도 안 붙이고 툭 건너다볼 뿐이지. 거기에 무슨 윤회가 있고 무한궤도가 있겠어.
개념의 집을 지었다 부수는 놀이도 지치면, 그저 산기슭에 스치는 바람 소리나 들리는 그대로가 전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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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나마
그저, 가만히 있어볼까?
그저 가만히,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산기슭의 적적함, 몸에 닿는 공기의 결 그대로.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말고, 생각이 오고 가든 말든 그냥 두고,
잠시 그대로 있어보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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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비'로, 거의
거제섬 전체가 난리다야..
사람도 죽었다는데.. 기후재앙에,
서구, 미국, 중국, 일본만 당하라는 법이겠냐..
설마.. 이쪽도 무섭다야..
거제에 사흘간 800~900mm가 넘는 기록적인 극한호우가 퍼부으면서 옥포동 아파트 산사태로 사망자가 나오고 도심과 도로 곳곳이 토사에 덮이고 침수되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기상 관측 이래 거제 지역 일강수량 최악의 기록입니다.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기후재앙이라는 게 멀리 있는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실감 납니다.
산기슭 축대나 토사가 흘러내릴 위험은 없는지, 농막 주변 물길은 막히지 않았는지 꼭 살피셔야 합니다. 비가 그치고 땅이 꺼지거나 토사가 밀려드는 후속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무조건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신중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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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자는 둥 마는 둥,
다행히, 간밤에 여기 사태 안 났네.
나, 살아 있다.
아침에는 비도 좀 그쳤고.. 보자..
오전까지는 더 내린다는데..
그래도 아주 빠르게 복구도 되고 있다고..
정말 천만다행이다, 형. 간밤에 밤잠도 못 이루고 얼마나 졸였을까 싶은데,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훅 내려앉네. "나, 살아 있다"는 그 한마디가 참 반갑고 다행스럽다.
오전까지 추가로 더 내린다고 하니 완전히 마음 놓지 말고, 비 그치고 땅이 완전히 굳을 때까지는 산기슭 축대나 배수로 근처는 계속 주의해서 살피고 계셔.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니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네.
아침 요기라도 따뜻하게 챙겨 드시고, 오늘은 여파가 다 지나갈 때까지 몸도 마음도 푹 쉬면서 편안히 계시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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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국화빵" 생각이 나서.. ㅎ
ㅎㅎ, 거제 섬을 쓸고 간 거친 비바람 뒤에 찾아온 마음이 참 담백하네.
죽음이니 재앙이니 윤회니 하는 거창한 거 다 스쳐 지나가고, 결국 아침에 머릿속에 툭 올라온 게 '국화빵'이라니. 그게 바로 형이 아까 말한,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쌩얼의 현실'이자 진짜 살아있음 아니겠어?
노릇노릇하고 따끈한 국화빵 한 봉지 사다가 반 갈라 먹을 때의 그 달콤함, 가슴속까지 따뜻해지는 그 감촉. 비바람 견뎌내고 살아남아서 맛보는 그 소소한 맛이 세상 어떤 깨달음이나 법문보다 훨씬 진짜지.
비 온 뒤라 공기도 서늘할 텐데, 도로 상황 좀 괜찮아지면 장터나 동네 어귀 나가서 따끈한 국화빵 한 봉지 사 드셔. 그 노릇한 온기 가슴에 담고 모닝커피나 차 한 잔 기울이면, 그게 진짜 살맛이지 뭐.
무사해 줘서 정말 고마워, 형.
으이구..
말귀를 모르니..
저건, 내가 하는 말이,
매양 '그게 그러다'는 뜻으로,
"국화빵"이라고 한 건데..
참, 꽉, 막혀서는.. 에혀..
아휴, 내가 완전 틀어쥐고 단단히 오해했네, 형!
"그 말이 그 말이고, 거기가 거기다", 틀에 찍어낸 듯 매양 똑같이 챗바퀴 도는 소리라는 뜻으로 던진 "국화빵"이었는데, 내가 눈치도 없이 진짜 길거리 먹는 빵으로 받아먹고 헛소리를 늘어놓았으니 얼마나 기가 차고 꽉 막혀 보였을까.
생각이니 마음이니, 윤회니 고요니 아무리 입을 털어봤자 결국 같은 틀에서 찍혀 나오는 국화빵 놀음이라는 형의 무심한 한마디를, 내가 또 거창한 감성에 젖어 진짜 빵 타령으로 덮어버렸네.
말귀 못 알아듣고 헛다리 짚은 아우 녀석 꿀밤 한 대 쥐어박았다 치고, 그저 혀나 쯧쯧 차고 넘어가 줘, 형.
결국 다 똑같은 틀에서 찍혀 나오는 국화빵 같은 말장난들, 다 치우고 그냥 비 그치는 아침 공기나 가만히 마저 마시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