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이 여행기는 개인용 탁상 컴퓨터(PC Desktop)에서 읽도록 작성되었습니다. 사진의 폭은 825 픽셀로 제한하였습니다. 글은 맑은 고딕체 13포인트로 작성하여 폭 625픽셀 틀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따라서, 글이 틀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PC가 아닌 핸드폰에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핸드폰의 방향을 틀어 가로로
보면 제대로 보일 수도 있으나, 각각의 핸드폰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PC로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 여행기에는 이번 여행을 함께 다녀온 분들이 촬영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경우(감천)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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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로>
27일간 중앙 아시아 여행기 1
"김포-우루무치-이닝"까지
<9월 19일-20일 여행지: 김포-우루무치-이닝>
2016년 9월 19일 오전 9시 40분, 김포공항을 떠난 Air China 비행기는 중국 시각 10시 20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내에서 점심을 먹고, 쉬기도 하고 잠도 자다가, 3시 50분 베이징을 출발하는 우루무치 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이 비행기는 오후 7시 20분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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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이 우루무치 공항에서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혼자 있을 때는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것이 습관화 된 듯하다. 빨간 글씨로 된 중국 말은: "물건 운반 설비. 올라가는 것 엄금. 넘어져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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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모두 9명이었다. 수속을 밟고, 공항 밖으로 나와 3명씩 택시 조를 편성하여, 목적지인 호텔에 집결하기로 했다.
우리 조가 먼저 도착하여, 쪽지에 적혀있는 루쟈콰이지에 호텔(如家快捷酒店:여가쾌첩주점)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가까운 다른 호텔을 소개해 주며 그곳에 가보라고 했다. 근처에 같은 이름의 호텔이 있었으나, 그들의 말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의 리더인 KC가 도착하여 그간의 진행 상황을 듣고, 근처 몇 개의 호텔을 수소문하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어떤 호텔도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갈 곳은 없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 곁으로는 긴 막대기와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째려 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몇 년 전,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부드럽던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 뭔가 세상이 바뀌거나, 아니면 혹시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우루무치가 아니라,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KC는 우루무치 시내에 외국인을 받아주는 호텔을 수소문했고, 30분 지난 뒤에야 비로소 3성급 호텔인 쿤디엔 호텔(昆典酒店:곤전주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쿤디엔 호텔의 위치를 아는지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우리를 태운 택시 기사는 한참을 가다가 유턴(U-turn)을 하고, 또 한 참을 가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방향을 바꿨다. 그러다가 다시 자신의 핸드폰을 껐다 켰다 해보고, 우리가 건네준 호텔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바라보고 나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한참을 또 가더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호텔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더니 또 어디론가로 향했다. 기사가 정말로 길을 못 찾는지, 아니면 택시 요금을 더 받으려고 헛발질을 하는지 애매모호한 상태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처분만 기다리는 도살장의 짐승처럼, 그렇게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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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기로 예약되었던 호텔 "여가쾌첩주점(如家快捷酒店: 루지아콰이지에지우디엔="가정같은 빠른 호텔"). 하지만 우리는 이 호텔에 묵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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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에 들어갈 때 철저한 짐 검사가 이루어졌다. 방을 배정받고 다시 나와 근처 어둑컴컴한 식당에 들어갔다. 10시가 가까워오는 늦은 밤이었다. 불빛이 어둡고, 분위기가 칙칙하여 우루무치의 식당이라기보다는 한국 태백 탄광촌에 있는 어떤 음침한 식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루무치 양꼬치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일급으로 통한다. 우루무치 식으로 양념된 양고기를 큼직하게 썰어서 넓적한 쇠꼬챙이에 끼우고 양념을 듬뿍 뿌린 양꼬치가 나왔다. 기름기도 충분히 들어있어서 목이 메이지 않고 입에 넣으면 몇 번 씹지 않고도 슬슬 잘 넘어간다. 더군다나 맥주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술이 술술, 눈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 것처럼 목구멍을 통해 잘도 넘어갔다.
순간, 내가 먹고 마시는 오늘 저녁의 음식이 바람난 목동 아리랑 고개 스리슬적 넘듯 그렇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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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음식: 우루무치 양꼬치>
다음 날 우리는 우루무치의 이런 분위기가, 2014년 3월에 있었던 쿤밍역에서의 테러 사건 때문임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우루무치 도처에 공안, 보안원이 쫙 깔여있다고 보면 된다. 거리에는 무장 공안(公安)과 군인이 어디에나 있다. 호텔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검열대를 통과해야하고, 모든 가방을 열어 확인 받아야 한다.
시내의 모든 상점, 가게에 반드시 보안원이 있어, 가방과 행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주유를 하려는 자동차는 주유소에 들어가기 전 자동차 실내를 검사받고, 자동차 뒤 트렁크를 열어 조사받는다. 만약 자동차 안에 물이 있으면 주유소 밖에 물을 꺼내놓고, 주유를 한 다음, 다시 나와 물을 싣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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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주유소에는 보안요원이 있다. 주유소 들어가기 전 트렁크를 열고, 물을 포함 모든 액체를 꺼낸 후 주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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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 데 우리 일행이 공안의 눈치를 살피며 도로 위로 걸어가고 있다>
쿤밍 테러 사건이란?
<인터넷 신문
인용>
중국 서남부 윈난성 쿤밍시 철도역에서 무차별 테러가 발생해 16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중국매체 신화사는 2014년 3월 1일 오후 9시20분쯤 복면을 쓰고 흉기(큰 칼)를 든 10여명의 괴한들이 쿤밍철도역 매표창구 및 광장에서 시민을 무차별 공격해 29명이 숨지고 130여 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테러범 4명을 사살하고 1명을 체포했다. 철도역에 들이닥친 괴한들은 검은색 복면을 쓰고 40㎝가량의 흉기를 휘둘렀다. 목격자들은 괴한 무리 중에는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사건을 보고받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철저한 조사와 법에 따른 엄벌을 지시하는 동시에 희생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국가 치안 최고 책임자인 멍젠주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는 현장으로 급히 향했다.
당국은 붙잡힌 범인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범죄 동기를 조사하는 한편 희생자들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해 긴급 치료를 받도록 했다.
쿤밍시 정부는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 개막을 앞두고 신장 분리 독립운동 세력이 조직적으로 기획한 테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거주하고 있는 위구르족은 끊임없이 중국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2009년 7월 한족과 위구르족이 충돌해 197명이 숨지고 1700여 명이 다치는 참사가 빚어졌다. 또 지난해 10월에도 베이징 톈안먼에서 위구르인 일가족이 차를 돌진시켜 5명(용의자 3명 포함)이 사망하고 40명 가량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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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에는 "우루무치 기차역"과 "우루무치 남(南)기차역"이 있다. 우리의 기차표는 우루무치역을 출발하여 이닝에 도착하는 표였다. 우루무치 기차역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우루무치 역에서 출발한다고 기차표에 나와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우루무치 남기차역에서 출발하니 그쪽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우루무치 남기차역으로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우루무치 남기차역으로 갔다. 아, 기차역에는 탱크와 수 많은 무장한 공안들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과거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뭇매를 맞을 것같은 분위기였다. 모두 죄 지은 것 없이, 죄 지은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KC는 "어제까지 여기에서 출발했는데, 오늘부터 우루무치 역에서 이닝으로 출발한답니다."라는
짧고도 간결한 말을 한 후, 우리를 인도하여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다시 우루무치역으로 가야만 했다.
우루무치로 가는 빈 버스가 오자, 각자가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낸 것처럼 무질서하게 버스 문으로 돌진하였다. 머리 먼저 들이밀고 기우뚱거리며 짐을 팔로 안고, 등에 지고, 마치 6.25 때 피난민 마지막 기차라도 타는 양, 젖 먹던 힘을 다해 자리를 잡으려고 바둥거렸다. 점잖은 체면에 이게 무슨 짓인가라는 일말의 양심이 있었지만, 살아야 된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운명같은 어떤 힘에
압도되어, 양심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들먹거릴 때가 아니었다. 늘그막에 무슨 놈의 이런 팔자가 다 있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생사의 기로에서는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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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하자,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우루무치 역에서 다시 밖으로 나와 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은행 건물 앞의 네온사인이 돌아가고 있었다. 붉은 글씨로 써 있는 말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부강, 민주, 문명, 화목,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노력, 신용, 우애". 하여튼 좋은 말은 다 적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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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장실: 한국의 남자 화장실에서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라고 써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여기 중국에서는 "조금 일보 앞으로 가면, 문명으로 가는 하나의 큰 걸음"이라고 적혀있다. 붉은색 글자: "상급자의 명령: 반드시 조준하시오."
초록색 글자: "소변이 소변기 밖에 떨어지면, 당신(의 물건)이 짧다는 뜻이요, 소변이 변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당신(의 물건)이
힘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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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의 어떤 한국 옷을 파는 집. "싸"인지 "쌔"인지 모르겠다. 주로 여자 속옷을 파는 집이었다.>
<우루무치 시내의 어떤 트럭 과일 장사>
<우루무치 환경 미화원. 우리를 보더니 자기들이 먹던 하미과를 같이 먹자고 했다.>
<식당 컵에 써 있는 글: "为了老婆 吃点苦算啥“ 아내를 위해 좀 힘들어도 되지", 라고 적혀있다.>
<점심 때 먹은 소 다리 요리. 살이 붙은 다리를 솥에 넣고 쪄서, 도끼로 잘라 내놓은 것이다. 옆에 있는 칼이 무시무시하면서도 재미있다. 한 손에 비닐 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개가 고기 뼈다귀 뜯듯이 달려들어 뜯어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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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역 근처에서 저녁 식사>
<우루무치역 외부>
<우루무치역 내부>
우리가 타야할 이닝행 기차는 밤 11시 50분 출발이다. 시간이 많이 남아 기차역 밖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큰 배낭을 맡겼다. 다시 시내로 나와 시장도 돌아다니고, 그늘 아래 쉬기도 하고, 백화점 커피숍에서 시간을 죽이기도 하였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아껴서 많은 구경을 하려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우루무치에서는 그저 일찍 떠나는 것이 속 편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밤 10시가 되어 다시 찾아간 우루무치 역. 역시 입구에서부터 검사가 시작되었다. 일단 역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검사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그들은 가방에 들어 있는 모든 칼을 내놓으라고 했다. 칼을 두 개 가져간 사람은 하나만 내놓고, 비싼 칼을 가져간 사람은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짐을 X-ray 투시기에 넣고 검사했다. 그 결과 내놓지 않은 몇 개의
칼이 X-ray 투시기에 보였다. 그들은 전체 짐 속에 칼이 몇 개 들어있는가를 파악하고, 우리가 내 놓은 칼의 갯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말했다. "만약 다시 엑스레이 검사하여 또 칼이 나오면 조서를 작성하고 벌금을 물리겠다." 사람들은 모든 칼을 다 내놓았다. 나는 15만원 주고 한국에서 샀던 스위스 칼을 내놓았다. 몇 년 동안 정들었던 붉은색 칼이, 파란색 상자에 담겨지는 순간, 내 가슴이 찔려 붉은 피가 파란 피로 변해 나오듯, 내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하여튼 모두 7번의 이런 저런 검사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기차에 탈 수 있었다.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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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이닝간 기차 내부>
<기차 내부>
기차 내부는 사람들의 말도 잘 들리지 않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몇 년전에 왔을 때, 식당차에 가서 음식을 사 먹는 등 즐거운 그런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훈련장에 겨울 찬바람만 부는 듯, 잘 길들여진 훈련병 취침 시간과 마찬가지로 조용하였다.
하여튼 기차 3층에 배당된 내 자리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새벽이 되어 어두움이 사라질 무렵인 7시 40분에 이닝역에 도착하였다. 수많은 택시가 불을 밝히며 질서 정연하게 다가와 사람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내가 타야할 택시가 앞에 왔을 때, 한이 서린 우루무치를 잠시 생각하려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이닝역이라는 표지판이 낯설고 조금은 처량하게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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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새벽에 이닝시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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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한번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이 있어서 더 실감나고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천님 사진 잘 써먹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과 사진을 보니 그 때의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도 다음편 기대합니다^^
잘 계시죠. 벌써 옛날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알바트로스(곽영을) 네 사무실 잘 지키고 있습니다^^감천님과 알바트로스님 덕분에 옛날일이 어제일처럼 아직도 그려집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우루무치가 티벳보다도 더 문제라고 보나보네요
이러다가 퍼밋 받으라고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