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금강경’
모든 일이 다 허망한데 그중에 허망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뿐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그것을 꼭 알아야겠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견성(見性)에 연결되는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현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오직 이 마음을 알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경문을 읽으면 이것이 곧 천칠백이나 되는 참선의 화두공안(話頭公案)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육체도 내가 아니고 우주도 실재가 아니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이라는 말도 거짓말이다.
그 가운데 마음만은 어제도 오늘도 그렇고 작년도 금년도 백 년 후도 마찬가지다.
천당을 가도 지옥을 가도 이대로이고, 소가 돼도 개나 구렁이가 돼도 마음은 달라진 게 없다.
몸뚱이가 개가 되고 구렁이가 되었을 뿐
내가 개고 구렁이이구나 하고 생각할 줄 아는 근본 마음자리는 달라질 수 없다.
여자가 되나 남자가 되나 짐승이 되나 송장을 끌고 왔다 갔다. 하고
배고프다고 밥 먹고 똥 누는 생각을 내는 주체, 부정하고 긍정하는 주체,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지금 말하고 듣는 이대로 영원히 살아 있는 <참 나>를 발견하면
그때부터 논이고 밭이고 재산을 전부 팔아서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고 배고프고 옷 없는 사람에게 밥을 주고 옷을 주어 다 보시한다.
의식주의 재산을 보시하고 그다음에 또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게 옳게 사는 것인가,
다른 것은 다 하나 마나 하고 이것만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학문은 하나 마나 하고 세계 제일가는 박사가 돼 봐도
생로병사는 면하지 못하고 하루 밥 세 그릇 꼭 먹어야 한다.
육신은 내가 아니고 죽어 없어질 한낱 물질이며
죽지 않는 마음 영원히 살아있는 <내>가 어디인가를 일깨워 찾아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꼭 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 두 가지만은 꼭 배워야 한다.
부처가 되는 길이 마음 깨달아 우주에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갈 길이다.
이렇게 바른길로 인도해 주고 바른 정신 넣어 주는 것이 정법(正法)을 펴는 법시(法施)이다.
또 위태롭고 외롭고 근심 속에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구제해 주는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불교를 믿고 마음을 깨치면 생사를 초월한다.
마음을 깨치면 부처이니 석가여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믿는 것이다.
석가여래도 나 같은 사람으로 마음을 깨쳐 부처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깨칠 수 있는 법을 그대로 남기어 놓았으니 부처님 하시던 그대로 수도를 하면 된다.”
이런 이치를 알아서 몸뚱이가 나인 줄 알기 때문에
모든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인데 마음이 나인 줄만 알면 아무 근심 걱정 없어진다.
남이 내 돈을 다 들어먹고 알거지로 만들어 놔도 그 사람이 밉지 않다.
그러므로 불교를 바로 믿도록 정법을 일러 주면 확실히 정신을 차릴 기회가 온다.
그래서 모든 근심 걱정이 없어지므로 육체가 내가 아니고 마음이 참 나임을 가르쳐 주는 것은
확실히 법시(法施)이면서 두려움을 없애 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무외시(無畏施)이다.
의식주에 구애가 없으니 아무리 굶어도 걱정을 안 하고
우리 생활을 완전히 남만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바꾼다.
바라밀을 도피안(到彼岸)이라고 하지만
그 말이 어렵고 차라리 현명한 생활을 한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생존경쟁에만 몰두하던 생활을 아침저녁으로
다만 10분이라도 참선을 해서 이 마음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찾아봐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의식주 생활도 반대로 자기를 깨치는 시간이 된다.
10분이 차차 20분이 되고 나중에는 열 시간쯤 참선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밥 먹을 때도 옷 입을 때도 똥 눌 때도
기차 시간이나 학교 가서 선생 강의를 들으면서도 화두 생각이 난다.
이렇게 해 나가면 24시간 꼬박 참선이 된다. 염불도 그렇게 된다.
경희대학에 한 학생이 참선을 배워서 화두(話頭)를 하는데
전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화두만 하다가 어떤 때는 버스 종점으로 아주 간다는 것이다.
화두에 열중하다 보면 나중에 그런 식으로 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학교 성적은 자꾸만 좋아진다는 것이다.
강의 한번 들으면 완전히 기억되고 시험 때가 되면 다 알게 되는 때문이다.
공부를 바로 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참선하든지 염불해서 마음을 턱 놓고 살 수 있는 지경에 들어가면 그렇게 된다.
신경이 사방에 쓰이고 온갖 번뇌가 들끓고 그래서 피가 나빠지고 신경이 약해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하던 것이 정신을 크게 안정하고 사니까 모든 일이 다 잘 된다.
그래서 농사하는 사람 밭은 밭대로 더 잘 가꾸고 지혜도 나오고 하여 생(生)의 투사. 진리의 투사가 된다.
육체 본위로 살던 생활을 마음 본위로 사는 혁명 투사의 생활로 바꿔 나가는 셈이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얘기가 이 금강경이다.
-청담 스님 – 금강경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