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돌
마종기
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
참 이쁘더군
강원도의 돌
골짜기마다 안개 짙은 물 냄새
매일을 그 물 소리로 귀를 닦는
강원도의 그 돌들
참 이쁘더군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
물 속에 누워서 한 백 년
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
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더군
참, 이쁘더군
말끔한 고국(故國)의 고운 이마
십일월에 떠난 강원도의 돌
(시집 『그 나라 하늘빛』, 1991)
[작품해설]
마종기는 서정성에서 출발하여 의사로서의 삶과 고국에 대한 향수 및 이국(異國)의 풍물을 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이 시는 시인이 ‘강원도의 돌’을 빌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돌에서 배우는 세상을 사는 지혜를 노래한 작품으로, 시적 화자는 어느 해 11월 무렵에 강원도의 어느 산골짜기를 찾아온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고국(故國)[남의 나라에 가 있는 처지에서 ’자기나라‘를 일컫는 마]’이라는 시어가 쓰인 것으로 보아, 화자는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판단된다. 화자는 예전에 보았던 ‘강원도의 이쁜 돌’을 떠올리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마치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 놓듯 친근감이 느껴지는 일상적인 대화식 어투로 노래하고 있다.
1연[기]에서 화자는 강원도의 어느 산골짜기에 있는 ‘이쁜 돌’을 보면서, 그 돌처럼 매일 물소리 귀를 닦으면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골짜기마다 피어오르는 안개, 그 ‘안개 같은 물 냄새’로 매일 귀를 닦고 있는 돌은 반쯤 물 속에 잠겨 마치 얼굴의 절반을 물 밖으로 내 놓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 돌의 양쪽 귓전에 계곡물이 흘러와 부딪힌다. 이렇게 돌은 날마다 귀를 씻고 귀를 닦는다. 이것을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숨어 살던 ‘기산(箕山)’과 요(堯) 임금이 허유에게 임금의 자리를 넘겨주려 하자,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여 귀를 씻었고, 소를 끌고 온 소부는 이를 보고 더러운 귀를 씻어 낸 물은 먹일 수 없다 하고 돌아갔다는 ‘영수(潁水)’를 연상케 한다.
결국 ‘강원도의 돌’은 이렇듯 잡다하고 속된 세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돌이기에, 화자는 그것들에 대해 ‘참 이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석을 전연 모른’다는 말은 ‘수석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강원도의 돌’이야말로 의도적인 아름다움을 위하여 수반(水盤)에다 정갈하게 올려놓은 것 이상의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또한 ‘수석’을 ‘壽石’이라는 일반적인 한자 대신 굳이 ‘水石’이라고 표기한 것도 ‘안개 같은 물 냄새’와 ‘그 물 소리’로 귀를 닦고 있는 ‘강원도의 돌’을 말하기 위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강원도의 돌’이기에 화자는 생각할수록 그것이 예쁘기만 한 것이다. 처음엔 ‘참 이쁘다’라고 표현된 것이 나중엔 ‘참, 이쁘다’로 변주되고 있는데, 전자가 ‘정말 이쁘다’의 의미이라면, 후자는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역시 이쁘다’는 의미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화자의 마음을 강조한 것이다.
2연[서]에서 화자는 ‘강원도의 돌’처럼 살고 싶은 의지와 소망을 드러낸다.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라는 시행은 ‘강원도의 돌’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자신이 세상과 어떤 관계가 되든지 관계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어떠한 상태이든 간에 화자는 ‘강원도의 돌’처럼 자연 속에서 한가롭고 여유롭게 달관의 마음과 정신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물 속에 누워서 한백 년, / 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라는 시행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세속에 초연하고 고통이나 고난 마저도 외면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화자는 3연에서 ‘강원도의 돌’을 ‘말끔한 고국의 이마’로 표혐으로써 고국이 더 이상 어둡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끔하게’ 보여 준다.
3연[결]에서 화자는 고국에 대한 사랑과 이별의 아쉬움을 일깨워 주는 ‘강원도의 돌’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돌’의 의미는 확산되는데, ‘강원도의 돌’을 ‘말끔한 고국의 이마’로 치환시킴으로써 추상적 개념의 ‘고국’을 ‘강원도의 돌’로 구체화시킨다. 모든 더러운 것과 추한 것이 완전히 지워진 깨끗하고 정갈한 고국의 이마인 ‘강원도의 돌’을 보며, 화자는 ‘참, 이쁘더군’이라 하며 고국이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것이냐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렇게 ‘강원도의 돌’은 날마다 ‘안개 같은 물 냄새’와, ‘그 물 소리’로 씻긴 맑고 깨끗한 귀와, 현자(賢者)의 ‘돌 같은 눈’과 ‘말끔한 이마’를 가진 고국의 얼굴이다. 이러한 고국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애정을 화자는 ‘참, 이쁘더군’이라는 간결하고 친근하고 평이한 말투로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다.
결국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과 정신의 여유를 누리면서 자연과 가까이 하는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노래한다. 그것은 곧 맑고 깨끗한 물에 세속의 온갖 더러움을 씻고, 그 물에 모나고 비뚤어진 심성과 성품을 동글동글하게 다듬으며 살고 싶은 소망인 것이다.
[작가소개]
마종기(馬鍾基)
1933년 일본 도쿄 출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1959년 『현대문학』에 시 「해부학교실(解剖學敎室)」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6년 도미(渡美)하여 오하이오 아동병원 초대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 역임
1968년 김영태, 황동규와 함께 3인 공동시집 『평균율(平均率) 1』(1968), 『평균율(平均率) 2』 (1972)발간
1989년 미주문학상 수상
1997년 제7회 편운문학상 수상 및 제9회 아산문학상 수상
시집 : 『조용한 개선』(1960), 『두 번째 겨울』(1965), 『변경의 꽃』(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 사는 것이 어디 갈대뿐이랴』(1989), 『그 나라 하늘 빛』(1991), 『이슬의 눈』(1997), 『마종기시선집』(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