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
[누가복음 10:29~35]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 중략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 한 신학교 교수가 설교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좀 특이한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주제로 설교하라고 하면서, 매 강의 시간마다 한 사람씩 각자에게 정해진 강의실로 가서 설교하도록 시간표를 편성했습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그 강의실까지 가는 데 10분 정도의 시간을 주었고, 또 다른 학생들에게는 서둘러야만 하도록
그보다 짧은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강의실까지 가는 길에는 당장 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랑자가 서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랑자를 도와 주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춘 ‘선한’ 학생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짧을수록 부랑자들을 돕기 위해 멈춘 학생들의 수가는 더더욱 적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설교를 하기 위해 서둘러 가면서, 그들은 그 설교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 간 것입니다. ☘
앨리스 그레이가 쓴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이야기>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내가 배고플 때 당신은 복지재단을 만들어 내 배고픔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습니다.
내가 헐벗었을 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벗은 모습의 도덕성에 대해 논쟁을 벌였습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당신은 무릎을 꿇고 당신이 건강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내가 집 없이 떠돌아다닐 때 당신은 내게 하나님의 사랑의 은신처에 관한 설교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외로울 때 당신은 나를 위해 기도하려고 나를 홀로 있게 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거룩하고 하나님과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이웃인지ᆢ나를 돌아보며 많은 반성과 회개를 하게 하는 글입니다.
[누가복음 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많이들 아시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율법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기록돼 있다”라고 대답한 후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을 통해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의 실천과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첫쨰, 이웃을 사랑하려면 나의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강도를 만난 희생자를 보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강도는 희생자를 약탈의 대상으로 봤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귀찮은 존재로 봤고, 율법사는 토론의 대상으로 보았고,
주막 주인은 고객으로 보았지만, 사마리아인은 희생자를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이웃으로 봤습니다.
◆둘쨰, 이웃을 사랑하려면 구체적인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희생자를 긍휼히 여겼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긍휼히 여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마리아인은 희생자의 상처를 기름과 포도주로 소독하고 싸맨 뒤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입니까?
자비를 베푼 자, 이웃 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요한일서 3: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제노비즈의 경우’(Genovese Cas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뉴욕 퀸스에서 발생하였던 실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1964년 키티 제노비즈란 여자가 살해되었는데, 이 여자가 공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을 38개의 얼굴이 창문에서
바라보았지만 한 명도 경찰을 부르거나 나가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뒤에 이들을 심문하였는데 38명이 한결같이 “다른 사람이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출발은 관심입니다.
또한 사랑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새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랑을 실천할 때,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랑에는 노여움과 불만을 녹이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잠언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하고 삭막한 요즘 크리스천들의 사랑실천이야말로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사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아들까지도 내어주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았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웃에 큰 고통을 준 때가 있었습니다.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게 사랑의 은사를 주시어 사랑을 실천함으로 인생을 좀더 가치있고, 의미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형식적인 마음이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사랑으로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제 안에 부어주옵소서.
하나님이 저를 용납하고 품으시며 사랑하시듯 이웃을 더욱 섬기고 실수와 허물을 품어주는
사랑의 관계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