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예쁜 여자를 참 좋아한다.
잘 생긴 남자는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잘 생긴 남자들을 넋을 놓고 쳐다보길 좋아하고
자주 그러긴 하지만,
실제로 잘생긴 남자를 만나고 싶다거나 하진 않는다.
(나는 그래서 늘 남자를 볼때 인물을 안따진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언젠가 내 남편을 보고 누군가가
"안따져도 너무 안따진 거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예쁜 여자가 좋다.
이 '예쁜 여자'라는 것......보는 사람마다 기준도 참 다르다.
나는 대체로 남들이 보기에도 예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간에
눈이 동그랗고 콧날이 오똑하고 피부가 투명하게 하얗고
날씬하고 단정하고 혹은 섹시하고.......
그러나 예쁜 여자의 기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젊고 어린 여자들은 모두 이쁘다.
그 싱싱한 젊음은 꾸미지 않아도 예쁘기만 하다.
또 지긋이 나이든 여자들도 예쁘다.
자기 나이에 맞는 경험과 연륜이 얼굴에 드러나는,
나이에 맞는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들은 예쁘다.
나는 쌍커풀 없는 동양적인 작은 눈도 예쁘다고 생각한다.
또 웃는 여자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수줍게 미소짓는 얼굴이나 또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치고 옆사람을 두들겨 패가며
옆으로 쓰러져서 배를 잡고 데굴거리는 웃음도 좋아한다.
몸매가 뚱뚱한 여자들도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 부드러운 곡선미를 좋아한다.
특히나 아이를 낳아서 몸매가 두리뭉실해진 아줌마들을 보면
편안하고 느낌이 좋다.
또 무언가에 몰두해있는 여자들을 보면 예쁘게 느껴진다.
열심히 일하거나 책을 읽고 있거나 공상에 빠져있는 여자들.
아이를 사랑스런 눈길로 쳐다보는 엄마의 얼굴도 물론 예쁘다.
일에 몰두해있다가 지친 여자의 얼굴도 예쁘다.
그리고 친절한 여자와 자신감있는 여자도 예쁘다.
울고 있는 여자의 얼굴도 매력적이다.
절제된 눈물을 글썽이거나 한방울 흘리는 여자,
슬프게 우는 여자,
웃다가 눈물이 빼꼼 나온 여자,
엉엉 우는 여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여자들도 예쁘고,
또 덤벙대는 여자도 예쁘게 보인다.
생업전선에서 억척스럽게 일하는 여자들도 예쁘게 보이고
악을 쓰며 연인과 싸우는 여자들도 실은 예쁘게 보인다.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
밭을 메거나 화초를 가꾸는 여자,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고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여자,
술을 마시는 여자,
차 향기를 즐기는 여자,
운동하는 여자,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 여자,
도회적이고 지적이고 세련된 여자,
약간 촌스러운 순수해보이는 여자,
자신감 넘치는 여자,
착한 여자,
무언가를 잘 하는 여자 혹은 잘 하려고 노력하는 여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여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하여간 예쁜 여자........
이쯤 되면 웬만한 여자들은 다 예뻐보인다고
안예쁜 여자가 어딨냐고들 한다.
있긴 있다.
욕심 사나운 여자.
의욕적으로 행동하고 뭐든 이루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여자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갖지 못한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결핍감을 늘 투덜거리고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해 심술궂고 심퉁맞은 표정을 가진 여자들.
아무리 예쁜 외모를 타고 났어도
그렇게 얼굴에 욕심사납고 심퉁맞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여자들은
안예쁘다.
또 있다.
사랑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여자.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연인에게 또 뭇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
고마워할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자 역시 안예쁘다.
그 외에 빈정대길 좋아하는 여자들에겐 그들이 예쁜지 안예쁜지
사실 별 관심이 없다.
.......
생각해보니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
어쨌거나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실 사람이 참 무섭다......흑흑........)
시댁식구들을 제외한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꽤나 호전적이고 전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비폭력주의를 추구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게임인 한게임헥사를 할 때도
공격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비폭력주의다.
내 아들이 유모차를 타고다니던 시절의 일이었다.
언니와 내가 복잡한 길을 가고 있었다.
내가 아들의 유모차를 밀고 가다가 앞에 걸어가고 있는 젊은 아가씨의
발 뒤꿈치를 유모차로 치어버렸다.
나는 정말 많이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 아가씨의 화는 풀릴줄 모르고 신경질에 각종 짜증을 내더니
급기야 내 아들에게까지 욕을 퍼부었다.
참고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가 여기서 화가 나 버렸다.
"야! 너 뭐라그랬어?"로 언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 아가씨는 나보다도 훨씬 어린 듯 했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부터 반말을 해댔다.)
그 아가씨는 귀가 잘 안들리는지 말길을 잘 못알아듣는지
내가 그렇게 사과를 했건만 못알아듣고 계속 화만내고 있더니만,
언니가 조목조목 따져대는 말도 안들리는 것 같았다.
언니의 서슬퍼런 기세에 조금 위축된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발 뒤꿈치가 얼마나 아픈지만을 짜증섞인 목소리로 화를 냈다.
언니는 그 아가씨를 향해 한마디를 날렸다.
"그래서? 호 해줄까?"
그 아가씨는 할 말을 잃고 달아나버렸다.
우리는 그 아가씨의 뒤통수에 웃음을 보내주며
이겼다고 좋아했다.......
그저께 저녁 남편이랑 싸웠다.
내 남편의 별명은 "절대 딴소리"다.
그의 '고급 딴소리 기술'에 나는 허파가 뒤집어지며 헉헉 숨이 넘어가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억울함에 눈물만 솟구쳤다.
결국 나는 싸움에 지고 방에 유폐되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거울을 들여다 봤다.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도 예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웬만한 여자들은 다 예쁘게 생각하는 나 조차도
내가 예뻐보이질 않았다.
어제 남편이 쉬는 날이라고 집에서 드러누워
싸움에서 이긴 승자의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오전 11시경 나는 주섬주섬 옷과 목욕도구들을 챙겨들고
안된다고 화를 내는 남편에게 아들을 맏기고 찜질방으로 탈출했다.
몇 시간동안 덜 마른 빨래처럼 찜질방 구석에 쳐박혀 쉬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휘젔다가
나중에는 땀에 푹 절어 아무 생각도 안나고 그저 편하게 몸을 쉬었다.
찜질방 구석을 돌아다니는 만화책을 보며 낄낄대고 혼자 웃고
몸도 마음도 가뿐해져서 돌아왔다.
(역시 단순한 건 나의 최대장점 중에 하나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못생기고 바보같고 뚱뚱한 나지만
내가 예뻐보인다.
'딴소리 기술'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무공을 연마해야겠다.
"호 해줄까?"같은, 한 마디로 적을 무찌르고도
두고 두고 웃을 수 있는 강력한 무공을 연마해야 한다.
안싸우고 살면 좋겠지만, 이왕 싸우는 거라면
다음에는 꼭 내가 남편을 방에 유폐시키고(혹은 찜질방으로 내 쫒고)
대자로 드러누워 호탕하게 웃어주리라.
부족하고 모자라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돈도 없고 바보같고 부실하고 어리버리한 나지만
이렇게 나름대로는 내 삶을 개척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산다.
나는 그래서 나를 사랑한다.
나는 예쁘다.........(고 우겨본다........)
나를 위한 선물로
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을
사야겠다.
첫댓글 저도 이쁜 여자를 굉장히 좋아하죠 그 바람에 주윗 사람들한테 가끔씩 엄청난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심각하게 살면 좋지않다.
저 역시 이쁜 여자들을 좋아합니다. 특히 꿈이 있어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야심만만한 사람이 이뻐보이지요, 아! 또 푼수끼가 있어서 잘 웃고 떠드는 사람도. 가식으로 무장한 사람만 아니면 다~~ 이뻐요~
각자의 개성이 잇으니 나름대로(?) 이쁜면들이 있겠죠..음...이쁜사람들을 보며 이쁘다라고 칭찬할 줄 아는 것도 이쁜 거겠죠.
가끔은 악을 품고 싸보는것도 효과가 있더군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은근슬쩍 능치는 기술도 필수항목
어리버리한 여자도 예뻐요
다들 예뻐요~~~~ (난 실브리스님한테 한수 배우러 대전가야지~)
난 피둥피둥한 여자가 좋던데.
심연이 자꾸 나더러 얼굴이 작다고 하는데...그건 사실....몸이 너무 커서 얼굴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것 뿐.....흐흐흑.....실제로 재 보면 꽤나 너부데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