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약사들의 모임인 대한약사회가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 2만1000개 중 479개를 약국에서 자유롭게 팔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의약품 재분류 신청서 1차분'을 보건복지부 에 제출했다고 20일 밝혔다. 신청서에는 사후(事後) 피임약 노레보, 비만치료제 제니칼, 위장약 잔탁과 오메드, 인공눈물 히아레인 점안액, 변비약 듀파락시럽, 손발톱 무좀약 로세릴네일라카, 알레르기비염약 풀미코트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 전문약을 처방해온 의사협회가 약품마다 조목조목 이유를 대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2000년 의·약 분업 실시 전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의·약계는 당시 전문약·일반약 분류를 놓고 수개월간 공방을 벌인 바 있다. 이후 의·약계 갈등의 골이 깊어져 단 한번도 전문약·일반약 재분류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21일 열리는 보건복지부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소위원회 회의에서 양쪽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할 경우 제2의 의·약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조선일보]
약사회 박인춘 부회장은 "(의사 처방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할 전문약은 더 많지만 우선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약으로 쓰일 만큼 안전성이 확보된 약 중에 국민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약부터 골랐다"면서 "안전한 전문약을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게 하면 진찰료 등이 줄어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의사협회 측은 "무리한 주장"이라며 어떤 전문약도 일반약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의사협회 이재호 의무이사는 "약사회가 주장하는 모든 약이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거치지 않으면 부작용이나 오·남용 위험이 결코 적지 않은 약"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일부 전문약의 일반 약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응급피임약 노레보, 변비약 듀파락시럽, 위장약 잔탁·오메드·판토록 등 10개 전문약을 처방 없이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약사회가 전문약·일반약 재분류만 강조하고 약사법 개정을 통한 일반약의 수퍼마켓 판매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응급피임약 노레보는 진료 기록이 남는 것을 꺼리는 여성들 때문에 상대 남성이 대신 처방을 받는 일이 많아 진료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각 단체에서 제출한 의견서를 중양약심위에 보고한 후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