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작품을 쓰고 논란도 적지 않았던 아일랜드 소설가 에드나 오브라이언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28일(현지시간) 전했다. 문학 에이전트 PFD와 출판사 파버는 고인이 오랜 질환 끝에 이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고인은 유족으로 두 아들 마커스와 카를로를 남겼다.
1930년 아일랜드 시골 카운티 클레어에서 태어난 그녀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아 더블린으로 달아났다. 그곳에서 약학을 공부해 1950년 약사 자격증을 땄다. 1952년 소설가 어니스트 게블러와 결혼해 영국 런던으로 가 아들 둘을 낳은 뒤 이혼하고 전업작가가 됐다. 런던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첫 소설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시골 처녀들'를 1960년에 발표했다. 두 여자친구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는 등의 당시로선 적나라한 묘사로 아일랜드에서는 추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작품과 후속 두 작품 '외로운 소녀'(1962, 본인 각색으로 1965년 미국 영화 '녹색 눈의 소녀'로 제작)과 'Girls in Their Married Bliss'가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판금됐다. 보수적인 아일랜드의 전통 관념들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O'Brien's home village'를 비롯한 몇몇 작품은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그녀의 책들은 대성공을 거뒀고 전통의 사회 개념에 도전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일생 쓴 소설만 20편을 넘겼고, 드라마와 전기도 다수 집필했다. 많은 소설은 남성 지배 세계에서 외롭게 싸우는 여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여성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화려하게 고립된 집'(House of Splendid Isolation, 1994),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그린 '숲속에서'(In the Forest, 2002), 세르비아 전범이란 신분을 숨기고 시골 마을에 찾아든 남자의 이야기를 쓴 '작고 빨간 의자들'(The Little Red Chairs, 2016) 등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성실하게 쌓아 올린 문학 세계는 아일랜드 평단의 마음도 열었다. 2001년 그는 아일랜드 국제펜클럽(PEN)이 자국 문학에 지대한 기여를 한 작가에게 주는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소설 이외에도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전기 '제임스 조이스'(1999)와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여성 관계를 다룬 '바이런 인 러브'(Byron in Love, 2009) 등을 썼다.
2018년에는 미국 PEN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재단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마이클 D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며 고인을 "겁 없이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 오랫동안 무시받고 억압받은 리얼리티로 아일랜드 사회에 맞선 도덕적 용기를 갖춘 뛰어난 작가"라고 추모했다. "심오하고 통찰력 있는 작업과 풍부한 인간애로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진실한 목소리를 다양한 세대 아일랜드 여성들의 경험들에 제공했으며 아일랜드 사회 전체의 여성 지위를 변화시키는 데 역할을 한 첫 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녀 작업의 아름다움은 해외에서 즉각 인정 받았지만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아일랜드 문학계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길 바랐던 사람들이 도발한 적대적인 반응, 초기 저작들을 부끄럽게도 판금한 일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오브라이언의 작품은 "종종 무모하고 불성실하거나, 이미 결혼한 남자를 사랑하는 불안한 여성들을 묘사했다"며 "여성의 열정에 목소리를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브라이언은 남성 중심 세계에서 행복과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여성들을 그린 통념을 깨는 작가였다"고 짚었다.
고인은 2020년 일간 가디언 인터뷰를 통해 "많은 측면에서 똑똑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토로하며 "아주 어려웠으며 자기 연민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된 한 가지는 언어이며 언어란 미스터리와 언어란 기적은 사랑스러운 노래 '캐릭퍼거스'(Carrickfergus)가 들려주는 것처럼 "내게 가져다준다...위대한 언어의 풍부함을”이라고 덧붙였다.
캐릭스퍼거스는 벨파스트 지역으로부터 11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로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퍼거스 맥 에르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이 노래는 영국 본토에서 떠밀려 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된 이들의 애절한 향수를 담아 고향을 등진 이들이 보편적으로 간직하는 ‘한’(恨)과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I wish I was in Carrickfergus
Where she is waiting my rainbows end
그녀가 내꿈이 이뤄지길 기다리고 있는 그곳 캐릭퍼거스에 내가 있었으면 해요..
I would swim over the deepest ocean
Just to see her sweet smile again
그녀의 달콤한 미소를 다시 볼 수있다면
저 깊은 바다라도 헤엄쳐 건널텐데
But the sea is wide
and I cannot get over
Nor have I the wings to fly
I wish I knew a friendly doatman
To ferry me back
to my sweetheart's side
하지만 저 바다는 너무 넓어 건널 수가 없어요 날개가 없어 날아갈 수도 없죠
내 사랑하는 이의 곁으로 나를 데려다 줄
친절한 뱃사공을 알고만 있다면..
I close my eyes and I remember
The field of green and flowers gold
Where we would walk in sunlit meadows How my heart's longing to be back home
눈을 감으면 생각나요 반짝이는
햇빛 아래서 우리가 걸었던 초원과
초록으로 덮힌 들판과 황금빛의 꽃들이
아 고향으로 돌아가길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But the sea is wide and I cannot get over
Nor have I the wings to fly
so I'll just dream of Carrickfergus
and the day I said good bye
now and forever my love and I
하지만 저 바다는 너무 넓어 내가 건널 수가 없어요.. 날개가 없어 날아갈 수도 없죠
그래서 그냥 캐릭퍼거스를 상상만 하죠
그리고 내가 작별인사했떤 그날을
나, 그리고 내 사랑이 영원하길
so I'll just dream of Carrickfergus
and the day I said good bye
now and forever my love and I
그래서 그냥 캐릭퍼거스를 상상만 하죠
그리고 내가 작별인사했떤 그날을..
나, 그리고 내 사랑이 영원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