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판타지
사라졌던 글 재업합니다
뜨거운 여름볕 아래 마당 일을 좀 했다.
기진 맥진, 땀으로 범벅이 되서 들어오니 벌써 오후 두시가 넘었다.
젊었을 적 같았으면 한 시간이면 다 끝날 일이건만 환갑을 넘기면서 부터 부쩍 줄어드는 체력 탓에 쉬엄 쉬엄 느릿 느릿 일하다 보니 세 시간도 더 걸린 것이다.
샤워를 한 뒤 허겁지겁 찬밥에 풋고추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반주로 뿌우연 농주를 250 CC 맥주컵으로 두어 잔 들이키니 어허 甘露酒로다, 신사숙녀가 마실만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이것을 권하리라.
노동으로 지친 늙은 몸에 허기까지 겹친 속에다 음식을 마구 쑤셔 넣으면서 막걸리까지 곁들이고 나니 식곤증과 취기가 듀엣으로 정수리까지 차 올라와 넘치기 시작한다.
먹던 자리 치울 것 없이 그냥 앉아서 마주 보이는 뒷마당의 넝쿨장미들을 입을 헤에 벌린채 게슴츠레에 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만개한 빨간 장미꽃들이 마치 여인들의 입술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지 가지들이 하늘 하늘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크린 도어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
…………
얼마를 잤을까.
“크-ㅋ 크엇!”
내 코고는 소리에 내가 놀라 눈을 뜨니 식탁 위에 잘 접혀 놓여있던 신문지들이 마구 젖혀져 있고 가지런히 세워져 있던 종이컵들이 부엌 바닥에 떨어져 딩굴고 있는 것이 내 잠든 사이에 돌풍 같은 것이 한바탕 불고 지나갔었던 것 같다.
그 바람에 낮 꿈자리가 꽤나 뒤숭숭 했었나 보다.
꿈을 꾸었는지 헛것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멍하던 정신이 돌아 오면서 생각나는 데로 적어 본다.
하늘에서 내려온 百面女神이
넝쿨장미 가지 사이 숨어 있다가
아내가 외출하고 없는 틈타서
뛰쳐나와 춤을 추며 유혹을 한다.
백 개의 얼굴 하나 하나 모두 예쁘니
어느 입술에다 입을 맞출꼬
마침 외출했던 아내가 들어오는지 문 소리가 난다.
자랑삼아 방금 적어 놓은 즉흥시를 보인다.
순간 아내의 싸늘한 침묵이 한여름 오후를 때아닌 핼로우인 무드로 바꿔 놓는다.
칠월의 어느 일요일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2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