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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에 관한 시 가을비에게 여름을 다 보내고 가을비 때늦은 시궁창에 흐르는 물 갈걷이 (박 기선) 가을비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도종환) 가을비 창가 어둑새벽 엷은 졸음 춤추는 그리움에 쓸려 가을비 고인 물 가을비 소리
바람 불자 만산홍엽萬山紅葉, 만장輓章으로 펄럭인다.
까만 상복喪服의 한무리 까마귀 떼가 와서 울고
두더쥐, 다람쥐 땅을 파는데
후두둑 관에 못질하는 가을비 소리. (오세영) 가을비를 맞으며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얼마만큼의 삶을 내 가슴에 적셔왔는가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허전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훌쩍 떠날 날이 오면 미련없이 떠나버려도 좋을 만큼 살아왔는가
봄비는 가을을 위하여 있다지만 가을비는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일까 싸늘한 감촉이 인생의 끝에서 서성이는 자들에게 가라는 신호인듯 한데
온몸을 적실 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 때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용혜원) 가을비 속으로 쏟아져도 슬프지 않는 가을비가 내려요. 세상 하나밖에 없는 가을비 속으로 저 가을비 속으로 가을비가 내려요. (이응윤 ) 마지막 가을비 (전 상순) 가을 비
아무도 오지 않는 가을 들판에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지고 아무도 오지 않는 텅 빈 들판을 가을비가 촉촉히 적셔주네 오 내 마음 들판에 홀로 선 가을 나무 이 마음 적셔주는 고독한 가을비여 이 가을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나나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가을비
새들도 모두 떠난 가을 들판에 나뭇잎만 한없이 쌓여가고 아무도 오지 않는 텅 빈 들판을 가을비가 촉촉히 적셔주네 오 내 마음 들판에 흔들리는 은빛 갈대 이 마음 적셔주는 고독한 가을비여 이 가을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나나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가을비 (전경애) 가을비
낡은 기억의 페이지로 낮게낮게 내리는 비 고독처럼 사람들을 창으로 불러낸 뒤 저 멀리 지구 너머로 낙엽들을 밝고 간다.
젖고있는 세상에는 받쳐 들 우산 없는데 나목의 긴가지 끝에서 흐느적 거리는 하늘 뚫고 마지막 남은 가을비 빗금만 치고 내린다. (이동백) 우산이 되어 우산도 받지 않은 (이해인) 가을비. 가을밤에 비 내릴 때 (秋夜雨中)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 경우) 창밖엔 쓸쓸히 밤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 앞의 외로운 마음 만리(萬里)를 달리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가을비 소리에 철 들다
(정종배) 비 내리는 날이면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 곳에 내가 있습니다 보고 싶다기보다는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려고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곳에서 눈물 없이 울고 있습니다 (원태연) 오늘 밤 비 내리고
오늘 밤 비 내리고 몸 어디인가 소리 없이 아프다 빗물은 꽃잎을 싣고 여울로 가고 세월은 육신을 싣고 서천으로 기운다 꽃 지고 세월 지면 또 무엇이 남으리 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 기댈 곳 없어라 (도종환) 밤비 소리에 잠을 깨다 철벅철벅 중랑천 저 아랫녁에서 누가 오고 있는 것인가 가고 있는 것인가 아무도 보이지 않네 보이는 듯 했는데
짐짓 아닌 체 하면서 너는 왜 알몸이 되어 외줄 타고 내려와서 내 잠결을 밟고 가느냐 물꽃을 만들어 놓고 울고 웃고 하느냐
집시처럼 곡예사처럼 불쌍해야만 행복했던 내 안식의 쉼표를 모아 징검다리 놓고 있다 물꽃이 환한 꽃밭을 건너 오실 다리 하나 놓고 있다 (김문억)
늦가을의 산책 (헤르만 헷세) 거리에 비가 내리듯 거리에 비 내리듯 (폴 베를렌) 거리에 가을비 오다
노란 우산 아래로 장화의 물방울을 튀기며 나는 거리로 나선다 비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자, 나는 들으마, 너는 말하라 나는 외로운가 보다 나는 누구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가 보다 풋내기 시인처럼 앞뒤 운이 맞지 않는 네 말소리에 나는 열중한다 얼간이처럼 바지가 다 젖을 정도로 나는 외로운가 보다 길가에는 젖은 발들이 흐른다 젖은 발들이 내 쓸쓸한 발등을 밟는다 나뭇잎들이 비의 말을 따라 흉내를 낸다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따먹으며, 나뭇잎은 나보다 더 외로운가 보다 항상 나에겐 낯설기만 한 비의 알파벳 이국 처녀의 눈처럼 파란 비 오는 가을 풍경 나는 누구를 방문할 일도 없는데 꽃집에 들러 꽃을 산다 주정뱅이처럼 꽃을 보고 혼자 지껄이는 나는 형편없이 외로운가 보다 (이 준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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