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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강화 1경! 강화의 자존심 천년고찰 아도화상의 전등사(전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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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전편과 후편을 다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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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강화 1경! 강화의 자존심 천년고찰 아도화상의 전등사(전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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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시간 20여 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강화도, 요즘 유랑자는 강화도 여행에 푹 빠져있다. 이
렇게 선선한 날씨에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면 인천 강화도로 가보면 어떨까? 강화군은 아름다운 서해 풍경은 물론 오랜 역
사가 서려 있는 유적지와 감각적인 카페,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체험 공간 등이 고루 분포해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
할 섬 중 하나이다. 아니 이제는 섬도 아니긴 하지만…. 바다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내면의 감
성을 자극하는 저녁노을에 절로 차분해지며 힐링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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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숲, 오래된 마을이 공존하는 강화도가 최근 쉼을 경험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는 점 또한 이러한 서
정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미학, 느림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화 남부는 전등사 등 천년고찰을 돌아보며 멋진
해안 풍광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곳! 이다. 오늘은 유랑자가 오소부코처럼 식욕과 감성을 자극하고 채울 수
있는 현존하는 국내 最[최고] 절집!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鼎足山[정족산] 三郞城[삼랑성] 내에 있는 '傳燈寺
[전등사]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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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전등사 대웅보전 급 대조루 제4도 중수 기문’에도 “전등사는 아도화상이 세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
한 절이다(海東鼻昌佛宇)”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전등사가 ‘현존하는 최고
(最古)의 사찰’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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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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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모양을 한 정족산 기슭에 있는 절집으로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삼랑 산성
이 있는 곳이다. 삼랑 산성 안쪽에는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가 자리한다. 우선 381년 고구려 소수림
왕 11년에 阿道和尙[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傳燈寺[전등사]는 불교를 넘어 한반도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
절집이 특이한 것은 산성의 성문이 일주문 역할을 하는 절집이기도 하거니와 온통 국보급 보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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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 존재하는 두 개의 대표적인 산성중에 강화산성이 고려궁지와 강화 읍내를 지켜주는 성곽이라면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삼랑 산성은 전등사를 보호하는 성벽이다. 자연스럽게 1.600여 년의 깊이만큼 절집의 고즈넉함
과 동시에 세월의 더께만큼 운치가 살이 있는 절집이다. 예나 지금이나 煩惱[번뇌]가 필요 없는 平穩[평온]만이 가득한 전
등사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그렇다면 이제 전등사의 풍경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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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조선시대 두 차례(1605년, 1614년) 큰 화재로 사찰 전부가 소실됐지만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해 1621년
2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 네 기둥 위에 원숭이 형상의 ‘나부상(裸婦像)’으로 유명한 전등사 대웅전(보물 178호)도 이때 중
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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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나긴 역사를 오롯이 품은 전각은 아담하면서도 단정한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또한 국가유산으로 가
득한 경내를 거닐기만 해도 사극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세상과 동떨어진 절집이다. 이곳 전등사
를 둘러싸고 있는 삼랑성은 원래 4개의 성문과 누각이 있었는데, 현재는 宗海樓[종해루]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남문과 누각
이 없는 동문. 서문. 북문은 홍예문만 남아 있다. 유랑자는 전등사로 향했다. 이번엔 남문 쪽이 아닌 동문 쪽 언덕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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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동문 쪽 바로 밑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이라 복잡해서 아래쪽 도로변에 있는 제2 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랐다.
10여 분쯤 숨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면 어느새 홍예문만 남아 있는 동문에 다다른다. 동문 양방향으로 쌓여있는 성곽을
바라보면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나서 동문을 지나면 수백 년은 됨직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400년 된 나무 여러 그루
사이로 700살 된 나무까지 절집을 찾는 이들을 묵묵히 반긴다.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을 쉬엄쉬엄 걷다 보면 옹기종기 모
인 절 건물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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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랑자를 맞이하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이다. 역사의 풍상만큼 헤어진 옷처럼 덕지덕지 땜을 한 은행나무는 자그마치
724년 된 고목이다. 이 은행나무는 꽃은 피는데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죠? 물론 여기엔 노승 나무와
동자승 나무라는 설화가 깃들어 있는 나무이다. 정부에서 은행을 두 배로 공납하라는 주문에 도술을 부린 추종이라는 스님
이 주문을 외워 나무 열매가 열리지 않게 해달라는 도술을 부려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는 설화를 뒤로하고 유랑자는 다시
발길을 돌려 선 불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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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은 현대식 콘크리트로 지어진 공간이고 2층은 한옥으로 된 선 불장은 불교대학 수업 공간뿐 아니라 어린이 법회 등등
의 교육과 불교미술에 관한 내용과 사경 수행법 등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유랑자는 다시 이동을 한다.
전등사의 원래 이름은 眞宗寺[진종사]였다. 그러나 고려 충렬왕 때 이성계의 유일한 동복 누나이자, 정종, 태종 등의 고모
인 정화 공주가 대장경과 ‘옥’ 등을 전등사에 시주한 이후로, 傳燈寺[전등사]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충렬왕이 태자였을 때
태자비였던 정화 공주는 충렬왕이 몽골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를 정비로 맞이하자 별궁으로 물러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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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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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가기 위해서는 不二門 역할을 하는 대조루 아래를 지나야 하는데 누각 아래층의 높이가 유난히 작다. 대웅전
으로 올라서기 전 몸을 낮추어 경건하게 통과하라고 설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공사 중이라 막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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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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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潮樓[대조루]는 현재 출입 불가이다. 원래는 이 대조루 문을 통해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데 지금은 공사 중이다. 전등
사 대조루가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목은 이색의 전등사 詩[시]에서 읊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에
이미 대조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조루 문루에서는 ‘차가운 달 빈 산의 진리’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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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년 정화궁주가 전등사에 대장경과 옥등을 시주하고 100여 년 뒤, 1389년~1391년 사이에 학자 목은 이색(李穡)
은 강화도 일대를 여행면서 납극(蠟屐)을 신고 대주루에 올라 지은 시에 전등사로 불리게 되는 정화공주가 언급된다.
※이색(李穡) 전등사 시
蠟屐游山興自淸(납극유산흥자청) 나막신 신고 산에 오르니 흥취 절로 맑고
傳燈老釋道吾行(전등노석도오행) 전등사 노승이 나의 행차 인도하네
窓間遠岫際天列(창간원수제천렬) 창밖의 먼 산들은 하늘가에 벌여있고
樓下長風吹浪生(누하장풍취랑생) 누(樓)각 아래 긴 바람 물결치고 일어나네
星歷蒼茫伍太史(성력창망오태사) 세월 속의 역사는 오태사가 까마득한데
雲煙慘淡三郞城(운연참담삼랑성) 구름과 연기는 삼랑성에 참담하구나
貞和願幢誰更植(정화원당수경식) 정화궁주의 원을 세운 당간을 뉘라서 고쳐 세울 건가
壁記塵昏傷客情(벽기진혼상객정) 벽에 걸어놓은 글에 쌓인 먼지가 내 마음 상하게 하네
오태사는 고려 충신 오윤부(伍允孚)로 복속된 원의 공주에게 항거한 유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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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潮樓 柱聯[대조루 주련]
[전면]
終日無忙事(종일무망사): 온종일 한가로워 바쁜 일 없어
焚香過一生(분향과일생): 향 피우며 여생 보내리
山河天眼裏(산하천안리): 산하는 천안天眼 속에 다 들어 있고
世界法身中(세계법신중): 세계는 법신 안에 여여하다네
聽鳥明聞性(청조명문성): 새소리를 들으며 자성 밝히고
看花悟色空(간화오색공): 꽃을 보고 색공色空을 깨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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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
明月定中心(명월정중심): 밝은 달은 선정에 든 마음이라네
靑山塵外相(청산진외상): 푸른 산은 티끌세상을 벗어나 있고
嶺上多白雲(영상다백운): 고갯마루 위에는 흰 구름 많네
袖中有東海(수중유동해): 옷소매 자락에 동해가 있고
孤月浪中翻(고월랑중번): 외로운 달 물결 속에 일렁인다네
薄雲岩際宿(박운암제숙): 엷은 구름 바위 끝에 잠자고 있고
縣泉百丈餘(현천백장여): 장여 폭포는 백 길 넘게 드리워 있고
竹逕從初地(죽경종초지): 초지初地를 따라 대숲 길을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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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대웅전 주련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부처님은 온 세상에 두루 계시며...
月印千江一切同[월인천강일체동]:천개의 강에 달그림자 비춤이 모두 같고...
四智圓明諸聖士[사지원명제성사]:사지에 원만히 밝으신 모든 성인들이...
賁臨法會利群生[분림법회이군생]:법회에 왕림하시어 모든 중생 이롭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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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공주는 모든 슬픔을 종교로 승화시켜 전등사를 새로운 사찰로 중건하였다.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도
전등사는 조선 왕실의 아낌을 받으며 더욱 성장했다. 숙종 때인 1678년에 전등사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고 이후 왕
실의 문서까지 보관하게 된다. 왕실의 世譜[세보]인 ’선원세보‘ 를 비롯해 왕실 문서를 선원각에 보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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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719년부터 1910년까지 전등사의 큰 스님에게는 조선시대 최고의 승직이었던 도총섭이라는 지위가 주어졌다. 다시
유랑자는 전등사의 최고 걸작, 보물 중 하나인 ‣大雄寶殿[대웅보전:보물 제178호] 으로 발길을 옮긴다. 조선 중기 이후 사
찰 건축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대웅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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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浪者[유랑자]는 한참을 서서 대웅전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이제 유랑자는 안으로 들어가 본다. 또 다른 보물을
보기 위함이다. 대웅전엔 웅장한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85호]이 모셔져 있는 내부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 아미타 부처님과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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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표정이 특징인 이 목조불상들은 광해군 때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불꽃 문양의 ’명경대‘는 염라대왕이 망자의
죄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역시 전등사 ‣明鏡臺[명경대]도 보물로 지정 승격 예고된 상태이다. 또한 대웅보전 수미단 역시
조선시대의 수미단으로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유산 제4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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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목조 석가여래 삼 불 좌상(보물 제17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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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후불탱(인천시 문화재자료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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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단(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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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상 위를 장식한 덮개인 닫집은 극락조의 날개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표정까지 목재로 어떻게 저렇게까지….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조각 솜씨가 돋보인다. 대웅보전의 여러 신들을 함께 그린 신중도는 불교를 수호하는 호
법선신이고 *수미단의 화려한 조각 문양은 불상을 모셔 놓은 단으로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3단으로 구성되어
각단마다 수미산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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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거대한 산을 일컫는다. 참으로 대단한 걸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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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지정: 강화 전등사 명경대 (江華 傳燈寺 明鏡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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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집은 산개(傘蓋)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면 주인공 머리 위에는 항상 양산이 받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 사원에서 신 상위에는 항상 천으로 만들고 화려한 장식을 한 보개(寶蓋)가 씌워
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산개와 보개가 건축화하여 닫집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산개나 보개는 모두 양산에서 기
원하여 닫집으로 발전해 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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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밖으로 다시 나오면 의미 있는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전등사에서 눈여겨볼 것이 있는데 처마 밑을 받들고 있는 裸
女像[나녀상]이다. 대웅전 지붕의 네 귀퉁이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표정, 슬픈 표정으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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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 의하면 광해군 당시 전등사에 큰불이 나서 재건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나라에서 손꼽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공사를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랫마을 온수리 사하촌 주모와 사랑에 빠져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
하고 평생 갖고 있던 돈을 다 주었으나 공사가 끝날 무렵 그 주모는 모든 것을 챙겨 도망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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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의 기둥 등 각종 낙서들은 고종 3년(1886)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결사 호국의 각오로 전투에 임
했던 장병들이 무운을 부처님께 빌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부적처럼 써놓은 흔적들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우
던 조선군(543명 중 포수와 보부상이 367명)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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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여인의 배신에 도편수의 傷心[상심]이 날로 깊어지던 어느 날, 대웅전을 완성하고 대웅전 처마 밑 내 귀퉁이에
발가벗고 벌받는 주모의 형상인 ’나녀상‘을 조각해 지붕을 떠받치게 하여 복수한 것이라 한다. 즉 부처의 말씀을 들으며 죄
를 뉘우치길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들은 벌거벗은 여인 형상이 아니라 원숭이 상이라 말한다. 부처가 원숭이 왕자로
있을 때의 본생담에 근거를 두고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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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명 마지막 사진을 확대해 보면 알겠지만, 유두며 표정이분명 나녀상이 맞다. 아무튼 옷을 벗긴 나녀상이든 원숭
이든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형상은 배신을 경계하고 신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조각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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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전 주지사 -고은- 시인의 시를 소개해 본다.
‘강화 전등사는 / 거기 잘 있사옵니다 / 옛날 도편수께서 / 딴 사내와 달아난 /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놓고 / 네 이년 세세생생 / 이렇게 벌받으라고 한 / 그 저주가 /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 흐드러진 갈대
꽃 바람 가운데 / 까르르 까르르 /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 거기 잘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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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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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대웅전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나녀상(裸女像)은 광해군 당시 전소된 대웅전을 다시 지을 때 사하촌에서 주막을
하던 주모가 도편수의 순정을 배반하고 돈을 챙겨 달아나자, 도편수가 벌거벗고 벌받는 주모의 형상을 조각해 복수한 것이
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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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조각상이 얼마나 유명한지 고은 시인의 ‘전등사’ 시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시인의 감수성이 그
야말로 무릎을 '탁' 칠 만큼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이를테면 전설이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시인 고은의 본
명은 銀泰[은태], 법명은 一超[일초]로 1950년 전등사에서 주지를 역임했다. 1957년에 그가 지은 시다.
‣[전등사],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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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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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찰은 남북조시대 때 지어져 청나라 때 버려졌다가 일제 점령기 때 완전히 철거되었었다. 이후 1990년대에 복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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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 대종사 30주기 추모 사진전: 차가운 달 빈 산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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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전설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종종 현실을 비껴가고, 기록은 생생하지만 대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설과 기록은 서로
맞서는 상대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어서 풍부한 역사 구성을 원한다면 이 둘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
녀상은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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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
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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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문화재: (1)보물 제178호 강화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2)보물 제179호 강화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3)보
물 제393호 강화 전등사 철종(鐵鍾)/. (4)보물 제1785호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5)보물 제1786호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6)보물 제
1908호 묘법연화경 목판(2016)(妙法蓮華經 木板)/. (7)보물 강화 전등사 명경대 (江華 傳燈寺 明鏡臺)= 보불 7개와. 인
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10개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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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편수가 여인에게 가졌던 증오와 원한 보다는 무거운 대웅전의 들보를 받치고 있어야 하는 억겁의 고통을 통해 매일 대웅
전 바깥에서 염불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죄를 참회하라는 도편수의 변함없는 사랑의 징표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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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직접 보면 희극적인 느낌이 강해 도대체 여인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심정은 참으로 哀切[애절]한 사랑이 안타깝다. 도편수의 애절했던 사랑에 너무 가슴이 아파져 온다. 언제고 시간
이 다시 허락하는 날 또다시 들렀다 가리라. 이렇듯 전등사 대웅보전은 역사인 동시에 전설이다. 역사와 전설이 서로를 보
완해 주고 있으니 얼마나 소중한 문화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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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 대종사 30주기 추모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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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音殿[관음전]
유랑자는 이제 대웅보전 바로 옆에 있는 觀音殿[관음전]으로 향한다. 관음전은 예전엔 법당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
으로 조선시대에는 상궁이나 나인들이 기도하던 곳으로 쓰이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은 상임 법사실로 쓰고 있다. 본시 관
음보살이 周圓融通[주원융통]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圓通殿[원통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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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관음전은 관음보살님의 보살핌과 에너지가 시너지효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관음전
의 현판은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글씨다. 풍수가들은 대웅전 좌측으로 관음전, 약사전, 명부전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전
각들은 풍수적으로 중요한 혈 자리에 놓여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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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약사전 주련
一念普觀無量劫[일념보관무량겁] 일념으로 무량겁을 관하노니
無去無來亦無住[무거무래역무주]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머무름 또한 없도다
如示了知三世事[여시요지삼세사] 이처럼 삼세의 일을 모두 안다면
超諸方便成十力[초제방편성십력] 모든 방편 뛰어 넘어 십력을(불도를)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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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師殿[약사전:보물 제179호]으로 향한다. 약사여래는 보통 동방의 부처님을 말한다. 조선 후기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모든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약사여래 뒤에는 후불탱화와 현왕탱이 벽에 걸려
있다. 이 건물의 창건연대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지붕의 막새기와 중에 1896년 대웅전과 함께 기와를 중수했다는 명문이
있고, 또 건물의 구조나 양식으로 보아 대웅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학계의 설이다. 불단에는 석
조 약사 불좌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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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후불탱화.[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약사 부처님 뒤의 후불탱화는 약사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 약사 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불화다. 약사전 현왕 탱화. 바로 옆 현왕 탱은 사람이 죽은 지 3일 만에 死者[사자]를 심판한다는 현왕과 그 권
속들을 그린 불화이다. 약사전 천장은 역시 우물천장이며 그 주위에는 연꽃과 비천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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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명부전 주련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지장보살님의 위의한 신력은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 수만겁을 설명한들 끝이 있으랴.
見聞瞻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깐 사이에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인간과 세상에 이익된 일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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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冥府殿[명부전]은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본시 명부전이란 地藏菩[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염라대왕 등 시왕을
모셔 놓은 절 안의 전각 불단 가운데 저승세계의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
한 지장보살과 그 옆으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시왕’ 등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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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다 보면 세상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아픔과 어려움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의지할 무
언가를 찾게 된다. 이때 많은 이들이 지장보살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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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살이 지상보살이다. 즉 지장보살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닿기 어려운 지옥 세계까지도 직접 나아
가, 고통받는 이들을 돕겠다고 서원한 존재이다. 즉, 누군가가 가장 힘든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
가 바로 지장보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중생을 포기하지 않는 보살', '희망의 상징'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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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전등사 명부전은 목조건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으로 건
립연대는 알 수 없다, 하여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그 외에 시왕, 귀왕, 판관, 장군, 동자 등 29상이 모셔져 있
다, 이 명부전은 ‣보물 제1786호로 木造 地藏菩薩 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지정되
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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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 기법의 장인 이영섭[조각가]의 마애불
이영섭(1963년~ )은 대한민국의 조각가이다. 세계 최초로 발굴 기법을 고안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소박미, 고졸미, 졸박
미 등을 특징을 보이는 한국적인 미를 선보인다. 그의 작업장은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경기도 여주시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 교사로 발령을 받았지만, 교사직을 포기하고 대학에서 배운 서양의 미가 아닌 전국 답사를
통해 한국의 미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땅을 파서 세웠던 2미터가 넘는 조각 작품을 떠올리며 1998
년 고달사지에서 진행 중인 발굴 현장에서 영감을 얻어, 발굴 기법을 고안해 냈다. 현재에도 한국의 미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개인전과 단체전 등의 전시를 통해 왕성한 작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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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鍾[철종] 각이다.
이 철종은 ‣보물 제393호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범종과는 그 형태가 판이하다. 본시 범
종은 동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인 데 반해 특이하게도 이 종은 철로 만든 종이다. 이 종은 1097년 중국 송나라 허난성 백암
산 숭명사에서 주조 [고려 숙종 2년 1097년] 되었다는 기록이 몸통의 명문에 남아 있다. 이 종은 음 통이 없으며 겉에 상,
중, 하로 구획이 지어져 띠가 둘려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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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철종이 어떤 경위로 전등사에 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 말기 금속류의 강제 수탈 때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되어 신심 깊은 불교 신도에 의해 다시 전등사에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 이
철종은 높이 1.64m, 입지름 1m로 형태가 장중하고 조각이 웅경하며 소리도 청아하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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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포스팅은 2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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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종 몸체에 명문이 있는데, 북송 철종 소성 4년(1097, 고려 숙종 2년)에 주조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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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樂庵(극락암) 인공당 상묵 스님께서 이곳 극락암에서 열반에 드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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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樂庵(극락암) 주련
有物先天地(유물선천지), 천지보다 앞선 진리가 있었고,
無形本寂寥(무형본적요), 그 진리는 형태 없이 고요합니다.
不逐四時凋(불축사시조), 사계절 변화에도 시들지 않으며,
能爲萬像主(능위만상주), 만상을 다스리는 근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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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역사 자료관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375년(고구려 소수림왕 5)에 세워진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
(伊不蘭寺)로 전해진다. 하지만 1942년 편찬된 ‘전등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에서 전등사는 “신라 아도화상이 세운 바이
니,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 절의 옛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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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1경 호국기도 도량 전등사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운영시간: 연중무휴(입장료 무료)
*하절기 : 오전 8시30분~오후 6시30분
*동절기 :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주 차: 동문주차장(3,000원),
-동 문 공영주차장(1일 2,000원)
*남문주차장(소형), 09:00 ~ 17:30 ( 카드결제 가능)
*전 화(종무소): 032-937-0125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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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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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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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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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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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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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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