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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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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10월호의 시(2)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91 18.10.19 04: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마 - 김미외

 

머리카락이 가마 주위로 맴돌고 있다

머리에서 시작된 소용돌이가

오장육부를 휘돌며 뚫어 놓은 불가마 심장에

소용돌이로 휘몰아치는

 

꽃가마 타고 왔다

꽃상여 타고 떠난 할머니

참빗으로 긴 머리 곧게 빗어 내리며

쌍가마는 두 번 결혼한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셨는데

누구나 가슴에 불구덩이를 끌어안고 사는 것을

말씀하시진 않으셨지

 

할아버지 역정에

불가마가 달아오르면

바가지 가득 물을 퍼

벌컥벌컥 들이마시던 할머니는

아궁이에 삭정이를 넣으며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되는 계율에

얼마나 찬물을 끼얹고 싶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의 불씨가

불쑥불쑥 기세 좋게 타오르면

나는 머리에 찬물을 끼얹으며

꽃가마 타고 왔다

꽃상여 타고 떠난 할머니의

서글픈 가마 속을 들여다본다.

   

 

 

어머니의 선물 - 민문자

 

! 참 덥다

뜨겁다

시도 때도 없이

구슬땀이 흐른다

 

이른 아침에 집 전화가 울린다

전화 올 데가 없는데?

친정 올케다

덜컹 겁이 났다

 

어머니께 무슨 변고가 생겼나?

너무 더워 얼음을 가슴에 안고

머리에 이고 계신다던 어머니 목소리

엊그제 들었는데

짧은 순간 스치는 생각들

 

의외로 전화 내용은

텔레비전 광고를 유심히 보시던 어머니

쌈짓돈을 내놓으시며

냉풍기 주문해서

맏딸에게 보내주라고 하셨단다

 

맏딸 걱정만 하셨나 봐

자식이 해마다 에어컨 놓아준다는 것을

거절해 놓고 올해는 후회도 했는데

! 어머니께 불효를 했구나!

 

월요일에 도착한다는 냉풍기

송구스러워 어찌하나

아흔다섯 어머니의 눈물겨운 선물

어머니의 사랑 가이없어라!

   

 

 

못하고 못하는 - 조성순

 

눈치는 발바닥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죄 중의 무서운 죄는 괘씸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못하고 못하는.

   

 

 

도랑에 빠지다 - 남정화

 

떨어진 동백 주우러 도랑에 들어갔어요

 

노인처럼 둥글게 등을 말았어요

 

바닥에 뒹굴어도 동백은 빛나더군요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

당신 이름 작게 되뇌며

나도 도랑에 들어가 누웠어요

   

 

 

화장 - 성숙옥

 

세월이 자리 잡은 얼굴을 본다

계절이 수없이 다녀간 곳

더디 오던 시간이 뛰어와 서 있다

내가 아닌 나를 만들기 위해 치장을 한다

성글어지는 눈썹은 촘촘히 메우고

희미해져 가는 아이라인을 뚜렷하게 세워본다

중성 같은 얼굴을 토닥이니 낯선 내가 있다

자세히 보니

정수리에도 마른 마음이 몇 가닥 붙어있다

어제 통화 속 그대의 목소리가

볼에 난 뾰루지 같이 부풀어 오르는 건

생각도 물기 빠져 척박하기 때문

덧칠을 끝낸 내 얼굴에 물어본다

어떤 그림자를 지우고 무엇의 희락을 그리면

울음도 마르려는 가슴에

물 맑은 샘이 솟을 수 있는가를

   

 

 

포란抱卵 - 김혜천

 

보리빵집을 꿈꾸던

늙은 어미의 골다공 돌무더기 곁으로

물결치는 청보리 초록 바다

함성 지르며 피어난 유채꽃 노란 바다

슬픔 속에 아름다움

아름다움 속에 슬픔을 노래하는

제주 바람엔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다

 

보리밭 보리 베어지듯

이유 없이 스러져간 원혼들의 웅웅거림

 

침묵 속에선 무엇이 포란抱卵하는가

 

토해낸 각혈이 응고된 기암괴석

무등이왓엔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사리들이

주먹 쥐고 쑥쑥 올라온다

 

잃어버린 마을 어귀

늦도록 트지 않는 팽나무 순

 

그러나, 이제 곧 언제나처럼

각질 떨어지는 주름진 등걸에

푸른 생명들 잔뜩 껴안고 풍성해 질 것이다

   

 

 

무념의 꽃 - 박병대

 

걷고 있다는 생각도 없었다 허정한 걸음의 느낌만 휘청일 때

발자국을 떼고 있다는 무의식의 소리가 겉돌고 있을 뿐

본능은 행동만 있었다 피톤치드의 향기에 젖어 무한의 공간을 바라본다

존재하는 것들은 꿈틀거리고 흔들리는 것들은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

갈 수 없어 오라고 손짓하는 것들, 바람이 없으면 손짓도 못하는 것들

입장료 없는 널마루 전망대 극장에 관람객이 된다

식탁과 일체된 의자에 의식 없는 몸뚱어리가 눕는다

파랑 하양 파랑 파랑 하양 하양 비천의 날개 되어 소리 없이 흐르고

불줄기 뿜어대며 가는 저것 펴 발린 솜 줄기 서너 장 덮으니

장자의 꿈속이 된다 꿈 깨어나고 싶지 않다

눈 뜨면 측은지심 가득한 세상 허접한 사람들

힘없어 누워 있는 허접한 사람, 북악 스카이웨이 동마루에 누워 있는 꽃

호랑나비 한 마리가 무한공간에서

   

 

 

설문동雪門洞 · 3 - 임채우

 

한 순례자가 죽었다

그를 최초로 발견한 주민의 말에 의하면

밤새 두드리다 열리지 않는 문 밖에서 웅크린 채 동사한 것 같다고 한다

경찰은 그의 초라한 괴나리에서 놀랍게도

국내외 유수 각지를 떠돌아다닌 듯한 절취된 입장권이며 안내책자를 발견했다

영국의 무어이 개발했다는 유토피아는 물론이고

세칭 토피아 순례객이 분명했다

주검은 이내 치워졌는데 역시 지켜본 사람들이 전하는 바는

그가 마치 임사체험에 임하는 자처럼 편안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드디어 그 나라에 도착한 듯하다

, 죽어서야 가는 스노토피아!

   

 

 

내안의 감옥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327

 

왜 이리 흔들리는 것인가

 

검은 감옥 속, 내가 지은 감옥 안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아니

 

터널 속에서

처음과 끝 사이에서

 

감옥은 탈옥할 수 없지만

터널은 끝이 있는데 너무 깊고 멀다

 

무방비 상태의 수인은

늘 힘이 부친다

 

땅을 밟아 본 지 한 해가 지나

똑바로 서서, 아니 부축을 받고 서서

 

걸어본 게 어디였는지

세상을 바라본 게 언제였는지

 

왜 이리 흔들리는 것인가.

 

 

                           * <우리시> 201810월호(통권 제364)에서

                  * 사진 : 오늘(10/18) 동광 육거리 꽃썸에서, 늦은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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