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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목회와 작은 교회 운동을 위한 계간지 <농촌과목회> 100호에 실린 새맘교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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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실험실
새맘교회 이수연 목사
1. 목회의 시작
새맘교회의 전임 목회자였던 박득훈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교회는 두 번의 청빙 절차를 진행했지만 교우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결렬되었다. 결국 3차 청빙에서는 새맘교회의 교육 전도사였던 내가 ‘비전임설교자’ 후보로 추천되어 청빙되었고, 2년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새맘교회의 전임 목사로 다시 청빙되었다. 내가 처음 청빙에 응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어간다.
2. 신학의 시작
신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부르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무엇을 위한 ‘부르심’인지는 저마다 다르다. 누구는 선교를 위해, 누구는 예배 회복을 위해, 누구는 교회 개혁을 위해, 누구는 사회 개혁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는 목사 개혁을 위한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신학을 시작하기 전 출석하던 교회는 예장 통합 교단에 속한 500여 명 규모의 중형 교회였다. 1대 목사님이 몇 년 간의 폐암 투병 후 돌아가시고 2대 목사님이 청빙되어 왔는데, 목사 한 명이 바뀌니 교회 전체가 다 바뀌었다. 500여 명의 사람들은 마치 교회부속품처럼 행동했고 본래 가지고 있던 고유한 교회의 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목사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강하게 작동했다. 좋은 목사가 있는 교회는 ‘목사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 언급될 일이 거의 없겠지만, 내가 출석하던 교회는 2대 목사가 청빙되어 온 후, 특히 그가 위임을 받은 후, ‘목사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 교인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부교역자들은 목사의 문제를 알고 있었으나 교인들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하고도 빠르게 교회를 탈출했다. 부교역자들의 교체가 점점 잦아져갔다.
5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목사 한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 참 이상했다. 신학을 하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고 신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문제가 궁금했다. 신학을 공부해서 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었고 내 아이들은 문제를 볼 줄 아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목사 중심이 아닌, 교인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교회를 꿈꾸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는 이제 10년이 되었다. 10년의 배움의 과정 동안 점점 뚜렷해지는 생각이 있다. ‘교회는 작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목사의 역할은 작아야 한다.’
3. 작은 교회
가뜩이나 작은 교회가 코로나를 겪으며 더 작아져서 지금보다 더 작아지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는 크지 않아야 한다. 아니 작아야 한다. 서로 말 한 번 건내보지 못하고 여러 주일을 지나는 교인들이 많다면 그 교회는 큰 교회다.
새맘교회는 화곡동의 한 학교 강당을 주일마다 빌려 예배드렸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예배 장소를 잃었다. 코로나 19 발생 이후 더 이상 학교 강당에서 예배 드릴 수 없게 되었고, 3년 가까이 줌(zoom)으로 모여 예배드리며 버텼다. 올해 초부터 종로 낙원상가의 강당(엔피오피아홀)을 새로운 예배 장소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대면 예배를 시작하고 있다. 이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눈빛과 표정으로 말하는 언어가 읽힌다.
주일 아침이면 양평에서, 의정부에서, 파주에서, 부천에서, 서울 경기 각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교우들이 함께 예배 드리기 위해 종로 낙원상가로 모인다. 예배 후 함께 애찬을 나누기 위해 각자 음식까지 준비해서 먼 길을 기쁘게 오는 교우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절로 존경의 마음이 든다.
함께 나누는 재정
교회 건물을 마련하느라 부동산에 교인들의 헌금을 대부분 쏟아 넣는 교회들에 저항하기 위해 새맘교회는 교회 건물을 갖지 않기로 정관에 정해 놓았다. 주일에만 공간을 빌려 임대하면, 교회 유지 비용에 사용될 헌금을 사회로 흘려보낼 수 있다. 새맘교회는 헌금의 30%는 사회 선교를 위해 사용하기로 정해 놓았다. 연말이 되면 사회 선교 대상지를 선정하고 매월 일정 금액을 송금한다. 또한 새맘교회는 교우들을 위한 기금도 마련해 두었다. 경제적 곤경에 처한 교우들이 필요할 때 언제라도 새맘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월 50만원씩 4회까지 지원한다. 누구든 새맘기금을 신청할 수 있고, 누가 신청했는지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남겨둔다. 새맘교회는 교우들과, 그리고 사회와 재정을 함께 나눈다.
함께 나누는 애찬
작은 교회이기에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은 함께 나누는 애찬에 있다. 예배를 마치면 각자 집에서 한 가지씩 준비해 온 음식을 하나의 테이블에 주욱 풀어놓고 함께 나누어 먹는다. 새맘의 애찬은 원래 밥과 반찬을 나누는 것이었는데, 바뀐 예배 장소에서는 음식의 제한이 생겨서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 위주로 준비해야 한다. 누구는 김밥을 싸오고, 누구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고, 누구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오고, 누구는 떡이나 과일 같은 후식류를 준비해 온다.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애찬이 되지만 교우들의 마음 속에는 밥과 반찬을 싸오던 시절이 그리운 것 같다. 수련회나 야외에서 예배 드리는 때가 되면 밥과 반찬으로 애찬이 바뀌는데 그런 날은 교우들이 한풀이를 하신다. “집사님, 오늘 아주 작정을 하셨군요~” 하면서 서로 정성껏 준비해 온 음식에 찬사를 보내며 최고의 특식들을 함께 나눈다. 매주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잔칫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함께 나누는 설교 밥상
새맘교회는 애찬 뿐 아니라 설교 밥상도 함께 나눈다. 새맘교회는 교우들이 설교를 듣는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설교를 전하는 주체로 선다. 한 달에 한 주는 평신도가 설교하는 주일이다. 작년까지 평신도가 설교하는 횟수는 1년에 3-4회 정도였는데, 올해부터 12회로 정하고 매월 평신도 설교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대로 실행되지 못할 거라는 교우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설교자 섭외가 안되는 주는 목사가 설교하기로 하고 일단 진행했다. 올해가 두 달 남은 지금 12명의 평신도 설교자가 어렵지 않게 섭외되었고,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평신도 설교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평신도 설교 횟수가 적을 때는 주로 사회에서 강의하는 직업을 갖는 교우들이 평신도 설교를 맡았는데, 횟수를 늘리니 다양한 교우들이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지만 설교를 나누는 시간에도 교제가 일어난다. 성경이라는 재료로 모든 교우가 다함께 먹을 만찬을 준비하는 것이 설교이다. 그 설교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교우들이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참된 교제가 일어난다. 교우들이 스스로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설교를 목사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고 평신도들이 직접 설교에 참여해서 다양한 생각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공동체 모두의 목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함께 나누는 묵상
참된 신앙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드리는 예배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맘교회는 매일 성경 한 장씩을 읽고 함께 묵상을 나눈다. ‘새맘 영성의 숲’이라는 모임에서 시작된 매일 묵상은 이제 각 구역방에서도 정착되었다. ‘새맘 영성의 숲’ 모임에서는 매일 각자 묵상을 올리고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저녁이면 줌으로 함께 모여 서로의 일상과 기도제목을 나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줌으로 기도 모임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고 시도해 본 모임인데, 이제는 줌으로 일상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이 모임이 큰 위로의 시간이 되고 있다. 친밀하고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함께 읽는 독서
매주 수요일은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이 줌으로 진행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면으로 만났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줌 모임으로 전환되었다. 기독교 서적을 주로 읽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최근에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를 읽었고, 지금은 월터 윙크(Walter Wink)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을 함께 읽고 있다. 서로의 생각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게 될 때도 있어서, 책도 읽고 사람도 읽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대화하며 읽는 책은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
함께 하는 투쟁
새맘교회는 꽤 의리 있는 편이다. 2014년에 시작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는 투쟁이 이제 10년이 되었다. 매월 첫 주일은 예배를 마치면 안산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상황이 되는 교우들이 자유롭게 참석하는데 보통 5-10명의 새맘 교우들이 꾸준히 참석한다. 우리들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참석하지 않는 주일은 거의 없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사회적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의 책임감으로 유가족들의 긴 싸움에 함께 연대하고 있다. 또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이어간다.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고용주의 모든 치졸한 수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세종호텔 부당해고는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현장이기에 함께 하고 있다. 현장 예배 후 갖는 뒤풀이는 우리의 투쟁을 지치지 않게 한다.
건강한 작은 교회
새맘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그냥 작은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 교회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건강한 작은 교회 연합’(건작연)에 소속되어 회원교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건작연은 크게 세 가지 교회 운영 방향, 즉 ‘민주적 교회 운영’, ‘투명한 재정 운영’, ‘평신도 중심 운영’을 위해 모인 교회간 연합기구로, 여섯 가지의 핵심 가치, 즉 ‘작음, 나눔, 비움의 성경적 가치’, ‘신앙과 삶의 진실한 공동체’, ‘가치 중심의 연합’, ‘신자와 교회의 사회적 책임’, ‘민주적 운영과 재정 투명성’, ‘목회자와 일반성도의 동역’을 추구한다. 1년에 한 두 번 회원교회들이 함께 연합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함께 포럼을 진행한다. 올해는 각 회원교회에서 두 강의씩 맡아 ‘건작연 아카데미’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건강함을 추구하는 작은 교회들의 연대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을 발견하게 해주고, 우리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4. 작은 목사
작은 교회에서 목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교우들 앞에서 목회 방향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목사의 역할을 ‘배경색’, ‘무게추’, ‘러닝메이트’로 설명했었다.
배경색
내가 꿈꾸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신앙 공동체, 평신도가 주인되는 공동체에서 목사의 역할은 올바른 신학을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공동체의 신학적 배경색을 내는 이로 존재한다. 빨간 색이나 까만 색으로 도화지 위를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도화지의 그림들이 잘 돋보이도록 은은하고 연한 색으로 밑바탕에서 은근히 배어나오는 배경색이다. 나는 내가 가진 배경색을 정의, 평화, 생명이라 말했다.
무게추
목사는 무게추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에서 약한 지체가 발견되었을 때, 신속하게 그 지체에게로 이동해서 공동체의 무게 중심을 약한 지체에게로 옮겨야 한다. 교회는 힘 있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약한 지체를 중심에 두고 모이는 공동체여야 한다. 공동체의 약한 지체를 다함께 보살피고 회복하면서 교회 공동체도 회복된다. 목사는 공동체가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할 사람들에게 먼저 가서 껴안는 사람이다.
러닝메이트
교우들이 스스로 교회를 만들어가는 선수들이고 목사는 선수들 곁에서 함께 달리는 사람이다. 운영 위원 곁에서, 구역장 곁에서, 새맘의 모든 모임들 곁에서 함께 뛰는 사람이 목사이다. 누군가 교회를 위해서 혼자 뛰다가 지치지 않도록 목사는 그 곁에서 함께 뛰어 주어야 한다. 작은 교회일수록 목사 혼자 뛰면서 교우들을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방법은 별로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목사가 자꾸 교우들을 도구로 이용하게 된다. 선수는 교우들이다. 교우들이 스스로 교회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찾도록 하고, 목사는 그 곁에서 그가 혼자 상처받고 지치지 않도록 함께 뛸 뿐이다. 목사는 교우를 위해 존재한다.
5. 하나님 나라의 실험실
크고 아름다운 교회건물 안에서 그 분위기에서 뿜어 나오는 웅장함에 압도되어 예배 드리는 모습이 우리들의 머리 속에 있는 예배의 모습이다. 그 고정관념을 깨고 교회 건물이 아닌 강당을 일주일에 한 번 빌려 예배 드리고, 거리에서 약자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줌이라는 가상 공간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기도 모임을 하는 우리는 분명 실험을 하는 중이다. 교인들의 헌금이 교회 건물이라는 부동산에 다 흘러가지 않도록 교회가 부동산을 갖지 못하도록 정관에 정해두고,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우리는 분명 실험을 하는 중이다.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진 중년 남성의 권위 있는 태도를 목사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그 고정관념을 깨고, 그 태도와 권위를 거부하는 여자 목사인 나는 분명 실험을 하는 중이다. 목사가 독점하고 있던 교회 안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교우들에게 그 자리와 목소리를 함께 나누자고 하는 나는 분명 실험을 하는 중이다.
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실험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끊임없이 실험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전해 받은 것은 사실 당시 사회 속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답일 뿐이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답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 무엇인지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실험하는 곳이다.
새맘에는 즐거운 실험이 진행중이다. 크고 거대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작고 연약한 하나님 나라를 실험하고 있다. 이것이 새맘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첫댓글 새맘교회에 대한 핵심적인 대내외 실행내용들만을 모아 잘 정리한 글입니다. 새맘교우로서 이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마지막 글 중 '새맘은 연약한 하나님 나라를 실험학 있다' 란 글귀가 눈에 확 들어 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