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폐쇄했던 국경을 약 3년 7개월여 만에 다시 열었다. 북한 주민의 입·출국길이 다시 열리면서 '외화벌이의 선봉'인 해외 노동자 송출 규모가 다시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25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 후 3년 6개월 만에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북한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가 평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7일 북한 관영 매체에 따르면 북한 국가방역사령부는 전날 "세계적인 악성 전염병 전파 상황이 완화되는 것과 관련해 방역 등급을 조정하기로 한 사령부 결정에 따라 해외에 체류하던 우리 공민들의 귀국이 승인됐다"고 밝혔다. "귀국한 인원들은 1주일 간 해당 격리시설들에서 철저한 의학적 감시를 받는다"면서다. 우선은 입국 해제인데, 이는 출국길도 곧 열릴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교묘해지는 IT 인력 운용
이번 조치가 국경 폐쇄 해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건 북한의 노동자 해외 송출 때문이다. 정부는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에 쓰는 주된 자금원을 암호화폐 해킹과 해외 인력이 벌어들이는 외화로 보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한·미·일 3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북한의 불법적인 사이버 활동을 저격한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오솔길을 함께 걸어 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의 해외 파견과 고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한다.(2017년 채택 결의 2397호)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 인력을 보내며 취업이 아닌 유학, 관광 등을 목적으로 비자를 발급받게 하는 등 제재를 회피해 왔다.
특히 과거 북한 해외 노동자가 주로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해왔다면, 최근에는 IT 인력이 주력이다. 이들이 국제 해커로 활동하거나 아예 IT 기업에 취업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진화했다.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5월 한·미 공동 심포지엄에서 "미국 법무부는 북한 IT 인력이 미국 시민으로 신분을 위장해 미국 기업에 취업한 사례를 적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북한 노동자들은 대면 면접 등 없이 실력만 인정받으면 하청업자로 일감을 얻을 수 있는 점을 이용해 국적을 세탁하고 실리콘 밸리에 위장취업하기도 한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가 지난 5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북한 IT 인력 활동 관련 한미 공동 심포지엄'에서 IT 인력을 활용한 북한의 외화벌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국경을 다시 열며 김정은 정권의 실질적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하는 이런 해외 IT 인력의 전열을 재정비할 기회가 생겼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정박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도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북한 IT 인력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매년 5억 달러 이상 기여할 수 있다"며 "북한 국경이 다시 개방되면 IT 인력의 위협이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지난 5월 한·미 공동 심포지엄)
암호화폐 해킹은 안정자산으로 볼 수 없음에도 북한이 집중하는 분야다. 기존 제재 대상이 아닌 데다 확실한 통제 규범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소속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지난해 탈취한 암호화폐 규모가 17억 달러(약 2조2000억원)에 이른다고 지난 10일 보도했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암호화폐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입지를 계속 넓히고 있기 때문에 북한도 당분간 암호화폐 탈취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