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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제주를 품은 제주의 화가, 김품창의 첫 자전 에세이
2001년 7월 장맛비로 세상이 무겁게 젖은 날, 김품창 작가는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했다. 서른다섯의 젊은 화가가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찾기 위해 서울의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한 것이다. 작가는 제주가 사람들의 숨은 감성을 일깨우는 곳이며 특히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보물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제주 땅은 아무나 살 수 있는 만만한 땅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제주 땅에서 어떤 사조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신만의 화풍을 이룬 작가의 예술 세계, 제주 땅이 제주 사람들이 그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작가의 제주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삶, 그곳에서 어울려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지금은 오롯이 제주 사람이 된 작가가 제주를 온몸으로 품어온 이야기를 40여 점의 작품과 함께 소박한 글로 담아냈다.
젊은 예술가가 만난 보물섬
제주의 바다와 밤하늘과 문어와 고래, 그리고 전복 껍데기
‘오름’이라는 말조차 제주에 와서야 처음 알게 된 작가에게는 눈앞에 펼쳐진 제주 곳곳의 낯설고도 아름다운 자연이 그야말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새로 알게 된 세상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지만 그리고 그려도 그것들은 작가의 뜻대로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싸해도 껍데기에 불과했다.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대상을 그리지 못하는 화가가 과연 화가라 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리고 싶은 것을 바로 그려 내지 못하는 자신의 정신세계가 싫어 괴로워했다. 두문불출하며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에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나가 해안을 따라 뛰었다. 숨이 차도록 뛰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통 그림 생각뿐이었다. 오랜 진통 끝에 결국 작가는 제주가 선사한 주인공들을 그려냈다. 그의 그림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고 싶었던 바다와 밤하늘과 문어와 고래와 오름과 갯바위 등 제주에서 만난 보물들이 생명력을 반짝이며 살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제주에서 찾은 진정한 보물은 따로 있다.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스스로 바다 물결이 되어야 바다 물결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으며 무엇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다졌다. 애지중지하던 고둥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경험은 생명의 소중함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하며 자연을 보는 눈을 변화시켰다. 또 바다에서 뛰노는 고래를 난생처음 본 이후로 이전에는 절대 소재로 삼지 않았을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자각하며 그림의 심오함에 대한 스스로의 강박을 깨버릴 수 있었다. 젊은 혈기가 내면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시절, 이제 여물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예술가를 품어 준 것은 그가 간절한 마음으로 뛰어든 제주였다.
변화무쌍한 제주 바다의 모습은 바다에 대한 생각을 뒤집고 나를 뒤흔들었다. 수많은 얼굴을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다를 볼 때마다 내 안에서 주체하기 힘든 충동이 일었다. 나는 그런 바다를 그리고 싶다! 하지만 새로 알게 된 다양한 바다의 모습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그릴 수 없었다. 매일 바닷가로 나가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결의 끊임없는 일렁거림은 멀미와 현기증만 가져다주었다. 물결은 멈추는 순간이 없었다. 자료를 만들어 연구하며 수없이 그렸지만 바다 물결은 생각대로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싸해도 바다 물결의 껍데기에 불과했다. 멈추지 않고 노력하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바다 물결이 되어야 바다 물결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무엇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다졌다. 어떤 대상을 그릴 때 눈으로만 관찰하여 형상을 재현하는 것은 그저 겉모습, 껍데기만 그리는 행위라는 것을 새삼 온 마음으로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고둥을 바다로 돌려보내고 나서는 생명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다. 문어를 사다가 삶아 먹으면 문어가 죽을 때의 고통이 떠올랐다. 그래서 문어를 살 때는 죽은 문어만 달라고 했다. 해녀는 살아 있는 게 더 맛있는데 왜 죽은 문어를 사냐고 물었다. 나는 살아 있는 새끼 문어가 있으면 같이 사서 돌아오는 길에 바다에 놓아 주었다. 한동안 해녀들에게 싱싱한 문어를 참 많이 사먹었는데, 문어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중섭 선생님이 게를 많이 그린 이유도 나와 비슷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내 그림에도 그래서 문어가 나온다. 문어는 자연스럽게 내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밥 먹던 숟가락을 내던지고 바다로 뛰어나가 고래가 가는 방향을 따라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고래들은 해안 가까이까지 와서 자기네 모습을 온전히 보여 주었다. 집 앞에서 처음 본 이후로 고래는 가슴속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내 안에서는 늘 고래가 요동치며 꿈틀댄다. 몇 번을 그려 볼까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이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에게 철학적 심오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고래로 그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의심에 답을 얻을 수 없어 갑갑했다. 하지만 진실하지 못한 감정으로 그림을 포장했으면 지금까지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육지 사람들을 바다를 참 좋아한다. 우리 가족도 육지에서 왔기 때문에 바다를 참 좋아한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끝없는 수평선이 답답한 가습을 확 뚫는다. 다양한 바다 생명이 그곳에 산다. 살아 있는 생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생명을 지녔던 흔적도 볼 수 있다. 이사 온 지 몇 년 지난 어느 날 수많은 소라 껍데기와 고둥 껍데기 사이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 전복 껍데기를 주워서 집으로 가져왔다. 볼수록 아름다웠다. 살아 숨 쉬던 생명이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니. 아름다운 만큼 쓸쓸한 마음도 들었다. 감상에 젖은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전복 껍데기가 제주도와 닮지 않았어? 숨구멍은 화산 폭발로 생긴 오름 같아.
(…)
전복 껍데기 표면의 진짜 색을 만날 수 있는데 아름답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색채를 가지고 있다. 전복 껍데기 표면에는 수많은 가로선이 새겨져 있다. 마치 제주 지층의 역사처럼 누적된 생명의 시간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낸 오묘한 색채를 감히 인간이 흉내나 낼 수 있을까? 전복 껍데기를 앞에 두고 물감을 섞다 보면 한없이 겸허해진다. -본문 중에서
세상이 예술을 속일지라도
가난한 화가가 그림을 놓지 않도록 지탱해 준 그것은, 명백히 사랑
작가는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한다. 아버지는 작가가 어릴 때부터 병을 앓았고, 그래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물질 너머에 소중한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 그 마음의 씨앗은 이때 심어졌다. 아버지는 병을 앓으면서도 어린 작가가 청자를 만들겠다며 찰흙으로 그릇을 빚어오면 함께 연탄불에 구워주었다.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은 이런 아버지의 따뜻한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화가를 꿈꾸도록 이끈 것은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지만, 그 꿈을 놓지 않도록 묵묵히 지킨 것은 그의 아내다. 아버지와 함께 부엌 연탄불에다 찰흙 청자를 굽던, 하얀 우유 맛이 궁금해서 미술 대회에 나갔던, 이듬해에는 우유와 빵을 먹기 위해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이 싫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더니 상을 받게 된 소년은 가난을 이겨내며 미술을 전공하여 마침내 화가가 된다. 하지만 사조나 유행을 넘어선 독자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찾은 제주에서도 경제적 궁핍은 여전히 그를 따라붙었다. 당장 먹을 쌀 한 줌이 없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그림만 그렸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작가는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가슴 깊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생계를 위해 여러 차례 붓을 꺾어도 매번 다시 잡게 되는 것은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그림은 그들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나는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림에 미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어느 날 아침, 식탁에 라면이 올라왔다. 나는 아내에게 ‘아침부터 웬 라면이야?’ 약간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는 대뜸 ‘당신 라면 좋아하잖아.’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러려니 하며 라면으로 아침을 때웠다. 이후 제주에서 부부 작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 KBS <사람인 제주>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인터뷰 중 아내에게서 라면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아침, 집에는 등교해야 하는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이 먹을 정도만 쌀이 겨우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고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데 방송이 나온 다음 날 아침, 현관을 나서니 상추며 호박이며 고추며 문 앞에 한가득 놓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 줄 몰랐다며 안쓰러워했다. 서울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그림 그리고 글 쓰며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본문 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다가 진짜 그림을 포기하고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마흔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은 더욱더 커졌고 어떻게든 빨리 개인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개인전을 위해 모아 두었던 돈으로 서울 인사동의 작은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마웠다. 형편은 어려운데 전시회 경비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개인전을 위해 매년 조금씩 모아 두었지만 일주일 남짓 되는 기간 동안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본문 중에서
아버지의 진폐증을 치료하기 위해 공기 좋고 물 좋은 어머니의 친정으로 이사한 것이다.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그림을 그리면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찰흙으로 고려청자를 만들겠다고 하자 빙그레 웃으시며 “가마에 고려청자를 구워야지.” 하고 부엌 연탄불에 찰흙 청자를 올려놓게 했다. 잠시 후 꺼내면 토기처럼 찰흙 청자가 구워져 막대기로 때리면 청명한 소리가 났다. 무척 신기해 그 기억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본문 중에서
제주에 온 지 1년 6개월 정도 지나 제주 생활이 익숙해져 갈 때쯤 서서히 경제적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속이 점점 타들어 갔지만 곧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서울에서 아동 미술 과외를 했던 나는 초등학교 방과 후 미술 강사를 하려고 이력서를 내기도 하고 노동 현장을 알아보기도 했다. 연락도 오지 않고 받아 주는 곳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막대기로 장롱 밑 동전을 끄집어내는 내 모습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극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새 붓을 모두 부러뜨리고 그림을 찢어 버렸다. 그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와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 -본문 중에서
그림은 내가 되고 나는 그림이 되어
화가는 멈추지 않고 깊어진다, ‘어울림의 공간’ ‘제주환상’ 그곳에서
작가의 숨어 있던 감성을 일깨운 제주의 다양한 생명체들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주고 꿈꾸던 예술의 길을 열어주었다. 작가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 그 자체를 그린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은 형상이 아니라 본질이다. 원하는 대상, 다가온 그것의 느낌을 그리기까지는 수년이 걸리지만 그저 대상과 일체가 되어 본질을 그릴 수 있기만을 바라왔다. 어느덧 제주에서 지낸 지 20년이 훌쩍 넘으니, 작가는 제주가 설문대할망의 가족이고 자신 역시 설문대할망의 자식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러한 안정적 일체감 속에서 내면의 대상이 잘 숙성되기를 오랜 기간 기꺼이 기다리며, 마침내 대상과 일체가 된 순간 춤을 추듯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자연과 내가,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김품창 작가의 창작세계다. 일체감, ‘어울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제주 땅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도 중히 여기는 가치다. 온 마음을 다해 제주를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알아보고 제주 땅이 제주 사람들이 먼저 그를 제주 사람으로 받아들였기에, 김품창 작가는 자신을 제주의 화가라 말한다.
제주의 바닷가에는 크든 작든 갯바위가 자기 모습을 뽐내는 듯 즐비하게 서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멍투성이 제주 바위, 특히 갯바위가 또 다른 형태의 커다란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 어디에나 있는 갯바위는 제주의 생명체, 그들의 집이었다. 그들처럼 나에게도 제주는 나만의 세상, 나의 집이 되어 갔다. -본문 중에서
당시에 나무가 잘린 현장에 대한 아픈 기억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만약 전기톱을 들고 ㅤㅉㅗㅈ아오면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것이다. 나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잘려야만 했던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그 사건 이후로 그림에 나무도 사람과 같이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돌에도 숲에도 눈을 그려 넣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제주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은 우리를 제주 땅이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제주 사람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제주를 배타적 지역이라고 느끼는 것은 제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계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함께하는 긴 시간과 올바름만이 그 경계의 벽을 넘어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한겨울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를 통해 찬란한 은빛 보석 세계로 끌려가기도 하고 한여름 에메랄드빛 바다에 손을 담그면 내 손이 보석으로 변한 것 같은 착각도 든다. 태풍이 불면 성난 용이 온몸을 사납게 꿈틀거리듯 바다도 거칠게 다가오고 제주의 숲에 들어가면 동화 속 요정이 나올 것같이 신비스럽다. 은빛 가루가 뿌려진 밤하늘은 별빛 속 끝없는 우주 공간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제주의 자연은 사람의 몸과 영혼을 환상세계로 끌어들인다. 나는 그림을 통해 천혜의 자연, 제주의 바다와 숲 그리고 하늘에 내재된 환상세계를 보여 주고자 한다. 그림에서만큼은 현실을 떠나 인간과 자연의 여러 생명체가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본문 중에서
도로 아래쪽은 초가을로, 중간은 흐드러진 가을 단풍 사이로, 더 높은 곳에서는 매서운 북극 한파가 겨울 상고대를 만드는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한라산에서 두 계절의 맛을 한꺼번에 만끽하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라산은 계절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곶자왈과 제주 숲은 설문대할망의 거대한 옷이기도 하다. 설문대할망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제주시를 오가며 한라산의 수없이 다양한 얼굴을 보고 제주 숲을 온전히 그릴 수 있게 해준 것은 설문대할망의 커다란 선물이다.
그리고 싶은 대상을 수없이 보고 느끼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대상이 되고 대상이 내가 되듯 일체가 된다. 굳이 무엇을 보고 그릴 필요가 없다. 보고 그리는 것에 얽매이면 자칫 외형의 껍데기만 그리기 쉽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가슴에서 숙성시켜 비로소 대상과 일체가 되었을 때 춤추듯 그림을 그린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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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인간을 만든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작가님의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네요.
작가님도 멋진 제주의 모습을 보고, 품고, 표출하고, 감상할 기회제공에 감사드리네요
제주에 대한 재미난 기억들이 많은데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기들이을 떠올라 마냥 행복 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