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여름철 피서여행은 딱 두 종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까닭에 더운 남쪽의 해변으로 가든 지. 아니면 시원한 계곡 북쪽의 고원으로 가든 지다. 정선과 태백은 위도상으로 서울(수도권)보다 더 아래에 위치하지만. 해발 800m가 넘는 백두대간 고원지대라서 훨씬 시원하다. 바다 건너 북국(北國)에라도 온 듯 하다. 찌는 더위 속 혼탁한 공기 가득찬 답답한 찜통도시에서 ‘호빵’처럼 살아온 이라면. 고원의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는 순간 아예 다른 행성(?)에라도 온 것 같은 청량감을 느낀다. 단 하루만 묵어도 이쑤시개통처럼 빽빽한 산림에서 매일 쏟아내는 박하향 맑은 공기에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다. 눈도 시원하다. 첩첩 겹치는 백두대간 때문 만이 아니다. 고원에는 특유의 예쁜 온갖 야생화가 가득하다. 이 때문에 트레킹을 즐겨도. 아니 그냥 드라이브만 즐겨도 좋다. 태백과 정선…. 이제 검은 탄가루 날리는 탄광도시를 떠올릴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푸른하늘 아래 해바라기
해바라기. 한여름 오만한 태양을 사모하는 샛노란 단심(丹心). 언제나 해를 바라보는 까닭에 한자로는 향일화(向日花·또는 朝日花)라고 부른다. 실제 누구나 해바라기를 보면서 태양을 떠올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해바라기는 세계 어디서나 모두 그런 뜻으로 이름지어졌다. 일본에서도 히마와리(日回り·해를 따라 돈다). 구미에서는 선플라워. 학명(Helianthus)도 그런 뜻이다. 그래서 빛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호가 해바라기를 사랑했던 게 결코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초록 고원에 가득한 해바라기를 원없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강·낙동강·오십천이 갈라지는 삼수령 너머 위치한 태백시 황연동 구와우 마을. 이 마을을 둘러싼 아홉마리 소가 누운 형상을 닮았다 해서 구와우(九臥牛)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와 있지 않을 만큼 진입로 조차 좁은 이 산골마을의 고산 자생 식물원은 넓디 넓은 해바라기 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해바라기 축제에 매년 수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해바라기는 보름만 만개하기 때문에 한달내내 해바라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개화 시기를 달리해 진입로 쪽과 정상 두 곳으로 나눠 놓았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던 지난 주에는 아직 만개하진 않고 꽃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다음달 초쯤이면 활짝 필 태세다. 이 뿐만이 아니다. 햇님을 닮은 150만개의 얼굴들이 일제히 해를 향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가만 있어도 아침 저녁 등어리까지 시원한 해발 850m 고원인 까닭에 뜨거운 정열의 풍경과 시원한 피서의 행복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야생화 가득한 만항재
영월·정선·태백이 맞닿은 고갯길. 만항재. 고도 1330m의 고갯길에 ‘자연이 만든 정원’이 있다. 정상 부근에 하늘 말나리·곰취·동자꽃 등 야생화가 끝도 없이 펼쳐진 까닭이다. 외국에서 몇십년을 공부하고 온 조경 전문가가 설계한 고관 대작의 정원도 아닐진 대. 꽃은 방문객들이 지루할 새도 없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매번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모 배우의 말대로 자연이 차려 준 아름다운 밥상에서 그저 숟가락만 뜨면 그만이다. 장마가 막 끝난 지금은 야생화들이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곳 역시 다음달 초가 되면 무더위를 피해 온 ‘혹서난민’들에게 키가 껑충한 수목들과 어우러진 최고의 정원을 떠억하니 차려줄 듯하다. 지난해부터 나무데크로 만든 산책로를 마련해 놓아 걷기도 좋고 사진찍기도 좋다. 날이 맑은 날 만항재 정상에 서면 270도 펼쳐지는 산의 파도를 바라볼 수 있다. 사람이란 간사해서 김치냉장고 안처럼 서늘한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실컷 맞다보면. 여태껏 잘 살아오던 도시가 갑자기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빼빽대는 경음기 소리에 아스팔트의 이글거리는 열기.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불쾌한 숨결 속으로 돌아가기가 무서워질 정도다.
◈ 여행정보 |
●둘러 볼만한 곳=그저 조용하고 시원한 곳이 좋은데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울어댄다. 이럴땐 놀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하이원리조트가 딱이다. 요즘은 슬로프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쿨라이더'가 인기다. 마운틴 허브~마운틴 베이스간 윤활제와 벌집무늬 인조잔디 패드를 설치, 진짜 눈에서 타는 스키와 가장 비슷한 마찰계수를 자랑하는 시스템에서 즐길 수 있는 서머 스키(길이 250m)와 터비 썰매(사진)가 있고. 최근 완공한 모노레일 알파인 슬라이더(2.2㎞)가 스릴 넘친다. 만항재 오르는 길에 위치한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에서 진신사리를 가지고 들어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사찰의 옆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계곡도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하다.
●먹을 거리=정선 고한읍 낙원회관(033-591-1700)은 한우 쇠고기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 살치살·처마살 등 특수 부위와 안창살을 구워먹고 즐기는 된장 소면이 일품, 갓 삶아낸 소면사리를 유명한 정선 된장에 말아준다. 태백 구와우 마을의 명물은 구와우 순두부(033-552-7220)다. 등심 2만 7000원. 일반 순두부찌개가 아니라 강원도식. 따끈따끈하게 삶아낸 순두부에 무 생채와 김치 등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먹는 맛이 일품이다. 다소 심심하게 간을 맞추고 대신 밥에 강 된장을 발라서 비지찌개와 함께 떠 먹으면 좋다. 5000원.
●축제=8월초 만항재와 구와우마을에서는 동시에 꽃테마 축제가 열린다. 시원한 고원에서 야생화와 해바라기를 실컷 볼 수 있다. 함백산 야생화축제(8월8~17일) 태백해바라기축제(8월1~31일) (033)592-5455. 태백고원자생식물원 (033)533-9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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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기자 dem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