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쟁의 평화’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대문호!
그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제목 정도는 알고 있어야 ‘상식’이란 단어에서 멀어지지 않는 이름.
이 톨스토이를 말할 때 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한마디가 있었으니,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 그녀는
크샨티페와 함께 세계 3대 악처 중의 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톨스토이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톨스토이는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3대 악처중의 한명을 아내로 두
어야 했던 톨스토이의 비극은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엉뚱
한 ‘공식’을 만들어 내게 했는데…
“천재나 영웅에게는 늘 악처가 꼬인다. 소크라테스 봐봐 크샨티페가 그렇게 바가지를 긁었는데도,
대철학자가 됐잖아? 나폴레옹의 마누라 죠세핀은 또 어떻냐? 애가 나이만 많이 먹어서는 낭비벽만
심했지…결정적으로 톨스토이를 봐봐. 소피아가 그렇게 바가지를 긁어 됐으니 견딜 재간이 없었던
거지. 그러니까 집을 뛰쳐나온 거 아냐.”
톨스토이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소피아를 악처로 몰아 간 결정적 증거! 그것은 톨스토이가 여든 두 살에
감행한 가출이었다(이 가출 덕분에 톨스토이는 죽게 된다).
“얼마나 살기가 싫었으면…여든 둘이나 된 노구를 이끌고 집을 뛰쳐나왔을까?”
대충 이런 분위기로 소피아를 바라봤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과연 소피아는 악처였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만약 악처였다면, 왜 악처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원래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만이 아는 것이라지만, 이 둘의 결합을 겉으로 본다면 ‘환상의 커플’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조건들이 좋았다.
둘 다 귀족이었고,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상황. 배울 만큼 배웠고, 사회적 명예도 얻은
그들이 아니던가? 크샨티페의 경우는 무능력한 가장에 대한 울분이라도 있었을 테지만, 소피아의
경우는 이런 경제적 문제와는 상당부분 동떨어져 살았을 터인데, 어째서 악처로 불리었던 것일까?
톨스토이…그냥 작품으로만 바라보면, 이 사람은 천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작을
쓰기 위해서는 대작의 두께 만 한 삶의 무게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톨스토이는 삶의 무게를 제대로 경험했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그야말로 ‘바람둥이난봉꾼- 한마디로 개차반’이었다.
빵빵한 귀족 집안의 아들이었던 톨스토이…그의 두 손에 쥐어진 것은 돈과 시간뿐이었다.
여유있고 남는 게 돈과 시간뿐이었던 톨스토이의 젊은 시절은 여자와 도박을 빼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탐닉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으니… 당시 톨스토이가
여자에 집착했던 이유, 그것은 바로 그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잃었던 톨스토이는 모성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여기에 그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까지 합해지면서, 독특한 여성관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폭풍 같은 20대를
흘려보낸 톨스토이는 30대가 되면서 슬슬 사람 꼴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궁정 의사로 있던 친구의 딸에게 필이 꽂힌 톨스토이!
![]() |
그는 끈덕지게 친구를 물고 늘어지는데… 톨스토이는
히딩크식 압박축구가 아닌 압박구혼으로 구혼 7일 만에
결혼을 하게 된다. 이때가 바로 1862년 9월23일이었다.
서른 네 살의 중년 톨스토이와 아직도 젖살이 뽀송뽀송한
열여덟 살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이 둘의 결합
은 누가 봐도 좀 이상해 보였다. 당시 톨스토이에게는 아
들이 한명 있었다. 물론 법적인 결혼으로 얻은 아들은 아
니었다. 자신의 하녀였던 아크시니야 바지키나가 낳은 사
생아 였지만 …어쨌든 아들은 아들이었다.
그렇게 말 많고 탈 많았던 결혼식을 끝마친 톨스토이…16살의 나이차를 극복(?)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아내를 사랑했기에 그랬던 것일까? 결혼식이 끝난 후 톨스토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신부에게 자신의 15년 치 일기장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부부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며 서로에게 각자의 일기장을 보여주자고 강요한
것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참 바람직한 부부상이라 할 수 있겠다. 부부생활을 하면서 서로 일기장을
교환하고, 이 일기장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한다는 취지는 정말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
(이 훌륭한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비밀을 더 이상 소피아에게 보여주기
싫었는지, 아내가 보는 일기 외에 따라 비밀일기를 쓰게 된다).
문제는 그 출발부터가 삐걱거렸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여자와 도박에 빠져 살았던 톨스토이의
행적이 고스란히 일기장에 적혀 있었던 것이다.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경험한 34살의
톨스토이에게는 ‘지나간 과거’ 정도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18살의 꿈 많은 순수소녀에게 있어서
톨스토이의 일기장은 야설 그 자체였던 것이다.
![]() |
톨스토이의 일기장은 18살 어린신부에게 섹스의 부정적
인 측면만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신혼 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톨스토이와 소피아의 관계는 톨스토이의 모성 콤
플렉스 때문에 더욱 벌어지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던 톨스토이는 모성애에 강한 집착
을 가지게 됐다. 이 집착 덕분에 소피아는 피임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피임을 하지 않다 보니 계속
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되었고, 소피아는 무려 13명
의 아이들을 낳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도 수긍하고 넘어
갈 수 있는 부분이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 애 많이 낳는
걸 누가 탓하겠는가?
진짜 문제는 유모를 들이지 않겠다는 톨스토이의 완강한 고집이었다. 한해도 배가 꺼지는 날이
없었던 소피아는 젖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젖이 마르지 않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물리적으로
젖은 두개인데 아이는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평범한 귀족들이나 나름대로 사는 집에서는
유모를 부르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톨스토이의 고집 때문인지, 아니면 원체 허약하게
태어나서인지는 모르나 태어난 13명의 자식들 중 6명은 어려서 죽게 된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끊임없이 소피아를 임신 시켰고, 유모를 반대했었다.
물론 소피아가 이렇게 애만 낳고 살았다면, 그럭저럭 버틸 만했을 것이다. 돈 많겠다,
시간 많겠다. 남는 시간에 아이 낳고 키우면 시간은 잘 갈 것이다. 그러나…톨스토이는
소피아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 |
명문은 악필이라고 했던가? 대문호 톨스토이의 원고는
사람이 읽을 수 없을 정도의 악필이었다. 이 악필을
사람이 볼 수 있는 글로 교정해 주는 일은 언제나 소피아의
일이었다. 톨스토이의 그 두꺼운 원고들, 알아보기도 힘든 그 글자들을 고치는 작업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의 육아에 원고의 교정 작업까지 떠맡은 소피아의 일상
은 전투 그 자체였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는
푸념이 나올만한 상황.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소피아
는 나름대로 현모양처로서의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남편의 성격이 좀 모난 건 시어머니가 일찍 돌아간 것 때문이
고, 글씨는 못써도 글은 잘 쓰지 않는가? 유모를 두지 않게
했지만, 따지고 보면 모정에 굶주린 톨스토이의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젊은 시절의 방탕함…이
역시도 한때의 치기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된다.
지주 생활을 청산하고, 농민으로 돌아가겠다는 톨스토이의 폭탄선언…톨스토이 개인에게 있어서는
분명 고뇌에 찬 결단이겠지만 이제껏 귀족으로 살아 온 소피아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매한 이상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악처라 말하는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바라본다면, 인고의
세월을 눈물로 참아냈던 평범한 아내였던 것이다.
이거 보시면 아마 톨스토이에 대했던 환상.........와르르 깨지실듯.
첫댓글 이거 완전 사랑과 전쟁인데요 ㅋㅋㅋ 톨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ㅠㅠㅠㅠ
2주후에 볼 필요도 없이 요건 바로 이혼감이라규...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야..
4주후라구
이혼찬성99%
아놔 1%는 톨스토이 본인이랑 몇몇 마초찌질이들이냐규 ㅋㅋ
진쨔!!!!!!!ㅋㅋ쩐다,ㅋㅋㅋ톨스토이도 환상 제대로 깨고..ㄷㄷ
악 진짜 확깨요!!!!!!!!
나같았으면 당연히 몇년않살고 이혼감이다.;; 아내가 종도 아니구 ;;
와 진짜 싫어진다. 어쩜 자기 아내한테 저러냐..... 피임도 못하게 하고 유모도 못들이게 하고 그렇게 개고생 했는데 훗날에 악처로 기억되다니 내가 다 억울하네...님 올려주는 게시물다 잘보고 있다긔~
희대의 악처는 있는데 왜 악부는 없지? 하도 많아서 그런가....마누라 때리고 노름하고 바람피고 가출하고... 아무리 아내가 바가지를 긁어도 남편 손찌검과 바람, 노름벽만 하겠어 ㄱ-
사실 악처라는것도 다 남성위주사회에서 낳은 희생자들인거죠 ㅠㅠ에잇!무능하거나 못난남편때문에 저렇게 아내들이 오해받고사네요 ㅠㅠ
거의 악부니까욜.
난 희대의 악부로 아인슈타인을 꼽겠어요 그는 젊고 유망한 당시 드문(!) 여제자와 결혼해서 연구업적도 다 자기껄로 만들고 말년엔 더 젊은 여자랑 재혼하고 조강지처랑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자기 자식들 버리고 나몰라라 새아내와 미국으로 떠나고.. 결국 남겨진 전처밀레바는 아이들을 보살피며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어느 병원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었다죠..그시대에 대학까지 갈 정도면 엄청난 수재인건데.. 상대성 이론도 밀레바와 공동연구한거고 연구업적 중 밀레바의 비중도 높았을 거라고 해요..
허난설헌 남편 흥. 뭐 그 남편덕에 허난설헌의 뛰어난 작품이 나왔지만...
그리고 소크라테스 부인도!!
전 피카소요..예술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가지고 논 사람이죠.
전 클림트요. 화가로서 클림트는 너무너무 좋아하지만..정말 남자로선
이뭐병
바그너도 부인 때리는 미친놈이였는데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이런건 묻혔다긔..
아인슈타인 부인이 수학자여서 수학을 좌낸 못했던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세울때 수학적으로 도와줬단게 사실이냐긔~~ 그렇다면 정말 슈타인선생님 캐실망....밀레 애인이 누구였죠?? 그여인도 캐불쌍했다긔 ㅠㅠㅠ
저도 그 소리 교수님한테 들었다규!!!! 아이슈타인은 수학에는 그리 뛰어나지 못해서 수학에 재능이 있는 부인이 도와줬다고...
결혼은 안했지만, 로댕도 못지않지요. 천재적인 재능의 제자 까미유 끌로델을 연인으로 삼은 후에, 작품이나 영감도 많이 훔쳤다고 알고 있고 로댕때문에 작품활동도 제대로 못하는 여인을 헌신짝 버리듯 버려서 나중엔 정신병원에서 죽었긔 ㅠㅠ
예전 현모양처는 무조건 남자말에 복종.. 맘에안들어 정말 !!!!!!!! 톨스토이 환상따윈없다규 ㅋㅋㅋ 우리나란 악처는 아니지만 허난설헌 무지 아쉽귀 ㅠ ㅠ
불쌍하다.....악처가 철학자를 만든다고 하지만 난 철학자들이 악처를 만든다고 생각함
희대의 악처, 희대의 악녀.. 이런거 보면 가부장적인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것이 대부분
님의 말이 맞아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자는 그저 조신하고 얌전하고 말잘듣는 그런여자가 착한여자라고 여겨져왔으니까요. 아무튼 크산티페와 소피아는 악녀, 악처라는 오해를 받아서 참 안타까울따름이예요.
와 이거 보니까 톨스토이 완전 ㄱㅁㄴ이다.............
아 존나싸가지밥말아먹었네 애낳는게 얼마나 힘든데 이 마초같은시끼야ㅗㅗㅗㅗ
재밌고 유익한 글 잘 봤어요! 이런 글이 있어야 베드라긔.
와 님 잘읽었어요! 톨스토이 급깨긔..ㅋㅋㅋㅋ
피임을 안하다늬.....무슨 여자가 여왕벌이냐구..애 한명 낳을때마다 몸이 얼마나 상하는데..너무 이기주의
소크라테스 아내도 악처라고 하긴 좀 그르던데..
소크라테스가 바람폈다긔.. 아내몰래 만나는 여자가 있었는데 옷갈아 입다가 몸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바람에(아무래도 그시절에는 모텔도 없고 풀숲에서 뒹굴) 크산티페 앞에서 딱 걸려서 그때부터 악처가 된거라규
거기다가 소크라테스가 미소년을 그렇게 좋아했데요. 자기에겐 관심도 없지 돈이라곤 철학한답시고 한푼 벌어오지도 않지...바가지를 안긁을수가 없어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계속 임신과 출산을 반복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뭐 병.....
이머병..예술가고 과학자고 환상이 다깨지네요.ㅡㅡ 여자만 죽어나게 불쌍하구나..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