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에 깃든 흥미진진 뒷얘기… 벌써 20만명 발길
英내셔널갤러리 ‘거장의 시선…’전
더 깊이 감상할 작품 사연 포인트
세잔-졸라 情 스민 ‘작업실의 난로’… 백지수표 제시해 로사 작품 소유
국립중앙박물관서 10월 9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6월 2일 개막한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20만 명 넘게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16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이 전시를 찾은 누적 관객 수는 15일 기준 20만118명으로, 개막 75일 만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2019년 30만 명이 관람한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전보다 5일 빠른 기록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거장인 카라바조부터 렘브란트, 인상파 작가인 모네 마네 세잔 등 거장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압축적으로 담은 구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소장품인 만큼 보존 상태가 좋고 화려한 액자까지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는 후기가 나온다. 전시를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는 그림 속 뒷이야기를 선유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와 함께 꼽았다.
● 세잔과 졸라의 우정
폴 세잔의 1865년경 작품 ‘작업실의 난로’. 세잔의 어릴 적 친구인 소설가 에밀 졸라가 가장 먼저 소장했던 작품이다. 졸라는 소설가로 성공한 뒤 세잔을 프랑스 파리에 오도록 권했지만, 그가 화가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 ‘작품’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진다.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에서 만날 수 있는 폴 세잔의 작품 ‘작업실의 난로’(1865년)는 소설가 에밀 졸라가 가장 먼저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이다. 졸라는 세잔이 고향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로, 졸라가 먼저 파리에서 작가로 성공한 뒤 세잔에게도 파리로 올 것을 권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1886년 졸라가 쓴 소설 ‘작품’으로 끝이 난다. 소설 속 주인공은 화가였는데 새로운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을 읽고 마치 자신을 그린 듯해 상처받은 세잔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후 약 20년간 유명한 생트빅투아르산을 그렸다.
● 백지수표를 받은 그림
이탈리아 화가 살바토르 로사의 1663년경 작품 ‘머큐리와 거짓말쟁이 나무꾼이 있는 풍경’. 이 무렵 역사 풍경화가 유행해 소장가가 백지수표를 주고 그림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아카데미 미술에서 풍경화는 역사화, 인물화, 정물화 다음으로 가장 소홀한 대접을 받았던 장르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이 풍경화에 역사를 결합하면서, 풍경화의 인기가 치솟았다.
로마에서 풍경화를 수집했던 로렌초 오노프리오 콜론나(1637∼1689)는 로랭과 니콜라 푸생의 작품을 갖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전시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에서 관람할 수 있는 살바토르 로사의 ‘머큐리와 거짓말쟁이 나무꾼이 있는 풍경’(1663년경)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그는 로사에게 백지수표를 보내 원하는 금액을 쓰면 그 금액을 주겠다고 했고 결국 이 작품을 갖게 됐다.
● 보티첼리의 선 원근법
산드로 보티첼리의 1500년경 작품 ‘성 제노비오의 세 가지 기적’ 속 숨은 선 원근법을 알아볼수 있도록 선을 그은 그래픽. 왼족부터 제노비오가 행한 기적 세 가지를 한 화폭에 그린 그림으로, 선 원근법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에서 만날 수 있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 제노비오의 세 가지 기적’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왼쪽부터 성 제노비오가 어머니를 때려서 저주받은 두 아들을 치료하는 장면, 죽은 소년을 살리는 장면, 시각 장애인의 눈을 치료하는 장면이다.
이런 복잡한 그림을 정돈되게 만든 비법은 바로 르네상스 시기 미술사를 바꾼 ‘선 원근법’이다. 그림 속 여러 개의 직선들이 하나의 점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 ‘소실점’을 기준으로 그림의 건물과 공간들이 원근법에 따라 정리된 것을 볼 수 있다.
● 세금 대신 기증한 그림들
영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1875년경 작품 ‘와인잔’. 소장가가 세금 대신 국가에 낸 작품 중 하나다.
영국은 19세기부터 유산세를 도입했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재산을 물려주는 방법으로 유산세를 피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유산세가 ‘재산증여세’로 바뀌면서 세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거액의 세금을 내기 위해 부자들은 갖고 있던 미술 작품을 팔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문화재나 미술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금 대신 미술품을 받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헨리 레이번, 존 컨스터블, 폴 세잔,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도 소장가들이 세금 대신 나라에 낸 작품들이다.
● 엑스선의 비밀
18세기 말 스페인 출신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1805년)의 초상화는 원래 남자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1980년 내셔널갤러리가 이 그림을 엑스선으로 촬영해 분석해 보니 그림 아래에 남자의 얼굴이 나타나 알게 된 사실이다.
고야는 남자 초상화를 그린 뒤 그 위에 새로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을 그렸다. 화가들은 이렇게 이미 사용한 캔버스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