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스카이 섬의 고즈넉하지만 황량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조난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영국의 외과 의사 존 파이크(61)는 지난해 2월 이곳을 혼자 찾았다가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져 골반이 골절되는 큰 사고를 겪었다. 휴대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영화 '레버넌트'의 주인공처럼 거의 3.3km를 기어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긴급 신고(999)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얼어붙을 듯한 날씨에 이틀 밤을 견뎌냈다.
구조 헬리콥터는 두 차례나 지나쳤는데 그는 극적으로 구조됐다. 어떻게? 22세 여조카가 캡처해 놓은 페이스북 포스트 덕이었다고 영국 BBC가 28일(현지시간) 전해 눈길을 끈다. 특히 최근 휴가를 틈타 하이킹에 나섰다가 실종돼 목숨을 잃은 BBC 진행자 마이클 모슬리, 영국 10대 제이 슬레이터 사례와 파이크의 생환 얘기가 많이 달라 주목된다고 했다. 방송은 낯선 지형을 혼자 찾는 모험을 감행했다가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네 주제어로 전달했다.
눈 깜박할 새 위험에 빠진다
조난을 당한 것은 지난해 2월 16일 오후 7시 30분(GMT)쯤이었다. 존은 슬리가찬을 출발해 로크 코리우스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24km 하이킹에 나섰다. 브리스틀에서 온 열정적인 하이커는 8시간 걸릴 것으로 예상된 이 하이킹으로 휴가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다. 처음 10km는 평탄한 지형이라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 혼자 풍광을 담는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로크 코리우스크가 가까워오자 산악 구간이 시작됐다. 바위들이 몹씨 미끄러워 존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GPS(위성위치추적) 장비에는 (루트가) 완전 똑바른 선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길이 없더라."
결국 눈 깜박할 새 미끄러지고 말았다.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당시만 해도 '한낮이고, 점심도 좀 먹고, 진정되겠지' 생각했다." 일어서려고 해봤지만 실패했다. 존은 스스로 골반 골절이라고 진단했다.
근처 몇 km 안에 문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휴대전화 신호도 사라졌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3시간 넘게 2.9km를 엉금엉금 기어 표고 차 176m 위에 도착했다.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휴대전화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 해서 그는 다시 몇 시간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지나가는 염소들이 그가 종일 본 것 가운데 “유일한 산 것 징후”라고 했다. 밤새 수은주는 섭씨 영상 1도로 떨어졌다. 존은 벌벌 떨며 태아처럼 자세를 취했다. 그는 따듯해지려면 열을 발산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더 나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난 이 순간 안전하다는 것도 안다."
기독인으로서 존은 기도를 올리자 생각했으며 다른 이들도 자신의 생존을 기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색 시작
다음날 존이 묵었던 포트리의 숙소 주인이 그가 체크아웃하러 나타나지 않자 실종 신고를 했다. 포트리 경찰은 브리스틀 경찰에 알려 에이본 서머셋 경찰관들이 딸을 찾아가 얘기를 나눴다. 존은 "딸애가 파인드 마이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찾은 내 마지막 위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대는 이제야 출발점을 찾은 것인데, 여전히 광범위한 지역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난 다음날, 여조카와 주고받은 존의 페이스북 포스트가 발견됐다. 하이킹을 떠나기 전날 존은 친구의 댓글에 답한 내용이 구조 임무에 결정적 도움을 줬다. 다른 날 일상적으로 주고받은 메시지가 경찰의 수색 범위를 좁히는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조난 다음날 50여명의 구조대원이 폭풍우 속에 작업했다. 시속 152km의 강풍에다 영하의 날씨와 눈이 내리는 악조건이었다. 오후 2시쯤 헬리콥터가 협곡 위로 날아왔는데 존이 몸을 채 돌리기도 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존은 검정색과 푸른색 옷을 입고 있어 바위 지대에 있는 자신이 눈에 띄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헬리콥터가 오후 6시가 되기 전 또 나타났다. 이번에 존은 흰색 천가방을 허공에 휘젖고 긴급 구조 휘슬을 불어댔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정말 최악의 순간이었다. 난 '이봐, 나 예순한 살이야. 괜찮은 이닝들이 있어. 내가 지금 가기만 하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딸 생각을 주로 했다. 대학 일학년으로 함께 살며 많은 것을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딸을 생각하는 것이 그를 붙든 힘이었다.
구조 시작
존은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는지 계속 궁금했다. 구조대원들은 조난 사흘째에 그가 가장 있을 법한 장소로 여겨지는 곳을 수색하려고 떠났다. 스카이 섬 산악구조대의 이언 스튜어트가 존의 휘슬 소리를 듣고 맨먼저 다가왔다. "우리는 멈춰 서 왕립공군에 무전을 날려 '너희가 휘슬 불렀어?'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휘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다시 들려 우리는 소리가 시작된 쪽을 찾으려 애썼다. 상당히 멀리 들렸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귀가 예민한 친구가 통로에 아주 가까운 곳에 미세한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대원들은 존이 폭풍우 속에 살아남아 숨쉬고 았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대원들은 뛸듯이 달려가 그가 공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두운 옷 색깔 때문에 "바위로부터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언은 "시신이나 찾겠구나 생각했는데 살아있는 그를 보니 진짜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나도 기뻤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산악구조대(SMR)는 실종된 시간의 길이와 날씨를 감안하면 존의 생존 확률을 측정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소속 통계학자 제시카 스타인먼은 SMR에 구조된 이들은 옥외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에 다치지 않은 채로 여름철에 구조된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존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라고 말했다. 산악 사고로 며칠을 실종된 상태로 있던 이들은 대부분 부상 때문에 생존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는지, 여러분이 보고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다른 이에게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고 했다. 숙소 주인이 당국에 실종 사실을 신고한 것도 상당히 긴요했다는 것이다.ng
믿기지 않는 운
존은 동료 의사인 마이클 모슬리가 그리스 시미 섬에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겪은 일이 떠올랐다고 했다. "마치 내가 얼마나 믿기지 않는 운빨로 살아남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면서 "모슬리가 폭염 속에 휴대전화를 챙기지 않고 산책을 간 것을 놓고 엄청 비난이 쏟아지는 것에 소름끼쳤다. 그리고 ‘이봐 당신들, 그 남자에게 쉴 틈을 주지' 생각했다. 사고를 겪고서야 현명해지는 것은 아주 아주 쉬운 일이다. "그는 분명 아주 지적인 남자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가 옳게 굴 수 없었다면 누군가에게 희망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러면 지금 존이 하이커들에게 충고한다면? "차 앞이나 대시보드 위에 당신이 어디로 하이킹을 가는지, 얼마나 걸릴지 등에 관한 메시지를 남겨라. 다른 내비게이션 수단도 챙겨라. 난 사람들이 일대를 상세히 보여주는 지도와 함께 GPS 장비를 챙길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이언이 거들었다. "오렌지색 (옷가지를) 챙겼으면 한다. 길거리에서 보다 훨씬 여러분을 크게 보이게 만들어 쉽게 눈에 띄게 한다." 고개나 툭 트인 공간에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눈에 띄면, 산책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가 걱정된다면, 반드시 999에 신고해 경찰과 산악구조대의 도움을 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