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인문학 : 영화 속의 집과 만남
자료 1
하워즈 엔드(Howards End, 1992): 제임스 아이버리(영) 140분(영국 BBC에서도 4부작으로 방영됨.)
장르: 드라마
출연
주연 루스 윌콕스........타인을 포용하는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이 영화의 진정한 숨은 주인공이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의 마지막 저항자로서 정신과 영혼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지키려는 신적인 인물로서 그 정신을 하워즈 엔드와 더불어 마가렛에게 전한다.
주연 마가렛 슐레겔..........애칭 맥. 헬렌의 언니, 티비의 큰누나, 후에 헨리 윌콕스와 결혼한다. 루스 윌콕스가 죽은 후 하워즈 엔드의 안주인이 된다. 문화와 교양, 정신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물질, 돈)을 동시에 인정하고, 그것에 적응하려는 절충주의자.
주연 헨리 윌콕스.........하워즈가의 가장. 경제권을 중시하는 상류층의 대표인물. 일에 과감성과 추진력이 있다.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이나 점차 마가렛의 영향으로 타자를 용인하게 됨.
레나드 바스트........애칭 렌. 이론에 심취하지만 가난한 현실에 고통을 당하는 지식인을 대변한다. 천문학과 문학 등에 심취하여 이상적인 꿈을 갖지만 현실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절대 부족하다. 그 반작용으로 원칙에 어긋나는 일탈을 하고 나약하여 괴로워하며 끝내 불행해진다.
헬렌 슐레겔........밝고 현실에 긍정적이며 원칙주의를 고수하므로 타협을 모른다.
찰스 윌콕스........ 헨리의 맏아들로서 다혈질적이고 평면적인 인물, 레나드를 살해하여 헨리를 불행하도록 하는 악역을 맡는다.
폴 윌콕스....... 헬렌과 불장난을 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나약하고 줏대 없는 인물로 찰스의 동생. 나이지리아로 일하러 간다.(식민지 개척의 의미)
티비 슐레겔....... 헬렌의 남동생으로서 철학과 문학에 심취하지만 현실을 헤쳐나가지 못하는 어정쩡한 인물. 그러나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하여 꿈을 이룬다. 소설 하워즈 엔드의 원저자 포스터와 가장 유사한 인물이라는 평이 있다.
줄리 문드.......슐레겔 삼남매의 이모. 물질적, 세속적이고 완고한 성격.
재키 바스트........렌의 부인. 과거에는 헨리로 인하여, 그 이후에는 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성격으로 인하여 불행해진다.
에우포리온.......하워즈 엔드의 마지막 후계자. 레나드 바스트와 헬렌 슐레겔 사이의 혼외 자식.
줄거리
약 20세기 초반의 영국. 마가렛(Margaret Schlegel: 엠마 톰슨)과 헬렌 슬레겔(Helen Schlegel: 헬레나 본햄 카터)은 지적이며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자매이다. 그들은 부유하고 보수적인 윌콕스 가문과 친하게 된다. 두 가문은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지적인 욕구도 가지고 있는 중류층이다. 헬렌은 윌콕스(Henry Wilcox: 안소니 홉킨스)의 둘째 아들 폴(Paul Wilcox: 조셉 베네트)과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나쁘게 끝나면서 두 가문은 어색해진다. 그러나 마가렛과 월콕스의 부인인 루스(Ruth Wilcox: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연을 아주 끊지는 않고 친분(“연결”)을 유지한다. 그러나 좀 급진적인 성격의 동생 헬렌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윌콕스가와 등을 돌린 채 원치 않는 불행한 결혼을 한 레오나드 바스트(Leonard Bast: 사무엘 웨스트)와 문화적인 욕구를 함께 추구한다. 윌콕스 부인은 죽으면서 오빠에게 물려받은 하워즈 엔드를 마가렛 슬레겔에게 준다는 유서를 남긴다. 그녀의 가족은 이에 분노하여 유서를 없애고 다시는 슬레겔 가문과 만나지 않기로 결의한다. 그러나 마가렛과 윌콕스씨는 친분을 돈독히 하게 된다. 그래서 헬렌은 윌콕스를 경멸하면서도 레오나드 바스트에게 직장을 얻도록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윌콕스는 결국 이런 상황에서 마가렛에게 청혼을 한다. 그와 동시에 윌콕스가 레오나드에게 준 도움은 성사되지 못하여 부부는 윌콕스와 헬렌을 떠난다. 이렇듯 불행한 상황에도 헬렌과 레오나드는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기댄다. 그리고 그 다음날 헬렌은 떠나버린다. 과거 바스트의 아내 재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윌콕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마가렛은 이를 용서하면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의 결혼은 무척 행복한 것이었으며, 마가렛은 두 가문의 화해를 위해 헬렌의 계속된 부재를 희망한다. 그러나 결국 윌콕스의 충고로 마가렛은 부정하게 레오나드의 아이를 임신한 헬렌을 자신의 저택으로 와 함께 살도록 한다. 윌콕스가의 장남 챨스(Charles Wilcox: 제임스 윌비)가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윌콕스는 이를 묵살한다. 결국 챨스는 우연을 가장해 도덕적으로 불결하다는 이유로 레오나드를 살해하고 그 죄로 투옥된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윌콕스는 심한 감정의 폭발로 몸이 쇠약해진다. 마가렛은 가족들을 하워즈 엔드로 불러모으고 여기에서 헬렌의 아기가 태어난다. 윌콕스 부인 루스의 의지는 마가렛의 참을성 많고 고운 인간성에 의해 다시 빛을 보게 되고, 융통성 없는 헨리 윌콕스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메모
이 작품은 E.M. 포스터(Forster)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그는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D.H. 로렌스와 더불어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다. 『하워즈 엔드』는 저자의 최고 작품이다. 근대와 현대에 속했던 그는 영국 전통과 외래문화의 충돌, 계급 사이의 갈등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삼았다. 이 소설은 교외의 영국 전통 저택 하워즈 엔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두 가문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제는 “산문과 열정을 서로 연결하라”는 것이며, 또한 영국의 운명에 관한 소설로서 계급갈등을 다룬 이야기다. 여기서 갈등이란 중산층 내에서의 갈등이며, 또한 남녀 간의 갈등이기도 하다. 하워즈 엔드를 통해 현대 사회의 온갖 부서지고 끊어진 것들의 치유를 시도해 나간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그래서 세속적인 윌콕스 집안과 이상을 추구하는 슐레겔 집안의 대립과 결합을 통해 영국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들은 오랜 전통에 대한 집착과 환멸을 동시에 느끼고, 새로 등장한 민주주의에 회의하며, 몰락해 가는 대영제국의 가치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또 느릿하고 여유로운 농경생활의 시간과 공간이 자동차로 대표되는 신문물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마가렛이 참석하는 한 독서 토론에서 어떤 등장인물은 말한다.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죽지도 못한다면, 문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다른 인물은 말한다. “변화에 대한 이 열병은 겨우 지난 100년 동안 생겨난 겁니다. 다음에 올 운명은 변화가 없이 대지에 멈추어 있는 문명일 수도 있어요.” 한편 소설 속의 모든 계급을 해소시키는 계급 없는 후계자 에우포리온은 건초 밭에서 뛰어 놀면서 미래의 희망을 암시한다. 계급 없는 사회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건초 더미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단지 연결하라”는 이 작품의 슬로건이다. 첫 페이지의 “단지 연결하라.......”(only connect)는 화두를 시작으로, “애정은 열정보다 입이 무겁고 표현도 조심스러운 법이다”, “싸움이란 당시에는 불가피하지만, 지나고 나면 어처구니없게 마련이다”, “비전이란 시도를 통해서 올 수 있지만, 시도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사람을 설명하지만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등 곳곳에 삶을 위한 주옥같은 문장들이 숨겨져 있다. 특히 윌콕스 부인은 젊은이들의 세계, 자동차의 세계에 속하지 않고, 대신 이 집과 그 위에 드리워진 나무의 세계에 속한 것 같다. 누구라도 그녀가 과거를 존중한다는 것, 그래서 과거만이 부여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체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지혜는 우리가 서툴게 귀족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거릿에게는 “단지 연결하라!”는 슬로건이 전부였다. 산문과 열정을 연결하라. 그러면 그 양쪽이 모두 고양되고, 인간의 사랑은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시는 조각난 삶을 살지 마라. 단지 연결하라. 그러면 고립을 먹고 사는 짐승과 수도승은 생명줄을 잃고 죽을 것이다. 이 표현으로 위대한 이 소설의 모든 것을 함축하여 보여 준다. 한편 헨리는 어떤가, '내 좌우명은 집중하라'요. 나는 그런 일에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소. 그녀가 반박한다. '그건 힘을 낭비하는 게 아니에요. 힘을 발휘할 공간을 넓히는 거예요. 그런데도 헨리는 '당신은 총명한 여자요. 하지만 내 좌우명은 '집중하라'요. 그리고 그날 아침 그는 맹렬하게 집중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연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서둘러 돌을 집어 드는 법이다.
인문학산책
이 작품의 제목인 하워즈 엔드는 영국의 전통적인 가옥이며, 가문(家門)명이기도 하다. 또 물리적인 집(haus)이면서 동시에 가정(home)이라는 뜻도 있다. 작품의 내용을 일별해 보면 이 두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의 중심 공간이 집인 바, 저자는 아마도 당시, 즉 근대에서 현대로 가는 길목에서 물질과 정신, 개인과 단체, 과학과 인문학, 자아와 타자, 단절과 연결 등 상반된 가치를 봉합하고 화해하려는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든 듯하다. 첫째, 오늘의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중심 공간인 집에 대한 본격적 천착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품위를 갖춘 하워즈 엔드와 도시의 아파트가 대조를 이루며 나란히 등장한다. 전통 가옥에는 대가족의 소란스럽고 정겨운 삶이 펼쳐지며 웃음꽃이 만발하는 반면, 도시의 숨 막히는 아파트에는 핵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하며 때론 임대료를 힘겹게 내며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연출된다. 주인공인 마가렛 네도 중류층에 속하지만 실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에 루스 부인도 그 생활을 이해하기에 동정심으로 눈물을 글썽였을 것이다. 당시 전통적 삶은 물론 이와 더불어 그런 가옥은 급격히 몰락해 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대도시로 몰려가 자동차와 아파트로 대표되는 각종 문명의 이기와 편리한 생활을 갈구했다. 가난한 지식인인 레오나드 역시도 좁은 아파트에 부인과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를 도우려는 헬렌으로 인하여 오히려 실직하고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공간의 집이 정신적인 공간의 가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둘째,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이로 인한 반목, 분열이 이 시대의 적나라한 모습으로 부상한다. 이 분열의 중심에는 부과 명예가 자리한다. 그러나 작품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는 이런 분열을 가로지르는 가치가 복선처럼 깔려 있다. 그것은 바로 연결이라는 덕목이다. 연결이란 분리와 분열을 넘어서서 새로운 유대를 만드는 사람 사이의 덕목이다. 이 덕목은 사랑이나 협동 등의 전통 가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워즈 엔드의 실소유주인 루스(웰콕스 부인)는 하워즈 엔드의 소유권을 자신의 가족이 아닌 루스에게 남긴다. 이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그녀는 단순한 물질적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가지는 하워즈 엔드는 그 가치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덕을 가진, 즉 계속 “연결”할 수 있는 인품을 가진 마가렛에게 전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루스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한참 연상인 헨리를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한다. 이 탁월한 선택은 대척점에 선 두 가문을 연결시키고 물질과 정신을 연결시키게 된다. 말하자면 웰콕스의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능력을 슐레겔의 전통적인 정신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래서 전통과 현실의 화해를 실현시킨 것이다. 셋째, 저자의 조국인 영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통찰과 바램이 들어 있다. 부와 물질적인 번영을 구가한 영국이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미래가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엄밀한 통찰을 통해서 보면 영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은 것이다. 하워드 엔드라는 집 혹은 가문은 곧 영국의 국운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루스에서 마가렛에게, 마가렛은 다시 자신의 동생의 사생아인 에우포리온에게 하워드 엔드를 전하게 된다. 말하자면 영국이라는 국가는 그 주체의 정통성에 있어서 심각한 혼란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번지수 없는 사생아에게 영국의 운명은 전해지는 것이다. 아니면 영국이라는 일개 국가는 인류라는 추상명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미래는 극히 불투명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하워즈 엔드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해 보자.
2. 마가렛의 품성을 세세하게 논해 보자.
3. 루스의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4. 레오나드는 어떤 인물인가?
시로 읽는 영화
하워즈 엔드
울고 웃고 쉬고 자는
삶의 보금자리, 집
과거에는 삶의 중심지였건만
이제는 단지 물질의 표상일 뿐이라네
영국의 정통 가문 하워즈 엔드
그 가문의 가보 하워즈 엔드
이젠 물질의 표상으로 변질되어 갈
위험에 처했다네
루스에서 마가렛으로, 마가렛에서 에우포리온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아름다운 정신
이젠 몰락의 갈림길에 섰다네
키워드: 집, 물질과 정신, 연결, 운명, 가문
자료2
집과 만남
-영화 『하워즈 엔드』를 중심으로-
0. 들어가는 말:
영화인문학
영화인문학이란 영화에 인문학을 더한 것이다. 영화와 관련한 글쓰기에는 영화평론이나 영화리뷰, 영화엣세이 등이 알려져 있다. 영화평론이 보다 체계적이고 형식적이며 딱딱한 학술적인 글이라면 영화리뷰는 이런 영화평론을 포함하기도 하고 아니면 영화가 출시되기 전에 가볍게 영화를 소개하는 글이기도 하다. 반면 영화엣세이는 영화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대체로 나의 관점이나 체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끌어들이는 글이다. 영화의 일부 장면이나 내용만 개입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와 관련한 나의 체험을 주제로 할 수도 있다. 영화의 내용에 비교적 자유로운 글이 영화엣세이인 셈이다. 그러면 영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영화인문학이란 영화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접근해서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철학, 역사, 문학 혹은 사회과학, 음악, 미술 등 예술이나 과학을 개입시켜 영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 특징은 영화학적인 특수한 전문용어나 지식을 꼭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영화를 보다 비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영화인문학의 입장이다. 영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즉 영화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무시되어왔던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 무기가 곧 인문학이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1) 영화와 철학 -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베이컨의 우상론 등, 그리고 뇌(신경)과학의 철학 2) 영화와 문학(역사학) - 소설을 대본으로 한 영화, 스토리에 중점을 둔 영화, 문학을 주제로 한 영화 3) 영화와 예술 - 미술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영화, 음악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영화 4) 영화와 정보학 5) 영화와 과학(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영화학 이외의 분야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집과 만남
집이란 인간 삶의 본거지다. 집은 단순히 거주지만이 아니라 삶의 보금자리로서 인간 존재의 고향과도 같은, 삶의 중심지, 나아가서 인간 존재 의미의 뿌리와도 같다. 또한 휴식과 재충전만이 아니라 만남과 관계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집에서 자연과 인간이 만나고, 인간과 인간이 만난다. 즉 집에서 인간은 세계와 소통하고 자기와 혹은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만남과 관계를 본질로 하는 구체적 존재이며, 집은 이러한 만남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만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곧 나와 너의 관계다. 물론 나와 그것(사물)의 만남도 있다. 만남을 소통(커뮤니케이션)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소통과 만남을 원하는 것은 그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야 만다는 실존적 자각의 소산이다. 소통과 만남을 통해서 고독한 인간은 그것을 잠시 잊거나 적어도 그 강도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과 소통을 이루어 주는 수단이 곧 매체다. 매체는 나와 너의 만남을 중개해 주는 수단이요, 서로의 마음을 전달해 주는 정보 운반체다.
고향과 유랑, 새로운 만남
인간은 원래부터 집에 거주한 것은 아니다. 아득한 옛날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게 먹이를 찾아 떠돌았다. 그러나 농경을 시작할 무렵 정착하기 시작하여 집과 촌락, 도시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와 이동식 주택(트레일러, 본바겐, 스마트 카)이 인간의 태곳적 유랑 본능과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은 만남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을 찾고 있을 뿐이다.(원격소통사회)
1. 현대와 집: 집, 도시, 고향
★ 하워즈 엔드 집 장면(1, 2)
1) 집과 인간: 지리학과 지세학
2) 아파트와 고향
3) 자연과 문화(informieren)
4) 도시와 인간의 재탄생
5) 유목과 정착: 집과 도시
2. 집의 의미와 구조
★ 하워즈 엔드 집 내부 장면(5)
1) 집의 구조: 지붕, 벽, 창문, 문
2) 창문과 텔레비전, 케이블의 네트워크(정보의 소통)
3) 고향과 해방: 습관과 해방
3. 만남(부버, 플루서)
★ 하워즈 엔드 만남 장면(3)
1) 유한한 나의 불안(실존철학)
2) 소통(그림, 텍스트, 기술그림)
3) 소통=관계: 나-너 ⇄ 나-그것(상호, 직접, 현재, 표현불가적)
4) 두 개의 자아: 관계와 관계항의 자아(주체와 우리)
4. 소통의 양상
★ 하워즈 엔드 만남 장면(4, 6)
1) 대화와 담론
2) “타자”
3) 집과 스토리(시)
4) 새로운 집: 이동식 주택(Wohnwagen), 스마트카
5) 판옵티콘(일망감시체계): 제레미 벤담, 푸코
0. 나가는 말:
우리의 풍수지리와 집
우리의 전통에서 집의 원형은 고인돌의 형태에서 유래한 초가집이다. 우리의 집에 관한 전통적인 이론은 풍수지리학에 의거한다. 그것은 바람과 물로 대표되는 자연의 기(氣)의 흐름과 조화를 중시한다. 이에 따르면 집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搾後寬)으로 지어져야 한다. 그 밖에도 깊은 땅속에 흐르는 수맥과 햇빛과 공기의 흐름, 도로의 크기와 방향, 주위의 자연 및 인문 환경 등을 총체적으로 잘 고려해야 한다.
풍수적 관점에서 집은 천지인(天地人)의 원리에 지붕, 정원, 건물이 대응하며, 이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즉 집은 천지자연에 순응하여 지어야 좋다. 전통적인 집의 형태로서 초가집의 지붕은 기운이 한 데로 모이는 구조로서 강한 생기가 발생하여 인간의 육신적, 정신적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 또 중심이 높고 좌우가 낮아 전체적으로 하늘로 상승하는 구조로서 하늘에 순종하는 형국이다. 그러면 요즘의 보편적인 집의 형태인 아파트는 어떠한가? 일단 아파트는 좁은 국토에 많은 집을 짓기 위한 고육지책의 측면이 강하므로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공간이라는 도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파트도 집이기 때문에 인간은 거기서 좋은 기를 받아야 하고, 또 아파트도 사람의 기를 만나 생명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조건 많은 집을 짓기 위한 닭장식, 혹은 성냥갑식 아파트는 자연과의 조화나 인간에게 좋은 기를 주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하여 심히 지쳐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기술과 과학의 영향으로 고도의 문명 생활을 원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휴식과 재충전, 여가 선용을 위한 소통이다.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집일까?
집은 타인 및 세계와의 소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리학적 관점이 아니라 지세학적 관점이 중요하다. 우리 풍수에서 보듯이, 지리학적 관점을 주거의 조건에서 제외시킬 수는 도저히 없다. 또한 그간 휴대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집이 반드시 타인과 정보의 소통을 위한 중심일 필요는 없게 되었다. 휴대폰 하나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또 처리할 수 있으며, 텔레비전, 라디오, 사진기 등은 물론 인터넷의 모든 기능과 원격조종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집의 기능은 우리의 풍수지리적 관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다. 즉 자연과 인간의 소통, 인간과 집의 소통(풍수지리적 관점), 인간과 인간, 정보의 소통(플루서의 주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집이 절실히 요구된다. 말하자면 소통의 중심이 집이어야 하고, 집은 인간과 자연은 물론 정보를 중심으로 한 인문적 환경을 한데 품은 유기적 전체가 되어야 한다. 건강한 자연과 문화,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운명인 고독과 고통, 죽음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한 터전이 되어야 한다. 이에 풍수의 관점과 동시에 현대과학의 성과를 활용한 안락하고 기능적인 집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 이어지는 강의 예고 >
437회 (2019. 7.10): 뇌과학과 공부, 양우석(철학박사) 438회 (2019. 7.17): 한국적 한의 의미(1), 나채근(문학박사/경북대 강의교수) 439회 (2019. 7.24): 한국적 한의 의미(2), 나채근(문학박사/경북대 강의교수) 440회 (2019. 7.31):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5),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