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호세아5장1~15절
제목 : 교만과 위선, 심판의 이유
이스라엘의 가증스런 제사를 거부하고 지도자의 악행을 꾸짖습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들의 교만을 지적하며,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1.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시다(1~7절).
1) 들으라, 깨달으라, 기울이라(1절)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제사장들아. -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들을 마땅히 가르치고 준수하도록 훈계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린 제사장들을 먼저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 원문에는 '이스라엘 집'(이스라엘 베이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왕족들아. - 원문에는 '왕의 집'(하멜레크 베이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왕의 가족들 외에 그 가문에 속한 자들과 왕의 주변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들으라...깨달으라...기울이라. -여기에 사용된 세 동사(솨마, 카솨브, 아잔)는 점층적인 방법으로 연설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의 깊고 세심하게 들으라는 것입니다(사 28:14,23;렘 13:15).
*사28:14,23 “[14]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23]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 위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고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왕족과 제사장들을 향한 것인데,
아마 앗수르의 침략을 받은 므나헴 왕가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왕하15:19).
*왕하15: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또한 곧이어 있을 북왕국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미스바'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삼상7:5),
요단 동편 길르앗 미스바를 가리킵니다(삿10:17;11:29).
이곳은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세웠던 곳입니다(창 31:48,49).
그리고 '다볼'은 요단 서편에 있는 다볼산을 가리킵니다.
이 두 곳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 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 숲이 우거져 새와 짐승들을 잡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Keil, Given).
본절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새를 잡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올무와 그물을 놓고 있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스바와 다볼 산 위에서 거짓 우상을 섬기라고 부추겼던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백성들을 악한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기는 커녕 도리어 도덕적 부패와 우상 숭배에 빠져 멸망의 길에서 허덕이며 백성들을 미혹했던 것입니다.
2)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2절)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방 신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살육죄. - 원문의 히브리어 '솨하타'는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는 학살과
관계가 있습니다.
본절은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길로 인도하고 그에 따른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죄악을 경책하는 것입니다.
깊이 빠졌으매. - 원문은 '아모크'로 '깊이 파다'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 우상 숭배와 학살이라는 패괴한 죄악 가운데 스스로 빠져들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 하나님께서 그들의 징계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징계'(무사르)는 완전한 파멸이라기보다는 회복을 위한 징벌로서 언약 백성을 위한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됩니다(잠 3:11;15:5).
*잠3:11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15:5]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3)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3절)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에브라임은 종종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언급됩니다(4:17;7:11).
*호4:17“[17]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7:11]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
그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은밀하게 행함으로써 숨기려고 했지만,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알고 계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는 것처럼(히4:13),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인간의 죄악은 결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 '이제'는 '지금'이란 뜻으로 '현재 이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에브라임의 행음과 죄악 된 상태가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 명백히 드러났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더러워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메'는 행음으로 부정하게 된 죄악의 결과를 나타냅니다(민 5:27,28).
*민5:27,28 “[27]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의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28]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
4)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4절).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이스라엘의 죄악 된 행위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를 거부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냅니다(J.Given).
이처럼 이스라엘은 음란한 영(루아흐)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노예가 되었음을 시사합니다(롬 6:12,16).
*롬6:12,16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게다가 음란한 영은 여호와에 대한 지식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여호와의 지식을 얻기 위하여 마음속에 있는 음란한 정신을 버려야 했지만, 교만으로 인하여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5절)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이스라엘의 교만. 당시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에,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는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들의 부귀와 권세를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교만이 곧 그들의 얼굴에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얼굴에 있는 교만함을 증거로 삼아 그들을 애굽과 앗수르와 같이 멸망시키실 것입니다(겔 32:12;슥 10:11).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헛된 교만은
여호와께 돌아오는 길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소였습니다(7:10).
*호7: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 '증거가 되다'의 히브리어 '아나'는 소송에 있어서 입증한다는 의미입니다(렘 14:7).
이스라엘의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그들의 죄악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 '넘어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솰'은 실족하여 멸망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4:5의 '거치다'와 동일).
교만은 필연적으로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잠 16:18;렘 13:9).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한편 남 유다 역시 이스라엘의 범죄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파멸적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렘 3:6-10).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6절).
양떼와 소떼를 끌고. - 회개하는 마음과 신실함이 없는 이스라엘의 제사 행위와 풍부한 제물에 대한 언급입니다(6:6;8:11-13;사 1:11-13).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8:11~13 “[11]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12]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13]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이는 값진 제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헛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겉만 번지르한 제사 의식과 순종이 없는 제물은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십니다(사 1:11-13;미 6:7).
*미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나님은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을 떠나셨고,
약속된 축복을 철회하셨습니다.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습니다(7절).
“[7]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 히브리어 '바가드'는 배신이나 반역의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종종 결혼 생활의 부정과 불충실함을 비유합니다(렘 3:20;말 2:14-16).
*렘3: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불충실한 이스라엘의 배반을 언급합니다.
사생자(바님자림) - 이는 정당한 결혼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비합법적인 자식으로 그 집에 속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신 25: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킴으로써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출 19:5,6).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음행하였던 이스라엘은 더 이상 언약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불법적인 우상 숭배는 결국 언약과 상관없는 음행의 자손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불경건한 사생자들은 타락한 부모들의 제의적 행음으로 인하여 출생하였다고 보여집니다(4:13-15).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 '새 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데쉬'가 단순히 월력상의 한 달을 가리킨다면, 본문은 짧은 시간 내에 종말의 심판이 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호데쉬'는 희생제를 드렸던 이스라엘의 절기(New Moon festivals, NIV;월삭, 한글 개역)를 의미합니다(삼상 20:6;사 1:13,14).
*삼상20:6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사1:13,14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따라서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쳤던 희생 제사가 도리어 그들을 파멸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제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장된 우상 숭배에 불과함을 반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새 달'은 오히려 파멸을 가져오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한편, '기업'(할라크)은 이스라엘이 소유했던 땅과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소산을 가리킵니다(2:8,9과 비교).
혹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에 분깃으로 취한 우상을 그들의 멸망할 기업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M.Henry).
2. 전쟁을 통해 심판하시다(8~15절)
1)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8절).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뿔나팔(쇼파르) - 수양의 뿔로 만든 곡선형 악기로 찬양(시 98:6)이나,
새 달과 새 해의 시작을 알릴 때 사용되었습니다(시 81:3).
나팔(하초츠라) - 두드린 은이나 동 같은 금속으로 만든 것으로 회중의 소집과 진행을 알리는 나팔입니다(민 10:2).
그런데 본절에서 뿔나팔과 나팔을 부는 것은 적의 침입과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입니다(민 10:9;렘 6:1).
호세아 선지자는 대적들이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이제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사 10:28-32 참조).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 대적이 베냐민 뒤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북왕국 에브라임을 멸망시킨 대적이 바로 베냐민(유다)에게 침입한다는 급박한 경고의 외침입니다: '네 뒤에서, 베냐민아, 에브라임의 정복자가 온다'(R.Chrisholm).
이처럼 남유다는 이미 닥친 것으로 묘사된 심판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2)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9절).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벌하는 날.-하나님께서 징계의 형벌을 통하여 심판하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 '황폐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솽마'는
심판으로 황폐케 되는 두려움을 경고합니다.
반드시 있을 일(네에마나). - 이는 심판의 경고가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혹자는 이를 이스라엘이 받을 마지막 재앙(신28:59)과 관련시킵니다.
3)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10절)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 '경계표'(게불)는 일반적으로 땅의 경계를 가리킵니다.
즉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소유의 경계를 말합니다(수 16:5;18:11).
본절에서 유다 방백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모세 율법에는 경계표를 옮기지 말 것(신 19:14)과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신 27:17)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속한 땅을 불법적으로 취하려는 도둑질과 같은 죄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것을 유다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공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Rashi, Aben-Ezra).
또한 어떤 학자들은 이를 영적인 경계표로 생각하고 유다가 우상 숭배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위에 세워진 것을 거짓 신들의 불법적인 영역으로 옮겼다고 해석합니다(Keil, Hengstenberg, Wood, Lange, Butler).
즉 하나님과 우상 사이의 경계표를 옮긴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보다 적절한 해석은 유다의 방백들이 행했던 온갖 사회악(사 5:8;미 2:2)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보는 것입니다(Chrisholm).
즉, 불법과 폭력을 사용하여 백성들을 압제하고 탈취하는 지도자들의 죄악에 대한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4)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11절)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 '명령'에 해당하는 '차우'는 그 해석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1)'솨우'로 읽는 경우 그 의미는 '허무한 것'(마타이온, LXX)이 됩니다. 몇 개의 번역본들은 이를 따라 'vanity'(RSV), 'nothingness'(JB), 'worthless'(NEB)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만약 이 해석이 옳다면 '명령'은 거짓되고 허탄한 신(시 31:6;렘 18:15)을 뜻하는 것이 됩니다(Harper, Chrisholm, Smith).
한편, NIV는 '우상'(Idols)으로 번역하였습니다.
(2)'차와'를 기본형으로 보는 경우 그 의미는 '명령'이나 '교훈'(사 28:10,13)이 됩니다.
이때에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명령으로 보는 것입니다(Ewald, Keil).
혹자는 이를 바알 선지자의 거짓된 교훈으로 봅니다(Rashi).
또 어떤 학자들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단과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워 우상 숭배를 강요한(왕상 12:27-30),
여로보암의 명령이라고 봅니다(J.Given, L.Wood, M.Henry, P.Butler).
이상의 두 가지 해석은 아직도 논쟁을 일으키는 난제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해석이 옳든지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에브라임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거짓 우상들, 또는 거짓 교훈들을 뒤쫓아 가는 악행 속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
그래서 혹자는 이를 왕들의 억압과 연관시킵니다(Aben-Ezra).
이와는 달리 70인역(LXX)은 에브라임 백성들이 서로 압제하고 '재판'을 유린하는 것으로 언급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은 에브라임이 이방 민족에 의해서 압제와 학대를 겪게 되는(신 28:33) 민족적 심판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재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Cheyne, Hengstenberg).
결국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방 민족에게 압제를 당하고 멸망하게 될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12절)
'좀'과 '썩이는 것'은 둘 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확실하고 파괴적인 심판을 상징합니다(욥 13:28 참조).
하나님께서는 악한 백성들에게는 파멸의 근원이 되십니다.
6)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습니다(13절).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병(홀리), 상처(마조르) -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내란이나 무정부 상태 같은 정치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으로 악화된 상태도 상징하는 것입니다(W.Harper).
깨달으며. - 신앙적인 각성이 아니라 단지 견디기 어려운 처지를 '보았다'(라아)는 뜻입니다.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 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불'(디글랏 빌레셀)을 찾아갔고(왕하 15:19), 호세아 왕 역시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친 적이 있습니다(왕하 17:3).
야렙 왕(멜레크 야레브) - 이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습니다.
(1)앗수르의 성읍이나 지역 이름.
(2)아라비아의 왕.
(3)앗수르 왕의 별칭.
(4)'라브'로 읽고 '위대한 왕'(great king, NIV,RSV)이나 '전사'(warrior)
로 보는 견해.
이 중 (3),(4)의 견해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 이방 민족의 왕에게 도움을 구하여 병과 상처를 고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모든 형벌과 심판은 오직 여호와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7)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습니다(14절).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사자(솨할), 젊은 사자(케피르) -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공격적이고 과감하다는 사실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13:7;사 5:29).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심판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강조합니다.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 사자가 먹이를 움켜가는 것처럼(사 31:4) 심판의 도구인 앗수르는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호세아를 잡아갔습니다(왕하 17:4,5).
유다 역시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침략을 당하였습니다(왕하 25:1-12).
8)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15절)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 사자가 먹이를 찢고 동굴로 피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고 하늘 보좌로 돌아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이스라엘로 부터 완전히 거두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 '구하다'의 '솨하르'는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간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입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그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신 4:29).
고난을 받을 때에. - 앗수르와 바벧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 생활을 암시합니다.
이방 민족에 의한 압제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다시 찾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심판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14:2-4).
이것은 6:1-3의 본문을 이스라엘 백성들 서로의 권면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목소리가 왜 커집니까?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못들을 때에 내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행세를 하는 교만은 듣지 않고 깨닫지 않고 삶이 바르지 못하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만을 네려 놓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주시는 복을 누리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지도자들에게 심판의 긴박성을 알리십니다(1,2절).
하지만 거듭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만큼 그들의 안일한 시대인식과 영적 방종은 심각합니다.
영적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그들이 권력과 이방의 우상 문화에 젖어 백성의 성결과 하나님의 뜻에 무심합니다.
이 땅의 정치와 종교와 법을 책임진 이들이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백성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기도합시다.
나아가 그들에게 위임한 권한이 잘 행사되고 있는 지 책임 있게 살펴봅시다.
2) 에브라임의 변절도, 유다의 야욕도 모두 심판하십니다(6~11절).
정조를 버리고 주를 떠나 사생아(죄의 열매)을 낳은 에브라임을 떠나십니다.
그래도 여전히 헛된 것(우상과 열강)을 쫓아가는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에 탄식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북왕국의 위기를 틈타 영토를 확장하려는(경계표) 유다의 탐욕도 좌시gk지 않으십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형제도, 언약도, 하나님도 비정하게 저버린 그들의 허망한 욕망은 재앙과 불행의 단초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길에 서 있다면 어서 떠납시다.
3) 때로는 썩게 하는 “좀”처럼 혹독하게 벌하시고, 때로는 “성난 사자”처럼 그들의 죄에 분노하십니다(12~15절).
그런데 자신의 중병을 깨닫고도 에브라임과 유다는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열강에게 치료를 맡깁니다.
죄로 인한 고난의 무게가 아무리 힘겹더라도 내 마음이 주께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직은 엄살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음란한 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합니다(3~7절).
그러나 죄에서 돌이킬 수도 없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회개하는 마음 없이 나아와 제의 규정만 지키면서도 무죄와 사죄를 주장할 만큼 뻔뻔합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면서 거짓 안전에 취해 있지는 않습니까?
대 삶에 의와 신실을 회복하지 않는 한 예배와 묵상은 언제든 나를 감추는 외식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