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소사 / 김유석
내소사에 가면 내소사는 없고, 내소사에 바래다준 길도 없다 내릴 것 모두 내려 공양한 산이 곰소나 격포쯤에서 묻은 비린내가 제 것인 양 절여 온 몸과 몸을 북어처럼 꿰는 뻑뻑한 햇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심한 산새소리나 헛기침으로 화답할 뿐 내소사는 보시하는 아랫마을 물소리 속으로 흘렀거나 멀리 섬으로 가는 뱃길로 띄워버렸는지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내력이야 내 알 길 없고 속을 비워내느라 자잔히 중심을 흔들어대는 청대보다 버거운 세월을 증명하기 위해 한 해 더 움을 틔운 고목이 승僧도 없고 법法도 없고, 돌아다보면 홀연 나도 없는 내소사의 부재를 가늠해주는데 무얼 어쩌겠다는 듯 자꾸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따금 어떤 경계처럼 떠오를 내소사가 내 깨달음의 전부일 뿐 세상을 돌아다니며 업을 쌓는 일이 초입의 가문비나무 숲이나 가는귀먹은 물소리 속에서 내소사를 깨워내는 일보다 절실한 줄 모르는 나는 누군가의 허물이 되어 환속해버린 내소사를 지금 그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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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석 시집 < 놀이의 방식 > 自序
곡선을 보러 들길을 간다. 된 것은 통속할 무렵부터의 일, 그리하여 을 자연한 것들의 생태에서 치유받고자 하는 것인데
부조리는
것은 “푸른 광기들”로 표상되는 타자의 세계이다. 시인이 예술적 창조의 바탕인 광기나 타인과의 소통을 옹호한다거나, 고고한 자존감과 절제의 미덕이 소중하다고 노래하는 것은, 모두가 타자의 가치를 발견하여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요컨대 시인은 세상의 문제적 국면들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장 열정적으로 비판해야 할 소명감을 지닌 존재이다. 나아가 문제적 세상에 대한 미학적 처방을 통해 정치적, 현실적 변화까지도 모색해야 하는 존재이다. ‘시의 정치’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김유석 시인은 이러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시니시스트로서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 이 시집을 읽는 것은 시인과 함께 세상을 시니컬하게 웃어 보는 독특한 경험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 시집을 덮고 나서도 우리의 웃음은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은 아직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하고 시인은 그러한 세상에 대해 계속 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께 웃자, 시니컬, 시니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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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