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 46장 1절 ~ 12절
이방인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1)
The word of the LORD which came to Jeremiah the prophet against the Gentiles; 1)
이집트에 대한 것이며, 이집트의 파라오느코왕의 군대에 대한 것이니, 유다의 요시야왕의 아들 여호야킴 제사년에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유프라테스 강가 칼크미스에서 친 그 군대에 대한 것이라. 2)
Against Egypt, against the army of Pharaho-necho king of Egypt, which was by the river Euphrates in Carchemish, which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smote in the fourth year of Jehoiakim the son of Josiah king of Judah. 2)
파라오느코왕은 이집트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원정을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요시야왕은 그런 파라오느코왕을 대적하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O 요시야 시대에 이집트의 파라오느코왕이 앗시리아왕을 치려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올라갔는데 요시야왕이 그를 치러 나갔더라. 파라오느코가 그를 보고 므깃도에서 죽이니라.
열왕기하 23장 29절
요시야왕은 율법책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던 왕입니다. 그런 요시야왕이 허무하게도 파라오느코에 의해 전사를 당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육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질서안에서 결정적으로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영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시야왕은 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며, 좋은 왕으로 인하여 유대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요시야왕이 죽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잠시나마 기억했다가 잊어버리고, 결국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앞에 각자가 순종 또는 불순종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조건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의 갈림길에 서있고 그것은 어느 누구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마음의 선택에 따라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변상황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순종과 불순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백신에서도 나타났듯이 피할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즉 백신의 재앙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어려운 상황이나 공격하는 사람은 길가에 있는 진흙구덩이와 같아서 거기에 빠져들어 겪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살짝 건너뛰면 되는데 굳이 진흙구덩이에 들어가서 뒹굴면서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너 위선자여, 먼저 네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뽑아 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O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다시 돌아서서 너희를 공격할까 함이라.
마태복음 7장 5절 6절
개들과 돼지들의 비유의 이전의 말씀은 위선자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들과 돼지들은 위선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개들과 돼지들은 위선자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에게 거룩한 것은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므로 위선자에게 거룩한 것을 제공하여 빌미를 만들어 그들과 함께 진흙속에 빠져들어 뒹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흙구덩이는 이렇게 사람으로 나타나며,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회피할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의 순종은 버티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구성한 구조에 참가하여 굳이 게임을 해나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징어게임은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패배자인 것입니다.
오징어게임에서 살아남으려고 생각하는 것자체가 사탄에 그물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일루미나티를 분석하고 대비하는 사람들은 이미 사탄의 오징어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루미나티로 사람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사탄이 조성한 구조이며, 거기에 참여하는 순간 모두 사탄에게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 먹기 게임을 시작한 것과 오징어게임의 구조는 같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보며 선택을 결정하는 게임을 시작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혹 백신이라는 오징어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는 조건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신을 거부했던 사람들은 퇴사와 생계가 중단됨을 각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백신이라는 오징어게임의 참여를 거절한 것이지 오징어게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징어게임에 참여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루미나티의 고위직과 일루미나티에 협조하고 살아남은 부자들, 의사들, 정치인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백신이라는 오징어게임은 지나갔지만 짐승의 표라는 오징어게임이 다시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그 게임의 참여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게임에 참여하라는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왜냐면 시간이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악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셔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도 보시고 계셨고, 바벨탑이 올라가는 것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타락도 보고계시며, 특히 은혜입은 자들의 배신도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시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뿐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너희는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예비하고 싸우러 나가라. 3)
Order ye the buckler and shield, and draw near to battle. 3)
너희 기병들아, 말에 안장을 지워타고 투구를 쓰고 나서라. 창을 갈고 갑옷을 입으라. 4)
Harness the horses; and get up, ye horsemen, and stand forth with your helmets; furbish the spears, and put on the brigandines. 4)
furbish <금속 제품 등을> 닦다; 닦고 빛내다, 광내다, 윤내다(polish) ((up))
brigandine 안에 미늘을 댄 피륙으로 만든 갑옷
주가 말하노라. 어찌하여 그들이 놀라서 물러가는 것을 내가 보았는고? 또 그들의 용사들은 패배하여 급히 도주하며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두려움이 그들을 에워쌌음이라. 5)
Wherefore have I seen them dismayed and turned away back? and their mighty ones anr beaten down, and are fled apace, and look not back: for fear was round about, saith the LORD. 5)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며, 용감한 자도 피하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북쪽을 향해 넘어지며 쓰러지는도다. 6)
Let not the swift flee away, nor the mighty man escape; they shall stumble, and fall toward the north by the river Euphrates. 6)
이스라엘의 국기는 다윗의 별과 위에 한줄 아래에 한줄로 파란색으로 그어져 있습니다. 위의 선은 유프라테스강을 의미하며, 아래의 파란선은 나일강을 의미합니다. 즉 다윗과 솔로몬시대의 광활한 영토의 영광이 그들에게는 국기에 담겨져있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창과 방패들을 가지고 방어를 해도 불가능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고 해도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일루미나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로 주의 뜻에 의하여 선이든 악이든 허락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경우 그것이 이루어짐은 곧 방치하심으로 더 큰 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홍수처럼 올라오며, 그의 물결이 강들처럼 움직이는 이 자는 누구냐? 7)
Who is this that cometh up as a flood, whose waters are moved as the rivers? 7)
이집트가 홍수처럼 일어나고, 그 물결이 강들처럼 움직이는도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올라가서 그 땅을 덮으리라. 내가 그 성읍과 그 안의 거민들을 멸하리라." 하는도다. 8)
Egypt riseth up like a flood, and his waters are moved like the rivers; and he saith, I will go up, and will cover the earth; I will destroy the city and the inhabitants thereof. 8)
이집트가 홍수처럼 일어남은 파라오느코왕이 앗시리아를 침공하러 나서는 모습으로 보이고, 중간의 남유다는 그런 파라오느코왕을 대적하러 나서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왜가 정명가도를 외치며 조선을 침략한 것과 유사합니다. 군대가 가는 길을 비켜줄 나라는 없습니다. 길을 열어주는 것은 항복을 의미하며, 군대앞에서 군대의 방비를 풀어줄 어리석은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문재인입니다. 북한은 교활한 자들인데 그런 자들에게 자신들의 방어를 말한마디 종이 한장에 의하여 다 풀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어리석다기 보다는 충실한 자라고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가 어디에 충실한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희 말들아, 올라오라. 너희 병거들아, 사납게 달려라. 용사들아, 나올지니라. 방패를 잡는 에디오피아인과 리비아인과 활을 잡고 당기는 루디아인아, 나올지니라. 9)
Come up, ye horses; and rage, ye chariots; and let the mighty men come forth; the Ethiopians and the Libyans, that handle the shield; and the Lydians, that handle and bend the bow. 9)
루디아는 현재 어느 곳을 가리키는 지명인지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활을 쓰는 민족으로 나옵니다. 활은 우리민족을 상징하기도 하는 무기입니다.
그 날은 만군의 주 하나님의 날이요, 복수의 날이라. 그가 그의 대적들에게 원수를 갚으리라. 칼이 삼키며 또 그 칼이 물리도록 먹고 그들의 피로 마시리니 이는 만군의 주 하나님이 유프라테스 강가 북쪽 지방에서 희생을 낼 것임이라. 10)
For this is the day of the Lord GOD of hosts, a day of vengeance, that he may avenge him of his adversaries: and the sword shall devour, and it shall be satiate and made drunk with their blood: for the Lord GOD of hosts hath a sacrifice in the north country by the river Euphrates. 10)
vengeance 복수, 앙갚음 (=revenge)
유프라테스 강가 북쪽 지방은 카르크미스, 칼크미스로 여겨집니다. 이집트 연합군은 앗시리아를 치러 먼곳에서 패배하는 모습입니다.
오 이집트의 처녀 딸아,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을 취하라. 네가 헛되이 많은 약을 쓸지라도 네가 치유되지 못할 것임이라. 11)
Go up into Gilead, and take balm, O virgin, the daughter of Egypt: in vain shalt thou use many medicines; for thou shalt not be cured. 11)
길르앗은 치료약인 유향이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제약사 이름중에 길리어드가 이 지명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백신을 만드는 회사이니 이름을 아무리 길리어드라고 지어도 치유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들이 네 수치를 들었고 네 울부짖음이 땅을 체웠으니 이는 용사가 용사에게 넘어지니 그들이 다함께 쓰러졌음이라. 12)
The nations have heard of thy shame, and thy cry hath filled the land: for the mighty man hath stumbled against the mighty, and they are fallen both together. 12)
이집트의 수치는 무엇일까요? 정복전쟁이 수치는 아닐 것입니다. 이집트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앗시리아를 침공하였고, 그 결과가 당연한 패배로 나타났습니다. 이시기는 강성한 이집트와 앗시리아가 충돌하는 시기로 그 중간에 있던 남유다는 이집트에 의하여 왕이 세워지고, 또 후에 나타난 바빌론에 의하여 왕이 세워지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이합니다.
요시야왕이 율법을 회복시켰으나 전쟁에 휘말려 남유다는 고통속으로 들어갑니다. 요시야왕은 남유다에게 복음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복음은 곧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인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듣고 받아들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이 자기를 부인하고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합니다. 마찬가지로 남유다도 요시야왕으로 하여금 그 민족에게 복음을 알렸고, 남유다 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하고 자신의 길로 간것입니다. 요시야왕으로 시작된 복음은 결국 시드키야를 거쳐 그달랴와 요하난으로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복음으로 구원의 기회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요시야왕이 남유다를 구원하지 못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구원을 할 수 없습니다.
남유다가 복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휘말린 것으로 복음이 세상적으로는 불행처렴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지나가는 과정으로 이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구원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이 없습니다. 이 땅의 어떠한 비극도 구원을 잃어버림보다 더 크고 깊은 슬픔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힘듬은 결과가 아니며, 구원을 이루는데 소모되는 것으로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