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받이나 씨내리 등 조선의 역사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알아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습니다.
이야기는 씨받이와 씨내리의 풍습입니다.
씨받이와 씨내리
씨받이를 현대에 지어낸 허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야사에
그만큼 전해오는 것이 많은 이유는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어릴 때도 생모, 친모가 다른 사람들이 있었고 첩에게서
낳은 아이가 아닌,어엿한 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생모라고 하긴 했으나 어머니라고 부르진 않았고,
애매모호한 존재로 그 집안에서 그냥 허드렛일하면서 여생을 의탁하고
있었지요.
그나마 현대이니 생모가 그렇게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풍습이 갑자기 생겨 났을까요? 현대에도 이 풍습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면에 드러나서 놀라운 진화를 보이며 우리의 생활 깊숙이 파고든 것을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씨받이는 대리모 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고, 씨내리는 다름아닌 정자은행으로 바뀌어 불임의 부부들에게 아기를 안겨 주고 있지요.
얼마든지 비밀 유지가 가능하며 문제 삼는 사람도 없습니다.
조선 시대의 씨받이는 잔혹한 여인 수난사입니다.
천하 없어도 대를 이어야 하는 양반들의 아들 낳기는 대궐의 비빈들의 왕자 생산의 염원에 못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이유없이 회임을 하지 못하면 시어머니는 여러 비방을 쓰고, 불임을 이유로 쫒아내기도 합니다.
아들을 못 낳는 것은 칠거지악의 하나여서 시집에서 쫒겨나도 며느리는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게 며느리를 쫒아내지 못하는 것은, 두 번째 장가를 가도 여전히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문이 뒤흔들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며느리의 탓이 아니라 아들이 씨 없는 수박임이 드러난다면 그런 치욕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그런 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집안에서는 은밀한 회동이 벌어집니다.
씨받이를 들이는 것이지요.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는 서출이기에 반드시 정처에게서 자식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며느리의 아바타로 씨받이가 필요했고, 그것은 고부간의 철저한 묵약으로 이루어집니다.
며느리는 씨받이를 남편의 상대자로 보지않았고 오로지 배를 빌려 자식을 얻는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 수소문을 해서 가난한 백성의 처녀를 사오는 경우도 있었으나,
보통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통해 씨받이 마을에서 데려왔습니다.
아들을 잘 낳을 상으로 이미 낙점이 되어 여러번 몸을 푼 경험이 있는 여인들이어서,
우리가 영화에서 본 그런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합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성을 성의 노리개로 삼을 수 있었고 그것이 흠이 되지 않았기에, 굳이 씨받이에게 연정을 품어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씨받이라는 미묘하고 음습한 단어가 주는 느낌을 모티브로 삼아서, 현대의 인간들이 별 내용을 다 만들지만 조선시대의 남정네들은 그리 낭만적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날이나 씨받이와 동침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날, 시에 의무적으로 합체해서 일을 치루고 나면 남자는 즉시 방을 나옵니다.
씨를 받은 여인은 그 씨를 흘리지않기 위해 왼편으로 누운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왼 쪽으로 누워야 아들을 임신한다고 믿었지요.
다행히 회임이 되면 그 순간부터 며느리가 임신한 것이 됩니다.
우리의 옷은 굳이 가장하지 않아도 임신한 배를 만들 만들기에 충분했고,
또 아기를 가진 귀한 아씨가 바깥에 나올 일은 없으므로 집안 대소사는 모두 가문의 대를 이을 장손을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주인 마님이 하는 일은 저 먼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과 마찬가지.
수많은 식솔들이 있어도 그들이 무언가를 눈치챌까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대손손 그 집안의 노비인 하인들은 그저 자신들이 사는 집이 무탈하면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별채의 깊은 방에서 잘먹고 잘자며 아들 낳기만을 소원하는 씨받이는 마침내 몸을 풀게 되고 며느리도 산실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아기를 기다립니다.
산실방 근처에는 잡인의 출입을 엄금했으므로 아기를 들여오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기에 왕실에서조차 아기를 들여오는 사건이 생깁니다.
아들을 낳았으면 천만다행이고 씨받이는 사나흘 몸을 추스린 다음, 약속한 보수를 받고 으슥한 밤에 길을 떠나 씨받이마을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딸을 낳았을 경우, 씨받이여인은 강보에 아기를 안고 함께 길을 떠납니다.
씨받이가 낳은 딸을 절대 받아주지 않았고, 아버지의 신분이 아무리 귀해도 그 딸은 자라서 씨받이가 되거나 기녀가 됩니다.
조선은 철저하게 모친의 신분으로, 자식의 신분이 결정되었고 씨받이가 낳은 딸은 결코 집안의 여식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씨가 아기를 낳았는데 수삼일을 앓다가 죽었다는 정도로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다시 아들을 얻을 궁리는 계속됩니다.
딸을 낳았어도 남자가 무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니,
오히려 집안에서는 다른 의미의 경사였습니다.
그럴 경우 다시 씨받이를 얻는 일은 거의 없었고, 십중팔구 며느리는 쫒겨납니다.
며느리를 내칠 명목은 많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석녀임을 알게 된 며느리는 더 이상 그 집안에서 견딜 도리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러 명의 씨받이를 들였어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을 때입니다.
포기하고 문중에 알려 양자를 들이면 아름다운 일이겠으나 그런 포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씨내리라는 선택을...
씨받이는 아기를 낳아주고 자기의 길을 갈 뿐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않습니다.
아들이 생긴 집안에서는 며느리의 위상이 살아날 것이고, 잘 키워서 효도 받고 대를 이어가면 안방 마님이 되어 집안의 윗어른으로 존중받을 것이니 어찌보면 큰 공덕을 베품과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씨내리는 씨받이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것은 여자를, 하나의 밭으로 보는 조선 양반가의 잔혹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끔찍한 풍습입니다.
옛날 전설의 고향에서 보면 마을에 들어 오는 생선장사나 소금장사를 집안에 꼬여 들여 일을 치르게 하고 죽이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핏줄, 태생을 엄격하게 따지는 조선의 양반들이 무지렁이 천민을 집안의 대를 이을 상대로 택할 리는 결코 없습니다.
씨받이를 몇 번 들여도 수태가 안되면 집안의 어른들은 며느리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가내에서 양자를 들여 대를 이어도 되지만 위신과 체면치레가 목숨보다 중요한 어떤 양반들은 대를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들의 무자를 감추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남자가 자식을 볼 수없는 몸인 것이 알려지면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평생의 놀림거리가 되니까요.
그래서 씨내리가 등장합니다.
며느리는 엄밀히 말해 그 집안의 핏줄은 아니지만 이미 *귀영머리 풀고 사주를 받았으니 그 가문의 사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씨를 받을 소중한 밭이지요.
자기네 밭에서 귀한 소출을 얻어내면 된다,
그리고 수확을 끝낸 밭은 갈아 엎으면 그만이니까요.
남편 아닌 다른 남자의 몸을 받아야하는 일을 양반가의 여식으로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가문의 보존이란 대명제가 그 치욕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 집안의 엄명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며느리는 피접이라는 명목으로 집을 떠나 모처에 자리잡고 씨내리를 보쌈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믿을 수 있는 집안의 남자들이 보쌈을 나가는데,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주막이나 인적이 많은 저잣거리에서 대상을 점찍습니다.
씨는 못 속인다라는 말이 있지요? 보쌈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되도록 젊은 양반, 과거길을 가는 행색의 젊은이가 타킷이지요.
그리고 집안 남자들의 모색과 엇비슷한 사람이면 더욱 좋습니다.
술을 먹이든지 한 대 쳐서 기절시키든지 꼼짝없이 보쌈을 당한 젊은이는, 깊은 밤에 호롱불빛도 없는 방에서 낯모르는 여인과 합방을 하게 됩니다.
본인이 씨내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쌈을 당할때 알게 되기에 젊은이는 그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해냅니다. 그럴 수 있냐고요?
조선의 양반 의식이 얼마나 다중적인지 안다면 이해가 될까요?
하룻밤을 보내고 그 새벽에 다시 자루에 넣어진 젊은이는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버려지고, 자신이 어디에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전혀 알수없이 갈 길을 떠납니다.
전설의 고향에서와 같이 죽여서 원한을 만드는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습니다.
병을 핑계로 피접을 간 것으로 된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이윽고 수태했음을 온 집안에 알립니다.
남의 씨를 임신한 아내를 보는 남자의 고통은 얼마 가지 않습니다.
전혀 아내의 잘못이 아니건만, 죄과에 대해 복수할 날이 다가오니까요.
씨내리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건만 인간은 원래 결과만을 따지는 옹졸한 존재입니다.
행여 딸을 낳으면 그 자리에서 엎어 죽이고, 며느리는 목숨은 보존되지만 다시 씨내리를 받아야 하니까요.
아들이 태어나면 온 집안은 경사로세!! 씨내리로 인해 얻은 자식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입에 담지 않은 채,
오로지 가문의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그 집안의 자식이란 사실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삼칠일이 무사히 지나고 아이는 조부의 품에 안겨 일가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당에 고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홀로 있는 며느리에게는 비단끈과 약사발이 주어집니다.
이제 밭의 역할을 다 마친 며느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비단끈으로 목을 매어 죽거나 약을 마셔 죽는 일 뿐입니다.
할일을 마친 여인은 남의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부정함만이 남았기에 죽음으로 그 죄를 씻어야 합니다.
시어머니는 그 방 밖에서 며느리의 선택을 기침으로 재촉합니다.
며느리가 죽은 것을 확인한 시어머니는 산후병이 심해져서 죽었다고 대성통곡.
할일을 다한 며느리를 지극한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르고 집안의 귀신으로 인정해줍니다.
그 집안의 귀신이 되는 것. 그것이 조선 여인들의 가장 큰 바람이고 그 바람을 이루었기에 여인은 한을 품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섭다고 소름이 돋습니까? 그 시대의 가치관을 지금의 잣대로 재어서는 안됩니다.
현대 의학은 남녀 교합을 거치지 않고서도 임신이 가능하게 되었 습니다.
비단끈으로 목 매달고 죽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예전에 큰 화제를 모은 뉴스가 있었는데 아들이 무정자증이어서 시아버지의 정자를 며느리가 제공받은 일입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논란이 매우 뜨거웠지요.
모양만 달라졌을 뿐, 모든 풍습은 암암리에 그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풍습을 후손에게 남겨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