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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또는 사찰을 香界, 극락세계를 香國, 불사에 올리는 돈을 香錢, 부처 앞에서 향을 피우고 서약하는 것을 香火情이라 불렀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태어난 곳은 남인도의 香至國이라 불렀다.
향나무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향나무로 향을 피웠기 때문이다.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사대미인중 한명인 서시가 난초를 찾아 다녔다는 길이 香徑이다. 미인의 혼도 香魂이라 불렀다. 우리 역사를 보면 나라가 어려울때 향을 얻기위해 埋香을 했다.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 즉 포구에 오랜 세월 묻어두면 돌덩이 처럼 굳어지는데 향중에서 으뜸이 되는 沈香이 된다고 믿었다. 이 침향을 만드는 것이 埋香이다. 침향은 30년 이상인 나무라야 가능하고 최소 20~30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믿었다. 중국의 경우 침향은 불교국가인 당대부터 귀한 香藥을 대표했다. 중국에서는 향을 피워 신명을 받들고자 할때 침향을 제일로 쳤고 乳香은 다음이었다.
유향
고려말 조선초의 혼란한 시기에 전국적으로 많은 매향을 하였다. 부처님께 바칠 침향을 얻고자 하는 의식이었는데 미륵보살이 나타나 어려운 현실에서 구원해 주십사하는 기원에서 한 의식이었다한다.
주로 바닷가에서 이루어졌는데
물명고(1836년)에 "침향나무는 떡갈나무와 흡사하고 나무 껍질과 잎은 파랗고 귤나무와 비슷한데 겨울에도 마르지 않고 꽃은 여름에 하얗게 되며 열매는 늦가을에 익는데 빈랑(아레카 야자)와 흡사하다. 침향을 얻는 방법은 이 나무를 잘라 침적하여 수년 세월이 지나면 부식이 되어 심절만 남는데 이것을 물속에 넣어 위로 뜨지 않는 것을 침향이라 한다"고 소개했다.
옛 사람들이 침향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을 알수 있다
캄보디아의 침향나무
침향을 본적은 없고 중국에서 들은 풍월로 침향이 최고의 향이 나고 좋은 약재라고 하니 침을 한자로 沈 즉 잠길침자를 사용하니 향나무를 물속에 오랫동안 묻어두면 귀한 침향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으로 불상을 만들고 향을 만들어 공양하면 미륵불이 나타나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듯 하다. 또 이것을 불교지도자나 그 지역의 유력자들이 백성들을 동원해 혹세무민하며 악용한 사례라고도 볼수 있다고 본다. 매향한 나무를 보면 향나무 이외에 참나무도 있고 버드나무 종류도 있다고 하니 그냥 아무 나무나 막 매향한것이 아닐지, 당시의 지식의 한 단면을 볼수 있을듯 하다. 나무를 물속에 오래 묻어둔다고 나무가 둔갑하는것은 아닐테고 그냥 진이 빠진 나무가 되겠지,,,
향은 본시 목호자가 불교를 전파하면서 향을 갖고온게 시초라 하면 제를 올릴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냄새를 없앨 목적으로, 또 각종 날벌레들이나 뱀같은 것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캠핑할때 향나무 장작을 태우면 모기와 벌레들을 쫓을수 있다.
향나무를 우물가에 심어두었던것은 우물을 정화하고 주위의 날벌레나 소형동물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심었고 고택 화장실 주위에 심은것은 사철 푸른 잎으로 감추어주고 향나무의 향으로 화장실의 냄새를 희석시켜 줄 목적으로 심었다.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불교를 믿어 향나무를 아주 귀하게 생각해 중요한곳 신사나 공공기관 같은데에 심었다. 그런데 조선말 우리나라에 온 일본인들은 양반집 화장실 옆에 있는 향나무를 보고 많이 분개했다고 한다.
조선이 유교국가라 향나무를 좀 천시한 경우라 볼수도 있고 아님 그냥 실용적인 목적으로 심었을수도 있으리라. 아직도 공공기관이나 학교등에 향나무가 많은 것은 일제의 잔재는 맞을듯 하다. 그렇다고 뽑아내자는 것은 아니고 그것도 역사의 한 모습이 아닐까?
잘 보존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