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미카 6,1-4.6-8 마태오 12,38-42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억측을 늘어놓더니
(마태 12,24 참조),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 학자들과 함께 다가와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분의 놀라운 행위들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12,28 참조).
그러나 그들은 이를 보고도 못 본 척하며, 계속해서 그 정당성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12,39)
여기서 ‘절개 없는’으로 옮긴 그리스 말 ‘모이칼리스’는 본디 ‘간음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신의를 저버린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입술로는 하느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징’을 내놓으라며
의심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간음’에 빠진 그들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을 시험하려 들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에 대한 신의를 잃고 눈이 멀어 버린 인간은 더 자극적이고 화려한 ‘하늘의 표징’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2,39).
요나의 기적은 죽음 너머의 생명, 곧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 표징을 삶으로 받아들이려면 그저 기적을 구경하는 ‘관객’의 자리에서 벗어나 참된 회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 구원 드라마의 서막을 알리는 이들이 바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전주교구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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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순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미카 6,1-4.6-8 마태오 12,38-42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마르 8,11-12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표징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사실 예수께서는 믿음 없이 기적을 요구하면 냉정히 물리치시지만 믿음으로
구마나 치유를 빌면 들어주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대하기보다는 의심의 눈으로 대하기에
개탄하신 것이다. 예수께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체험이란 자신의 주관이 변하지 않는 어떤 태도를 유지하는 일로 본다면,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표징만을 쫓아다닐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표징이 없으면 믿음의 대상을 쉽게 떠날 것이 분명하다.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믿음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히브 11,1.3에는 믿음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의 확증이며,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빠르고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믿음을 갖고 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예수께 대한 변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면서 사는 일은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정원순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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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도밍고 신부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미카 6,1-4.6-8 마태오 12,38-42
기적
원고를 넘기기로 한 약속을 못 지키고 억지를 부려 다시 얻은 2차 마감일이 오늘이다.
담당 수녀님의 마음을 더이상 태우지 않으려고 모든 일을 중단하고 원고지 앞에서
몇 시간째 머리를 싸매고 있다.
늘 뒤로 미루는 나의 게으른 버릇을 언제쯤 고치나 한심해하는 것도 그 순간뿐이다.
오늘 복음을 가지고 한 시간 넘게 씨름하고 있는데 군종 신부인 본당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 휴가를 가진다기에 제주도를 권하고 몇 가지 편리를 봐주었는데
휴가를 즐겁게 지내고 있어 고맙다는 전화였다.
내가 부제품을 앞두고 있을 때 신학교 재수생 신분인 그와는 본당 밥을 같이 먹으며 지냈다.
방학 때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가족들보다 더 많았다.
그때 내가 본 이 후배는 무척 게으르고 건방졌으며 게다가 공부도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신학교 생활 1년 버티면 잘하는 거야’ 하고 내심 생각하면서
그가 신부가 된다면 기적이 될 거라며 다른 신학생들과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군대와 신학교 과정을 모두 끝내고 몇 년 전 사제가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고만 것이다.
게다가 내가 생각한 게으름은 그의 여유로움을 질투한 것이며,
건방지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그 단호함을 섭섭히 여긴 탓이었다.
지금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기적은 멀리 있거나 아주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 생각의 틀을 조금만 바꾸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을 만날 수 있다.
또 나의 구체적인 삶 안에는 기적의 가능성을 지닌 많은 일이 나의 눈에 띄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하기야 늦깎이 신부가 되고, 외방선교사로 살아가는 나를 두고 내 친구들 역시도
못 믿을 일이라 고개 흔들거나 기적이라고들 이야기하니까.
/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김종근 도밍고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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