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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약수로 올라가는 숲길 곳곳에서는 이끼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차가운 계류를 만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한다. |
인제군 미산계곡은 강원 북부의 대표적인 청정계곡 중 하나로, 내린천 최상류에 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티베트’로 불리며 오지 중의 오지로 꼽혔던 홍천군 내면의 살둔마을과 맞닿은 곳이기도 하다. 몇해 전부터 ‘래프팅 1번지’가 된 내린천이 각종 레포츠를 즐기려는 인파로 여름철에는 다소 번잡한 유원지 분위기라면, 미산계곡은 아직도 천연림으로 뒤덮인 심심산골의 느낌이다. 이곳에 한여름 무더위를 절로 잊게 만드는 시원한 청정계류가 흐르고 두메산골의 정취가 넘쳐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도회 사람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풍광도 곳곳에 숨어 있다.
# 가장 높은 곳의 약수, 개인약수
미산계곡에서 그나마 외부에 어느 정도 알려진 곳을 찾는다면 개인약수일 게다. 미산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개인산(開仁山·1314m)의 어깨쯤에 자리한 개인약수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약수로 알려져 있다. 약수라는 게 대개 사람 발길이 잦은 곳에 개발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개인약수는 해발 1080m의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1891년 함경북도 출신의 포수가 발견했다는 이 약수는 물맛이 좋기로도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몇해 전 개인산을 넘어가는 도로가 연결됐지만, 지금도 개인약수에 닿으려면 산 중턱의 차길에서 내려 30분 이상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개인약수는 물맛도 좋지만 이 산길의 정취가 그만이다. 숲으로 뒤덮여 한낮에도 어두컴컴하고 바위마다 이끼가 가득해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 숲길 곳곳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있어 자꾸 손발을 담그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약수까지 도달하는 데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된다.
# 도르래를 타고 계곡을 건너다
미산계곡이 얼마나 두메산골인가는 상남면 소재지를 봐도 알 수 있다. 면에 하나 있던 다방도, PC방도 최근에 모두 문을 닫았다. 모텔도 단 하나다. 그나마 단층건물. 얼핏 보니 방을 다 합쳐도 대여섯 개를 넘지 않을 것 같다.
이 고즈넉한 분위기의 상남면 소재지에서 446번 지방도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는 미산계곡에서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풍광을 만나게 된다. 폭이 꽤 넓고 물살이 거센 이곳에서는 철제 로프를 공중에 매달고 도르래를 돌려 계곡을 건너고 있다. 446번 지방도로 건너편 개인산 자락에 사는 몇몇 가구를 위해 다리를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바위가 많아 배로 건너기도 여의치 않으니 도드래를 사용하는 것이다. 미산계곡에는 이같이 로프와 도르래를 이용해 계곡을 건너는 곳이 4곳이나 된다.
미산계곡을 따라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홍천군 내면의 살둔마을로 이어진다. 조선시대부터 오지 중의 오지로 통하던 이곳에는 ‘살둔산장’이라는 2층 나무집이 서 있다. 딸 이름을 ‘내린’이라고 지을 정도로 내린천을 사랑하는 환갑의 산사나이가 2년 전까지는 이 산장을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살둔마을 앞에 도로가 생기며 옛 정취가 망가지고 있다고 못마땅해하던 그는 틀림없이 짐을 꾸려 더 깊은 산골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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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개인산방 뒤편의 계곡과 소. |
# 운치 넘치는 미산동천과 개인산방
446번 지방도를 따라 미산계곡을 오르내리다 보면 ‘미산동천(美山洞天)’이라는 글귀를 새긴 바위를 만나게 된다. ‘동천’은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니, ‘아름다운 산골의 경치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계곡을 따라 내려가 작은 다리를 건너니 ‘개인산방(開仁山房)’이라고 씌어 있다. 제법 널따란 풀밭과 담쟁이넝쿨로 덮인 단아한 단층집 하나가 보인다.
‘동천’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 개인산방 주변 풍광은 절경이다. 집 뒤편으로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오솔길이 하나 나 있다. 그 아래로는 내린천이 펼쳐진다. 오솔길 중간쯤에 세워진 작은 정자 앞 건너편 경치가 백미다. 우람하게 솟은 바위 벼랑, 그 아래로 급한 곡선을 그리며 호호탕탕 흘러가는 계류,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서늘한 바람….
이 오솔길을 걸어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폭포와 큼지막한 소가 나온다.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은 소에 쉴 새 없이 계류가 쏟아져 내린다. 상남면에도 이 계곡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낙없는 ‘비밀의 정원’ 아닌가.
이곳의 주인은 방 안에 개인산방을 ‘묵언과 자연의 소리를 사랑하는 이, 혹은 내면의 참 나를 찾아 길 떠난 나그네의 쉼터’라고 적어 놓았다. 급한 여울 건너편 이 ‘비밀의 정원’에서는 오랜 시간 머물지 않더라도 이내 고요한 성찰과 깊은 선정(禪定)에 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명승지와 비경을 찾아 전국을 다니다 보면, 지면을 통해 소개하지 않고 ‘나만의 장소’로 남겨 놓고 싶은 곳을 간혹 만나게 된다. 꼭꼭 숨겨 놓고 혼자 가끔 들러 즐기고 싶은 곳 말이다. 개인약수로 올라가는 숲길과 미산동천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인제·홍천=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
서울·수도권에서 출발할 경우 양평, 홍천을 거쳐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해 451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상남 방면으로 향하는 31번 국도를 탄다. 미산계곡 일대에 민박집은 많다. 개인산방(033-463-8825)도 미리 연락을 하면 묵어갈 수는 있지만, 시끌벅적한 행락객은 받지 않는다. ‘미산 막국수‘(033-463-0539)는 막국수와 편육으로 유명하고, ‘미산민박식당’(033-463-6921)은 두부요리 전문점이다. 부린촌(033-463-0127)은 송어회를 내놓는다. 살둔산장(033-435-5984), 상남면사무소(033-460-2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