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해결을 위한 성경적 접근
우리나라의 문제는 과거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마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사는 공동체의 문제도 되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왜냐? 과거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거 속에서 상처가 없고 한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의 해답이 성경에 있다고 믿는 우리는 과거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까?
1.복수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라.
복수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원수갚는 일을 우리에게 위임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원수를 갚는다면 월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대신하는 것입니다. 물론 옳고 그름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판자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원수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빼앗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억울함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되면 내가 갚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생애를 추적해 보면 복수의 의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복수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요셉은 이 문제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풀고자 했습니다. 그는 양식을 구하기 위해 그에게 나타난 자기를 애굽의 노예로 팔아넘긴 원수 같은 형제들들에게 통역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8절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풀어가겠다는 요셉의 의지입니다.
2.분노로 접근하지 말라.
우리 안에 분노가 있다면 분노를 통제할 수 없다면 아직은 해결의 때가 아닌 것입니다.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다스려지지 않은 분노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그 어떤 말도 유익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도 해결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 내 속에 분노가 끓고 있다면 분노가 해결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 오랜 세월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분노의 문제처럼 치열한 인간의 문제도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요셉은 얼마나 기다린 줄 아십니까? 창42:1 그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 요셉이 형들과 헤어진 지 22년이 지난 때입니다. 형들과 헤어진 지 13년 만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7년 풍년 후 흉년이 다가와서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22년이 지난 때입니다. 하나님이 때를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때를 주셨습니다. 마침내 애굽에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냉정한 마음으로 마음을 이성적으로 준비한 다음 형들을 만난 것입니다. 유치한 사람일수록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3.서로의 승리를 위해 접근하라.
쌍방의 승리를 위해 접근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형들을 위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윈윈 상생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권면입니다. 우리는 복수 드라마를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복수는 최악의 것인지 모릅니다. 한평생 복수하기 위하여 이를 갈고 무술를 연마합니다. 그리고 복수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한평생의 그 아까운 인생의 모든 시간이 물거품이 됩니다. 그리고 적들에게는 또다른 빌미를 주어서 한 평생 두 다리 뻗고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자손대로 내려가는 복수극은 때로는 수백년이 가는 복수극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장미전쟁이 그 실체입니다. 1455~1485년에 걸쳐 영국의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 사이에서 벌어졌던 왕위 쟁탈전으로 역사에서는 백년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 기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과 물질이 소모되었겠습니까? 무엇 보다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 우리는 요셉의 사건을 통하여 참으로 윈윈하는 성경적 처세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형들에게 참된 부요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영원한 승자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갈등이 찾아올 때 요셉처럼 서로의 승리를 위해 접근해야 합니다.
4. 관계 회복의 의도로 접근하라.
요셉에게 형제들과 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없었다면 이런 연극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요셉은 관계 회복의 때가 되었는지 형들에게 반성의 마음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계속해서 형들을 테스트합니다. 사실 인간관계의 왜곡은 대부분 쌍방 과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일방적으로 당했습니다. 전적으로 형들의 실수입니다. 이런 경우 잘못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21-22절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 하였지도 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형들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양심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형제들의 양심이 깨어나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제 때가 되었구나 확신한 것이다
5.서로의 필요를 채우면서 접근하라.
그래야 온전한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접근하면 그것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이렇게 접근한 것을 보게 됩니다. 25절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 일단 아버지의 명을 받고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으니까 양식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사랑한다면 어떤 필요를 공급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6.하나님의 때에 손을 내밀라.
하나님의 때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때가 무르익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큰 상처를 입힐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때를 기다리고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침내 결정적인 시기가 왔습니다. 창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 이 순간 용서와 회복의 드라마가 연출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모든 과거의 상황에서 성경적인 접근으로 늘 과거에서 자유케 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은 항상 연약하기에 인간관계에서 상처 나 아픔으로 괴로운 일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성경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배우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늘 인간관계에서 미숙합니다. 그래서 늘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해결하다가 더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주님 우리의 미숙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인간관계에서 좀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요셉처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