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육사 41기의 신문에 실린 글이 인상 깊었다. 대략 5~6년 전이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육사 사관생도 신조를 통해, 육사는 세 명의 대통령과 수십 명의 장관과 대부분의 장군을 배출했지만, 정작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육사 출신들에 대항하여 목숨 걸고 싸우며 투옥되고 죽임을 당한 대학 운동권 사람들 이었다‘
육사 출신들이 육사 사관생도 신조와는 딴 판인 행보를 했다는 지적이다.
육사 출신들이 이래서 그랬을까. 학군사관 출신인 서정갑 씨는 마치 육사 출신들과 경쟁하듯 막나가는 대열에 합류했었다. 그가 회장이었던 대령연합회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시민 조문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패륜의 극치를 보여줬었다. 그랬음에도 조선일보 방 씨 집안이 사학재단 이사로 있는 연세대학교는 그런 그에게 연세인상을 수여하기도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으로 탄핵하고 촛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임에도 육사는 여전하다. 아니 더 막 나간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집회에서는 늘상 육사 동기회 깃발을 본다. 육사 교정의 홍범도 장군상 철거 시도로 사회에 물의를 빚기도 했었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군부독재시절 고문으로 다리를 저는 민주화운동가들을 기소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검찰이 검찰공화국을 이룬 후 육사 출신들이 검찰 출신 대통령 밑에서 황당하게도 계엄 내란을 주도했다. 육사 출신 별들이 주르륵 구속되었다.
얼마 전 민주당 부승찬 의원 주도로 국군의 뿌리를 명확하게 하자는 국군조직법 개정 공청회가 있었다. 독립군과 광복군이 국군의 기원이라는 것을 법률로 규정하자는 작업이다. 공청회에서는 육사와 관련된 사람들의 반론이 있었다. 육사회장이었다는 젊은 토론자는 격한 반응이다. 독립군과 광복군이 국군의 기원이라고 규정하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이 마구 학살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놀라운 반응이다.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이 국군 초기 참모총장을 휩쓴 역사가 아프다. 해방 후 미군경비대가 국군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엉망이다.
근래 육사에는 자퇴를 고민하는 육사생도들이 제법 된다는 말을 듣는다. 육사를 지원하려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라고 한다.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표다. 희망이 보인다.
해병대 박정훈 대령이 재판 중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윤석열 정부만 모른 척이다. 모른 척이 아니라 그들은 박정훈 대령이 항명의 죄를 저질렀다고 해야만 했다.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다 곤욕을 치루고 있는 해병은 또 있다. 그가 마약 사건을 수사했던 백해룡 경정이다. 백해룡 경정은 해병 661기다. 두 사람이 같이 사회에 공익제보를 한 사람에게 주는 호루라기상을 수상했다.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한 해병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5년짜리’ 정부에 의해 제재를 받는다는 것은 현 윤석열 정부가 정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날 상을 받은 언론인과 명태균 사건의 제보자, 김순호 프락치 자료 관련자 등이 수상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있다. 모두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한다. 이런 상을 받지 않는 세상이 어서 와야 한단다.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의 세상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