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날들이 감사하다
- 광주에서 청주로 거처를 옮기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장 9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언 19장 17절)
저와 김혜경 권사는 내일(12월 3일) 정든 광주를 떠나 청주로 거처를 옮깁니다. 1988년부터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천혜경로원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3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젊을 때 낯선 광주에 와서 인생의 황금시절을 은혜가운데 잘 보내고 70대에 다시 새로운 곳으로 옮기게 되어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간 고락을 함께 한 여러분과 작별하는 것은 섭섭하기 그지없으나 믿음의 자녀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웃는 모습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2009년 어느 주일, 어린이들과 성경공부를 마친 후 활짝 웃는 모습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동작동 국립묘지에 향나무 두 그루를 기념식수하고 종로구에 있는 청운양로원과 효창동의 고아원에 떡 한 말씩을 전달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전하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지금도 매년 한 차례 이상 동작동 국립묘지를 방문하며 호국영령에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결혼 후 어린이복지재단을 통하여 초등학생과 결연을 맺어 여러 해 후원을 하다가 광주에 오면서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천혜경로원과 인연을 맺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뜻밖에 청주로 이사하며 요양원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은 앞의 성경말씀처럼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힘입은 것임을 새기게 됩니다. 더불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는 교훈을 함께 체험한 날들이 자랑스럽고 소중하였음을 회고하면서 작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1. 천혜경로원과 함께 한 날들이 자랑스럽다
6년 전 천혜경로원 창립 60주년을 축하하며 쓴 글의 일부를 살펴본다.
오늘( 2012년 7월 13일)은 천혜경로원이 설립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상흔, 지독한 가난, 격변의 세월을 견디며 형편이 어려운 어른들의 낙원이요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로 우뚝 선 천혜경로원의 모든 분들에게 충심으로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이 기회를 통해 학동그리스도의 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지켜본 천혜경로원의 발자취를 되새겨본다.
(1) 이웃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설립자, 강순명 목사
어느 신문은 천혜경로원의 시작을 이렇게 적었다.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강순명(1898~1959) 목사가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의 구걸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리를 힘들게 끌며 골목을 다 다녀도 보리쌀 한 줌도 얻지 못한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본 강 목사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자기 집에 데려갔다. 하루하루를 죽으로 연명하며, 방 두 칸에 대식구가 겨우 살아가는 비좁은 집에 식구 하나가 늘었다. 그렇게 집에 데려온 사람이 무려 30여 명, 그것이 천혜경로원의 시작이었다. 1952년 7월이었다.'(2007년 2월 21일자, 한겨레신문)
강순명 목사가 천혜경로원을 운영한 기간은 7년여로 길지 않았지만 양로원에서 요양원, 전문요양원으로 그 기능이 바뀌면서도 믿음, 소망, 사랑의 설립정신을 구현하면서 부인 장신애 여사, 아들 강은수 원장, 며느리 박영숙 부원장에 의해 설립 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한 줄기 등불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음은 노인복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오늘의 사회복지분야에 좋은 본보기라 할 것이다.
(2) 삶의 보금자리, 오두막에서 궁궐이 되다
천혜경로원에 처음 왔을 때 있던 건물들은 모두 다섯 채로 어느 것은 새로 지어 제법 말쑥한 건물이었으나 설립당시에 지은 예배당과 부속건물은 토담집에 지붕에서 물이 샐 만큼 낡은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800평이 넘는 넓은 대지와 연면적 천여 평에 이르는 현대식 건물에 비단처럼 잘 자란 잔디밭을 비롯하여 갖가지 화분과 수석, 서화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궁궐처럼 쾌적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잠언 24장 3-4절)는 말씀 따라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견고하고 귀한 보배로 채운 방처럼 아름답게 쓰이라.
(3) 경로원을 가꾸고 일군 일꾼들
처음 왔을 때 천혜경로원장은 강순명 목사의 부인이신 장신애 여사였는데 1995년에 90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이를 접한 사회 각계에서 훌륭한 삶을 칭송하는 글을 실었다. 천혜경로원은 1998년에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강은수 원장과 박영숙 사무국장은 '좋은 한국인상'과 '복지실천상'을 수상하는 등 사회에 큰 본이 되는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 수십 년간 한결같이 어른들을 섬기는 여러 직원들과 말없이 힘을 보탠 봉사자, 후원자들의 노고도 값지다. 모두들 합력하여 선한 일에 힘쓴 일꾼들이다.
(4)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들
해마다 10여명의 어른들이 세상을 떠난다. 그간 얼추 200여 분이 이곳을 거쳐 삶을 마감하였다. 설립 때부터 헤아리면 그 몇 배가 되리라. 그때마다 마지막 가는 길을 정성으로 챙기며 씻겨주고 옷 갈아 입혀 드렸다. 또한 간절한 기도와 정중한 예배로 이분들의 하늘 길을 아름답게 전송하였다.
모두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들,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손길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의연한 가운데 꾸준히 보람과 감동을 가꾸어온 천혜경로원의 지난날을 거울삼아 앞날에 더 큰 발전과 번성 있으라.
2.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온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이어서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이야기를 몇 가지 되새긴다.
(1) 박세화 목사님과 함께 한 교회, 뒤를 받친 가족들
처음 교회에 왔을 때는 담임 목자가 없어서 주일마다 서울 등지에서 오시는 목회자들이 번갈아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러다가 1989년에 박세화 목사님이 부임하셔서 2017년에 사임하실 때까지 28년간을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목양하시었다. 4남매를 훌륭하게 양육하고 명예롭게 은퇴하여 아름다운 삶의 본을 보인 박세화 목사님의 남은 때가 강건하고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정신을 받들어 교회의 기둥으로 봉사하는 것도 감사하다.
(2) 연약한 교회를 지킨 교우들
처음 왔을 때 양로원 어른을 제외한 교인은 강은수 원장 가족과 임복은 권사와 구영하 집사 가족 등 십여 명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젊은 세대들이 교회의 큰 일꾼들로 성장한 모습이 자랑스럽다. 믿음직한 성도들이여, 몸 된 교회를 잘 가꾸고 발전시키기시라.
(3) 선한 사업에 힘쓰자
우리 교회는 교회에 주어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나름대로 잘 감당하고 있다. 매년 학동 인근의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인근의 복지서설지원, 불우이웃돕기성금, 선교헌금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베풂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앞으로도 선한 사업에 더 많이 힘쓰기를 비는 마음이다.
(4)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배우자
지난 봄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잡지인 참빛에 ‘책은 삶의 영혼이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실었다. 그중의 한 부분을 옮겨본다.
‘대학에서 25년간 강의하면서 매 강좌가 끝날 때마다 책거리를 하였다. 책거리는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동몽선습·소학 등의 책을 뗀 후 스승의 노고에 답례하고 학동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강단에 서자 학생들이 한 학기동안 열심히 공부한 노력을 치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강좌가 끝날 때마다 떡집에 인절미 등을 주문하여 나름의 책거리를 정년 때까지 이어갔다.
정년 즈음 교회어린이를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내용은 잠언, 31장으로 이루어진 잠언을 한 주 한 장씩 공부하는 방식이다. 대학 강의 때보다 정성을 기울여 미리 준비물을 만들고 강의 후에는 어린이들이 돌아가면서 독후감을 작성하여 발표케 하였다. 지혜란 집사가 도우미를 자청하여 학습의 수준이 높아졌고 강좌가 끝난 후에 이를 ‘지혜가 부른다’는 책자로 만들어 교우들과 공유하였다. 푸짐한 책거리를 곁들여 성공적인 학습을 자축하기도 하였다.
지난 여러 해, 예배 시작 전에 10분여 교우들과 함께 성경읽기를 계속하였다. 성경은 신구약 66권, 1,189장으로 구성된 방대한 책이다. 성경읽기의 참여자는 주로 양로원의 어른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 분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더러는 읽은 말씀을 새기고 가셨으리라. 드디어 작년 6월 25일, 성경 첫 권인 구약의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권인 신약의 요한계시록까지 일독을 마쳤다. 이를 자축하기 위하여 떡집에 떡을 주문하여 교우들과 나누었다. 안내말씀으로 교우들에게 전한 멘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복음 4장 4절)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렇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지녔다. 육체는 물질을 필요로 한다. 그 첫째가 음식, 떡은 그 상징적 요소다.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말씀,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말씀을 제대로 익히자.
박세화 목사님은 5년여 지속된 성경읽기가 끝난 것을 치하하며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장 15~17절)’
함께 보낸 천혜경로원과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30년 동안 남루한 외양은 화려한 궁전으로 탈바꿈하였고 단출한 식단은 풍요로운 영양식으로 격상되었으며 국내외를 섭렵한 수많은 나들이, 윷놀이를 비롯한 흥겨운 이벤트, 한 가족처럼 오붓한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을 살찌우고 아름답게 가꾸어준 것을 감사하며 남은 때에도 이러한 축복과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풍족하게 부어지기를 염원한다.(2018년 12월 2일, 교회에서 전한 인사말씀에서)
첫댓글 교수님께서 천혜와 교회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이사 가셔도 '인생은 아름다워'는 계속해서 집필되겠지요?ㅎ
교수님 가시는 길...꽃길만 걸으소서.
인생의 황금기를 광주대학에서 또 학동 그리스도의 교회와 천혜경로원에서 30년을 웃고 즐기며 보내셨던 때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렸음을 실감하며 마음 한 구석이 텅 ~ 빈것 같습니다. 태어나 소리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긴 처음인데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왜? 일까요? 청주 가셔서도 이곳을 잊지 말아주시고 좋은 소식 오가며 기회되는데로 만나서 또 새 소식을 들으며 즐겨보십시다.
글을 읽는 내내 30년동안 함께한 천혜경로원과 학동 그리스도의교회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정말 행복한 순간순간이었습니다. 목사님 부재중에 오셔서 같은 일이 반복되었네요. 아마도 좋은 분이 곧 오실것입니다. 청주에서도 광주에서처럼 선한 영향력으로 본이 되시고 두분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그동 안 하나님 사랑 가운데서 형제 자매 됨에 감사을 드림니다 ~~ 늘 건강하시고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두분이 우리 곁에 계셔서 행복 했습니다. 우리들에사랑이 계속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다음을 기대합니다
내가 김태호 교수님과 인사를 나눈 시간을 되돌아 보니 10년 전인 것 같습니다
2008년 춘 3월 19일에서 3월 20일 천혜경로원에 입주해서 생활하시는 노인들의 일상을 책으로 꾸며 펴내기 위한 봉사일과 천헤경로원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구내식당에서 점심도 함께 하고 사진도 찍고 했던 손홍국입니다. 학동그리스도교회와 천혜경로원과 30년 인연을 맺여 오며 사랑과 봉사로 고락을 함께하며 천헤경로원의 힘이 되어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든 광주를 떠나 청주로 이주하시게 되어 작별을 하시게 되셨다니 아쉬운 마음이듭니다.
去者必返
會子定離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도 있으니
천혜경로원의 모든분들의 작별의 아쉬움을 함께 느껴봅니다
그러나 不遠不近 이란 말과 같이 멀지도 가까이도 않은 터에서 그동안 집필하시던 <인생은 아름자워라> 玉稿의 연재는 계속하여 이어지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울러 내외분께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