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어떤 인생
윤여희
제주살이 하고 있는 집은 제주공항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다. 주변에는 돌담에 둘러싸인 양배추와 브로콜리 밭이 있고 물빛 고운 해수욕장도 있다. 문화환경 취약 도시에 문화 체육관광부가 지원해주는 구석구석 문화배달 프로젝트 덕분에 매달 이웃 마을에서 수준 높은 연주회나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반 상영관에서는 관람하기 힘든 작품성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작은 영화관 기획전도 있다. 시골에 살면서도 눈호강, 귀호강 혜택을 무료로 누리게 되었다.
영화 리빙:어떤 인생의 주인공 윌리엄스는 근엄한 표정으로 일상 생활을 반복한다. 런던 시청 공무원인 윌리엄스는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열심히 키운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지만 소통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후 검소하게 살던 윌리엄스는 예금을 찾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연히 만난 극작가와 함께 향락의 세계를 경험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던 마가릿을 만나게 된다. 젊고 생동감 넘치는 마가릿을 만나면서 무감각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보게된다. 쓰레기가 쌓인 공터를 아이들 놀이터로 만들어 달라는 주부들의 민원을 여러 부서로 돌리다 서류를 쌓아놓고 거들떠보지않은 자신을 각성한다. 장면은 바뀌어 윌리엄스의 장례식장. 아버지가 시한부였음을 몰랐던 아들은 당황스러워한다, 최선을 다하여 완성된 작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행복한 얼굴로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윌리엄스를 신입직원 웨이클링이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라는 소개 글을 보며 오래 전에 본 영화 버킷 리스트와 비슷하리라는 추측을 하였다. 버킷리스트는 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해 온 흑인 정비사 카터와 성격이 괴팍하여 주변에 아무도 없는 억만장자 잭이 같은 입원실에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남은 시간 동안 죽을 날만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온 자기를 위한 일을 하겠다고 의기투합하여 모험을 떠나는 코미디 영화다. 영화 버킷리스트는 최고급 레스토랑, 팔에 문신 새기기. 스카이다이빙. 카레이싱 등 버킷리스트를 시행한다. 잭은 관계가 단절되었던 딸과의 만남으로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그러나 영화이기에 가능한 설정도 있어 현실감이 약간 떨어졌었다. 그러나 리빙: 어떤 인생은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을 때 일탈을 경험하거나 대단한 버킷리스트를 완성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죽음의 공포에 휘둘리지않고 의연하게 현실에 충실한 삶을 보여준다.
주변에는 암 수술을 하고 밝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우리나라 기대수명 83세까지 생존하면 암에 걸릴 확률은 3명 중 1명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어쩌면 미래에 나에게도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방문할 수도 있겠다. 한 번도 청구하지 않았지만 실손 보험료를 꼬박꼬박 붓고 있다. 우리 부부를 위해 상조 회사에도 가입하였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등록 해두었다. 그리고 만약 삶이 얼마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이제는 꼭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딱히 작성할 버킷리스트도 떠오르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에선 천국의 입구에서 신이 ‘삶의 기쁨을 찾았나? 그리고 남에게도 기쁨을 주었나?’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답변 할 수도 없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법륜 스님은 왜 살아야 하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할 재능과 경제력은 부족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에게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무재칠시(無財七施)는 할 수 있으리라. 얼굴빛을 환하게 하여 상대를 대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은 노력하면 가능하겠다. 때로는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 와도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에 집중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