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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만 넘던 산을 발로 넘다 – 여우봉,사향산,관음산
1. 사향산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국망봉
산이 바로 그렇다. 산은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눈짓을 보낸다. 그것은 이미 남이 아니다. 내 속에
있었던 것의 손짓이요 눈빛이다. 인간도 본디 짐승의 한 무리여서 그런 걸까. 인류학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그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인간이 본디 지니고 있었던 바의 것을 더 많이 지니고 있어서 그런 걸까? 혹은 이것을
추체험(追體驗)이라 부르는 걸까.
사람이 산을 쳐다보면 그것이 설령 멀리 갈맷빛으로 아득히 보이더라도, 혹은 그것이 험준해 보여 감히 근접해 볼
용기를 품게 해주지 않더라도, 공연히 그야말로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무의식
적으로 자신의 안에서 찾고 있었던 바의 것을 산이 품고 있다는 것일까.
―― 김장호,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산의 미학’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1월 21일(일) 흐림, 오후에는 눈발 날림
▶ 산행인원 : 2명(광인, 악수)
▶ 산행코스 : 산정호수 상동주차장,등룡폭포,안덕재,여우봉,여우고개,사향산,낭유고개,관음산,낭유고개
▶ 산행거리 : 도상 15.5km
▶ 산행시간 : 7시간 44분(07 : 36 ~ 15 : 20)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영평농협(운천)으로 가서, 10번 군내버스 타고 산정호수 상동주차장
으로 감
▶ 올 때 : 낭유고개에서 카카오택시 불러 타고 이동으로 와서, 시외버스 타고 동서울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00 – 동서울터미널
07 : 10 – 영평농협(운천)
07 : 36 – 산정호수(山井湖水) 상동주차장, 산행시작
08 : 19 – 등룡폭포
08 : 37 – 안덕재
09 : 22 – 헬기장, 휴식( ~ 09 : 35)
10 : 07 – 여우봉(726m)
10 : 47 – 여우고개
11 : 28 – 군사도로 벗어나 생사면 트래버스
11 : 45 – 사향산(麝香山, 737m), 점심( ~ 12 : 10)
12 : 28 – 677m봉
12 : 50 – 낭유고개, 휴식( ~ 12 : 55)
13 : 25 – 570m봉
14 : 13 – 관음산(觀音山, △732.6m), 휴식( ~ 14 : 23)
15 : 00 – 570m봉
15 : 20 – 낭유고개, 산행종료
15 : 50 – 이동터미널
16 : 15 – 동서울행 시외버스 출발
17 : 36 - 동서울터미널
2.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2. 산행 그래프
▶ 여우봉(726m)
대중교통으로 명성산이나 여우봉 등의 들머리인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을 가기로 가장 이른 시간은 동서울터미널에
서 06시에 동송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영북농협(운천)에서 산정호수 가는 군내버스(10번)으로 환승하는 것이다.
오늘은 영북농협에서 환승하는 데 걸린 시간 20분을 포함하고서도 산정호수까지 1시간 36분이 걸렸다. 요금은
10,050원(8,600원 + 1,450원)이다. 한편 도봉산역 광역환승센터에서 출발하는 1386번 버스는 47개 정류장을 거치
며 1시간 46분 걸린다고 한다. 요금은 2,800원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동송 가는 버스는 포천까지 무정차로 간다. 이후 두 곳 정류장을 들르지만 타고 내리는 승객이 없
다. 나는 차창 밖 여명의 경치가 있을까 카메라 준비하여 차창에 서리는 입김을 훔치며 내다보았으나 캄캄한 밤이기
도 하고 날이 흐려 보이는 게 없다. 영북농협 정류장에 내리면 산정호수 가는 버스는 길 건너 정류장에서 타야 한다.
나는 내린 정류장에서 그대로 버스만 갈아타는 줄 알았는데 광인 님이 길 건너서 타야 한다고 해서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산정호수에서 서울방향으로 갈 때 내린 정류장에서 산정호수 쪽으로 간다니.
우리는 산정호수 하동주차장에 잘못 내릴 뻔했다. 버스기사님이 중무장 등산복 차림인 우리를 보더니 명성산을 가
시는 게 아니냐며 다음 상동주차장에서 내리시라고 한다. 하동주차장에서 상동주차장까지는 12km로 버스로 5분
걸린다. 버스기사님의 눈썰미로 낭패를 볼 것을 피했다. 고마운 일이다.
상동주차장에 내려 곧장 먹자골목으로 들어간다. 그 위 신선폭포는 겨울잠에 들어갔다. 얼굴만 조금 내놓고 두툼한
얼음이불을 뒤집어썼다.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코고는 소리로 들린다.
오룩스 맵에는 신선폭포 바로 위에서 계류 건너 지능선을 타고 여우봉을 오르는 길이 있다. 물론 여우봉 등로를
알리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고 그리로 간 아무런 인적도 없다. 오늘은 설벽으로 보이는 그리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지나친다. 등로 곳곳이 빙판이다. 때 이르게 아이젠을 찬다. 한때는 바위가 긁힐까봐 혹은 나무뿌리에 생채기가
날까봐 아이젠 차는 것을 꺼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발바닥에 미끌미끌하고 아슬아슬한 감촉을 즐기고 싶어서
일부러 아이젠을 차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낙상이 겁난다. 흔히 나이 들면 낙상이 암보다 무섭다고 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아이젠을
차니 발밑에 규칙적으로 아작아작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이른 아침 적요한 산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계류 얼음장
군데군데 트인 소(沼)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맑다. 저 위쪽에 전차훈련장이 있어 항상 흙탕물이 흘렀던 계류다. 잰걸
음 30여분 걸려 등룡폭포다. 등룡폭포도 두터운 얼음이불 뒤집어쓰고 겨울잠을 자는 중이다. 그런 등룡폭포를 관폭
대에서 바라보고, 너덜 내려 소 가까이 다가가서 올려다보고, 데크계단 오르면서 내려다본다.
차츰 계류 벗어나 설사면 오름길로 든다. 전차훈련장 접근을 막는 철조망과 그 앞 초소를 만난다. 이정표가 안내하
는 명성산 억새밭은 철조망 왼쪽의 잘 난 길을 오르고 명성지맥 안덕재로 가는 길은 막혔다. 우리는 철조망 오른쪽
사면을 내려 계곡으로 가서 계곡 너덜지대를 오르다 계곡 왼쪽의 넙데데한 사면을 누빈다. 그러다 안덕재 오르는 길
과 만나고 얼마 안 가 공사 중인 듯한 어수선한 안덕재에 올라선다. 전차훈련장이 황량한 설원이다.
전차가 오르는 길(?)은 매끈한 슬로프로 변했다. 슬로프 오르면서 바라보는 건너편 설산들이 반갑다. 명성산, 각흘
산, 광덕산, 상해봉, 화악산, 국망봉 ……. 특히 우리가 높이 오를수록 광덕산은 점점 더 크게 웅자를 드러낸다. 여우
봉 가는 눈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눈은 발목을 덮는다. 게다가 습설이라 푹푹 빠지고 발을 얼른 얼른 빼내기가
수월하지 않다. 자연히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너른 헬기장에 올라선다. 우선 헬기장 가장자리에 다가가 화악산과
응봉, 그 앞의 한북정맥 장릉을 감상한다. 하늘은 흐리지만 시계는 맑다.
헬기장 한가운데 배낭 벗어놓고 첫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로 목 축인다. 헬기장 벗어나면 전차훈련장도 벗어나게
된다. 능선마루에는 사각기둥의 군사보호구역 표시가 연이어 있다. 등로는 그것보다는 색 바랜 산행표지기가 믿을
만하다. 고라니일까? 그가 해놓은 러셀 따르다가 엉뚱한 데로 가기도 한다. 706m봉을 넘고 가파른 오르막의 첨봉과
맞닥뜨린다. 옛적 흐릿한 인적은 직등하지 않고 오른쪽 사면을 돌아갔다. 이 또한 큰 부조로다 하고 냉큼 그에 따른다.
얼마간 가다보니 주위가 소연해지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지금 가는 능선 보다 저 왼쪽 능선이 더 통통하다. 가다
말고 지도를 꺼내어 들여다보니 신선폭포 위쪽 지능선을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차 하고 뒤돌아선다. 그리고 사면
돌아 넘은 봉우리를 오른다. 여우봉이다. 백여우처럼 앙증한 정상 표지석이 눈 속에 묻혀 있다. 조망은 사방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여우고개를 향한다. 정남진한다. 눈길은 아무렴 내리막이 편하다. 함부로 눈길 지친다. 산자락 밭
두렁 지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방지 철조망 쪽문을 열고 나가면 여우고개다. 고갯마루와 그 주변은 산정교회가 있
는 마을이다.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에서 보는 여유고개의 유래이다. 이 지명사전은 우리나라(남한)의 여우고개 12곳을 소개
하는데 모두 여우가 출몰한다느니 고개를 넘다가 여우에 홀렸다느니 등을 그 유래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 전에 북한이 닦은 길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망을 보았다 곧 엿보았다 하여 엿본
고개가 여우고개로 되었다고 한다. 또는 여우가 많이 서식하였는데 겨울에는 양지쪽에서 여름에는 응달쪽에서 살았
다고 하여 여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산정호수 남쪽에는 여우고개(狐峴)라는 마을이 있는데 여우가
자주 나타났다고도 한다.”
3. 등룡폭포
5. 안덕재, 전차훈련장
6. 안덕재에서 여우봉 쪽 전차훈련장을 오르면서 바라본 광덕산, 그 왼쪽에 상해봉도 보인다.
8. 각흘산
9. 한북정맥 국망봉
10. 멀리 가운데는 화악산
11. 맨 오른쪽은 각흘산, 맨 왼쪽 뒤는 명성산
12. 각흘산
13. 멀리 왼쪽은 화악산, 너른 헬기장에서
▶ 사향산(麝香山, 737m)
농로 따라 오르다 북쪽 멀리 금학산, 지장산, 관인봉 등의 조망이 트이는 공터에서 휴식한다. 점심은 사향산 정상에
서 먹게 될 것이다. 농로는 사향산 군부대로 가는 군사도로로 이어진다. 명지지맥 능선마루금을 가려면 왼쪽 능선을
붙들어야 하는데 여우봉을 넘으면서 눈길에 어지간히 지치기도 했던 터라 발걸음이 편한 이 군사도로를 계속 따라
가기로 한다. 산허리 돌고 돈다. 편한 발걸음은 얼마 가지 못한다. 송풍기로 도로의 잔설을 치우는 군인들을 만난다.
어디로 가시는가요? 민간이 출입금지구역인 군부대로 가면 안 되는데.
군부대로 가지 않고 그 전에 오른쪽 사면을 치고 사향산 정상으로 갈 겁니다.
철조망 가까이 가서도 안 됩니다.
전에도 갔던 길이라 잘 압니다.
그래도 우리가 믿기지 않았던지 군인 한 명이 부리나케 뒤쫓아 온다. 저렇게 가파른 설사면을 어떻게 뚫고 가시려고
하나요? 지도가 있으니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예전에 광인 님이 명성지맥 종주할 때는 이 구간에 비가 엄청 쏟아졌
다고 한다. 그 비와 안개 때문인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군부대 정문 앞을 통과하여 철조망을 붙들고 사면을
돌아 올랐다고 한다. 오늘은 하는 수 없이 철조망을 십 수 미터 남겨두고 오른쪽 생사면을 돌아 오른다.
사향산 정상 0.5km 전이다. 도로 가드레일 넘어 눈 깊은 도랑 건너고 사면에 붙는다. 얕은 교통호 따르다 올려친다.
어디이고 곧추선 오르막이다. 오르막에는 눈이 더 깊은 것 같다. 땅에 코를 박는 게 아니라 눈 속에 코를 박는다.
잡목 성긴 데 골라 잡목 붙들며 오른다. 교대로 러셀한다. 나 혼자 걸음이라면 아무 데라도 상관없이 막 가겠지만 뒤
에 오는 광인 님을 생각하니 내깐에는 퍽 조심스런 걸음 한다. 물론 광인 님도 그러시리라.
군부대와 철조망을 저 아래 두고 능선에 올라선다. 바윗길 잠깐 지나면 노송 아래 널찍한 암반이 빼어난 경점이다.
한북정맥 국망봉 장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대관이고 장관이고 특관이다. 내 여태 국망봉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보지 못했다. 김장호가 ‘산의 미학’에서 말한 그대로다. 국망봉과 그 너머 명지산이 먼 설산으로 험준해 보여 지금은
감히 근접해 볼 용기가 나지 않지만, 공연히 그야말로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온다.
이 경점에서 몇 미터 더 오르면 사향산 정상이다. 레이더 안테나가 있고, 그 옆에 오석의 아담한 정상표지석이 있는
너른 공터다. 조망이 훤히 트인다. 광덕산에서 청계산, 길매봉에 이르는 한북정맥 장릉이 눈 아래다. 앉아서도 그
장쾌한 모습을 바라보느라 점심 밥맛과 탁주 술맛을 그만 잊는다. 이 경치를 이대로 두고 가기에는 차마 아깝지만
감연히 발길 돌린다. 내리는 등로가 바윗길이라 약간 까다롭다. 긴 한 피치 더듬거려 내리고 나면 부드럽다.
사향산 정상에서 점심 먹을 때 광인 님이 급한 일이 생겨 낭유고개에서 산행을 더하지 못하고 서울을 가야겠다고
한다.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산행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 이제 말한다고 했다. 나 혼자서 관음산을 오르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겠는데 하산하는 게 께름칙하다. 명성지맥 길로 도내지고개까지 가기는 너무 멀다. 당초 예정했던
관음산 정상에서 약 220m 서진하여 남동쪽 지능선을 내리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광인 님에게 이런 사정
을 얘기했더니, 러셀이 되어 있는 낭유고개로 뒤돌아오는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한다. 탁견이다. 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산행마치고 집에 가서 저녁 먹을 때 아내에게 이런 일을 얘기했다가 된통 나무람만 들었다. 함께 산행하는 일행이
일이 생겨 도중에 산행을 마치면 아쉽더라도 함께 산행을 마쳐야지, 무슨 청승이라고 혼자서 남은 산을 마저 갔느냐
이다. 그 산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가도 후회하고 가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라, 그럴 바에는 가서 후회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변명이 고작이었다.
14. 화악산 왼쪽은 응봉
15. 여우봉 가는 능선
16. 여우봉 가는 길. 눈이 습설이다.
17. 여우봉 정상, 사방 나무숲에 가려 조망이 없다
18. (여우고개를 약간 벗어난 농로에서 바라본) 멀리 왼쪽은 종현산
19. 맨 오른쪽 뒤는 금학산
20. 맨 오른쪽은 금학산, 맨 왼쪽은 지장산
21. 사향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국망봉
22. 멀리 가운데는 명지산, 그 앞 오른쪽은 귀목봉
23. 왼쪽은 도마치봉, 오른쪽 앞은 가리산
24. 명지산과 귀목봉(오른쪽)
▶ 관음산(觀音山, △732.6m)
사향산에서 서진하여 서서히 내리다 돌연 불끈 솟은 677m봉을 넘으면 낭유고개까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677m
봉에서는 서쪽과 북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가까이 보이는 제법 웅장한 산릉은 각흘봉(466m) 연릉이리라. 언뜻
나뭇가지 사이로 낭유고개에서 관음산을 오르는 장릉을 보고 약간 움츠러든다. 그래도 가야 할 길. 낭유고개는 깊은
절벽의 절개지라 왼쪽 사면으로 방향 틀어 내린다.
광인 님은 낭유고개에서 택시 불러 이동으로 가겠다고 한다. 조금 후에 나도 그럴 것이다. 낭유고개에서 관음산
정상까지 도상 2.4km이다. 이 고개 남쪽 아래 낭유리(狼踰里) 마을 뒷산에 이리(狼)의 발자국이 바위에 그대로 나
있는데 이 마을을 ‘이리(狼)가 넘었다(踰)’해서 ‘낭유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낭유고개라는 이름이
유래했을 것이다.
명지지맥 종주꾼들의 산행표지기가 등로를 안내한다. 눈길이다. 누군가 앞서 간 발자국이 났다. 혼자다.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고마운 발자국이다. 내 생각이 달라진다. 이 발자국이 가는 대로 가자. 설령 도내지고개로 간다
해도 나라고 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사람 발자국이 헤맨 데에서는 나도 헤맨다. 잠시 하늘 가린 완만한
숲길을 서서히 오르다가 사면 길게 돌아 지능선에 올라서면 등고선이 촘촘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갈지(之)자
어지럽게 그리며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의 끝은 560m 고지인 헬기장이다. 북쪽으로 명성산이 잘 보이겠는데 오후 들어 싸락눈이 내리더니
가루눈으로 변하여 그예 원경은 물론 근경도 가린다. 어차피 관음산 오르는 내내 조망 트이는 데가 없는 숲길이니
굳이 날씨 탓할 것도 없다. 좌우 설사면이나 두루 살핀다. 저기 명성산에서 보았던 덕순이가 여기도 있지 않을까
하고 연장을 챙겨왔다. 눈밭 누빌 엄두는 내지 못하고 먼발치로만 살핀다. 가도 가도 빈 눈이다.
봉봉을 넘는다. 설사면에 이어 설벽을 오르기도 한다. 잡목 울창한 암릉을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고 다시 설벽
오름길이다. 한 사람 남자가 내려온다. 앞선 발자국의 주인이다. 왜 뒤돌아 오시는가 물었다. 승용차를 낭유고개에
두고 왔다고 한다. 관음산 정상에서 점심만 먹고 내려온다고 한다. 여러 생각 접는다. 어서 갔다 오자 하고 발걸음
재촉한다. 가루눈은 더욱 심하게 흩날린다. 막바지 설벽 오름길 0.2km다. 막판 스퍼트 낸다. 이때는 땀난다.
관음산. 너론 공터다. 한가운데 왕수산악회가 세운 조그만 정상표지석이 눈 속에 묻혀있다. 삼각점은 어디에 묻혔는
지 알 수 없다. 나무숲이 아니래도 가루눈이 조망을 가린다. 눈밭에 배낭 벗어놓고 정상주 탁주 독작한다. 술잔에도
가루눈이 분분이 떨어진다. 겨울 산행의 정취다.
하산. 온 길 말고는 어디에나 발자국이 없다. 눈이 깊다. 미련 없이 온 길을 뒤돌아간다.
내리막 눈길을 거침없이 지친다. 봉봉을 대깍대깍 넘는다.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른 길이다. 570m봉을 금방 넘고
가파른 사면을 내리쏟는다. 그리고 숨 고르는 잔잔한 숲길 지나 낭유고개다. 우선 카카오택시부터 부른다. 13분 후
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스틱 접고, 아이젠과 스패츠 벗는 등 산행 마무리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이동 가는
길. 묵은 숙제를 해결하여 후련하다. 그간 눈으로만 넘던 산을 오늘에야 발로 넘었다. 일동과 이동을 지나면서, 또는
한북정맥 국망봉을 오르내리면서, 광덕산에서, 명성산에서 눈으로만 넘던 산이다. 바로 여우봉, 사향산, 관음산이다.
25. 국망봉
26. 사향산 정상
27. 왼쪽부터 광덕산, 회목봉, 복주산
28. 국망봉
29. 각흘봉(466m)
30. 가운데가 사향산 정상
31. 오후 들어 가루눈이 날리기 시작하고 주위가 흐릿해졌다.
32. 관음산 남쪽 사면은 더러 눈이 녹았다
33. 관음산 북쪽 사면은 눈이 깊다
34. 관음산 정상 표지석. 왕수산악회에서 세웠다.
35. 관음산 북쪽 사면
첫댓글 그래서 일찍 산행을 마치셨군요
뒷푸리도 없고 덕수니도 읍고 ㅠ
그래도 산행은 대만족이었습니다.^^
동행자와 같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데는 악수님 아주머니의 의견에 손을 들어봅니다.ㅎㅎ
그나저나 김장호 교수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동감입니다!
그래야 했습니다.
새해에는 산 욕심을 줄여야 하겠습니다.^^
웬만한 곳은 발자국이 없습니다. 사향산에서 바로 보는 국망봉이 대단하지요...
국망봉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데는 사향산이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