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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 모양으로 몸으로 지은 업과 입으로 지은 업과 마음으로 지은 업을 다 참회한 뒤에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불, 법, 승 삼보(佛法僧 三寶)를 공경하여 빨리 삼계 인연을 떠나서 청정 법신을 이루어지이다 하는 원을 발하고는 삼보에 귀명례한 후에,
삼보에 귀의하외 얻잡는 모든 공덕
일체유정에 돌려 함께 불도 이뤄지다.
하고는 나중으로,
이 몸 한 몸속에 (我今一身中[아금일신중])
무진신을 나투와서 (即現無盡身[즉현무진신])
모든 부처 앞에 (遍在諸佛前[편재제불전])
무수례를 하여지다 (一一無數禮[일일무수례])
옴 바아라 믹, 옴 바아라 믹, 옴 바아라 믹
하는 보례게(普禮偈)와 보례진언(普禮眞言)을 부르고는 용선 대사는 경상 위에 놓았던 축원문을 들어서 무거운 음성으로 느릿느릿 읽었다.
"오늘 지극하온 정성으로 재자 명주날리군 태수 김 흔공은 엎데어 대자대비 관음대 성전에 아로이나이다.
천하 태평하여지이다.
이 나라 상감님 성수 무강하셔지이다.
큰 벼슬 잔 벼슬하는 이 모두 충성되어지이다.
백성이 질고 없고 시화 세풍하여지이다.
불도 흥황하와 중생이 다 죄의 고를 벗어지이다.
이 몸과 안해와 딸 몸 성하옵고 옳은 일 하여지이다.
딸 이번에 모례의 집에 시집가기로 정하였사오니, 두 사람이 다 불은 입사와 백년해로하옵고 백자 천신하옵고 세세생생에 보살행 닦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몸 죄업 많사와 아직 아들 없사오니 귀남자 점지하여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이 축문을 들은 조신은 가슴이 내려앉는 듯하였다.
<그러면 달례는 벌써 남의 집사람이 되었는가?>
조신은 앞이 캄캄하여 몸이 앞으로 쓰러지려 하였다. 이 때에 평목이 팔구비로 조신의 옆구리를 찔렀기에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가 있었다.
축원문은 또 읽어졌다. 축원문이 끝날 때마다 재자는 절을 하였다. 달례도 절을 하였다.
축원문은 세 번 반복하여 읽어졌다. 재자의 절도 세 번 있었다.
세 번째 달례가 옥으로 깎은 듯한 두 손을 머리 위에 높이 들 때에는 조신은 달려들어 불탑을 들러엎고 달례를 웅퀴어 안고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았다. 관세음보살은 조신을 보시고 빙그레 웃으시는 듯, 그러나 그것은 비웃는 웃음인 것 같았다.
조신은 또 한번 불탑에 달려들어 관세음 보살상을 끌어내어서 깨뜨려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다시 관세음 보살상을 우러러 볼 때에는 관세음보살은 여전히 빙그레 웃고 계셨다.
그 뒤에 중단, 하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당 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신은 기억이 없었다.
재가 파한 뒤에 조신은 조실에 용선 대사를 뵈왔다.
용선 대사는 꼭 다물은 입과 깊은 눈썹 밑에서 빛나는 눈가에 웃음을 띠운 듯 하였다.
『시님, 소승은 어떻게 합니까?』
하는 조신의 말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무엇을?』
하는 대사의 얼굴에는 무서운 빛이 돌았다.
『사또 따님은 혼사가 맺혔읍니까?』
『그래, 아까 축원문에 듣지 아니하였느냐? 화랑 모례 서방과 혼사가 되어서 삼일 후에 혼인잔치를 한다고 그러지 않더냐?』
『그러면 소승은 어찌합니까?』
『무얼 어찌해?』
『사또 따님과 백년 연분을 못 맺으면 소승은 이 세상에 살 수는 없읍니다.』
『이 세상에 살 수 없으면 어디 좋은 세상으로 갈 데가 있느냐?』
『소승,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서 축생도에 떨어져서 배암이 되어서라도 사또 따님의 뒤를 따르겠읍니다.』
『그것도 노상 마음대로는 안될 것을. 그만한 인연이라도 없으면 그렇게도 안될 것을.』
『그러면 소승 사또 따님을 한칼로 죽여버리고 소승도 그 피묻은 칼로 죽겠읍니다.』
『그것도 네 마음대로는 안될 것을.』
『그것도 안 되오면 소승 혼자라도 이 칼로 죽어 버리겠읍니다.』
하고 조신은 품에서 시퍼런 칼 하나를 내어서 보인다.
『그것도 네 마음대로는 안될 것이다.』
『어찌하여서 안 됩니까? 금방 이 칼로 이렇게 목을 따면 죽을 것이 아닙니까?』
『목이 따지지도 아니할 것이어니와, 설사 목을 따더라도 지금은 죽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네 찌그러진 모가지에 더 보기 숭한 칼자욱 하나만 더 내고 너는 점점 사또 따님과 인연이 멀어질 것이다.』
『그러면 소승은 어찌하면 좋읍니까? 시님, 자비심을 베푸시와 소승의 소원을 이룰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고 조신은 오체투지로 대사의 앞에 너붓이 엎드려 이마를 조아린다.
대사는 왼편 손 엄지가락으로 염주를 넘기고 말이 없다.
조신은 고개를 들어서 용선을 우러러보고는 또 한번 땅바닥에 엎드려,
『시님, 법력을 베푸시와서 소승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주시옵소서.』
하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네 분명 달례 아기(阿只)와 연분을 맺고 싶으냐?』
하고 대사는 염주를 세이기를 그친다.
『네, 달례 아기와 연분을 맺고 싶습니다.』
『왕생극락을 못하더라도?』
『네, 무량겁의 지옥고를 받더라도.』
『충생보를 받더라도?』
『네 아귀보를 받더라도.』
『네 몸뚱이가 지금만 하여도 추악하여서 여인이 보면 십리 만큼이나 달아 나려든, 게다가 더 추한 몸을 받아 나오면 어찌 될꼬?』
용선은 빙긋이 웃는다.
『시님, 단지 일 년만이라도 달례 아기와 인연을 맺았으면 어떠한 악보를 받잡더라도 한이 없겠읍니다.』
『분명 그러냐?』
『네, 분명 그러하옵니다. 일 년이 머다면 한 달만이라도, 한 달도 안 된다 오면 단 하루만이라도, 단 하루도 분에 넘친다 하오면 이 밤이 새일 때까지만이라도, 시님, 자비를 베푸시와 소승을 살려주시옵소서. 소승의 소원을 이루어주시옵소서.』
하고 조신은 한 번 더 일어나서 절하고 무수히 머리를 조아린다.
『그래라.』
용선은 선뜻 허락하는 말을 준다.
『네? 소승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까?』
조신은 믿지 못하는 듯이 대사를 바라본다.
『오냐,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금생에?』
『바로 사흘 안으로.』
『네? 사흘 안으로? 소승이 달례 아기와 연분을 맺읍니까?』
『오냐, 태수 김공이 사흘 후에 이 절을 떠나기 전에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네? 시님? 그게 참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어리석은 소승을 놀리시는 것 아닙니까? 시님, 황송합니다. 소승이 백번 죽사와도 시님의 이 은혜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님, 황송합니다.』
하고 조신이 일어나서 절한다.
용선은 또 한참 염주를 세이더니 손으로 무릎을 치며,
『조신아!』
하고 부른다.
『네.』
『네, 꼭 내 말대로 하렷다.』
『네, 물에 들어 가라시면 물에, 불에 들어 가라시면 불에라도.』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렷다.』
『네, 팔 하나를 버이라시면 팔이라도, 다리 하나를 자르라시면 다리라도.』
『응, 그러면 네 이제부터 법당에 들어가서 관음 기도를 시작하는데, 내가 부르는 때까지는 나오지도 말고 졸지도 말렷다.』
『네, 이틀 사흘까지라도.』
『응, 그리하여라.』
『그러면 소승의 소원은 이루어…』
『이 믿지 않는 놈이로고! 의심을 버려라!』
하고 대사는 대갈일성에 주장(拄杖)을 들어 조신의 머리를 딱 때린다.
조신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한다.
조신은 나오는 길로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관음전으로 들어갔다. 용선 법사는 조신이 법당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문을 밖으로 잠그며,
『조신아, 문을 잠갔으니 내가 부를 때까지 나올 생각 말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렷다. 행여 딴 생각할셔라.』
『네.』
하는 소리가 안으로서 들렸다.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 조신의 염불 소리가 밤이 깊도록 법당에서 울려 나왔다. 조신은 죽을힘을 다하여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었다.
『열심으로―잡념 들어오게 말고.』
하던 용선 시님의 음성이 조신의 귓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등잔불 하나에 비추어진 관음전은 어둠침침하였다. 그러한 속에 조신은 가부좌를 걷고 앉아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조신의 눈은 언제나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에 있었다. 반년나마 밤이면 자라는 쇠가 울기까지 이 법당에서 이 모양으로 앉아서 이 모양으로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칭호를 하였건마는, 오늘 밤에는 특별히 관세음보살님의 상이 살아 계신 듯하였다. 이따금 그 정병(淨甁)을 듭신 손이 움직이는 것도 같고 가슴이 들먹거리는 듯도 하고 자비로운 웃음 띠우신 그 눈이 더욱 빛나는 것도 같았다. 조신이 더욱 소리를 가다듬고 정신을 모아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관세음 보살상의 한일자로 다물어진 입술이 방긋이 벌어지는 듯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보면 관세음보살님의 입술은 여전히 다물어 있었다.
절에서는 대중이 모두 잠이 들었다.
오직 석벽을 치는 물결 소리가 높았다 낮았다 하게 조신의 귀에 울려올 뿐이었다. 그리고는 조신이 제가 치는 목탁 소리와 제가 부르는 염불 소리가 어디 멀리서 울려오는 남의 소리 모양으로 들릴 뿐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조신이 몸이 피곤함을 느낄수록 잡념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잡념이 들어오면 정성이 깨어진다!』
하여 그는 스스로 저를 책망하였다. 그러고는 목탁을 더욱 크게 치고 소리를 더욱 높였다.
잡념이 들어 올 때에는 눈앞에 계시던 관세음 보살상이 스러져서 아니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잡념을 내어 쫓은 때에야 금빛 나는 관세음보살상이 여전히 눈앞에 계시었다.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마하살.』
하고 조신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갖추어 부름으로 잡념이 아니 들어오고 관세음보살님의 모양이 한 찰나 동안도 눈에서 스러지지 아니하기를 힘써 본다.
등잔엣 기름이 반 남아 달았으니 새벽이 가까왔을 것이다.
낮에 쉬일 사이 없이 일을 하였고, 또 김랑으로 하여서 정신이 격동이 된 조신은 마음은 흥분하였으면서도 몸은 피곤하였다. 또 칭호가 만념(萬念)도 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피곤할 만하였다.
『이거 안 되겠다.』
하고 조신은 자주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이야 설마 어떠랴 하던 것은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조신의 정신은 차차 흐리기를 시작하였다.
조신은 무거워 오는 눈시울을 힘써 끌어올려서 관세음보살상을 아니 놓치려고 힘을 썼다.
그러나 어느 틈엔지 모르게 조신은 퇴 밑에 벗어 놓인 김랑의 분홍신을 보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조신은 목탁이 부서져라 하고 서너 번 크게 치고,
『나무 대자대비 서방 정토 극락세계 관세음보살 마하살.』
하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요, 또 수마(睡魔)는 조신을 덮어 누르는 듯하였다.
이번에는 앞에 계신 관세음 보살상이 변하여서 김랑이 되었다. 분홍 긴 옷을 입고 흰 버선을 신고 옥으로 깎은 듯한 두 손을 내어 밀어 지난봄 조신의 손에서 철죽을 받으려던 자세를 보이는 듯하였다.
조신은 벌떡 일어나서 김랑을 냅다 안으려 하였으나, 그것은 허공이었고 불탑 위에는 여전히 관세음보살님이 빙그레 웃고 계시었다.
조신은 다시 목탁을 두들기고,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하고 소리높이 불렀다.
얼마나 오래 불렀는지 모른다. 조신은 이 천지간에 제가 부르는 「관세음보살」 소리가 꽉 찬 듯함을 느꼈다. 김랑도 다 잊어버리고 제가 지금 어디 있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저라 하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오직,
『나무 관세음보살.』
하는 소리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이 때었다.
『똑, 똑, 똑, 똑.』
『달그닥달그닥.』
하는 소리가 조신의 귓곁에 들려왔다.
또 한번,
『달그닥달그닥.』
하는 소리가 났다.
조신은 소스라쳐 놀라는 듯이 염불을 끊고 귀를 기울였다.
이 때에 용선 스님이 잠근 문이 삐걱 열리며 들어서는 것은 그 누군고? 김랑이었다. 김랑은 어제 볼 때와 같이 분홍 긴옷을 입고 흰 버선을 신고 방그레 웃으며 들어왔다.
『아가씨!』
조신은 허겁지겁으로 불렀으나, 감히 손을 내어 밀지는 못하고 합장만 하였다. 조신은 거무스름한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고 있었다.
『시님 기도하시는 곳에 제가 이렇게 무엄히 들어왔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참으려도 참을 수가 없어서 어머님 잠드신 틈을 타서 이렇게 살짝 빠져 나왔읍니다. 남들은 다 잠이 들어도 저만은 잠을 못 이루고 시님이 관세음보살 염하시는 소리를 하나도 빼지 아니하고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로 이 밤중에 아가씨가 어떻게 여기를!』
『사모하옵는 시님이 계시다면 어디기로 못 가겠읍니까? 산인들 높아서 못 넘으며 바다인들 깊어서 못 건너겠읍니까? 시님이 저 동해바다 건너편에 계시다 하오면 동해바다라도 훌쩍 뛰어서 건너갈 것 같습니다.』
하는 김랑의 가슴은 마치 사람의 손에 잡힌 참새의 것과 같이 자주 발락거렸다.
『못 믿을 말씀이십니다. 그러기로 소승 같은 못나고 찌그러진 것을, 무얼!』
하고 조신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못나고 잘나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제 마음에는 시님은 인간 어른은 아니신 듯……』
『아가씨는 소승을 어리석게 보시고 희롱하시는 것입니까?』
『아이, 황송한 말씀도 하셔라. 이 가슴이 이렇게 들먹거리는 것을 보시기로서니, 이 깊은 밤에 부모님의 눈을 기이고 이렇게 시님을 찾아온 것을 보시기로서니, 어쩌면 그렇게도 무정한 말씀을……』
김랑은 한삼을 들어서 눈물을 씻는다.
『그러기로 아가씨와 같이 귀한 댁 따님으로, 아가씨와 같이 이 세상 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이로 천하가 다 못났다 하는 소승을……』
『지난 봄 언뜻 한번 뵈옵고는 시님의 높으신 양지를 잊을 길이 없어서.』
『그러기로 아까 낮에 축원문을 들으니, 아가씨는 벌써 모례 서방님과……』
『시님, 그런 말씀은 말아주셔요. 부모님 하시는 일을 어길 수가 없어서―아이 참, 여기서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다가 노시님의 눈에라도 띠우면, 어찌다가 부모님이라도 제 뒤를 밟아 나오시면. 어머님께서 잠시 제가 곁에 없어도 아가 달례야, 달례 아기 어디 갔느냐, 하시고 걱정을 하시는걸.』
하고 깜짝 놀라는 양을 보이면서,
『아이, 지금 부르는 소리 아니 들렸읍니까?』
하고 김랑은 조신의 등 뒤에 몸을 숨기며 두 손으로 조신의 어깨를 꼭 잡는다. 조신의 귀에는 김랑의 뜨거운 입김과 쌔근쌔근하는 가쁜 숨소리가 감각된다. 조신은 사지를 가눌 수가 없는 듯함을 느낀다.
『아, 물결 소리로군. 오, 또 늙은 소나무에 바람 불어 지나가는 소리.』
하고 달례는 조신의 등에서 떨어져서 앞에 나서며,
『자, 시님, 저를 데리고 가셔요.』
하고 조신의 큰 손을 잡을 듯하다가 만다.
『어디로요?』
하고 조신은 일종의 무서움을 느낀다.
『어디로든지, 시님과 저와 단둘이서 살 데로.』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 아니면 어떡허게요. 자, 어서어서 그 가사와 장삼을 벗으셔요.』
『중도 장가듭니까?』
『자, 어서어서. 누구 보리다.』
조신은 가사를 벗으려 하다가 잠깐 주저하고는 관세음보살 상을 향하여 합장 재배하고,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고맙습니다. 제자의 소원을 일러 주시오니 고맙습니다.』
하고는 가사와 장삼을 홰홰 벗어서 마룻바닥에 내어던지고 앞서서 나온다.
김랑도 뒤를 따른다. 김랑은 법당 문밖에 나서자, 보퉁이 하나를 집어 들고 사뿐사뿐 조신의 뒤를 따라서 대문 밖에를 나섰다. 지새는 달이 산머리에 걸려 있었다.
『그 보퉁이는 무엇입니까?』
하고 조신은 누구 보는 사람이나 없는가 하고 사방을 돌아보면서,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묻는다.
김랑도 나무 그늘에 들어와서 조신의 옆에 착 붙어서며, 보퉁이를 들어서 조신에게 주며,
『우리들이 일평생 먹고 입고 살 것.』
하고 방그레 웃는다.
조신은 그 보퉁이를 받아든다. 무겁다.
『이게 무엇인데 이렇게 무거워요?』
『은과 금과 옥과 자, 어서 달아나요. 누가 따라 나오지나 않나 원, 사령들 중에는 말보다도 걸음을 잘 걷는 사람이 있어요―자, 어서 가요. 어디로든지.』
조신이 앞서서 걷는다.
늦은 봄이라 하여도 새벽바람은 추웠다.
『어서 이 고을 지경은 떠나야.』
하고 김랑은 뒤에서 재촉하였다.
『소승이야 하루 일백오십 리 길은 걷지마는 아가씨야……』
『제 걱정은 마셔요. 시님 가시는 데면 어디든지 얼마든지 따라갈 테야요.』
두 사람은 동구 밖에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큰 길이어서 나무 그림자도 없었다. 달빛과 산 그늘이 서로 어울어지고 물에는 이슬이 있었다.
『이 머리를 어떡허나?』
하고 조신은 밍숭밍숭한 제 머리를 만져보았다.
『송낙이라도 뜯어서 쓰시지.』
하고 김랑도 걱정스러운 듯이 조신의 찌그러진 머리를 보았다.
『아무리 송낙을 쓰기로니 머리가 자라기 전에야 중인 것을 어떻게 감추겠읍니까?』
『그러면 나도 머리를 깎을까요?』
하고 김랑은 두 귀 밑에 속발한 검은 머리를 만져본다.
『그러하더라도 남승과 여승이 단둘이서 함께 다니는 법은 어디 있읍니까?』
『그래도 중이 처녀 데리고 다닌다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럼, 이렇게 할까요? 나도 머리를 깎고 남복을 하면 상좌가 아니되오.』
『이렇게 어여쁜 남자가 어디 있겠소?』
두 사람의 말에서는 점점 경어가 줄어든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는 머리를 깎지 말고 시님의 누이동생이라고 합시다.』
『누이라면 얼굴이 비슷해야지, 나같이 찌그러지고 시커먼 사내에게 어떻게 아가씨 같은 희고 아름다운 누이가 있겠소.』
『그러면 외사촌 누이라고 할까?』
『외사촌이라도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어야지.』
『그러면 어떻게 하나?』
『벌써 동이 트네. 해뜨기 전 어디 가서 숨어야 할 텐데.』
『글쎄요. 뒤에 누가 따르지나 않나 원.』
두 사람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온 길을 돌아본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하고 조신이 다시 말을 내인다.
『어떻게요?』
하고 김랑이 한걸음 가까이 와서 조신의 손을 잡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