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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르네상스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
라뮤나
2022. 11. 25. 0:09
13 의회, 세계 일루미나티 지도자는 "Pindar" 라고 불립니다. Pindar 는 13 통치 가문의 일원이며 항상 남성입니다.
Pindar 라는 칭호는 "Pinnacle of the Draco" 또는 "Penis of the Dragon" 으로 알려진 용어의 줄임말이며 이것은 최고의 힘, 지배, 창조, 관통, 팽창, 침범, 그리고 공포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칭호를 가진 계급은 지구 내부의 순혈 렙틸리언 수뇌에게 보고되며 피라미드의 "눈"은 13 통치 가문을 의미합니다.
그 이야기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유럽 중세 시대
유럽의 중세 시대는 흑사병으로 고통을 받고 마녀사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상업의 발달로 부자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르네상스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
두 번째, 유대계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세 번째, 오스트리아 최고의 명가 합스부르크 가문
그중에 15세기의 예술가보다 예술을 더 좋아했던 메디치 가문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시작
메디치 가문의 첫 시작은 평민 가문에서 시작합니다. 그 이름은 바로 조반니 데 메디치로 1360년~1429년까지 살았던 인물입니다. 조반니는 이주민의 후예였고 처음에는 피렌체에서 살지 않고 근처 마을에서 살다가 피렌체로 이주를 해옵니다.
조반니가 25살이 되던 해 자본금도 없었고 지식이 전무했던 조반니는 로마에 있는 친척에게 가서 은행업하게 됩니다. 우연히 친척은 은행업을 하였고 거기에 들어가 직원으로 취업한 것입니다. 은행에서 10년간 일을 배우면서 예금 업무와 대출 후 이자를 받는 업무 크게는 나라 간의 외환 거래까지 배우게 됩니다.
지금의 700년 전에도 지금의 은행 몫지 않게 기본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렇게 조반니는 돈의 흐름을 파악하며 친척이 운영하던 로마의 은행을 인수하고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동업자들과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메디치 은행의 시작입니다.
당시 피렌체는 중세 유럽에서 은행이 가장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피렌체가 은행업에 발달된 이유에 대한 예측이 많이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교황과 관련된 이유였습니다. 교황청은 전 유럽에 수많은 교회 건물과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헌금으로 한 나라의 1년 예산에 필적할 만큼의 현금이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교황의 현금을 관리해 준 곳이 피렌체의 은행들이었고 때문에 피렌체에 70여 개의 은행들이 경쟁을 하여 피렌체가 은행업에 발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디치 은행은 어떻게 성장을 하였을까요?
처음의 메디치 은행의 시작은 평범하였습니다. 허나 조반니는 큰 욕심이 있었기에 교황청의 전담 은행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청과 인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때 발다사레 코사라는 인물이 교황이 되고 싶다며 교황이 되기 위한 막대한 활동 자금을 빌려달라고 요구를 하였고 그 요구 금액은 메디치 가문의 가치 정도인 100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조반니는 계속 교황청과 인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였기에 발다사레 코사라는 사람이 교회법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인 것을 알았고 그렇게 조반니는 교황을 만들기 위한 배팅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에는 교회끼리 내부적인 큰 분열이 일어나 교황권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였고 이에 교황이 로마에 한 명만 있어야 되는데 문제를 해결하고자 피사에 한 명, 아비뇽에 한 명을 더 두어 3명의 교황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에 부패는 상당히 심해졌고 조반니의 선거자금과 주변 인맥을 총동원하여 발다사레 코사는 1410년 계획대로 피사에서 교황에 선출됩니다.
발다사레 코사는 조반니의 은혜를 잊지 않고 메디치 은행은 피사 교황청의 전담 은행이 됩니다.
발다사레 코사 = 교황 요한 23세
5년 동안 요한 23세는 교황을 하지만 종교회의에서 교황 세 명을 모조리 폐위시키는 사건으로 교황 요한 23세 또한 교황 자리에 쫓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단 한 명의 교황이 생기고 그 사람이 마르티노 5세입니다.
마르티노 5세는 요한 23세에게 각종 벌책을 붙여 350억 원 정도의 벌금을 매기게 되었으나 조반니가 벌금을 대신 내주고 요한 23세를 피렌체로 데려와서 머물 곳과 생활비도 지원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요한 23세가 죽자 두오모 성당 앞 세례당에 묘까지 만들어줍니다.
이에 요한 23세는 죽으면서 조반니에게 자기 손가락을 선물로 줍니다. 중세 시대에는 성자들의 신체 일부를 준다는 것은 엄청난 보물로 취급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메디치 가문의 보물이 되며 전해내려옵니다.
여기서 조반니는 은행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과 신뢰라는 인식을 주게 되며 요한 23세를 통하여 귀한 고객을 대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게 됩니다.
메디치 은행 기사회생과 가업 승계
요한 23세로 인하여 막대한 손해를 입은 메디치 은행이었지만 조반니의 신용과 신뢰의 가치를 마르티노 5세가 높게 사서 메디치 은행을 다시 교황청 전담 은행으로 지정합니다. 이 계기로 인하여 유럽의 한 명의 교황의 자본을 관리하게 되었으며 이 규모는 3명의 교황이었던 시기보다 3배 이상의 자금이었습니다.
그렇게 1420년 메디치은행은 교황청 전담 은행이 되고 교황청과의 커넥션으로 막대한 부를 축척해 갑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후계자의 가업 승계가 이뤄지고 최대 은행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조반니에서 코시모로
조반니 메디치에서 장남 코시모 데 메디치로 가업승계가 이뤄지고 코시모 체계에서 은행은 물론 피렌체 도시의 각종 건물과 부동산, 토지까지 물려받게 되며 30대 초반 코시모가 물려받은 돈은 그 당시로 1800억 원의 가치로 천문학적인 가치에 속했습니다.
코시모는 아버지 조반니로부터 어릴 때부터 은행 운영 교육과 좋은 수도원 학교를 다니면서 천재 사업가 소리를 들을 만큼 유명했습니다. 코시모의 재능은 이탈리아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를 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코시모는 아버지와 같은 전략으로 교황과 관계를 유지하며 교황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고 이에 교황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적극적인 사업을 펼치게 됩니다.
코시모의 미친 사업 재능으로 인해 은행업뿐만 아니라 양모 사업과 비단 사업 즉 직물사업으로 확장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 중세 유럽에서는 가장 중요한 제조업이 직물사업이었고 코시모는 수입, 제조, 수출을 다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떼돈을 벌게 됩니다.
이렇게 돈을 벌고 메디치 은행은 지점을 확장하면서 피렌체뿐만 아니라 제네바, 브뤼헤, 런던, 아비뇽, 로마, 밀라노, 피사, 베네치아까지 영토를 넓히게 됩니다. 이렇게 메디치 은행은 유럽의 왕들과 귀족들을 고객으로 만듭니다.
왕들은 수천억의 돈을 빌려고 메디치는 그 대신 유럽 각 나라에서 사업의 특혜를 받게 됩니다.
예시로 직물사업을 하던 메디치에게 교황은 백반 광산을 독점할 수 있게 해주어 백반 광산으로 직물에 염색을 하여 메디치 가문은 이에 더 많은 부를 창조하게 됩니다.
이렇게 코시모는 메디치 가문을 중세 최고의 글로벌 대기업으로 끌어올리게 됩니다.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런 메디치 가문이었지만 메디치 가문은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가문의 문장을 만들려고 시도합니다.
가문의 문장의 경우 왕이 귀족 작위와 함께 내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평민이 가지기에는 어려워 메디치 가문은 가문의 문장을 직접 제작하게 됩니다.

유럽 귀족 가문에서 많이 쓰던 노란색 방패와 여러 개의 붉은 원을 그려 제작되었고 처음에는 별 볼일 없었지만 가문의 위세가 높아지면서 점점 화려하게 변경을 하여 지금의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완성하게 됩니다.
부와 가문의 문장으로 명예도 얻었고 이제는 뭘 얻어야 할까요? 바로 권력입니다.
이에 메디치 가문은 엄청난 재산과 이탈리아의 복잡한 상황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중세 이탈리아는 원래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다스리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12세기경 이탈리아 여러 도시가 황제와 싸워 자치권을 얻게 되고 중세 말엔 이 도시들끼리 서로 정복 전쟁을 벌여 결국 힘이 센 다섯 세력이 경쟁하는 체제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15세기 이탈리아는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공화국, 피렌체공화국, 나폴리왕국, 로마교황령 5강으로 이루어졌고 서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탈리아는 전쟁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피렌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렌체 정부는 용병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피렌체 정부는 공채 즉 채권을 발행하였고 그 이자가 100%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때 메디치 가문이 등장하며 돈으로 피렌체를 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메디치 가문을 보는 피렌체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도시를 구한 메디치 가문을 칭찬하게 됩니다.
메디치 가문 vs 알비치 가문
메디치 가문이 잘나가면 꼭 시기와 질투를 한 가문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 가문이 바로 알비치 가문입니다.
알비치 가문은 메디치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코시모가 피렌체를 장악하려는 위험한 야심을 품고 있다며 몰아붙였고 알비치의 명령으로 코시모는 체포가 되기도 합니다.
코시모는 지지자들이 있어 사형을 감면당하고 대신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에 베네치아 사람들이 외교관을 보내 피렌체 정부에 항의를 하였으며 메디치에 돈을 빌린 국가와 권력자들이 메디치 가문의 편을 들었고 교황도 메디치 가문의 편이였기에 교황도 이참에 세력을 메디치 가문으로 다 바꾸게 됩니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코시모는 이런 상황이 다신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하여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피렌체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게 됩니다. 그렇게 돈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패와 비리로 피렌체를 장악합니다. 즉 권력을 매수합니다.
허나 코시모는 돈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언제나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게 잡은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문을 지킬 압도적인 힘을 갖기로 결심합니다.
코스모는 이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가문의 군대를 매수합니다.
가문의 영광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등장하게 됩니다. 피렌체의 황금시대를 이끈 인물로 코시모가 권력 등 전부 잡아둔 상태에서 병약했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손자인 로렌초가 1469년 20살의 나이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잘했던 로렌초의 시대, 그를 견제했던 파치가문
로렌초의 명령으로 파치가문을 복수하고 고문하며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독재국가가 돼버립니다. 그렇게 반대세력을 다 쫓아내자 이런 상황들이 당시 교황의 눈에 좋게 보이지 못하였고 피렌체 전체를 파문한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이렇게 교황 세력과 나폴리왕국 세력이 힘을 합쳐 피렌체를 공격하였고 설상가상으로 흉작과 전염병으로 피렌체의 상황은 점차 심각해집니다. 이에 로렌초는 나폴리왕국으로 가서 3달 가까이 나폴리 왕을 설득하였고 교황 또한 철수하게 됩니다. 로렌초는 피렌체를 구한 인물로 피렌체에서 엄청 환송 받게 됩니다.
메디치 가문은 왜 문화 예술에 투자했나?
메디치 가문의 시대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르네상스
르(re) = 다시, 네상스(naissance) = 탄생 즉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한 문화운동입니다.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었으며 이렇게 바람이 불어오던 때 메디치가문의 로렌초가 예술과 학문에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왜? 투자했을까?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르네상스 시기에 맞게 메디치 가문은 사업가 기질이 있었기에 선견지명으로 예술가의 발달이 즉 시대의 발달, 피렌체의 발달로 생각을 하며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예술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술에 투자를 하게 되면서 당연시 예술가를 후원하게 되었고 이런 소문을 듣고 로렌초에게 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그림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
음악
오페라
악기
피아노
춤
발레
학문
유럽 최초 공공도서관
르네상스는 단지 예술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 부활이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남부러울 게 없던 메디치 가문에게도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상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긴 메디치 가문, 즉 탐욕은 7가지 죄목 중 가장 중한 죄였습니다.
이에 교회는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얻은 이자와 이익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어라 돌려줄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게 기부하라고 면죄하는 법을 알려주었으며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가문에 엄청난 후원을 하게 되며 두오모 성당의 돔을 만들게 됩니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이 지은 죄를 씻고 구원을 얻고자 했습니다. 메디치 가문 뿐만 아니라 다른 이자 대부업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 천국 가는 방법의 한 가지로 교회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그것을 통해서 구원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