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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미 해군은 차기 주력전투기를 팬텀으로 결정하면서 YF4H-1 2대를 구매했다. Y는 시제기(Prototype)의 약자로, 이 약자가 붙은 이름을 가진 전투기들은 실전용이 아니라 ‘대량 생산하기에 앞서 먼저 만들어서 다양한 비행시험을 해 보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보는 용도의 항공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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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F4H-1은 거의 동체에 파묻혀 있는 조종석이 특징이다. 관계자들은 어차피 근거리에서 적기를 눈으로 보아가며 싸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차라리 조종석을 동체와 일체형처럼 만들어서 공기저항을 줄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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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는 AN/APQ-50을 사용했는데, 당시의 전투기 레이더로서는 매우 먼 거리까지 탐지가 가능하지만 승무원이 조작해야 할 것도 많은 복잡한 물건이었다. 한편 기체 밑에는 NACA의 일체형 공기흡입구가 있었다. 이 작은 공기흡입구는 팬텀의 기수 부분에 있던 레이더나 각종 전자장비의 열을 식히는 냉각용 공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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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의 날개를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바깥쪽 부분만 위로 12°가량 들려있다. 이 독특한 형상은 뒤에 설명할 수평꼬리날개의 형상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며 기체를 좌우로 기울이는 방향에 대한 안정성(Roll 안정성)과 관계가 있다.
이 바깥쪽 날개는 비행중이 아니라면 90°로 접을 수 있다. 육상 기지에 비해서 좁은 항공모함에서는 날개를 접어야 차지하는 공간이 줄기 때문이다. 또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비행갑판과 그 아래층의 격납고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사이즈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팬텀뿐만 아니라 다른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전투기들도 대부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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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은 1961년에 45대의 새로운 팬텀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들 팬텀은 F4H-1F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여기서 뒤에 붙은 F는 당시 미 해군의 명명법에 의하면 ‘엔진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원래 F4H-1은 J79-GE-8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이 엔진의 개발이 덜 끝나는 바람에 좀 더 출력이 약한 J79-GE-2를 탑재했기 때문에 뒤에 F가 붙은 것이다. 이 F4H-1F 중 나중에 생산된 모델은 원래 달려고 했던 J79-GE-8 엔진을 달았지만 F는 빠지지 않고 여전히 F4H-1F라고 불렀다. F4H-1F는 YF4H-1을 가지고 시험해 본 결과 발견된 문제점들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의 형상이 변화되었다. 레이더는 AN/APQ-50에서 더 성능이 좋은 AN/APQ-72로 바뀌었다. 더불어 기수 밑에는 AAA-4라는 적외선 탐색 및 추적 장비가 달렸다. 이것은 공중에 있는 열을 감지, 어느 각도에 열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공중에 있는 열원은 항공기를 의미한다. 다만 어느 각도에 열원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열원의 거리나 속도, 방향 등은 알 수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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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용 공기흡입구의 형상도 변했는데 흡입구의 둘레 형상도 바뀐 것은 물론, 흡입구의 안쪽의 벽면의 움직이는 각도도 바뀌었다. 또한 동체와 공기흡입구를 따로 떼어주는 분할판(Splitter Plate)도 동체로부터 더 떨어졌는데 이것은 동체 표면을 지나면서 마찰에 의해 속도가 느려진 공기가 공기흡입구로 들어가서 엔진 효율을 떨어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분할판에는 12500개에 달하는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었는데 이것 역시 속도가 느려진 공기를 이 구멍을 통해 빨아들여서 내보내고, 속도를 잃지 않은 신선한 공기만 공기흡입구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설계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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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의 공기흡입구를 정면에서 본 모습. 분할판쪽 벽면에 촘촘히 구멍이 뚫려 있다. (사진은 F4H-1F가 아니라 좀 더 후기형 팬텀의 공기흡입구 사진이다) | |
같은 F4H-1F 팬텀 내에서도 서로 형상이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이것을 블록이라는 단위로 구분했다. 이렇게 형상이 바뀐 것은 F4H-1F 역시 실전용 팬텀이라기보다는 문제점을 고쳐나가기 위해 미리 만들어본 실험용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처음 생산된 F4H-1F를 가지고 시험해본 결과 조종석의 시야가 너무 나빴다. 공중전을 벌일 때는 어떨지 몰라도 착륙할 때는 확실히 이 점이 문제였다. 특히 미 해군의 전투기들은 지상의 활주로보다 훨씬 짧고 좁은 항공모함 위에 정확히 내려앉아야 했기 때문에 착함시의 시야 확보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F4H-1F 중에서도 블록3부터는 공기저항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조종석을 더 높여 조종사의 시야를 확보했다. 더불어 기수부분도 더 커졌는데, 이는 더 지름이 큰 레이더 안테나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지름이 더 큰 안테나 덕에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더 늘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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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을 매다는 파일런은 처음에 11개를 계획했으나 동체에 1개와 날개에 4개, 이렇게 5개로 줄었다. 대신 동체에는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4발이 반쯤 파묻혀서 탑재되었다. 한편 이 AIM-7 스패로우 미사일은 날개 안쪽에 있는 파일런에도 달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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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H-1F 팬텀은 후에 1962년에 항공기의 명명법이 바뀌면서 F-4A 팬텀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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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구매한 45대의 F4H-1F는 실험용이라는 목적이 강했던 반면, 이후 생산된 모델은 본격적으로 미 해군이 운용하기 위해 생산된 실전용 모델이었다. 이 모델들은 F가 빠지고 F4H-1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F-4B로 이름이 바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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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H-1 혹은 F-4B는 J79-GE-8 엔진을 기본적으로 장착했다. 공기흡입구의 형상은 다시 변해서, 가변식 공기흡입구의 움직이는 각도나 움직이는 부분이 약간 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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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용 전투기 답게 생존성을 높이기 위한 APR-30 레이더 경보기가 추가되었다. 이것은 적의 레이더 전파 신호를 역으로 추적해서 어떤 레이더인지, 방향은 어디인지, 지금 나를 추적하고 있는지의 정보 등을 알려주는 장비다.
F-4B는 동체 중앙에 1.8톤 정도의 연료가 들어가는 600갤런짜리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었으며, 날개 바깥쪽 파일런에는 1.1톤 정도의 연료가 들어가는 370갤런짜리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었다. 앞서의 F-4A와 마찬가지로 동체와 날개 안쪽 파일런에는 AIM-7 스패로우 미사일을 달 수 있었다. 물론 날개 쪽에는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달 수도 있었다. 또한 한 개당 약 440kg 정도 나가는 1000파운드 폭탄 8발이나 AGM-12 불펍 공대지 미사일 4발, 아니면 최대 15개의 로켓포드를 달 수 있었다. 물론 미 해군은 당시만 해도 F-4B 팬텀을 함적의 폭격기나, 전투기로부터 함대를 보호하는 함대 방공 전투기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지상공격 무장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편 F-4B는 장거리 비행시 조종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하는 AN/ASA-32 자동조종 시스템을 탑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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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유사시에 핵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AJB-3 핵투하 시스템을 탑재했다. 핵폭탄은 폭발 피해범위가 워낙 넓어서 잘못하면 폭탄을 투하한 전투기까지도 거기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전투기나 폭격기들이 핵폭탄을 투하할 때는 급상승하면서 마치 폭탄을 위로 집어 던지듯이 투하한 뒤에 바로 뒤돌아서 도망치는 방식으로 비행한다. (이것을 로프트(Loft) 혹은 토스(Toss) 폭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감만으로는 언제 폭탄을 투하해야 폭탄이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할지 알기 어려운데, AJB-3는 바로 이 타이밍을 계산해서 자동으로 폭탄을 투하하도록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1964년에 베트남전이 벌어지면서 미 해군의 주력전투기인 F-4B 역시 전투에 참가했다. F-4B가 적기를 처음으로 격추한 것은 1965년 6월의 일로, L. 페이지(L. Page)가 조종하고 J. 스미스 주니어(J. Smith Jr.)가 후방석을 맡았던 F-4B가 하이퐁 근처에 있던 북베트남군의 MIG-17 전투기를 AIM-7 중거리 유도 미사일로 떨궜다. 같은날 다른 F-4B도 2대의 MIG-17을 AIM-7으로 격추시켰다. 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2개월 정도 앞선 1965년 4월 9일, F-4B를 조종하던 테런스 M. 머피(Terence M. Murphy)가 MIG-17 한 대를 격추시켰었는데 이 MIG-17은 북베트남 소속이 아니라 중국군 소속이었다. 베트남 국경 근처를 날고 있다 보니 그만 북베트남의 전투기라고 오인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미국도 서로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양국이 조용히 묻어두었고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터렌스 M. 머피 역시 MIG-17을 격추한 직후 추락했는데 아직도 그 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다른 MIG-17에게 격추당했다는 설도 있으며 동료기가 오인사격해서 격추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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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이 F-4, 더 정확히는 F4H-1을 개발하고 있던 때인 1961년에 미국 국방장관인 로버트 S.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는 미 공군에게 F-4 전투기를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가급적 미 해군과 미 공군이 같은 전투기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또 조종사의 훈련이나 전투기를 위한 각종 정비비용, 부품 비용을 절감하길 원했던 것이다.
미 공군은 1961년에 F4H-1의 도입을 결정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새로 이름을 지어 F-110 스펙터 (Spectre : 팬텀과 마찬가지로 유령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곧 전투기 명명법이 통합됨에 따라 이 전투기의 이름은 F-4C 팬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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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의 F-110A 스펙터 (Spectre). 곧 F-4C 팬텀으로 이름이 바뀐다. | |
미 공군에는 처음에는 해군용 전투기를 운용환경이 다른 지상용으로 운용하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겼으나 미 해군의 팬텀을 몇 대 빌려서 비행시험을 해본 결과 생각이 바뀌었다. 팬텀은 당시 미 공군의 어떤 주력 전투기들 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날 수 있었으며 더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 공군은 F4H-1을 그대로 쓸 생각은 없었으며 나름대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개량했다. 먼저 타이어를 육상기지용으로 적합한 타이어 공기압력이 낮은 것으로 바꿨다. 대신 타이어의 폭이 더 넓어졌는데, 이 때문에 원래의 착륙장치(랜딩기어) 수납 공간도 더 크게 만들어야 했다. 결국 타이어가 들어가는 날개 뿌리쪽의 윗부분이 불룩 더 튀어나오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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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 공군용 F-4는 미 해군용과 달리 후방석에서도 조종이 가능했다. 더불어 계기판을 아래로 내려서 조금이나마 후방석의 시야도 더 넓게 해주었고 그 외에 각종 버튼, 스위치, 레이더 조작용 스틱의 배치도 바꿨다.
공중급유 장치도 바뀌었다. 미 해군은 호스에다 급유 받을 전투기가 급유용 봉을 꽂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미 공군은 공중급유기에서 나온 급유용 관을 전투기에다 꽂아 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래서 F-4C는 기수 부근에 급유봉이 달린 미 해군의 팬텀과 달리 조종석 바로 뒤쪽 동체 위에 급유시 관을 꼽는 급유구멍을 달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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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급유중인 미공군 소속 팬텀. 미 공군은 이처럼 급유기에 달려 있는 큰 관으로 연료를 공급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 |
레이더는 AN/APQ-100으로 바뀌었는데, 해군용 레이더와 달리 이것은 지상 탐색도 가능했다. 이 외에도 각종 항법장비, 무장제어 장비들이 바뀌었다. 일부 기체는 SST-181X를 달았는데, 이는 지상에서 보내오는 무선신호를 통해서 폭격을 도와주는 장비였다.
AN/APQ-100이나 SST-181X를 통해 알 수 있듯, 미 공군은 미 해군과 달리 팬텀을 공중전 뿐만 아니라 지상공격 임무도 충실히 수행하는 전폭기로 운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대공 미사일 외에도 AGM-12 불펍, AGM-45 슈라이크, AGM-65 매버릭 등의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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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은(미 해군도 마찬가지였지만) F-4 팬텀이라면 북베트남의 구식 전투기인 MIG-17이나 MIG-21은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
필자 이승진
어려서 부터 항공기에 관심을 갖다가 96년 서울 에어쇼를 보고 전투기에 푹 빠졌다. 그 뒤로 항공우주공학과로 대학에 들어갔으며 군 복무를 위해 공군 기체정비병으로 근무하였다. 전역 후 남은 학부과정 및 석사 과정을 거치고 현재는 방위산업 관련 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한 게임 , X-WING을 즐겨서 xwing이라는 아이디로 블로그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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