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된 전복)
저 날 7일에는 특별한 미식경험을 하였습니다. 분당에 있는 제주음식 전문점 ‘섭지코지’에서 전복을 맛 본 것이죠. 겨우 전복가지고 특별한 미식이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먼저 맛객 얘기부터 들어보실래요?
전복 한 마리 무게가 1킬로 200그램
전복 한 마리가 입을 쩍 벌어지게 했습니다. 우선 전복의 크기에 놀란거죠. 어른 손바닥 두 개 넓이에다 무게만 해도 1킬로 200이나 나가지 뭐예요. 보통 자연산 전복은 1킬로에 12~15만원을 쳐주는데 이 전복은 40만원이나 한답니다. 자그마치 35년이나 살았으니까요. 그렇기에 전복이라기보다 ‘귀물’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이 집에서 20~30년산 전복은 대중없이 잡지만 35년산을 잡는 일은 흔치 않는다고 합니다. 운 좋게도 이 전복을 맛보게 되다니. 생각만으로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맛객 형편에 자비로 먹는 사치를 부리는 건 아니구요. 방송촬영 도움으로 맛 보았습니다.
어느 달에 MBC 다큐멘터리 제작팀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자연산 먹거리 생선편을 제작중인데 다금바리 맛 평가를 청해 온 것이죠. 더군다나 제주에서 다금바리 명인이 직접 올라와 솜씨를 펼쳐 보이는 자리라고 하네요. 기회가 좋네요. 흔쾌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명인이 도착하는 장면부터 찍는다기에 맛객도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피디와 작가로부터 다금바리 시식하는 촬영은 뒤로 미뤄졌다는 연락입니다. 이 자리에서 밝히긴 뭐하지만 사정이 생긴 거죠.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올 수밖에요.
그리고 그 일은 잊혀 지나 하는데 홍상운 PD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동안, 다금바리가 잡히지 않다가 최근에야 한두 마리씩 잡히기 시작하는데 그 중 18킬로짜리 한 마리가 올라온다는 겁니다. 그런 사정으로 해서 다금바리와 붉바리 그리고 35년 산 전복을 한 자리에서 맛보는 감격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음식이 넘치면 음미를 방해합니다. 다금바리와 붉바리 맛은 나중에 보여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전복의 맛입니다.
(35년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다)
(전복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복의 겉껍데기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납니다. 까칠까칠한 질감은 화강암과도 같고 색상은 붉은빛이 감돕니다. 전복이 움직임을 보이자 힘 차 다기 보다 육중하고 장엄한 느낌입니다.
(전복을 썰고 있다)
실장의 노련한 칼놀림으로 인해 35년의 세월이 한 겹 두 겹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육질의 단면을 보니 약간 검은 회색을 띕니다. 옅은 핑크빛을 보이는 양식과 다르죠. 눈으로 보이는 색상은 양식이 더 먹음직스러운걸 보면, 진정한 맛은 때로 눈에 보이는 것과 반대이기도 하나 봅니다.
(전복회1)
(전복회2)
(전복내장)
시식을 해보기 위해 젓가락을 가져다 대자 느껴지는 딱딱함이라니. 꼬득꼬득... 잇새에서 35년의 세월이 맛이 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자연산 전복의 특징인 꼬득함이 잇 사이에서 긴장감을 주지만 부담을 주지는 않습니다. 육질에서 느껴지는 달고 짜름한 맛과 해초류향에 미각이 취하려고 합니다.
(왼쪽이 양식전복이고 오른쪽이 35년산 전복이다)
비교를 위해 한 쪽에 있는 양식전복을 입에 가져가 봤습니다. 이것도 전복은 전복일진데 이리도 차이가 난다니. 상대적 느낌으로 ‘묵’처럼 느껴진다면 전복모독인가요? 양식 전복도 좋다고 먹을 땐 언제고 말이죠. 이래서 사람의 입은 간사하다고 하나봅니다. 둘 다 바다의 향기를 품고 있지만 한쪽은 기분 좋은 해초향이구요. 한쪽은 비릿한 바다 내음이라는 차이가 있네요.
미각의 행복이란 게 무엇일까요? 값비싸고 귀한 음식에서 나오는 걸까요? 하지만 이걸 매일 먹는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습니다. 넘치지 않는 부족한 맛, 특별하지 않는 맛,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음식 속에 진정한 미각의 행복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요? 전복 한 마리가 주는 미각단상입니다. 2007.9.9 맛객(블로그= 맛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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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맛있는 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