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수의견’이 개봉하던 날, 휴가 나온 둘째 녀석과 영화관엘 갔다
자막으로 ‘이 영화의 사건은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습니다.’라고 썼지만
관객은 그 영화가 용산 참사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영리한 관객들은 글자를 읽지 않고 행간을 읽으며
영화제작을 마치고도 2년이 지나서야 영화가 상영될 수 밖에 없었던
감독의 고뇌를 읽었을 것이다
평소 좋아했던 주연급 조연배우 유혜진이 jtbc 뉴스룸에 나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했던 것도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한몫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누적 관객수가 50만을 넘지 않은 것 같다
여름 방학을 맞아 이미 많은 영화들이 상영관으로 몰려들고 있다
멀지 않아 이 영화가 상영관에서 내려질 것은 불 보 둣 뻔하다
이 영화의 손익 분기점이 120만이라는 것이 맞다면 영화는 속된 말로
‘쫄딱 망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1000만을 넘는 한국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기술과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가 발전한 것과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수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영관 탓일 것이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돈 되는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어 ‘몰빵’하는 것
그것이 더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 예술성, 가치, 전하는 메시지 이런 것보다는
돈이 되는 것만이 가치롭다고 보는 자본주의 속성이 영화시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영화를 선택한다
그러나 몇 개의 영화를 놓고 선택하는 것과 몇 십 개의 영화를 놓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몇 개의 영화를 놓고 선택하라는 것은 우리의 취향과 다양성을 무시한 폭력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색깔로 성격 알아보기’
다음 중 마음에 드는 색깔은?
빨깡, 노랑, 파랑, 보라.
이 중에 내가 좋아하는 색이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닌 ‘제시된 색’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선택해야만 한다
내가 좋아해야하는 색의 범위의 한계를 그들이 정해주는 것이다
이건 선택이 아닌 강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주도권은 몇 개의 영화를 우리에게
선택지로 주고 있는 투자-배급사가 쥐고 있는 것이다
더 염려스러운 건
투자-배급사가 우리에게 내미는 영화는, 다는 아니지만
작품성하고는 상관없이 돈이 되는 영화일 때가 많다
투자-배급사의 최대 목적은 돈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도도한 주류 역사에 도전하는 소수의 비주류의 사람들이 있다
마치 영화 ‘소수의견’처럼
주류인 천동설을 뒤집는 비주류의 지동설처럼
과학은 발전, 확대된다고 보는 주류과학계에, 과학의 발전은 확대 재생산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복’에 의해 발전한다고 도전장을 내민 토마스 쿤 처럼
영화에서 이런 비주류의 소수는 돈 되는 상업성 짙은 영화를 마다하고
돈이 안 되는 저예산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일 것이다
폭력이 미화되고 영화 한편에 수백 수천의 사람이 죽어나가고
몸이 상품화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휘발되고, 우리를 정서적으로 배부른
돼지로 만드는 영화가 판을 칠 때
시대의 아픔과 소외된 자들을 스크린의 한복판으로 끌어내고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선포하고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린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공동선을 고민하게 하고...
이런 작업들을 오늘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
‘사랑이 이긴다’를 제작한 민병훈 감독도 그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다른 영화들과 함께 이런 감독들이 애써 만든 영화도 봐줘야한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들이 외롭고 힘들어 이런 작업을 포기하기 전에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책 「유럽피언드림」에서
대안적인 미래로 북유럽을 제시했다
신자유주의 최선봉에 서 있는 미국은 미래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북유럽에서 부러웠던 것 중에 하나가 평생학습을 하는 시민들의 작은 모임이었다
학습 모임이 가장 잘되는 스웨덴은 국민의 68%가 이런 모임에 참석한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서 현안의 주제들에 대해 토론을 하고 독서를 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나눈다
아마 그들이 한국적 상황이었다면 예술영화나 저예산 독립영화가 일정비율
스크린에 걸릴 수 있게 하자고 시민운동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국회를 압박하여 그것을 법으로 제정하게 했을지 모른다
이런 모임들이 북유럽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없으면 우리도 만들고 활동하면 된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영화를
말해주는 것, 영화가 스크린에 걸릴 때 가서 봐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법으로 제정될 수 있도록 연대해 힘을 보태주는 것..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가 더 풍성하고 더 다양하고 더 아름다운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민병훈필름-한국가톨릭 문화원 제작 ‘사랑이 이긴다’를 우리가 꼭 봐야하는 것도
이런 이유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