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의장이 노무현대통령께 보낸 편지에요 한겨레21에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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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께,
봄을 무색케 하던 이른 더위가 차가운 빗줄기에 씻겨 제법 쌀쌀합니다. 갑작스러운 봄비에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신문과 방송으로 접하는 대통령의 하루하루가 신출내기 한총련 의장에게도 가벼이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종결과 한반도 핵문제의 부상, 베이징 3자회담과 남북장관급회담, 사스의 창궐과 대북송금 특검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문제들을 앞에 두고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할 대통령의 고충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도 해봅니다.
4·19혁명 43주년인 오늘, 대통령께 편지를 쓰는 감회를 말로 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배운 ‘편지 쓰는 법’이 가득 차 있으나 실제 어떤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라도 혹여 한총련 의장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는 한총련 의장이 대통령께 보내는 첫 편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학생운동에선 금기였고 정부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겁니다. 이제나마 정부와 대학생 사이에 작은 대화의 계기가 마련되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공기가 대통령과 저 사이에, 정부와 한총련 사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음을 느낍니다.
합법화를 위한 한총련과 사회단체들의 노력이 벌써 7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한총련은 매년 대의원대회와 출범식 때 관련기관들의 참석을 요청해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회와 법무부, 검찰과 경찰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출두요구서에 항의해 전체 한총련 대의원들이 경찰청을 찾아갔을 때는 ‘다음에 따로 다시 오라’는 웃지 못할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한총련 문제는 사회적 공론에서 배제된 채 7년 동안 묶여 있었습니다. 수배자도, 한총련 양심수도, 이적규정도 ‘존재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지난 2001년 범사회인 대책위가 만들어져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고, 한총련에 대한 시각이 차츰 변해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통령께서 합법화 문제를 거론하셨습니다. 지난 3월17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총련을 언제까지 이적단체로 간주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월24일에는 “우리가 수용해야 하는 이념과 가치의 폭을 넓혀야 한다. 민정수석실에서 균형 있는 법조인들의 의견을 듣고 법리적 문제를 법무장관과 적절히 협의해 무리 없이 처리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으며 기뻤습니다. 7년 동안의 투쟁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이 다시금 자라났습니다.
저는 합법화와 관련해 대통령께 몇 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선 저는 합법화의 전제로 한총련의 실체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은 모든 대화와 문제해결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한총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입니다.
한총련은 전대협의 후신입니다. 스스로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전통을 이은 조직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한국 학생운동의 ‘적통’ 또는 ‘정통’이라는, 조금은 봉건적이지만 매우 의미 있는 수사를 달아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300만 한국의 대학생을 대표하는 조직이 이제는 가장 많은 구속자를 양산하는 범죄집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적단체 규정이 7년 동안 이어지면서 그동안 수배되거나 구속된 학생들의 수는 2천명이 넘습니다. 올해 또다시 ‘고난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학생들의 수가 600여명입니다. 이들은 졸업 후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될, 우리의 아들딸들입니다. 학생운동의 대표조직을 이적단체로 남겨두고 사회에서 격리시키려는 시도는 구시대 독재의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한총련에 대한 ‘오해의 해소’와 한총련의 잘못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선언하라’고. ‘주체사상을 믿지 않으며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하라’고 말입니다. 이른바 한총련의 친북성·이적성에 대해 결백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한총련을 바라보며 이렇게 미소짓습니다. ‘거봐! 너네 하나도 안 변했어!’
자신의 사상을 신봉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한 발상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스스로 주체사상을 신봉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주체사상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관계를 선언하라고 말하는 것은 내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입니다. 자신의 사상은 ‘자기 안의 울림’으로 증명되는 것이지 ‘입 밖의 선언’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한다면 친북성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유엔 인권위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해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정부는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민족으로서 북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숙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부 당국에 동의를 보여준 국민의 성숙한 의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대통령께서 이번 유엔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감정이 한총련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분단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남은 친북을, 북은 친남을 해야 한다’는 게 한총련의 생각입니다.
한총련에겐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스스로 꺼내기 어려운 과거이기도 합니다.
‘한총련은 사람을 죽인 살인집단이다.’ 97년 ‘이석씨 치사사건’과 관련해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99학번이니까 제가 입학하기 전의 일들이 2003년의 오늘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한총련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역사적 진실과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우리의 과오를 덮어두거나 피해가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이 청년의 순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총련은 이미 그런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97년 이후 사건 관련자들은 자신의 직접 행위와는 상관없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민사문제도 해결 중입니다. 또 97년 이후 한총련은 뼈를 깎는 아픔으로 대중의 질타를 온몸으로 받아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책임이 남아 있다면 기꺼이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과오에서 헤어나올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너무 가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한총련에게 사회적 관용을 베풀 때가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총련이 역사와 민족 앞에 기여해온 공적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도 공과 과를 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학생운동을 대표해온 한총련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형평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총련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대중적인 통일운동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2002년에는 부시 대통령의 방한에 항의해 주한 미상공회의소 점거농성을 진행했고,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12월의 광장’을 여는 데 일조했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대등한 한-미 관계의 사회적 바탕에는 한총련의 투쟁과 헌신이 일정하게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총련은 올해 새로운 10년을 맞이해 참 많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만 갖고 현실을 이겨낼 수 없지만, 꿈이 없이 현실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꿈을 꿔온, 꾸고 있는 분 아닙니까.
한총련의 꿈은 전국의 300만 대학생들과 함께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백범 선생님의 ‘나의 소원’처럼 한총련의 꿈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이것입니다.
민족의 생존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청춘도 미래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뚜렷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총련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부터 반전평화운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학교별로는 난민구호를 위한 모금활동도 벌였습니다.
한총련은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자기혁신을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학생운동의 진로를 위한 탐구와 연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려 합니다. 이를 위해 한총련 홈페이지를 포털사이트로 개편하고 대중적인 독서토론운동을 전개해 대학가에 새로운 향학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려 합니다. 5월 말 ‘한국대학생 5월축전’과 하반기 ‘북녘 역사유적 전국대학생 답사’ 활동을 조직할 예정입니다.
한총련은 세계적인 학생운동단체로 거듭나려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운동’이라고 대답한 예가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학생운동은 주체들의 헌신성이나 투쟁의 역사, 투쟁동력 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로 꼽혀 외국에서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총련은 앞으로 한총련의 위상과 역할을 더욱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견지에서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총련의 전망과 계획에 대해 합법화를 위한 ‘전술’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한총련은 의도를 숨기지 않습니다. 합법화를 위한 합법화, 합법화를 위한 전망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것이며 그런 가운데 합법화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합법화를 바라지만 합법화를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총련의 진심을 대통령께서는 읽어주시리라 믿습니다.
한총련은 앞으로도 이 땅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헌신하며 싸울 것입니다. 그 길에서 때로는 대통령과 같은 길에 서 있을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대통령께 거침없는 비판과 공격의 화살을 던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파병처리안 국회통과 때 대통령께서는 ‘국익을 위한 파병’을 말씀하셨지만 한총련은 파병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국회 앞 농성’과 ‘국회 진입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미 서로 다른 길에서 서로를 바라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총련의 행동은 대통령의 그것과 상반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총련은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 속에 녹아 있는 비통한 심정을 한총련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같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토론하고, 함께 진로를 모색하는 발전적 관계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먼 훗날, 통일된 조국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대통령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격무 중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국민의 마음과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한총련도 민족·민중의 부름에 청년의 기상으로 화답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