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지난 한 주간 믿음으로 사셨습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17절의 말씀처럼 복음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복음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의를 만들어 낼 수 없는데(유대인들이 증거가 됨)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왔으니 그 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이 악하다고 하나 그러나 악한 자보다 선한 사람이 많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흉악한 일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없이 착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훨씬 많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교육과 환경을 만들면 훨씬 범죄가 줄어들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환경운동도 하고 생명운동도 하고 민주화 운동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관론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를 보면서 도대체 인간 스스로 만들어 온 역사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가를 보면서 비관합니다. 그러한 비관이 강렬하여지면 자살을 하거나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기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 죽이고 나도 죽자는 식으로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 대하여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졌지만 이루지 못한 상실감이 커서 그런 것이지 세상자체를 포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또 사람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말하게 되면 복음이 아닙니다. 반쪽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좋은 것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엇을 준다고 합니까? 영생만 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을 다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주시기 때문에 다른 신들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더 능력이 많으니 하나님께 빌어야지 더 잘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전도를 하여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서는 거의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지옥이니 심판이니 하는 내용들을 좋아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백화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온갖 문화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아주 실비로 문화교실을 왜 만드는 것입니까? 고객이 와야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롯데 백화점과 대동 백화점이 서로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처럼 지역민을 위한 문화교실, 독서실, 결혼식장등을 만들어 개방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유가 있고 남는 공간이 있으면 그렇게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호감을 주어서 예수 믿기 좋게 만들자는 생각이 있다면 이 사람은 아직도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창세기 3장 이후로부터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까?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는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았기에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죄악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불사르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 7:8-17절을 봅니다.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서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까?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가 없는 상태라면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며 칼을 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은 죄악을 해산하고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러한 의 없음에 대한 심판과 진노를 아는 사람만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면 그저 예수 믿는다고 하여도 자기 편함, 자기 이익, 자기 행복, 자기 마음의 만족만 챙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도 힘들고 어렵고 귀찮은 일들을 모두가 피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하면 하는 대로 복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면 아마 이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90:1-12절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1)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누가 주의 이러한 진노와 노를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생의 평생이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일평생이 주님의 진노아래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없는 곳에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밖에 나타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은 복음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만으로 기뻐하고 감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엉뚱한데 관심을 둡니다. 예수 믿는 것만으로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허기져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무언가 더 산뜻하고 새롭고 신선한 것은 없는가 하면서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디에 나타나는 것입니까? 로마서 1: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경건치 아니함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건치 아니함과 불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라는 기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종교를 가졌거나 또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고 해서 감옥에 가두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관계에서 법을 어길 경우 그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어디에 나타납니까? 경건치 아니함과 불의입니다.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대한 경건입니다. 두 번째가 불의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면 무엇이 됩니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경건함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불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경건치 못함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 외에는 쏟아질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건치 아니함에 대하여 19-25절에서 말씀하고 있고 불의에 대하여는 26-3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경건에 대한 죄는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아예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 속에서 불의한 일만 없으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의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 가지만 봅니다. 시기, 수군수군 하는 것, 비방하는 것, 자랑하는 것도 다 불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강도나 살인 같은 범죄만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것들도 불의이며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불의의 근원이 경건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의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기에 나오는 사상과 행위들입니다. 이것이 경건하지 않음이며 이러한 불경이 불의를 생산하여 내는 것입니다. 불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자신을 의롭다고 할지 모르나 경건치 아니함에 대하여는 생각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가 불의한 행위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경건치 못한 것입니다. 이로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것입니다. 진노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2:5절을 봅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진노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으신 이유는 아직도 회개할 자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여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은 결국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7-18절입니다.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1)서리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됩니다. 믿는 자에게 먼저 심판이 시행이 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 마지막이 어떠하겠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함이 심판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을 순종치 아니함이 심판인 것입니까? 로마서 1:17절에서 복음에 무엇이 나타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아니함은 곧 하나님의 의가 없는 상태이기에 경건치 못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날 유일한 길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습니다. 진노 아래 있기에 인간의 어떠한 선행과 이성의 능력과 도덕으로 무장을 하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불살라지기 위하여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자기 백성들을 건져내시기 위하여 이렇게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8-18절을 봅니다. “봉독” 지금 보이는 하늘과 땅이 불에 타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습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바라라고 합니다. 불타 없어질 것들을 목숨처럼 붙들지 말고 그 구원이 나타나도록 간절히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의 나라입니다. 의가 없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날마다 더 풍성하게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