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서울의 봄>
1. 시대적 전환을 가져왔던 역사적 사건은 언제든 흥미롭다. 특히, 그것이 내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났고 그러한 현장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의미와 의의는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새벽에 일어났던 일명 <12.12 사태>는 그러한 사건 중의 하나이다. 1979년 10월 26일 갑작스러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등장한 대머리의 육군 소장은 강압적이고 냉정한 얼굴로 언론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그를 비롯한 일련의 군인들이 권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치적 변화에 대한 특별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아 다만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만을 감지했을 뿐이다. 대머리의 소장이 어느 날 대통령이 되었을 때야 그가 군사적 무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2. 전두환의 권력 장악이 어떤 계기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정보는 5공화국이 끝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6공화국 상황에서 전두환 일파의 내란과 광주무력 진압에 대한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혼란스러웠던 5공화국의 정체가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TV에서도 정치 드라마를 통해 5공화국의 권력장악과 실체를 보여주었다. 당시 신군부 세력과 대립하고 있던 장군들이 결국은 보안사에 끌려가 심각한 고초를 당해야했다는 사실, 그리고 신군부가 전방 부대와 특전사 부대를 동원하여 서울의 심장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참담함이 밀려왔다. 정치적 욕망에 휩쓸린 세력들이 정치적 혼란 속에서 권력을 장악한 후진 국가의 쿠테타 현상이 또다시 서울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정보를 통해서도 여전히 왜 그렇게 쉽게 신군부 세력이 하룻밤 사이에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당시의 군인들은 신군부 세력 이외에는 없었다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저항했던 군인들은 없었다는 것일까?
3. 이러한 안타까움은 나만 가졌던 감정은 아니었나 보다. 나와 같은 세대인 감독은 1979년의 비극을 영화를 통해 다시 추적할 것을 꿈꾸었고, 40년이 훨씬 지난 2023년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완벽한 다큐 드라마가 아니다. 분명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대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신군부 세력에 대하여 저항했던 군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드라마틱하고 군인의 본질을 지킨 위대한 영웅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실제적 사건을 배경으로 권력과 탐욕에 사로잡힌 신군부 세력과 군인의 자리에 충실한 진짜 군인들의 대립과 저항 그리고 충돌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인간이 가진 사회적 지위에 대한 책임과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4. 이 영화의 두 개의 축은 쿠테타의 주모자인 일명 ‘전두광’ 소장과 그와 맞서는 ‘이태신 소장’이다. 전두광은 참모총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그를 따르는 ‘하나회’ 집단과 함께 치밀하게 계획을 추진해 나간다. 영화는 전두광을 권력의 화신으로 그린다. 권력에 대한 집념이 시간대별로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도 그로 하여금 절대 흔들리지 않은 야욕으로 분출하게 만들었고, 그의 결단은 우왕좌왕하는 다른 협력자들을 압도하여 사건을 진행시킨다. 신군부의 쿠테타가 일어나자 저항의지를 상실한 대부분의 군인 수뇌부들과 다르게 몇 사람의 군인들이 부각된다. 영화는 저항의 중심을 당시 수경사 사령관 장태완을 모델로 한 ‘이태신’ 장군에게 투영시켜 긴박한 사건의 진행을 전개시킨다. 하지만 사조직을 통해 결합된 신군부의 세력은 막강했으며 특전사 사령관이나 수경사 사령관 휘하의 부하들도 신군부 쿠테타에 동조하게 됨으로써 승부의 축은 기울게 된다. 영화는 하나의 상상으로 이태신 장군과 소수의 병력이 마지막까지 쿠테타 세력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반란을 일으킨 군인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진정한 군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5. 영화는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대한 슬픈 조가를 다시금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현실적인 이유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강력한 힘 앞에 무너지게 되고 복종했던 그 날의 슬픈 사건에 대한 애절한 기록인 것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국가의 책무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장교들은 자신들의 병사를 동원했고, 그것에 대해 반항하지 못하고 움직여야 하는 대부분의 병사들의 모습이다. 장군이나 연대장이 명령하면 그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군인들은 오직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들이겠지만, 그 명령이 국가를 배신한 명령이라는 점에서 총을 들고 국방부와 참모본부를 공격했던 그들의 행위는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이성과 의식을 제거당한 인간들의 참담한 모습인 것이다.
6. <12.12 사태>는 어떤 정치적 변혁이나 국가적 당위성과는 관계없는 철저하게 탐욕과 권력의 욕망이 작동되어 벌어진 사건이었다. 소수의 정치군인들의 결정에 의해 수많은 병사들은 이유도 알지 못하고 누군가를 공격하고 총들 쏘아야했다. 인간의 자율적 판단을 빼앗아버린 이 날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 그것에 참여한 군인들은 아마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떤 이들은 그것을 하나의 영웅담으로 재생할지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판단도 결정도 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동원되었던 그 날의 기억을 제대로 반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잊을 것이고, 기억 속에서 삭제할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권력을 선물했겠지만, 누군가에는 비극을, 또 다른 누군가에는 절망과 허무를 심어주었다. <12.12사태>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질문한 <서울의 봄>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중요한 문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역사적 순간에 개인에게 허용된 신념과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첫댓글 - 영화는 돌아가지만 아직도 봄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더욱 춥다. 다시 돌고돌아야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