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 미국은 깨끗하고 일본은 더럽다? (7)
규제가 가장 심하다고 알려진 올림픽에서도 이 정도인데, 훨씬 느슨한 프로 스포츠에서는 과연 어떨까? 정해진 날짜에 테스트 한 번, 거기에 일부 선수들을 상대로 랜덤 테스트 정도를 검사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의 약물 검사 시스템은 과연 모든 사용자들을 잡아내기에 충분할까? 어떤 이들은 전원 적발은 못한다 해도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결국 잡아내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수능 시험 볼 때 감독관이 앞에 서 있으면, 일부 ‘초고수’들이야 어쩔 수 없이 놓친다 해도 결국 대다수 ‘컨닝맨’들은 다 걸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감독관이 분명 앞에 서 있긴 한데, “자, 지금부터 15분, 30분, 45분에 제가 고개를 들어 여러분을 살필 겁니다. 그때 걸리면 여러분 큰일 납니다!”라 으름장을 놓고는 그 외 시간 동안에는 아무리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안 할까? 지금 대부분 프로스포츠의 도핑 테스트 시스템이 딱 그 꼴이다.
도핑 테스트는 기본적으로 체내에 존재하는 테스토스테론과 에피테스토스테론 비율을 보고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1:1인 일반인들에 비해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테스토스테론 비율이 더 높은데, 기준 이상으로 그 비율이 올라가면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과거 올림픽에서는 6:1 혹은 8:1까지 허용된 적이 있었으나 현재 기준은 4:1이다. 문제는 4:1 안쪽으로 숫자를 내 도핑 테스트에 걸리는 것을 피하는 테크닉이 워낙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이 사진은 wizzinator라 불리는 소변 바꿔치기용 세트다. 저 안에 든 말린 소변 파우더와 가짜 성기를 이용해 본인 소변이 아닌 다른 소변을 받아 제출하는 것이다. 비싼 제품엔 저 가짜 성기가 친절하게도 각자 다른 색상으로 세 개 들어있다. 이 제품은 아무리 체육위원회 감시관이라 해도 선수가 소변을 받는 순간 그 성기에 ‘눈을 가까이 갖다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는’ 걸 악용한 것이다. 미 NFL에서 활약하던 온타리오 스미스가 2004년 4월 실제로 이 제품을 사용하려다가 걸린 적이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런 트릭들은 거의 유머 정도로 웃어넘긴다.
필자는 여러 차례 강조한 대로 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 도핑 정책은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간단히 정리한다면
1. 사람들에게 스테로이드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2. 사용자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제각각이며 대부분 너무도 경미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몇 차례 이어진 칼럼을 통해 얘기한 대로다. 이미 이전 글에서 썼듯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몇몇 언론에서 받아쓰기 식으로 떠들어대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use(사용)와 abuse(오용)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심장, 간, 고환 등에 대한 스테로이드의 부작용들이 생각보다 덜하다는 것은 use의 경우를 얘기하는 것이지, 만일 abuse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상상도 못할 부작용들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과거 동독의 올림픽 선수들을 들 수 있다. 1970~80년대 동독에서는 10000명 이상의 운동선수들이 각종 스테로이드를 복용했고, 여기에는 1000명 이상의 코치 및 과학자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정치적 냉전에서 반대편 진영을 눌러 이기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동독 정부 측에서 이에 대한 비밀 유지를 강조했고, 이에 따라 어떤 선수들은 열한 살 때부터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겪고 있는데, 당시 성장기에 있던 선수들이 특히 심하다고 한다. 불임, 비정상적인 체모증가, 악성 종양, 심지어는 과다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성전환 수술까지 받은 사람도 있다. 물론 사망한 사람들도 많다.
80년대 동독의 올림픽 스타였던 하이디 크리거는 1997년 성전환수술을 받고 남자가 되었다. 선수 시절 코치들이 비타민제라 속이고 매일 건네주던 스테로이드를 계속 복용한 결과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 스테로이드를 남용했을 때 그런 부작용들이 생긴다는 게 분명하다면, 지금 정책이 잘못된 게 뭡니까?’ 자, 당신이 몸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도 전혀 발전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몸 좋아진다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눈이 이글이글해진 상태다. 그때 주위 운동하는 사람들 중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근데 이상하다. 스테로이드 한 방 맞는 순간 심장이 비대해지고 간 손상이 일어나며 성기능이 저하되는 등 인생이 팍 꼬이는 건 줄 알았는데, 꽤 멀쩡해 보이는 거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데 하며 한 번 시도해 보니 이제까지 들었던 부작용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남용의 부작용’만 매일 듣다가 실제로 해보니 ‘에이 부작용 자체가 원래 별로 없는 것이었구나.’하고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어 남용의 길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실제 스테로이드 사용자들은 일반적으로 바라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워낙 스테로이드 하면 쉬쉬하기에 거기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는 게 터부시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반대쪽에서는 그 와중에 스테로이드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이 한번 해보기 위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잔뜩 있다. 양쪽의 갭이 생각보다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에서도 몸짱 열풍을 타고 분명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며, 미국에서는 오히려 메이저리그나 종합격투기 등 각종 프로스포츠에서의 도핑보다 일반인들의 이런 ‘올바른 지식 없이 갈수록 무분별해지는’ 도핑이 더 큰 문제로 꼽힌다.
그런데 이 부분은 아까 현재 스테로이드 정책의 두 번째 문제로 제시한 처벌 관련 얘기와도 관계가 깊다. 미국에서 스테로이드 소지는 범죄지만 복용은 범죄가 아니다. 스테로이드 복용사실을 적발당한 프로선수들은 체육위원회 같은 곳의 징계만 받을 뿐 형사처벌은 받지 않지만, 스테로이드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당한 일반인들은 감옥에 간다. 릭 콜린스(스테로이드 관련 법률 전문가로 꼽히는 변호사. 보디빌더이자 정식 트레이너이기도 하다.)는 일반인들의 경우 본인이 사용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대량으로 구매했다가 딜러라는 오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마약 판매 등으로 걸리면 살인이나 강간보다도 더 무거운 형을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스테로이드 판매는 강력한 마약인 필로폰 판매 범죄자와 같은 형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몸짱 한 번 되어 보려다가 인생 종친 꼴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스테로이드 판매로 처벌을 받았던 ‘거대한 이두근의 사나이’ 그렉 발렌티노. 스테로이드 판매로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반면 프로선수들에 대한 처벌은 이에 비해 미약하기 짝이 없다. 격투기만 놓고 따져 본다면 최근 UFC에서 차엘 소넨, 셰인 카윈 등 유명 선수들이 약물복용으로 적발되었지만, 기껏해야 활동 정지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이다. 어차피 UFC 정상급 선수 정도 되면 연 3~4게임 밖에 뛰지 않는 걸 감안하면 그다지 큰 타격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걸리더라도 일단 약 쓰고 이겨보자.’라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지 격투기 선수들 사이에서 약물 복용에 따른 처벌에 대해 ‘떼쓰면 줄여주고, 겸허히 받아들이면 절대 안 줄여준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을 인정하고 가족을 위해 그런 것이니 선처를 호소한다며 울먹였던 전 UFC 파이터 에르메스 프랑카는 자격정지 일 년을 꼬박 채워야 했고, 스테로이드로 수차례 걸린 상습범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자기 물병에 스테로이드를 넣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재판장에서 고성을 지르는 난동까지 피웠던 복서 제임스 토니는 ‘6개월로 경감!’이란 판결을 받았다. 2000년대 이후 토니는 연평균 두 차례의 경기를 치렀다. 6개월 자격정지는 그에게 전혀 효력 없는 처벌이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음식물 혹은 보충제에 스테로이드가 섞여 억울하게 테스토스테론이 그토록 높이 나온다는 얘기는 십중팔구 거짓말이라 지적하는데도 불구하고, 토니와 같은 예(떼쓰면 줄여주는 경우)는 션 셔크, 필 바로니 등등 굉장히 많다.
작년엔 UFC에도 참전했었던 제임스 토니
사실 최근 필자가 만난 국내 격투기 선수들은 스테로이드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에 시합을 여러 차례 다녀보지만, 기술훈련 프로그램이건 체력훈련 프로그램이건 결코 뒤지거나 모르는 것도 없고, 실제로 스파링을 해봐도 그리 밀리는 일도 없는데 실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체력에서 너무 차이가 나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의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격투기 선수들은 ‘약물 검사 있는 미국은 깨끗한 곳, 약물 검사 없는 일본은 더러운 곳’이라는 팬들 만큼이나 도핑에 대한 인식이 순진하다. 하지만 외국 선수들은 다르다. 한국에서 필자와 한때 함께 운동했던 영국인 친구가 어느 날 웃으면서 메일 한 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본국에서 세미프로 격투기 선수로 활약하는 친구가 보내준 메일이라 했는데, 그 안에는 각종 스테로이드의 이름과 효능, 복용방법, 도핑을 피하기 위한 시기 조절법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그 친구와 필자는 “우와, 엄청 많이 알고 있군.” 하고 웃어넘겼지만, ‘영국의 세미프로’가 그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데, 현재 격투기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의 최강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프로’들은 어떨까? 과거 구소련 시절의 약물지식이 잔뜩 누적되어 있고 본국에서는 변변한 약물테스트조차 거의 없는 ‘러시아의 프로’들은 어떨까? 알아서 생각하시길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소개할 것이다. 필자는 이 분과의 인터뷰 한 번을 통해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며 연구한 자료 전체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도 많이 바로잡을 수 있었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약물이 스포츠계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 전문가의 눈으로 바라본 몇몇 격투가들의 도핑 의혹에 대한 견해, 선수들이 도핑을 빠져나가기 위해 쓰는 구체적 방법, 왜 스테로이드를 쓰면 안 되는 것인지, 실제로 어떤 무서운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등등 아마 그 어떤 곳에서도 보거나 들을 수 없었던 얘기들이 소개될 것이라 믿는다.
출처: 네이트(스포츠 칼럼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