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기록(1)- 우리는 그 시대에 뭐하고 살았을까.

[이현기]

❴나를 위한 기록1---우리는 그 시대에 뭐하고 살았을까❵

나이가 들고 감성이 메말라가니 생각을 글로 표현해 본지가 오래되었다.

한동안 여독에 시달리다가 몸이 조금씩 살아나니 여행의 추억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꿈틀거림이 밀려온다.

작년 시월 어느 날,

알 이태리 항공에서 프로모션 떴다는 아들의 유혹에 ‘예스‘를 하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유럽여행(스페인-파리)의 단초가 된 것이다.

“스페인“

사전지식 검색을 해보니, 유럽 남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한반도의 2.3배정도(50만평방 키로)의 광대한 땅, 정열의 나라다. 지중해의 따뜻한 날씨로 유럽인들의 겨울 휴양지로 유명하다.

모든 준비는 애들이 알아서 예약하고 준비하는 동안 별 생각 없는 나날들이 지나고 기어코 출발의 날이 다가왔다.

출발의 날이 가까울수록 설레임보다 말없는 고민도 깊어 갔다.

명절에 집을 비우고 가족여행을 떠나는게 어디 쉬운 일이고 용납되는 일인가.

한 참을 망설이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흔쾌한 대답과 함께 용돈까지 내어 놓으신다.

설 명절에 떠나는 여행, 결코 편하지 않은 맘으로 2017.1.25-2.8일까지 13박14일간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에서 알 이탈리아 국적기에 올랐다.

한국의 모든 것들은 잠시 내려두자.

하필이면 이때 지사 정기감사 기간이 걸리다니---

‘내가 없으면 더 잘 돌아간다.’

설렘은 금새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결정했을텐데, 장거리 비행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지니스석 하는구나. 후회가 밀려온다.

4시간쯤 지나니 서서히 온 몸에 주리가 틀리기 시작하고, 어떤 자세를 취해도 편하지가 않다. 눈앞의 모니터에 중앙아시아 상공을 지나는 현재 위치가 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비행기가 이렇게 늦게 날 줄 미처 몰랐다. 몸이 불편하니 잠도 안온다.

고문 같은 10시간이 지나고 늦어 터진 비행기는 로마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시 최종 목적지 마드리드행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2시간 정도 더 타야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어 보인다.

미지의 세계, 유럽이 눈앞에 다가오는 희망.

겨우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라 공항은 썰렁하다.

택시를 타고 예약된 숙소에 도착하니 밤12시가 가깝다.

❪마드리드--솔 광장, 프라도 미술관❫

유럽에서 첫 날(1.26.)이 밝았다.

지하철을 타고 스페인 국도의 기점이 되는 마드리드 중심가 ‘태양의 문’으로 불리는 ‘솔 광장’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상징 곰 조각상 뒷다리에 손을 얹고 기념사진도 찍고, 광장 곳곳에 동상처럼 꼼짝 않는 행위 예술가들의 표정이 신기하고 사람을 놀라게 한다.

유럽은 이런 분위기인가 보다. 오래된 건축물양식, 광장의 보도, 고풍스런 골목과 연륜 묻어나는 숍,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게 역사와 전통의 유럽이구나.

이리저리 광장주변을 휘돌아 다니며 담백하고 맛있는 마카롱도 저렴하게 맛보고 해물파스타와 한 잔의 샹그리아로 점심도 해결한다.

구경삼아 걸어서 의사당 건물을 지나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하니 관람객이 줄지어 기다리지만 예약자는 별도로 입장시켜 준다.

‘프라도 미술관’

1785년 카를로스3세가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의뢰하여 1819년 완공한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로 왕립회화관으로 출발했단다. 지하1층에서 지상2층까지 전시된 명화들이 길게 뻗은 전시장의 온 벽면을 가득 채워 어디서 뭐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

스페인의 유명했던 화가들(엘 그레크, 벨라스키아 등)의 작품과 책에서 본 ‘고야’의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사람들을 끌고, 라파엘로, 렘브란트 등등 거장들의 5-600년 전 유화 작품들이 시공을 초월해 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작품들을 완벽하게 보관하고 있었을까?

어떻게 저렇게 웅장하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이런 미술관이 도처에 깔려 있다니, 그래서 유럽이 문화의 중심지인가?

그 옛날 그 시대 왕족의 초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눈빛과 표정이 오늘의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듯하다. 권력도 명예도 일장춘몽에 불가하니 “인생을 즐기라.”

‘그 시절 우리(나라)는 뭘 하고 있었을까?’

시대적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 앞에 역사적 해설도 들어보고 다 돌아보니 네 시간정도가 소요된다. 전시작품의 대부분이 카톨릭 종교화라서 그런지 약간의 이질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고문 같은 장거리 비행의 여독이 나타난다. 나만 그러니 나이 탓인가 보다.

지중해의 겨울해가 빨리도 넘어간다.

밤엔 ‘마드리드 왕궁’을 입장시간이 지나 밖에서 외관만 구경하고 인근에 있는야시장 ‘산미겔 시장’도 아쉽게 접어야 했다.

❪말라가--왕의 오솔길❫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멀리 지중해쪽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로 갔다. 우리가 말라가로 간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유명하다는 ‘론다‘지방을 포기하고 ‘왕의 오솔길’을 트레킹하기 위해 서다.

하루 800명만 입장 가능하고 교통편이 불편한 오지라서 아직은 사람들의 방문이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다.

그래서 우린 사전예약을 하고 국제면허를 발급받고 렌트카도 예약했다.

말라가공항에서 렌트카(파사트)를 배정받아 생소한 이국의 거리로 나선다.

묵직하게 전해져오는 핸들링과 중저음의 엔진음이 우리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스페인 남부지방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 사람을 들뜨게 한다. 너무 파란 하늘과 너무 맑은 공기가 축복받은 땅임을 느끼게 하고 끝없이 스쳐 지나는 올리브농장이 이곳의 풍요로움을 대변한다.

“아, 참 하늘 푸르고 햇볕 좋고 바람 상쾌하다“

(아들) “우리는 중국 때문에 세계3대 대기오염국 중 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2시간을 이국의 풍경 구경하며 달려 사암층(석회암층인지)으로 구성된 한적한 산길을 올라 왕의오솔길 들입머리에 도착했다. 언덕 위 유일하게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음식을 맛있게 먹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왕의오솔길”

1900년대초 이곳 협곡사이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노동자들의 작업통로로 개척된 절벽위의 잔도로서 1921년 발전소가 완공되고 알폰소13세가 축하의 의미로 이 길을 걸어 붙여진 이름이다.

너무 위험해 2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2015년까지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안전하게 정비되어 유명 트레킹코스로 거듭났다.

7.7km 코스로 이런 절벽에 길을 개척하다니, 인간의 위대함과 대자연의 웅장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곳이다. 태고의 숨내 같은 바람결 맡으며 조용한 산길을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

유일한 노점상 아저씨의 맛보기에 꾀여 말린 과일포를 사 들고, 안내원의 설명과 안전모를 착용하고 20여명이 출발한다. 동양인은 오로지 우리밖에 없다.

그래도 외롭지 않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다. 기념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말없는 대화를 하며 또 다른 세상에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마눌 왈, “세상에 젤 독한 놈들이 일본*인줄 알았더니 스페인 사람들도 독하네. 독해”

높은 절벽 위 활공하는 독수리가 있고, 그 아래 구덩이에 모여 사는 새들의 생명력이 있고, 그 중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자연의 일부가 된 인간들이 있다.

2시간30여분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아 도착한 마지막 구름다리에서 아득한 절벽의 스릴 다시 느껴보고 부슬부슬 시작된 가랑비 맞으며 나들목에 다다른다.

되돌아본 회백색 절벽 봉우리와 푸른 물결이 한결 같이 고고하다.

그렇게 트레킹은 마무리 되고 길섶에 앉아 반겨주는 길고양이와도 안녕을 한다. 다시 갈 길이 바쁘다. 오늘밤은 그라나다에서 차를 반납하고 묵어야 한다.

❪그라나다--알함브라궁전, 대성당❫

그라나다는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 고도로서 이슬람문화가 가장 많이 혼재하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고풍스름이 배어나는 오래된 울록불록 보도가 사방으로 뻗은 골목에 즐비한 음식점과 주점들이 관광객들로 밤새 붐볐다.

축축한 겨울비 맞으며 우리도 몇 몇 집을 거쳐 겨우 한 자리 잡아 늦은 저녁을 들었다.

그라나다 방문객은 ‘알함브라궁전’을 보기 위함이다. 8세기경 북아프리카 무어인이 넘어와 세운 이슬람 왕조인 그라나다왕조가 이 도시의 언덕위에 이슬람문화의 극치인 나스르궁, 알카사바요새, 여름별궁 헤네랄페 등의 궁전을 세운다.

원추형 공간이 벌집모양처럼 층층이 쌓이고 흘러내린 듯 아름다운 천장과 기하학적 문양의 벽면들, 대리석 기둥 등 내부는 그냥 입만 쩍쩍.--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이토록 화려하고 융성했던 이슬람왕조도 카톨릭계 아라곤왕조와 카스티야왕조의 이사벨라1세 여왕의 연합공격에 1492년 마침내 멸망하여 왕궁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나며 남겼다는 말은 지금도 전해져 온다.

“스페인을 두고 떠나는 건 슬프지 않으나,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음에 너무 안타깝다”

궁 내부의 아름다움도 극치지만 질서정연한 정원, 분수, 콸콸 넘쳐나는 수로의 물길. 생동감이 넘친다.

알카사바 요새에 올라 내려다보는 고도의 풍광들, 흰색과 빨강의 조화로움이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에 반짝거릴 때, 그 옛날 이 도시의 애환들을 대변하는 듯 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콜롬버스를 알아본 이사벨라여왕과 비견되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를 만드셨다.

오후엔, 시내에 있는 ‘그라나다 대성당‘에 조심스레 발을 들여 놓았다.

이슬람왕조가 멸망하고 그 모스크 위에 세운 대성당은 200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되어 여러 건축양식이 기형적으로 상존하는 성당이란다.

성당내부의 거대한 기둥들로 높이 떠받쳐진 천장과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가 스테인글라스 창을 통해 굴절되어 들어오는 오묘한 빛으로 하늘의 은총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유럽 성당의 하나같이 고딕양식의 높은 천장, 어둑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세속인에게 종교적 위압감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성당의 종교화와 세상의 고통을 짊어진 정면의 예수상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첨탑으로 올라 시내를 휘둘러보니 또한 새롭다.

‘여기에 봉직했던 성직자는 행복했을까?‘ ‘진정한 자기 자신의 삶 살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세비야--알카사르궁, 에스파냐광장, 플라멩고, 대성당❫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그라나다를 두고 밤기차로 2시간을 달려 ‘세비야‘에 도착하였다. 세비야의 늦은 아침햇살에 눈을 떠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 정경을 담아본다. 지천으로 노란 오렌지 나무다. 한 개쯤 따서 먹어봐야겠다는 욕심이 동한다. 아침을 걸으면서 간단하게 빵으로 때우고 ‘알카사르 궁전’으로 갔다.

‘알카사르 궁‘

12세기 이슬람양식의 성위에 카스티야왕가 페드로1세가 알함브라 나스르궁을 모방하여 세운 궁으로 왕가에서 가장 좋아한 궁성이며 이사벨라 여왕이 여기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중앙의 ‘사자의문’을 지나 궁 안 작은 정원의 물결이 햇볕에 반짝이고, 내부장식들이 나사르궁 만큼 화려하다. 짙은 황토색 같은 외벽면 색상이 오렌지의 나라 스페인 색깔 같다. 넓고 잘 정돈된 ‘르네상스 정원’은 마치 공원 같다. 주변으로 둘러선 긴 회랑(망루)에 올라 한 시대를 풍미한 옛 왕가의 성쇠를 되새겨본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구경삼아 시내를 가르며 흐르는 강가로 걸어갔다.

강둑에 우뚝 솟은 망루의 원형 탑이 있다. 13세기 이슬람식 망루로서 그 옛날에는 정상부가 황금으로 장식되었다고 ‘황금탑‘이라 부른다.

적당히 넓고 조용한 물살위로 유람선이 유유히 오고 가고, 조깅하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시민들의 얼굴에 여유가 넘쳐난다.

30여분을 걸어서 ‘에스파냐 광장’에 도착하였다. 넓은 광장을 덮은 타일과 보트 띄운 인공수로 물결의 일렁임이 햇빛에 반짝인다.

1929년 박람회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광장은 가운데에 분수대가 있고, 정면으로 반원형의 2층 회랑식 건축물이 웅장하게 서있다. 따가운 겨울 햇살에 일광욕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 연인과 물놀이용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평화롭고 분주하다.

우리는 색다른 정취 느껴보기 위해 마차를 타기로 했다.

40유로에 마차를 타고 광장 주변과 시내 일부를 40분 정도 즐길 수 있다.

말발굽의 흔들거림 느끼며 혼잡하지 않은 차도 위를 차량과 뒤섞여 달리는 기분이 새롭다.

‘플라멩고 춤‘

14세기부터 생겨난 집시들의 방랑과 삶의 애환이 녹아든 스페인 전통춤이다.

그 중심지가 안달루시아 지방(그라나다 세비야 등)이다. 그라나다 사크로몬테 언덕 집시들의 동굴집이 유명하다. 알함브라궁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곳을 눈으로만 보고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서 푼다.

예약된 ‘플라멩고박물관‘을 미로 같은 골목을 돌고돌아 도착하니, 중국 단체 관람객들이 소란스런 분위기로 벌써 대기 중이다.

입장료가 1인당 20유로 였던가. 객석이 가득차고 무대 위에 조명이 들어오고 춤으로 다져진 늘씬하고 매력적 몸매의 적당히 나이든 남녀 무용수, 기타연주자, 노래(칸테) 가수.--이렇게 네 사람이 등장한다.

무대복이 강렬하고 몸에 꽉 쬐인다. 가수의 낮고 깊은 중저음의 노래와 기타연주와 함께 서서히 무희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천천히 춤사위와 발놀림을 시작으로 중모리 중중모리(?) 알 수 없는 박자 속에 때론 느리게, 때론 격렬하게 무대에 울려 퍼지는 스텝소리가 객석을 휘감아 돈다. 남성 무희의 춤사위는 발끝과 뒷꿈치를 이용한 파열음이 빠르고 강렬하여절도가 있다.

여성은 적당히 절도 있는 발놀림, 부드러운 손놀림과 전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느낌이 매혹적이다.

혼자 또는 둘이 한결같은 호흡으로 뜨겁게 내뿜는, 삶과 죽음과 번뇌를 아우르는 비감감이 묻어나는 몸짓으로 무희의 온 몸은 땀이다. 객석까지 분사되어 흩어진다. 어떤 경험자가 그랬다. 가급적 객석의 첫째 줄에 앉지 마라.

여기선 ‘가수’ 역할이 젤 편한듯하다. “오레~” 추임새 간혹 넣고, 박자에 맞추어 우아하게 ‘손뼉치기’만(?) 하면 된다. 강렬한 춤사위와 마루에 울려 퍼지는 스텝에 빼앗긴 6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공연이 끝났다. 시원한 청량감이다.

‘세비야 대성당’

세계3대 성당 중 하나이고 1401년 시작하여 1506년 완공된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고딕건축성당으로 유명하다. 종탑인 히랄다탑과 오렌지 정원은 12세기 지어진 유일한 이슬람식 사원의 일부로 남아있다.

성당의 웅장함과 경외감은 그나나다 대성당과 다를 바 없었고, 여기엔 그 유명한 ‘콜럼버스 무덤관’이 모셔져 있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에 따라 유해는 스페인을 상징하는 네 왕국(카스티야, 나바론, 레온, 아라곤)의 왕이 관을 어깨에 메고 서 있다. 그의 유언대로 땅은 밟지 않은 셈이다.

‘히랄다탑’의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한참을 오르니 34층 종탑 전망감이 좋다.

천천히 내려오며 각 층의 한 켠에 전시된 그 시대의 유물을 보면서 땀내 밴 평민들의 삶 짐작해본다. 오랜 역사의 ‘오렌지정원‘ 열매를 (슬쩍하여) 까먹어 보고는 바로 뱉었다. 현지인들이 지천의 오렌지를 쳐다보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시중의 맛이 아니었고, 탐심이 아닌 단지 궁금해서 맛본 것이다.

‘우리는 그 시대에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다시 머리에 맴돈다.

이제 세비야를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