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신미현님이 22년 10월 8일, 트랜스제주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누구나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 때 계기가 있을 것이다.
2020년 12월 정모, 남편의 권유로 처음 목마에 발을 디뎠다. MTB를 탈때도, 수영을 하고, 달리기를 할 때도 취미를 함께 하는 편이라 ‘마라톤’이라는 부담은 있었지만, 나는 한사코 ‘달리기’라며 조심스레 목마에 입문하게 되었다. 결혼이후 동호회 활동을 해보면서 재미도 있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에 주저하면서도 목마의 신입이 되었고 입회한지 얼마되지 않아 재무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재무를 하게 되면서 채수현 회장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집행부를 맡으면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된다고. 그 덕분일까. 영산강변을 홀로, 그리고 남편과, 회원들과 수없이 걷고 달렸다.
그런데 나는 왜 달릴까.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
우선은 많은 이들의 이유처럼 건강과 다이어트가 제일의 목표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국내든 해외든 여행지에서 달려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컸다. 무라카미 하루키인가 ㅎ. 코로나로 한동안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었지만, 여행을 가려면 운동화와 러닝 장비를 챙기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나의 러닝 목표는 달성인 셈이다.
달리기 이력 3년차. 코로나로 한동안 마라톤 대회도 없고 경쟁없는 밋밋한 일상에 트랜스 제주 공지가 떴다. 집행부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트랜스 제주 50키로 신청자가 줄을 잇는 가운데 일상을 벗어나 놀러가고 싶은 마음에 ‘2022 트랜스 제주 10k’에 주목한다. 감히 50키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힘든 도전보다 그냥 가볍게 제주를 느끼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신청한 것이 트랜스 제주 10k 코스. 누적고도 200m의 코스로 서귀포시 가시리 마을을 달리는 것. 가시리 마을은 제주 중산간의 오름과 목장 및 초원지대를 경험할 수 있는 국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트레일 러닝 코스라고 한다.
회원들이 목포 8산을 돌고 부주산을 뛰고 할 때 비교적 평온하게 대회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나는 그래도 트레일 러닝화를 장만하고 부주산과 오룡산 코스 10k 정도, 영산강변 10k, 그리고 서울여행 중 석촌호수 5k 정도를 뛰고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대회 전날인 10월 7일에는 제주에 도착해서 50k 코스 회원들과 함께 사전등록을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이른 휴식. 함께 간 화영언니는 50k주자. 10k 참가에도 첫 트레일런인지라 50k주자마냥 약간은 들뜨고 잠도 설치고 하여 아침을 맞았다. 나를 제외한 50k주자들은 대회 당일 새벽 3시에 기상하여 4시 식사, 5시 대회장으로 출발이어서 숙소앞 돌담길에서 가로등 불빛아래 사진을 찍어주며 50k주자들을 배웅했다. 하지만 나는 10시 대회에 맞춰 8시에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부근에서 버스로 대회장을 이동한 관계로 7시가 되어서야 간단히 토스트를 먹고 나홀로 차분히 숙소를 나섰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데 미리 준비한 우산을 들고 일단 버스를 타기 위해 서귀포월드컵 경기장으로 갔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홀로 셀카를 찍는데 10k 젊은 주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40~50분가량을 이동하는데 대구마라톤클럽에서 홀로 참가한 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출발 전 사전등록을 하는 사람들과 주최측이 준비한 포토부스에서 사진찍는 사람들, 20~30대 젊은층이 주축이 되어 대회장은 북적였다. 물론 50k, 100k 부스가 마련되어 있는 행사장에 비하면 다소 초라했지만 젊음의 열기만큼은 그에 뒤지지 않았다. 대회 시간이 가까워오는데도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젊은 친구들은 우비를 입거나 반팔 반바지, 싱글렛 차림으로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대회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덧 출발시간, 3, 2, 1 출발! 비는 더 세차게 내렸고 수백명의 인파가 출발했고 내심 우산을 들고 가다 버려야 하나 하다가 아무리 10k라도 그럼 마라토너가 아니지. 우산을 맡기고 인파속에서 뛰고 있는 나. 조금 뛰어가니 장애물을 지나야 하고 조금 더 가니 질퍽질퍽한 숲길에 닿는 발길마다 말똥 천지. 미쳤어 미쳐,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에휴 날씨는 춥고 50k 안가길 잘했지. 여기도 이런데 얼마나 추울거야. 별 생각을 다하며 뛰다 에라 모르겠다. 신발이며 커프가드며 옷이며 비에 흠뻑 젖어 온몸에서 빗물이 뚝뚝. 그래, 어쩌겠어 즐기자. 냅다 뛰어가자. 가다 못가면 걷고. 부들부들 떨며 우르르 사람들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장애물을 3-4개 넘고 나니 계단이 나왔고 한참 계단을 오르고 나니 그 유명한 따라비 오름. 드넓게 펼쳐진 오름사이로 개미같은 주자들이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계속 내리는 비에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 엄두도 못내고 그래 내 눈에 담지 뭐. 눈앞에 펼쳐진 멋진 광경을 눈에, 가슴에 담으며 어느덧 내리막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갈때는 몰랐으나 돌아오는 나무들 사이로 질퍽질퍽 숲길을 달리며 드는 생각. 마치 최근 본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 나오는 정글을 투어한 느낌이랄까. 정글 소녀가, 탐험가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계기가 아니라면 내가 일부러 세찬 비를 맞을 일은 없겠지. 우중런, 그것도 우중 숲길런의 묘미가 이런걸까. 비록 짧은 코스이긴 하나 처음으로 참가한 트레일런 대회에서 비를 맞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뛰면서 조금은 ‘수난’같기도 했지만, 희열을 느낀 즐거운 경험이었다. 2시간30분 랩타임중 1시간 39분. 내게 기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값진 도전이자 소중한 일탈이었다.
p.s) 목마 총 참가자 13명중 12명이 50k 주자, 나홀로 외로이 10k주자여서 다소 깨구리가 된 느낌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 뿌듯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무사히 완주하신 트랜스제주팀 모두 정말 고생하셨구요. 즐거운 추억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도전이 기대됩니다~^^
첫댓글 같이 10키로 뛰자고 해놓고선 배신 때려서 미안~~ ㅎ 한방에서 이틀밤 같이 자서 정이 푹 들어 난 참 좋아
그래도 언니덕분에 제주간 듯 하네요~^^
작가 등단하셔도 될것 같습니다. 무라카미하루키의 달리기 에세이의 한 부분을 읽는 느낌 입니다.
50k 회원들 사이에서 이방인 인듯 아닌듯 보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아내좀 꼬셔서 내년 50k 같이 나가세요 ㅋ 수고하셨습니다.
주완씨는 100k로 나가려고?ㅎㅎㅎ 또 깨구리 되겠는뎅 ㅎㅎ 주완씨 와이프랑 같이 나가면 저야 좋지요~~^^
10k 출발사진. 비가 세차게 내린다~^^
비가 정말 많이 왔네요~ 사진과 글에서 그 날의 감동이~ 역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써본 글이라...회장님 글에 비하면 그렇지요.ㅎㅎ 암튼 그날의 감흥에 힘입어 후기를 남겨보게 됐네요. 저처럼 잘 못하는 분들도 달리기에 도전하시면 좋겠다는 생각해봅니다.
목마클럽에는 역시 마라톤 뿐 아니라 글 또한 숨은분이 또 있었네요 ㆍ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ㆍ
K수가 중요한가요 ㆍ 즐겨야지요
누구는 월출산 정상에 올라가서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보고
가다보니 남은것은 아무 추억이
없더군요 ㆍ
재무님 수고했습니다 ㆍ
용기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즐기는 러닝을 위해 열심히 하렵니다~^^
50k 안하길 잘하셨어요.. 제주풍경보면서 편안한마음으로 달리는것이 더 낳죠.. 후기 잘 읽었어요.. 사진도 멋지네요..
네...저는 만족합니다. 어차피 마라닉파라서 ㅎㅎ 하지만 도전은 나름 또 멋지긴 하죠~^^ 선생님도 고생많으셨구요. 암튼 50k주자 모두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