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 접근법 363 - 손 글씨, 손 그림은 인간문화재가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언제부턴가 손 글씨라는 호칭으로 정감을 불러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손으로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말이다.
만년필이 나오고, 타자기가 발명되고, 워드프로세서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ms-dos시절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넣고 부팅시켜 쓰던 한글 1.2시절도 있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바이러스 묻었다는 말에 고무장갑 끼고 가위로 싹둑싹둑 자른 기억도 있다. 그러던 것이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되면 “까똑까똑”하는 소리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손 글씨를 쓰지 않아서 세상이 망할지도 모른다. 제일먼저 연하장 회사가 망했다. 연하장 회사가 망하니 인쇄소도 문 닫는다. 소고기 사먹을 일이 없다. 손
글씨는 창의의 시작이다.
미술가들의 그림이 다 비슷해지고, 거기서 거기로 변하는 것이 손 글씨를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억지를 부려본다. 이러다 보면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리고 기계가 칠을 하는 시대가 곧 온다. 예술이 창의이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 그러다보면 손 그림 그리는 사람은 인간문화재가 되어 정부에서 월급 주는 날 오게 된다. 환장할 노릇이다. 머리만 잘 쓰면 아무나 화가되고 아무나 미술가 되고 아무나 예술가 된다.
눈으로 보고 그리는 그림이 중요하다. 사물을 대입하고 정신을 대유(代喩)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한다. 그림을 배울 때 사물을 따라 그리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물에 가벼운 의미부터 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간편한 것이 글씨다. 사물에 글씨를 넣어보자.
인터넷을 열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손으로 만지고 직접 보고 느낀 후에 이미지를 옮기는 것이 좋다. 최근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이 비슷비슷 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출력기와 같은 물감을 쓴다. 인터넷은 평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직접 보면 다르다. 색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 정신 또한 다르다.
손 글씨를 써야 한다. 손 글씨를 쓰지 않으면 국과수가 망한다. 필체 감정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글씨는 개성이다. 글씨에 개성이 있어야 미술품에도 개성이 담긴다. 독특한 자기세계는 자신만의 표현방식에서 발현된다. <글씨체>가 다르듯이 <미술체>도 달라야 한다. <미술체>가 독특한 미술가의 작품이 역사에 남는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체는 작품의 형식을 의미한다.
정수화랑(현대미술경영연구소)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4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