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실종 신고를 해야 된다니까요."
오빠는 제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쳐댔다.
"...좀 더 기다려 봐라. 네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아버지가 맥없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엄마가 뭘 어쨌다는 거예요? 무슨 사고가 난 게 분명하다구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모르세요? 납치, 아니면 뺑소니. 아무튼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단 말이에요."
오빠의 말과 아버지의 말은 미묘하게 어긋났다
50대 가정주부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그녀의 아들은 '실종' 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원,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다가 '가족끼리 의견 통일해서 오세요'라는 총고를 듣고 쫓겨날 지경이었다.
"야, 너는? 넌 생각 없어? 엄마 어디 간 거 같아?"
오빠가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나를 채근했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휴, 저걸 그냥 넌 걱정도 안 되냐? 엄마가 이틀째 소식이 없는데."
오빠가 험하게 눈을 흘겼다. 역시, 안 되는 집구석에서는 힘을 합쳐 일을 해결하기도 전에 내분 먼저 일어난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이으켜 부엌으로 들어갔다. 반질반질 엄마의 손때가 묻은 낡은 주방기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여 있었다. 개수대에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설거지 감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냄비 세개와, 세 벌의 수저. 그것들은 엄마의 부재를 요한하게 증거하고 있었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찌꺼기는 차례로, 신라면, 생생우동, 짜파게티의 흔적이었다.
엊저녁,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집에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투덜대면서 신라면 하나를 끓여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등산회 모임이 있어 부랴부랴 외출했다 들어와 보니 엄마가 없었다는 거다.
"밥통에 밥은 없고 별 수 있냐. 우동 하나 끓여 먹었지."
아버지가 변명하자 오빠가 탄식했다.
"오 마이 갓. 그럼 엄마가 언제 나갔는지도 정확히 모른다는 거잖아요."
"아니, 나는 밤에 들어왔다가 또 어딜 나갔나 보다 했지. 요새 어디 집에 붙어있어야 말이지."
어스름 해가 진 뒤에도 엄마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아버지는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버튼을 누르면서 "이게 미쳤다"를 약 열번 가량 중얼거렸음이 틀림없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되풀이되었다.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아버지, 장남에게 연락을 취했다. 오빠가 달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쨌든 저녁밥은 먹어야 했으므로, 짜파게티를 해 드신 거다.
나는 팔소매를 걷고 설거지통에 손을 담갔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 수세미를 들고 냄비바닥을 벅벅 문질러댔다. 흰 거품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만 싶었다. 콸콸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 너머로 거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어제 아침이네. 그때 별일 없었어요? 또 싸루신 거 아니에요?"
"싸움은 무슨. 네 넘마가 기어오른 거지."
그래도, 일단은 대행이었다. 실종보다야,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가출 쪽이 남겨진 자들을 좀 덜 막막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사단은 콩자반으로부터 일어났다. 어제 아침, 콩자반이 반찬그릇에 따로 덜어지지 않고 밀페용기 그대로 식탁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난 딱 한마디 했을 뿐이다. 이걸 지금 먹으라는 거냐고. 그런데 네 엄마. 갑자기 뚜껑을 확 닫더니 그냥 조용히 냉장고에 넣어버리는 거야. 세상에, 그깟 콩자반 때문에 집을 나갔다는 게 말이 되냐?"
아버지 입장에서야 '그깟 콩자반' 일 터였다.
"어디 전화해볼 만한 데 없나? 강릉 삼촌네는 안 가셨을 거고, 엄마 친구 누구 없어? 아, 그래. 김포아줌마한테 한번 해볼까? 전화번호부 어딨지?"
오빠 입에서 '김포아줌마' 라는 말이 나오다니.
"안 돼!"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실로 뛰어나갔다. 내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뭐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 근처 찜질방에 갔을 거야. 빤하지, 뭐. 엄마가 갈 데가 어디 있어? 좀 있음 들어올 거야."
의뢰인의 무죄석방을 위해, 서투른 거짓말을 늘어놓는 얼뜨기 변호사가 된 것 같다.
아아, 엄마는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