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시를 일컬어서 시조라고 한다.악률(樂律)에 맞춰서 앞뒤가 짜임새 있게 엮어지고 읽는 이에게 답글 형식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선조들이 쓰던 시조였다.시조는 엄격한 문자의 배열이 지켜지고 쓴 사람의 의도가 간접적으로 상대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이라야 제 맛이 났다.풍류를 아는 선비들이 글줄이나 터득한 기생들과 잡기식으로 오가던 고급문화의 한 분야이기도 했다. 때로는 이 짧은 문구안에 무서운 이해타산이 도사리고 있거나 생명이 오가는 음모가 들어있기도 했다. 그래서 시조란 한 글자에도 쓰기위해서는 예리한 판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선조 태종이 된 이 방원과 정몽주 사이에 오갔던 "하여가" 가 그 한 예에 속하듯이 한줄의 문구는 때로는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햇다.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정형시의 형식에 제 3자의 석평(釋評)이 반드시 들어가야 그 시조의 맛이 살아났다.
윤석환 시인은 정형시나 산문시로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 짓기가 아주 힘들고 함축성이 진국처럼 배어있는 시조로 시인이 된 사람이다.
이태극 선생이 우리 세대의 마지막 시조시인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아닌것같다.생각을 전하는 형식에는 소설도 있고시나리오, 시, 시조 등 문자로 만들어지는 여러 장르의 전달매체가 있겠으나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정형시라 일컫는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윤석환 시인이 굳이 시조를 고집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안다.시조를 쓰다보면 다른 형식의 글로 시를 쓰거나 산문시를 짓는 것이 조금 싱거워지고 썩내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마치 소주나 돗수 높은 술을 마시다가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면 제 맛이 나지 않는 것처럼, 시조는 그이 자존심이기도 하다.이웃 나라 일본에도 바꾸후(倍句)라고 불리는 단가(短歌)가 있어서 그 단가의 내용이 때로는 유행가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이시가와 다구보구"의 유명한 단가 <한줌의 모래>에 나오는 귀절은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이 되는 시귀절이다.
"나는 슬픔에 젖어
동해바다의 하얀 모래밭에서
게 한마리와 논다
장시(長詩)나 산문시에도 멋과 풍류와 전달하려는 강한 메시지가 있겠지만 이 짧은, 정제를 한 문자로 이뤄진 시조가 갖는 강한 이미지는 그 이상이 될것으로 믿는다. 한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문자가 많은 것은 소설로 가능하고 시는 될 수 잇는대로 액정 그 자체가 좋다는 것은 이미 작고한 박목월선생의 시에서 그 멋과 재미를 맛보아서 익히 알고 잇으리라 믿는다.
*기다리는 마음 -070209
윤석환
쓰다 만
기억들이
자꾸만
뒤척대고
어제
기대한
오늘
오늘도 항용 같다
내일도
기대만으로
보낼까 봐
겁난다.
생명 -070222
꽁
꽁
언
땅인데도
피어난 저 새싹이
두
팔을
활짝
펴고
기쁨을 만끽한다
지금도
손바닥만 한
내
텃밭에
꽃
피는,
"기다리는 마음"과 "생명"이란 시를 아주 짧게 함축되게 만든 엑기스가 된 시조,그것은 어쩌면 커더란 나무를 한눈에 접하게 만든 분재와도 같은 형식이다.꽁꽁 언땅에서 살포시 얼굴을 내민 조그만 싹에서 생명의 신비함을 일궈내는 시인의 문자 선택이 놀랄만하다. 생명의 끈질김과 그 생명을 보는 시인의 경외감이 한눈에 들어온다.
* 시간 -070218
어둠을 휘감으며
불빛이 춤을 춘다
이 밤을 뜬눈으로
눈썹과 씨름하다
새벽에
눈目이 열리면
너를 베고 눕는다.
*無門 -070215
힘든 일 하나 없던
그날은
어디 갔지
탈탈 털어도 붙는
이것도
인연인지
언제쯤
이 무거운 짐
벗어 놓고 나갈지.
원고지에 쓰면 여백이 너무 많아서 원고지가 아까운 시,그러나 선뜻 가슴으로 파고드는 무장된 시어들, 그 강렬하고도 섬세한 이미지가 윤석환 시조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일상의 삶을 몇자 안되는 단어로 조합된 시조란 형식의 시,그것은 한편으로는 시인의 성품이 단아하고 깔끔하며 구질구질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상 특징도 있을 것이다.군살을 더덕더덕 마치 무엇이 들어잇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겹겹히 옷을 껴입듯이 써 놓은 요란한 시에서 아무것도 못느끼는 우리들이 읽는 요즘의 시들을 그는 거부한다.
*마음을 버리는 사람 -070130
버린
저 쓰레기도
살펴보면 마음인데
던진
마음 따로
줍는 마음 따로 있나
버릴 때
눈치를 보니
살아있네, 양심은
버리고
줍는 사람
따로 있는 것 아냐
네 집이면
버리겠나
웃고 있잖아 땅이,
마음을
버릴 수 없지
양심부터 줍자고,
윤석환 2006-10-19 20:54:43 4
우리 주위에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을 경세적인 용어를 동원해서 꾸짖는 시인의 조그만 분노가 엿보인다.내집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산에 있는 아름다운 꽃을 꺾어서 나혼자만 보기위해 화병에 꽂아두는 얌체들이 얼마나 많은가.공동체 의식이 점점 소멸되어가는 현실에서 시인은 때로는 잔소리꾼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그런 행위는 양심을 버리고 마음 자체를 길바닥에 내던지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병풍病風 -0610109
도시는 죽순처럼 벌집 촌 들어선다
햇빛 등진 벽이 바람을 희롱한다
쉼 없이
삶을 나르는
짐꾼들만 바쁘다.
층층이 에돌아 싼 밋밋한 밀월이다
길 잃은 철새들은 긴 행렬 끝이 없다
물붓에
수놓은 마음
내 집 한 채 꿈같다.
수년을 함께 해도 보는 눈 낯이 설고
심장은 까맣게 타 숯으로 남아있고
창 너머
이웃사촌들
모르는 척 철문 닫고
수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오늘도 여전히 건물들은 지어진다.사람들은 건물의 한모퉁이라도 서로 차지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냉정하고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사람은 많지만 아는 사람이 없는 황폐한 도심이다.이웃집과 몇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 사람들 이름조차 모르고 만나도 아는척도 하지 않는 무관심한 도심의 벌통과 같은 집들, 거기 기계화한 사고방식과 맞물려서 사람들의 의식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로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혹시라도 도둑이나 들어오지 않나 모르는 척 문을 닫아버리는 이미 이웃사촌과는 거리가 멀어진 사람들,윤석환 시인은 현대인들의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세
태를 고발한다.
*가면 오고 오면 간다 -061009
1. 거자필반去者必返*
간다 해도 못 가니
어이 오지 못할까
예든 길 접었다지
말 뿐인가 그런가
오려면
가려했던 맘
버리고 오시게나.
2. 회자정리會者定離**
온다 해도 못 오니
어이 가지 못할까
오던 길 접었다지
말 뿐인가 그런가
가려면
오려했던 맘
가지고 가시게나.
고사(古事)를 알아야 시인이 쓴 내용을이해할 것같아서 몇자 적는다.
중국 한나라때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말고 또 다른 사기가 있었다.14세기 명왕조 당시 왕위설이란 사람이 쓴 사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춘추 시대 노나라에 회자라는 여인이 살았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정리벽이 남달랐다. 가는 곳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게 있으면 완벽하게 정리 정돈을 해놓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눈에 보이는 사물만 정리를 잘 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보통 사람은 그냥 곁눈으로 지나치고 굳이 따지지 않는 일을 회자 선생은 에누리없이 맺고 끊고해서 주변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거나 상처를 주곤 했다. 그래서 회자 선생을 알았던 친구들은 하나 둘 예외없이 그이 곁을 떠나게 되었다. 나이가 차서 출가를 했지만 이 정리벽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못가서 시댁 식구와 남편한테 미움을 받아 끝내 소박을 맞아 쫓겨나고 말다. 이런 경험에 바탕해서 회자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회자의 회한"이라는 노래를 짓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간에 이후부터 "같이 만나서 알고 지내던 사람은 반드시 떠나가고 만다"라는 뜻으로 "회자정리"라는 말을 쓰게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전국시대 진나라에 거자라는 여인이 살았다. 거자는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옛날에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는 걸인이 많았는데 거자 낭자는 이런 걸인들도 인간적으로 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걸인을 '거지', '거러지', '거렁뱅이'등으로 불렀지만 거자 낭자는 '마당 손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거자는 걸인들에게 밥을 줄 때 그냥 그네들이 갖고 온 쪽박에 담아주지 않고 반드시 반(=밥상)에 반찬까지 더해 정성스럽게 차려주었다. 거자 낭자에게 이렇게 따듯한 대접을 받은 걸인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다시 그의 집에 찾아왔다. 어떤 이는 그냥 다시 밥상 대접을 받으러 왔고, 어떤 이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느라 잘 익은 홍실이라도 하나 따와서 건네주었고, 어떤 이는 항간에 떠도는 쓸모있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런 경험에 바탕해 거자 낭자는 "삶은 짧고 밥상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아무튼 이후에 "떠나갔던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거자필반"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잡기(雜記)하나..
일면 윤시인의 용모는 얼핏 미국의 과학수사극 CSI에 등장하는 길 그리셤 반장과 비슷하게 생겨서 그 프로를 볼때마다 윤시인이 연상이 된다.1958년생인 윤시인과 그리셤 반장과는 나이도 동갑이고 튼실한 턱수염과 카리스마, 그리고 불타는 정의감, 불의를 절대로 용남하자 못하는 결벽에 가까운 성격에 원래 곤충학자가 그의 전문 분야였다.그러니까 수사관이란 직업은 외도를 한것이나 다름이 없다.그는 구더기나 장구벌레 등 사람들이 혐오하는 벌레들을 매우 아끼면서 귀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거기에 애정을 쏟는다.그리고 호머러스의 서사시를 즐겨읽고 햄럿의 호레이쇼와 햄렛 왕자와의 대화를 즐겨 인용을 한다.
윤시인의 양력을 보면 원래는 건축계통이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시로 그 가치관을 바꾼듯하다.직업이 따로 있는 것인가, 또 본업을 접고 다른 업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 어디 하나둘인가.A.J크로닌 경(卿) 같은 사람도 본래는 의사였는데 나중에 <천국의 열쇠> <성채>를 써서 더 유명해졌지 않은가.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만큼 전하는가 그 전하는 것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 잘 살아가는 갓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윤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그 가치관을 다른 일보다 더 높게 친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모쪼록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정의감,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시로서 하라 모든 것들을 쓴다는것은 어쩌면 그의 인간승리가 될런지 모르겠다.
약력
윤석환 시인
한글 : 윤석환
호 : 李千
한문 : 尹錫煥
영문 : Youn suk-hwan
아호 : 獨聲
본관 : 坡平
▒ 약력
1958년 경북 포항 청림동 출생(본적-부산)
울산대학교 건축대학 일반대학원 건축학 박사수료
2004년『문예춘추』등단
“꿈속에서 난 부자다”, “바닷게”, “스캐너Scanner에 굽는다”
동서대학교 건축공학부 겸임교수
예민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부산경남건축작가회 회원
부산건축사회 사진작가회 사무국장
대한건축사협회 정회원
(사) 한국건축역사학회 감사
한국육필문인협회 회장
사하문인협회 회원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원
시가람 낭송회 회원
▒ 석, 박사 연구논문
석사 부분
▷ 집합주택의 접지층 계획을 위한 연구
- 접지층의 변용 및 생활 양태를 중심으로
▷ 아파트 1층 주호의 생활양태 연구
- 우동주, 윤석환, 이화철 공동발표
박사 부분
▷ 일제 강점기 관보에 관한 연구 - 경남3찰을 중심으로
▷ 일제 강점기 범어사의 가람배치의 변화에 관한 연구
- 범어사 · 통도사 · 해인사를 중심으로
▷ 20세기 전반기 통도사와 해인사 가람배치의 변화에 관한 연구
▷ 梵魚寺 伽藍配置의 中壇領域 變化에 관한 硏究
- 寫眞과 圖版을 中心으로
▷ 舊韓末 梵魚寺의 復元圖 作成에 관한 硏究
▷ 梵魚寺 伽藍配置의 變化에 관한 硏究 - 日帝 强占期를 中心으로
첫댓글 윤석환 시인님의 시론중에 시는 집을 짓는 설계와 같다고 말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시몽선생님의 글평을 통해 윤시인님의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 거자필반,회자정리,, 뜻깊에 잘보았습니다, 주옥같은 시향 펼쳐지길 바라며 글평에 수고하신 시몽선생님 편안하신 밤되십시요~
생큐 투 아이(낫킹콜의ㅡ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