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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시의 공간 - 충주
충주의 시공간
김신영
충주는 한반도의 중심에 놓여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문화의 넘나듦이 큰 도시이다. 이곳이 마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중심지 역할은 물론 물자가 풍부하고 수량이 커서 물류의 이동이 큰 곳이기도 하였다. 충주만을 놓고 본다면 중원경이라는 큰 도시로 자리매김하다가 충청도의 중심지로 조선시대에는 예향의 중심 고장이기도 하였다.
이번에 충주의 시공간에 한국현대시사의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시인들을 탐문하면서 그 시공간의 확정에 나름대로 여러 번 어느 지역까지 충주의 시공간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놓고 한참 망설였다. 마지막까지 필자에게 혼돈을 준 것은 도청 소재지인 청주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청주를 빼고 그 윗 지방만을 충주의 시공간으로 확정하였다. 청주를 중심으로 가르기를 하였을 때 북쪽으로는 신경림(충주), 함민복(노은), 최준(음성), 박완호(진천), 오탁번(제천), 김신영(필자-충주), 남쪽으로는 도종환(옥천), 송찬호(영동), 오장환(보은), 정지용(옥천), 함기석(청주) 등 굵직한 시인들이 태어난 곳이다. 여기에서는 청주의 북쪽 시인들만을 다루었다. 이 외에도 충주를 중심으로 한 시인과 문인들이 많을 터이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필자가 충주를 기억하는 것은 남한강의 유려한 강줄기이다. 유년시절 나룻배를 타고 설날무렵 가족들과 함께 건너던 그 강은 얼음을 깨면서 건너야 할 만큼 매서운 추위가 있는 곳이었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시집온 어머니는 매서운 추위를 몹시 싫어 하셨던 기억이 난다. 사실 중부 지역의 내륙 한파는 지금도 위도상의 같은 지역에 비해 좀더 심한 편이다. 아주 추위가 극심하여 강이 모두 얼어붙어 강가에서 추위에 떨면서 강을 건널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하고 사공의 노에 신경을 곧추세우면서 설을 쇠러 갔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여름에 그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던 기억이 난다. 수량이 아주 풍부하였는데 가운데에는 여울이 있고 깊어서 위험하기도 하였다. 큰 물줄기를 따라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정취는 그야말로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많은 지역이 수몰되기도 하였고, 주변에 유원지들이 들어서서 그 때와는 풍광이 많이 달라져 있음은 말할 나위없다.
유구한 전승고적과 역사문화를 간직한 충주의 시공간은 여타의 지역보다 더 다변하는 사회의 중심에서 노래하는 사실적인 필치와 낭만성을 담보하는 시를 생산하는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신경림1)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신경림(1936. 4. 6~ )은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충북 충주시에서 태어나 1955년 『문화예술』지에 「갈대」와 「낮달」, 「석상」으로 등단하였다.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농무」는 한국현대시사의 중요한 시로 일컫는다. 농민의 한과 설움을 농촌의 현실을 바탕으로 노래하여 농민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켰다. 한 때 절필하기도 했던 그는 『농무』로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에서
농무를 통해서 농민의 한과 울분을 토하고 있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시이다. 좌절과 절망이 농민의 현실이지만 역설적으로 농무를 하면서 점점 더 신명이 나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이로써 농민의 애환이 더욱 드러나는 수작의 시로 꼽힌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갈대의 울음을 인생의 울음으로 대치시켜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울음을 삼키는 것이란 사실을 갈대를 통하여 감정이입시켜서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은 본래 비극적인 존재임을 통절하고 그렇게 울음을 삼키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내적인 울음을 간직한 존재이다. 울음을 우는 것이 인생의 한 단면이며 자신의 살아가는 의미인지도 모른다는 고백이다.
지금은 강화도에서 살고 있으나 충북 충주 노은에서 태어난 함민복 시인2)은 자본주의에 대한 날 선 시각으로 그 폐해를 들추면서 자연을 향한 애정과 가난한 그의 서정을 따뜻하고 순수한 필치로 드러낸다. 가난을 몸소 체험하면서 이골이 난 가난을 글로 풀어서 쓰고 있는 그는 아직도 가난한 시인이다. 짠 바람이 부는 강화도에서 혼자 살면서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시작 강의를 하는 그가 부럽기만 하다.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긍정적인 밥 』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에서
함민복 시인의 긍정성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두 편의 시이다.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을 통해서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경계를 긍정으로 바꾸어 표현하여 따뜻한 정경을 만들어 낸다. 또한 어머니와 함께 설렁탕을 먹고 있는 모습은 모정이 설렁탕 투가리의 부딪는 소리를 통해서 애틋하게 전해지고 있는 시이다. 고깃국을 못먹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고깃국인 설렁탕을 먹자고 하고는 설렁탕 국물을 혼자 사는 아들에게 부어주는 어머니와 이를 들키지 않으려는 아들은 결국 어머니의 하늘과 같은 뜻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충북 음성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준 시인3)의 시를 살펴본다.
마루 밑에서 산다
누구 한번 들여다봐 주는 일도 없이
개는 마루 밑에 혼자서 산다
빛이 없어서 미안하다
──『마루밑 세상 』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 볼 것인가
가끔 지난 시절 그리워 할 것인가
뛰어가기도 하고 포복자세로 가기도 할 것인가
길을 잃어버리고 길 아닌 곳으로
접어드는 경우도 있을 것인가
후회할 것인가 굶기를 밥먹듯 할 것인가
구걸도 해볼 것인가
차라리 길에서 아름답게 죽을 것인가
고심에 찬 개가 가고 있다
저마다의 심중대로 의지대로 한 마리의 무수한 개들이
각기 걸어가고 있다
──『개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다 』에서
동물 중에 개를 화두로 삼은 최준 시인의 시는 동물이라는 야성을 가졌으나 인간의 가축이 되어 한평생 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개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동물들이 갖는 무소유와 안식이 시인에겐 부러움이었을 것이며, 인생이라는 험난한 짐을 짊어지고 그 질곡을 걷는 그에게 안식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는 충북 음성에서 시창작교실과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완호 시인4)은 충북 진천이 고향이다. 현재 풍생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지만 충청북도의 순박하고 진솔한 향기를 지닌 시인이다.
여자는 몸 속에 지나온 날들의 내력을 숨기고 있다 사랑을 나눌 때 그녀의 몸에는 남자가 걸어온 길들이 문신처럼 새겨진다. 아내의 몸 속 길들 위에는 기억나지 않는 내 삶의 이력이 적힌 문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 길들을 따라 걸으며 나는 문장들을 주워 읽는다 한 번도 들키지 않았으리라 여겼던 비밀들이 주워 담을 수 없는 고백처럼 수런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걸 본다
그녀는 언제 이 많은 문장들을 써 온 걸까 아내와 나누었던 그 많은 사랑의 순간들이 결국 내 속의 문장들을 그녀에게 옮겨 적는 작업이었다니, 아무도 몰래 그녀가 내 은밀한 속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 몸에도 어느새 그녀의 상처가 새겨지고 있었다니
──『아내의 몸 속엔 내가 지나온 길들이 들어 있다 』에서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3월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중심中心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 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두고 떠나온 그 방. 나 오늘 들꽃 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
결혼으로 하여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배우자로부터 어떤 보편성을 찾는다. 박완호는 아내의 모습에서 보편적인 여성을 읽어낸다. 그 여자는 몸속에 지나온 날들의 이력을 숨기고 이제는 들어와서 보아달라는 것이다. 가까이 살기 때문에 무관심할 수도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들꽃 여관이 보여주는 시공간은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이다. 소멸하는 하루를 위하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신발의 끈을 매고 생기있게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오탁번 시인5)은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시인협회를 이끌어가며 시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에서나 삶에서나 유머가 구수한 시인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정경을 기대하던 마을에 슬프고 부끄러운 냄새들이 겨울비에 젖어 더욱 부끄럽고 냄새나는 슬픔이 되어 옛사랑을 기억나게 한다.
눈이 펑펑 쏟아져야 할 텐데 비가 온다 소한 대한 추위에 불알까지 꽁꽁 얼어야 할 텐데 비가 온다 겨드랑이에서 게을러 터진 땀냄새 나고 지난해 저질렀던 온갖 부끄러움도 다 젖는다 흰 눈 내려서 이 세상 어둠 모두 뒤덮어서 쑥덤불 같은 내 마음도 흰 도화지처럼 되어야지 순백의 마음 엮어서 사랑하는 이에게 보낼 수 있다 한겨울 깊은 저녁인데 비가 내린다 슬픈 사람 슬픈 사람끼리 눈을 맞으며 저 멀리 원시림이 매몰되는 소리를 듣고 싶다 눈을 밟으며 귀가 맑게 틔였던 지나가버린 아침을 겨울비 맞으면서 찾을 수가 없는 슬픔 어디에 숨었는지 짐작도 안 가는 그때 그 이름 저녁해 빛날 때마다 그토록 숱하던 그리움도 이제는 철 지난 겨울비로 흉칙하게 흩어진다 눈 맞으며 달려가고 싶은 그 옛날의 사랑이여 비가 온다 비가 온다 겨울비가 온다 겨울비에 젖어서 그 옛날의 사랑은 간 곳이 없다.
──「겨울비」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폭설」
유머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요소이다. 유머를 통해 시에서 웃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색다른 묘미일 것이다. 오탁번의 시는 그러한 유머를 담고 있는 시들이 많다. 웃음을 잃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시의 의미도 새로운 묘미를 준다.
오늘을 묵어가야 하는 여기 / 올록볼록 포도빛깔 살을 담아 / 송이송이 포도열매가 되는 밤 / 하루만큼 지쳐서 피곤이 / 여름 습기처럼 자욱이 몰려올 때 / 우리는 호텔에서 행복한 살이 되려한다 / 하늘이 짙푸르게 물들어갈 때 / 사람들이 집을 못내 그리워할 때 / 고향이 그리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볼 때 / 호텔로 난 길에 불이 들어 온다 //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이쯤일까 / 고즈넉한 해변에 한 송이 포도호텔 / 해변에서 먹물 빛 포도가 하늘을 담고 / 푸르게 수채를 한 정원이 / 안개를 뿜으며 밤을 기다린다 / 전면유리 넘어 정원은 / 평화로운 바람이 살짝 불고 / 머리를 흩뜨려 고개를 저어도 / 물결은 잔잔해 / 마음은 잔잔해 / 한송이 포도호텔이 있어 / 오늘은 편히 잠이 들 듯하다.
──「포도호텔 」
기꺼이 / 신神에게로 가까이 가고 싶다 / 친구여, / 내가 가질 수 없는 엿장수의 가위적的 장치를 / 물결 이는 밤마다 요술처럼 마술처럼 / 내 보이며 꿈꾸며, / 무거운 고요의 바다 / 첨벙이며 흔들리며 살찐 하늘 가 보고 싶다 / 여기 황폐한 문지방이며 무너진 흙담을 / 일으키어 내 출렁이는 바닷가 별들과 / 유성이 되어도 좋은 밤을 맞고 싶다 / 눈비 쏟아지는 겨울에서 / 비바람 부대끼는 여름에도 / 미씨개꽃 씨알 뼈에도 귀대고 / 나는 섬에서 솟아나는 온기溫氣를 느끼고 싶다 / 신神이 오는 바닷가에 드리운 내 얼굴 / 그 섬에서 나의 불가사의를 씻고 / 내가 피워올리는 향기로운 촛불로 / 밝혀진 궁전에서, 비어있는 / 가슴 가슴을 채우고 싶다 / 그렇게 기꺼이 신神에게로 / 가까이 가고 싶다
──『가벼운 섬·1」
필자는 호텔로 가는 아름다운 등을 보고 천국에 가는 길이 저렇게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편안한 안식을 취하며 아름다운 풍광에 나 스스로 설 수 있고 걸어가는 길을 노래하였다. 「가벼운 섬·1」은 등단시로 존재에 대한 번민과 불퉁명한 미래에 희망을 갈구하는 시이다. 이 시처럼 지금은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에게 진지하게 다가가 눈을 맞추며 인생과 사랑과 존재를 논하고 싶은 것이다.
이상 충주의 공간에 있는 시인들을 거칠게 살펴보았다. 늘 원고를 쓰면서 느끼지만 세상의 원고들은 거의 동시다발로 마감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때는 전화가 여러통이 동시다발로 오지만 한가할 때는 한통도 없다. 이것이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쫓기면서 불미한 원고를 쓴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훗날 나를 낳아준 충주라는 공간을 연상하면서 충주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물으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충주의 시인임을 자각하면서 앞서 거론한 시인들보다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고자 한다.
김신영 /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불혹의 묵시록』이 있고,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