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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태왕을 남편으로 섬긴 우황후와 역적 발기 |
고국천왕이 붕어하자 두 시동생에게 이상한 행동을 한 우황후 |
중국의 상징 한나라를 망하게 한 훌륭한 군주였던 고국천태왕이 붕어하자 동생 산상태왕이 즉위하고는 형수 우씨(고국천왕의 왕후)와 결혼한다. 두 태왕을 남편으로 섬긴 우왕후와 역적 발기에 대한 사연을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용) 고국천왕이 죽자 왕후 우씨(于氏)는 국상이 났음을 비밀로 하고는 밤에 왕의 아우 발기의 집에 가서 "왕이 아들이 없으니 그대가 계승함이 마땅합니다."라고 말했다. 발기는 왕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하늘의 운수는 돌아감이 정해져 있는 것이니 경솔하게 논의할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부인으로서 밤에 함부로 나돌아 다니니 어찌 이를 예라 할 수 있으리까?"라고 대답하자 왕후가 부끄러워하며 바로 연우의 집으로 갔다.
연우가 일어나서 의관을 정제하고 문에 나와 왕후를 맞아들여 자리에 앉히고는 술을 대접했다. 왕후가 "대왕이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없으니 발기가 집안의 어른이라 마땅히 뒤를 이어야 되겠으나, 나더러 딴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무례하고 오만하며 예절 없이 대했기에 아주버니를 보러 온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연우는 예를 더욱 극진히 하여 직접 칼을 들고 왕후에게 고기를 베어주다가 잘못해 손가락을 다치자, 왕후가 허리띠를 풀어 그의 다친 손가락을 감싸주었다. 우왕후가 환궁하면서 연우에게 "밤이 깊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길지 염려되니, 그대가 나를 대궐까지 데려다 주셨으면 합니다."고 말하자 연우가 그렇게 하겠다하니 왕후는 연우의 손을 잡고 대궐로 들어갔다. 이튿날 동틀 무렵 왕후가 선왕의 유명이라고 거짓말을 해 군신들로 하여금 연우를 왕으로 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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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발기의 조국 고구리 공격
발기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해 군사를 동원해 왕궁을 포위하고는 "형이 죽으면 아우에게 왕위가 돌아가는 것이 예이거늘, 네가 서열을 어기고 왕위를 찬탈하는 대역죄를 저질렀다. 빨리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처자들까지 죽여 버리겠다."라고 호통을 쳤다. 연우는 3일 동안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고, 백성들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
발기는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는 처자들을 데리고 요동으로 달아나 요동태수 공손도에게 "저는 고구려 왕 남무의 동복아우입니다. 남무가 아들이 없이 죽었는데, 내 아우 연우가 형수 우씨와 공모해 왕위에 올라 천륜의 대의를 어겼습니다. 이에 분개하여 상국으로 귀순해 몸을 의탁하려 합니다. 원컨대 군사 3만 명을 빌려주어 연우를 쳐서 난을 평정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말하자 공손도가 이를 허락했다.
연우가 아우 계수에게 군사를 주어 요동에서 오는 군사를 막으니, 한나라 군사가 크게 패했다. 계수가 스스로 선봉이 되어 도망가는 군사를 추격하자 발기가 계수에게 "지금 네가 감히 늙은 형을 해하려고 하느냐?"라고 외치자, 계수가 형제간의 정을 저버릴 수 없어 감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연우가 왕위를 사양하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로운 행동은 아니지만, 형이 일시의 분함을 이기지 못해 나라를 멸망시키려함은 이 무슨 뜻이오? 죽은 후에 무슨 면목으로 선조들을 대하려는가?"라고 말했다.
발기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뉘우침을 이기지 못해 배천으로 도주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계수가 슬피 울며 발기의 시체를 거두어 임시로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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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하며 계수를 내전으로 불러들여 형제의 예로 대하면서 "발기가 타국에 군사를 청해 국가를 침범했으니, 죄가 이보다 더 클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대가 발기를 쳐서 이기고도 풀어주어 죽이지 아니했으니 그로써 족한 일인데, 발기가 자결한 것을 무척 애통해하니 그대는 도리어 나를 무도하다 여기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계수가 서글픈 표정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제가 지금 한 말씀 올리고 죽기를 청합니다."라고 대답하니 왕이 "무슨 말인가?"하고 하문했다.
그러자 계수가 말하기를 "왕후가 비록 선왕의 유명으로 대왕을 즉위하게 했음을 대왕께서는 예로써 사양하지 않았으니 이미 형제간에 우애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의(義)가 없어진 것입니다. 신이 대왕의 미덕을 나타내고자 짐짓 발기의 시신을 거두어 초장을 한 것인데, 이로 인해 대왕의 노여움을 사게 될 줄이야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약 어진 마음으로 발기의 죄악을 잊으시고, 형에 대한 상례를 갖추어 장례를 지내주신다면 누가 대왕이 옳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신은 할 말을 다 했으니 죽임을 당해도 산 것과 같습니다. 청컨대 나아가 형리의 처형을 받겠습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다가앉으며 온화한 얼굴로 위로하며 "내가 불초하여 미혹됨이 없을 수 없었는데, 이제 너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구나. 너는 나를 탓하지 말라."라고 말하자, 동생이 왕에게 절하고 왕도 그에게 또한 절을 하고는 마음껏 즐기다 헤어졌다. 가을 9월 관리에게 명하여 발기의 상례를 지내되, 왕의 예로써 배령에 장사지내도록 했다. 왕이 원래 우씨로 인해 왕위를 얻었으므로, 다시 장가들지 않고 우씨를 왕후로 삼았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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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기 <삼국사기> 기록은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고국천왕이 붕어하자 우왕후가 발기의 집에 먼저 갔다가 심한 창피를 당한 다음 바로 연우의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같이 궁전으로 돌아와 이튿날 가짜 유명으로 연우를 태왕위에 올렸다는 것은 실로 뭔가 이상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다.
1) 고국천왕이 붕어하자 과연 우왕후가 발기의 집을 먼저 찾아가 발기에게 다음 왕위를 계승함이 어떠냐고 물어보았을까?
2) 발기에게 창피를 당하자 우왕후가 발기를 왕위에 올리겠다는 생각을 접은 다음 연우의 집으로 갔을까? 솔직히 발기가 한 그 정도 말이야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말 아니겠는가?
3) 어떻게 왕후가 연우와 말 몇 마디 나누어보고는 그를 지존인 태왕위에 앉힐 것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4) 왕후가 목숨을 걸고 가짜 유명을 꾸며 연우를 보위에 올린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 왕후와 연우는 도대체 어떤 사이였을까? 그냥 평범한 형수와 시동생 관계였을까?
5) 연우는 왜 다시 장가들지 않고 형수 우씨를 왕후로 맞이했을까? 단순히 자신을 태왕으로 만들어준 우왕후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일까?
6) 태왕위가 동생 연우에게 넘어가자 발기는 왜 ‘서열을 어기고 왕위를 찬탈하는 대역죄’ 운운하며 그토록 분노했고, 왜 공손도를 찾아가 ‘천륜을 어기고’라고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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